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솔직히… 홍콩이 화성(Mars)도 아니고 한 번 다녀오는데 수십억씩 드는 것도 아닌데 나만 다녀 온 것처럼 멋드러지게 홍콩 여행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것은 조금 우스워 보인다. 그리고 잘 쓸 자신도 없다. 검색해 보면 홍콩 여행에 관한 아름다운 추억이나 실속 있는 정보, 멋진 사진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내 이야기 한 꼭지를 또 걸어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다녀 왔고, 한 나흘을 빡시게 걸어 다녔더니 배도 조금 들어 간 것 같다. (돌아 온 지 이틀만에 다시 원상복귀) ‘여행에서 만난…’ 운운 하는 낭만적인 해프닝은, 당연히 없다. 아, 마지막 날에 춤추는 술집에 들어가 신나게 춤을 추다가 네델란드에서 왔다는 어떤 사내와 이야기를 했다. 걔는 영어를 곧 잘 했지만, 나는 잘 하지 못하고 게다가 술집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몇 마디 나누고 뭐 그런 식이었다. 너무 신나게 춤을 췄던지 술집 안 사람들이 다 한번씩 인사를 해서, 그 도중에 코리안이라고 말한 걸 옆에서 들었나보다. 한국 축구를 좋아한단다. 오, 그래? 넌 어디서 왔는데? 홀란드. 뭐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라? 홀란드? 그럼 히딩크 어쩌구 저쩌구, 솔직히 축구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얼싸 안고 마치 오래 전에 헤어진 형제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이정도가 해프닝이라면 해프닝.

돌아 오는 비행기 안, 무슨 교회에서 단체로 여행이라도 온건지, 아니면 사박 오일 선교봉사 하고 돌아가는 모양인지 이집사님 김권사님, 시끌벅적 하다. 애새끼들도 마치 관광버스라도 탄 것처럼 의자 위에 올라가 난리를 친다. 그러다가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어떤 꼬마 여자애가 ‘아저씨 저랑 자리 좀 바꿔주세요. 친구랑 앉게요.’ 한다. 어이쿠 이렇게 감사할데가. 그래서 처음으로 1만미터 상공에서 지상(과 해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구름이 기묘한 모양으로 비틀리고 휘몰아 흘러간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니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다. 비행기는 열심히 동쪽으로 도망가며, 석양을 피해 날아간다. 수평선 끝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하늘로 이어졌다. 천지 만물이 무아지경으로 녹아든다. 그 순간에 내가 인간인걸 정말 저주했다. 새로 태어났다면 내게 나날은 이런 감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감탄사를 연발하는 인간이 있다면 신나게 패줄테다. 닥치고 감동. 닥치고 감격.

그리고 기내식을 먹고 한 숨 잠들었다가 서해 근처에 와서 잠이 깬다. 또 다시 창문을 본다. 서쪽의 끝은 이미 밤이었다. 나는 오후였고, 오른편으로는 아직 오전의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이 또 다시 몰려든다. 아이고 맙소사! 사람들이 천국을 이야기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가 다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