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황지우를 읽었다. 사실 나는 황지우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데, ‘흐린주점..’ 시집 발간 기념으로 사인회를 했던 수(십)년전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였다. 그때 나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스승님에게 바칠 책을 골라보려고 나간 것이었고 마침 때가 그 날이었다. 뱀처럼 길게, 지렁이처럼 서 있는 사람들 뒤에서 한참을 멍하니 교보문고 천장 유리에 비친 모습들로 시간을 떼우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서 시집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름이 뭡니까?’, 내 이름으로 하긴 그랬고 스승님의 이름을 댔다. ‘뭐라구요?’, 다시 한 번 스승님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시집을 건내주었다.
수(십)년이 지났다. 스승님은 (물론) 다 나았다. 그러나 어떤 조짐들, 이를테면 회복 불가능의 유리판에 생긴 금 같은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듯이 그는 다시 이륙하는 법이 없었다. 까닭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상처받는 일이 많더라도 힘내라, 고 오늘자 스포츠신문 79년생의 운세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황지우를 읽었다. 매우 아득한 느낌의 황지우. 시인들은 매우 엘레강스하게 망가지는 반면에, 우리는 핵연쇄반응처럼 망가졌었다. 절대 다시 재조립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영이는 동해인가 목포인가에 가버렸다고 하고 원식이형은 미아처럼 터미널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때 밤을 새고 까칠한 살갗으로 멍하니 바깥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안토니오 뽈시오네의 기타소리같은 명멸하는 빛깔로 흰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삼십도를 웃도는 열기가 휘몰아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이십삼도에 맞춰진 에어컨 바람 아래서 피아노를 쳤다. 딸깍딸깍소리만 나는 고장난 피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