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시작은 ‘러브크래프트 코드 3’권의 커버 일러스트였다. 나는 분명 어딘가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도무지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온 곳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석화된 인간을 들고 관찰하는 그림이었다.

“빌어먹을… 영희야, 너 이 그림 기억 나? 분명 너하고 같이 봤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

영희는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보는 것처럼 눈을 찡그리며 감은 상태에서 고개를 휘저었다.

“야, 제발 그 더러운 것좀 치워줘. 기분 좋게 술마시러 와서 갑자기 왠 귀신 그림이야.”
“나 지금 이걸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지 못하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맞아, 그때도 너 그렇게 못볼 걸 본 것처럼 굴었는데, 기억 안나?”
“몰라. 알아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나는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삼킨 뒤에 일어났다.

“미안해,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나 빨리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
“야, 너 뭐야! 그딴식으로…”

뒷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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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사이트를 보고서는 너무 기분이 묘해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다 이 작가를 소개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커뮤니티는 1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 다음은? 나는 그를 어디서 처음 알게 된거지? 아마도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검색엔진에 ‘러브크래프트’라는 키워드를 넣고 이미지를 검색해봐도 도무지 나오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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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뭔가 시작부터 잘못된게 틀림없어.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었다면 나는 벌써 그를 찾아 냈어야만 했다. 벌써 4시간째 검색엔진을 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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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 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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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떤 그림을 발견했는데, 그 그림은 기괴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기억하는 그 작가의 화풍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발견한 그림은 디스커버리채널의 ‘Alien Planet’이라는 유사-다큐멘터리의 컨셉 아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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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제서야 모든게 기억났다. 한때 Alien Planet을 보고 존재하지도 않는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저리도 개연성 있게 그려냈을까 하면서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을 찾아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가 그린 ‘인페르노’ 시리즈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드디어 발견했다! 드디어 답답함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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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코드 3의 커버 일러스트는 Wayne Barlowe라는 일러스트 작가의 인페르노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http://www.waynebarlowe.com/barlowe_image_pages/inferno_7_ballsgone.htm

흉칙한 것이나 기괴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은 가급적 클릭을 삼가해주세요. 뭐 그다지 무섭지는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