나도 스트라이다 같은거 사고 싶지 않은건 아니다. 돈도… 뭐 기십만원 주고 스트라이다 정도 산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라면도 못 먹고 살 정도로 내핍한 상황도 아니고 말이지. 다만, 아직까지 내 인생에 ‘자전거’가 어느 정도 효용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 큰 돈 주고 샀다가 잘 타지도 않고 하면 또 얼마나 인생 비겁해 질꺼냐 싶어서 대충 동네 자전거포에 가서 눈에 확 띄는걸로 샀다.
이름도 ㅎㄷㄷ. 대한민국 자전거의 살아 있는 역사인 삼천리에서 나온 26 뉴태풍 DX. 모델명에 26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21단 밖에 지원하지 않음은 역시 삼천리 특유의 깡다구랄까, 그까이꺼 5단 쯤은 존심 상해서 뺐어, 하는 식의 호기로움이 엿보인다. (아, 찾아보니 26은 타이어 크기네.. 26인치. -_-;;)
이놈의 자전거포가 빙하기가 찾아 와 어느 순간 멸종하고 만 공룡처럼 동네에서 자취를 감춘 탓에 삼십분이나 걷고 거리를 두리번 거리다가 겨우 허름한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의외로 자전거포 앞엔 동네 아저씨들이 당장이라도 삭아서 부서질 것 같은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기름칠을 해달라는 둥 브레이크 와이어를 바꿔달라는 둥 하면서 와구와구 모여 있다.
그리고 역시 자전거는 아직 인터넷보다는 자전거포에서 사야 제맛이라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주인장 할아버지. 자그마한 몸집에 눈이 두 배로 커 보이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손엔 잔뜩 기름때가 묻은 모양이 마치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은둔 고수같은 풍모다. 할아버지 바쁘신데 채근하기가 뭐해서 잠시 옆에서 자전거를 만지는 할아버지를 지켜본다. 중간에 반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뭔가를 고쳐달라고 한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나중에 온 아저씨의 자전거를 신기한듯이 만져보다가 이거 얼마에요? 하니까 으쓱하며 ‘한 오십만원 줬어요.’ 한다. 그러니까 카센타로 치면 동네 허름한 카센타에 벤츠 몰고 와서 브레이크 라이닝좀 봐주세요 한 격인데, 나름 가격에 쫄만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까이꺼 대충, 하면서 기름때 묻은 손으로 오십만원짜리 자전거를 와구와구 만진다. 역시 이 할아버지의 후까시는 진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대충 가계 앞에 정리되고 할아버지가 조금 쉬는 틈을 타서, 할아버지 자전거 좀 보러 왔어요, 하니까 거 들어가서 보슈, 한다. 워낙 가계가 작아서 들여 놓은 자전거는 별로 없다. 할아버지 저 한 5만원부터 10만원 사이 생각하고 왔는데 자전거 얼마나들 해요? 했더니 제일 싼게 12만원부터 시작한다나… 12만원 짜리는 쇼바가 없고, 13만 5천원 짜리는 앞쇼바만, 15만원 짜리는 앞뒤쇼바가 다 있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데 나라고 쫄 필요 없다 생각하고선 그럼 15만원짜리로 주세요, 했다. (저… 3개월 할부로. -_-;)
페달을 달고 선심쓰듯이 잠금고리 비싸고 좋은거라며 하나 선물로 준 것을 받고선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타보는 자전거냐. 간만에 타려니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더군다나 울 집은 경사가 져서 기어를 내려도 ㅎㄷㄷ이다. 아니, 오랫만에 자전거 타는데 좀 돌아다녀 볼까 하고 부천을 경유해서 한참을 달려본다.
인적 드문 자전거 도로에서 한 컷.
자전거를 왜 샀냐하면… 틈틈히 나와바리 관리를 하려면 기동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