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

 밤중에 일을 하다가 컵에 물을 담아오기 위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랬다. 어떤 산발을 한 여자가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삼년만에 그렇게 놀래보기는 처음이다. 가만히 보니까 엄마였다. 엄마랑 나랑 새벽 네시에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왜 내 방문 앞에 서 있냐고 물으니까 아침에 약국에 가서 아버지 약 좀 사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디 아프시냐고 했더니, 밤새 온몸이 쑤셔서 잠을 잘 못이루신다며 저 증세는 엄마가 잘 아니까 그냥 약국에 가서 약만 사오면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안방에 갔더니 아버지는 연신 몸을 뒤척이면서 끙끙댄다. 난 갑자기 부산해져서 119를 부르니 어쩌니 하는데, 엄마는 지금 가봐야 응급처치만 하니까 소용 없단다. 하긴…

 새벽까지 일을 하고 좀 느즈막히 일어났더니 집안이 조용했다. 엄마는 교회 간 것 같고 동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식탁에 못보던 약봉지가 있는걸 보니 동생이 투덜대며 약국에 다녀온 것 같다. 안방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말하기 민망하지만 치질 기운이 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벌써 근 10년 가까이 트럭 운전을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시간 만큼, 아버지는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그리고 피부병도 좀 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런저런 몸 상태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강철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아픈건 개념 밖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그것은 항상 거짓인 명제다. 어쩌면 내가 세심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이 옳다. 내가 세심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아픈걸 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아버진 아픈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좋아하는 교회도 가지 못하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낙), 처연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모양이라니.

 가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때를 떠올린다.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애증의 관계로 평생 이렇게 살겠지, 싶었는데, 엄마고 아버지고 점점 늙어가는 것 같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게, 뭐랄까 자기성(自己性) 같은 것을 조금씩 소모해 가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은 참 시답다.

 뭘 어째야 할까, 생각중이다. 깨워서 죽이라도 끓여 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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