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우리집 특별식, 냉국수를 해먹기 위해서 냉면육수를 사러 ok마트에 갔다. 날은 어느때보다도 투명했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에서 거대한 난로를 켜 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구름이 나무처럼 자라난다. 하늘은 파랬다.
주섬주섬 냉면육수와, 9V짜리 배터리를 계산대에 올려 놓고 담배도 사려고 하는데 주인 아저씨는 계속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나는 그의 통화가 기다릴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 신한은행이라니까. 입금 안됐어? 몰라 있다 다시 해. 손님왔어, 지금.”
“디스 플러스도 한 갑 주세요.”
문득 그의 핸드폰이 낯익다는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희귀하다는 … 내 핸드폰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나는 내 핸드폰 모델명도 모른다.) 지금 사용중인 핸드폰을 사용한지가 거의 일년 반이 넘어가는데, 같은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어랏? 저하고 똑같은 핸드폰 쓰시는 분 처음 봤어요.”
“네? 아.. 으하하. 그렇네요, 저도 처음 봤어요.”
“이거 괜찮죠?”
“네, 싸고 그냥저냥 쓰기엔 딱 좋더라구요, 근데 배터리가 빨리 달아서 바꾸려고…”
“엇, 저도 최근에 들어서 이상하게 배터리가 빨리 닳던데?”
“그래요? 저도 괜찮다가 요금에 그러더라구요. 얼마나 쓰셨어요?”
“한 일년 반?”
“저도 그래요. 이 모델이 아마 그때쯤 나왔던 것 같아요. 일년 반 지나면 배터리가 다 그렇게 되나봐요.”
하고 대화를 나눴다. 생각해보니까 최근 몇 달 간, 잘 모르는 사람과 잡담을 나눈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냉면육수 4개와 배터리, 담배를 넣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까닭없이 서글퍼졌다. 자꾸 내가 물리적으로 닳아서 없어지는 것 같다. 어제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오늘은 엉덩이가, 하는 식으로.
후줄근한 내 자신을 상상하는건 정말 자신이 없지만, 가끔 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모습이 보이곤 하는데, 나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노랗게 땀에 절은 반팔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연신 얼굴에서 땀을 훔쳐내며 짜증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면서도 전체적으로 구겨진 표정을 하고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면서 전체적으로 모난 투로 말을 건내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는 심하게 축약된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것이 인생’ 이라는 말로 얼버무린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렇다면 ‘삶은, 의미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의미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피아졸라의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 앨범 가운데, ‘astor’s speech‘라는 트랙을 들으면 확실히, 삶이 의미라는데 동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