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요, 오페라.

웹브라우져 오페라가 탄생 10주년을 맞아서 파티를 열었단다. 무료로 등록코드를 오늘 하루에 한해서 배포한다고 하는데, 등록하지 않아도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하겠다.

이런 분위기가 재밌다. 나로써는 왠지 얼굴만 한 번 본 사람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기분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다들 지들끼리만 재밌게 노는 것 같아서 좀 배아프긴 해도, 술렁술렁하는 분위기만 맛봐도 즐겁다.

직원들이 참여해서 만든 음악회 실황도 아주 수준급이다. 다양한 장르의, 순수 아마추어리즘의 극치, 랄까. 하하하.

암튼 축하합니다!

건망증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일본 SF소설가의 작품 가운데, 사람들이 너무 일에 중독되어 자신이 과로로 죽었는데도 죽은지 모르고 계속 살아갔더래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은 속이 답답해 소화불량인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가 어두운 얼굴로 “당신, 심장이 멎어있어요.”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당신과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엊그제 봤던 (일본) 괴기만화에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초자연적인 현상에 잘 엮이게 되는 주인공이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친구는 주인공을 따로 불러 “우리 아빠한테 말 걸지마. 사실은 아빠가 며칠 전에 자살을 했는데, 하도 건망증이 심해서 자꾸만 집에 돌아오셔. 지금은 보통인 상태로 있지만, 어떤 계기로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게 되면 굉장히 난폭하게 변하거든.” 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알고보니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도 죽어있었다. 연유인 즉슨, 친구 아버지가 정리해고로 인해 자책하다가 자신의 부인과 딸을 도끼로 살해하고 자신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던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식의 분위기같은 것이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의외로 무섭지 않고 오히려 착잡한 기분이 된다.

오늘 아침, 어머니의 출근 모습이 꼭 그랬다.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일까? 어두운 복도를 걸어 올라가며 잠깐 내 쪽을 흘겨보는데, 그 무표정함이란. 냉정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며, 그야말로 얼굴에서 표정이라 이름 붙일 만한 것들을 모조리 긁어다가 불태워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심장 언저리를 만져볼까 했다가, 혹시라도 심장이 뛰지 않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서 결국 그러지 못하고 보냈다.

그러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족이 과연 어떤 것으로 전락해버렸는가, 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봤다. 경제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거처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모두는 날마다 삶도 아니고 생활도 아니고 그저 ‘내일도 살아있기’ 위해서 돈을 벌러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한다. 이것이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반복된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이제 아버지 얘기 안하겠다고 했던 것 같지만) 매주 직장 동료들과 천원씩 모아서 로또를 사 오신다. 내게 번호를 맞춰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사실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당신의 돈으로 오천원 어치 로또를 사오시는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의 재미로 하는거야 내가 뭐라 할 것이 못되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자신의 돈으로 로또를 사오신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충격이다. 심지어는 주유소에서 주는 무슨 응모권이나 과자를 먹고 나오는 이벤트 안내 종이까지 다 가져오신다. 왜? 타워팰리스에 가기 위해서?

설마. ㅎㅎ.

7메가면 너무하잖아.

코드가 지저분하게 나온다는 단점때문에 한 삼사년 전부터 나는 위지위그 기반의 HTML generator/editor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나모는 내가 사용해본 에디터 가운데 최악의 코드를 생산해냈다. 최근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제 거의 모든 태그들의 property들은 머리가 기억 못해도 손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뭐 괜찮지, 하고 있다. (물론 비표준 코드들만 기억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태그만 봐도 대충 사이트가 어떻게 나오겠구나 싶을 정도니까 오히려 assistant들은 거추장스럽다.

내가 유일하게 HTML generator/editor의 힘을 빌리는 경우는 간혹가다 이미지맵을 사용할때 뿐인데, 이놈의 좌표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수정하는 것은 당최 성미에도 안맞을 뿐더러 굉장히 비생산적인 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이미지맵 생성기로써 드림위버나 나모를 쓰기엔 뭔가 손발이 안맞는다. 해답은? 이미지맵 생성기를 구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번에 윈도우를 포맷하고 새로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면서 드림위버를 깔아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이미지맵을 써야 할 경우가 생겼고 드림위버를 깔아야 하나 어쩌나 하던 차에, 아주 예전에 GeoHTML이라는 이미지맵 생성기 프로그램을 사용해봤던 기억이 나서 검색엔진에 주문을 걸었다.

“구글아, 구글아 이 세상에서 가장 심플하고 강력한 이미지맵 생성기는 뭐니? 단, 프리웨어야 한다.”

나오는건 듣도보도못한 쉐어웨어 이미지맵 생성기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GeoHTML을 써야하나 (이건 프리웨어다) 하고 인터넷 자료실에 들어가 이미지맵을 따로 검색해봤다.
꽤 다양한 (이미지맵 생성이라는 매우 제한적인 용도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열가지 이상 된다는 사실은, 역시 인터넷엔 희안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프로그램들이 검색되었다. 그 중에 GeoHTML을 제외하곤 모두 쉐어웨어였다.

GeoHTML보다 적은 용량이면서 정말 필요한 기능만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30일 제한이라는 단서가 달린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해불가능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Life Software Imagemapper V1.0 라는 것인데, 스크린샷으로 보아하니 기능도 매우 심플하며, 별다른 툴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면서 설치파일이 7.32Mb나 됐다. 나는 윈도우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단순하게 이미지맵을 생성하는 주제에 왜 7.32Mb나 되는 용량을 가져야 하는지 쉽게 납득 할 수 없었다. 설마 인스톨러만 한 6메가 되는걸까? (이것도 웃기다.) 아니면 자동으로 군사위성을 해킹해서 누드비치를 세밀하게 촬영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이라도 포함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걸 깔면 번들로 라이트 버젼의 드림위버라도 함께 깔리는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왜 이게 7메가가 넘는 설치파일을 가져야 하는지.

옛날 얘기 자꾸 하면 나이도 많지 않은 주제에 웃기기도 하지만, 암튼 옛날 수십킬로바이트짜리 프로그램들이 참 그립다. 초창기 개발자들은 변변한 한글 입출력 라이브러리도 없어서 다들 손수 만들어서 썼다고 한다. 그래도 프로그램의 용량은 매우 작았다. 기억에, 무료로 배포되었던 마지막 이야기 버젼인 5.3은 500kb 안짝이었다. 그래도 매우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다. (심지어 통신을 즐기면서 동시에 ims파일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윈도우 프로그래머가 모뎀을 이용해 통신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과연 얼마나 용량을 줄일 수 있을까?
물론 지금 모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땡깡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설치하지 않아서 그렇지, Imagemapper는 거대한 용량을 감안하더라도 유용한 기능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옛날 삼십메가 하드는 이제 삼백기가 하드가 되었다. 끝끝내 절반 이상을 채우지 못하고 합선으로 맛이 가버린 내 첫번째 컴퓨터.
벌써 나는 백오십기가를 의미없는 데이터로 가득 채워버렸다.

eye of beholder & sweet child o’ mine

eye of beholder. 주시자의 눈. 1999년 작. EBS인가 KBS인가에서 오래전에 틀어줬던 것을 지나가며 보다가, 그만 끝까지 다 보고 말았던 영화. 갑자기 생각났다. 이완 맥그리거가 나오긴 하는데, 별로 좋아하는 배우도 아니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흐리다. 오히려 에쉴리 쥬드가 나와서 너무 좋았다. 나는 이런 피곤하며 짜증나지만 너그럽고 약간의 유머를 갖고 있는 여자가 좋다. 에쉴리 쥬드를 보면 누가 가끔 생각났다. 그런데 잊어버렸다.
줄거리는 잘 기억이 안난다. 아마 무슨 일인가로 이완이 에쉴리를 계속 쫓는다. 그리고 이완의 어린 딸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 딸은 유령이거나 이완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딸이다.
그야말로 줄기차게 쫓고 쫓다가, 마지막, 알라스카인가의 도로변, 곳곳에 쌓인 눈이 아직 녹지도 않은 벌판에서 에쉴리는 (아마도 이완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지막 에쉴리가 이완의 품에 안겨서 죽어가는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누군가 죽는 장면 베스트 5에 한 4위 정도는 할 정도로 Impressive했다. 애닯다거나 숭고하다거나, 혹은 아예 처참하지도 않은 그냥 비홀더로써의 죽음. 근데 왜 갑자기 이게 생각났지?

sweet child o’ mine은 내가 막 제대하고 나서 굉장히 많이 들었던 곡이다. 당시에 이 곡을 불렀던 그룹은 mr. big이나 모틀리 크루나 그랬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지금은 건즈앤로지즈의 것 밖에 찾을 수 없다. 나는 건즈앤로지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컬의 째지는 목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초반 기타 솔로가 crystal한 곡. 나름대로 명곡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

Google Talk

어떤 분과 테스트를 해봤는데 가끔 한글이 이상하게 출력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베타니까 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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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무성하던 구글메신저, 가 드디어 나왔다. MSN의 .net passport와 비슷하게 gmail.com의 메일계정을 ID로 사용하며 jabber로도 메신저 접속이 가능하다, 고 한다.
Google Talk은 아직 베타버젼이어서 좀 휑한 느낌이 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능들은 다 지원한다. (인스턴트 메시징, 파일 전송, VOIP etc..) 게다가 gmail notifier 역할까지 해주기 때문에 꽤나 유용할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구글이 google talk를 다중 메신저 클라이언트로 개발해줬으면 한다. msn도 지원하고 말이지.

내 google talk ID는 kirrie@gmail.com 입니다. 혹시라도 사용하시는 분은 친구로 등록해주세요.

google talk를 사용하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코멘트로 자신의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그럼 제가 gmail.com으로 초대해드리죠.

그런 다음에 http://talk.google.com 에서 메신저 클라이언트(900kb)를 다운받아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일기

이틀전인가… 우연하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매운음식 자꾸 먹게 되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자꾸만 그만 보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어서 끝내 백갠가가 넘는 이야기를 다 보았다. 십오년만에 무서워서 잠이 잘 안왔다.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화알짝 열어 놓은 창문 밖에 백열등에 의해 생긴 기묘한 음영들이 자꾸만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까놓고 얘기해서, 중간에 창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물론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까, 다시 모든 것에 무덤덤해졌다. 오늘의 창밖은 어둡다. 가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간다.

모든게 뒤죽박죽이 된 십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임계점이 있다면,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아닌 딱 그 점에 서 있는 경우가 최악이다. 유리컵에 조금씩 물을 붓다 보면 어느 순간 표면장력에 의해 컵 높이 이상으로 물이 ‘쌓이게’ 된다. 저 물은 과연 언제 쏟아질 것인가, 뭐 이런 얘기다. 나는 아마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심약한 정신.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을 굉장히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 ‘정신’을 두고 보면, 나는 지하 십팔층 감옥에서 온 몸에 팔뚝만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을 상상한다. 쇠사슬은 단단하게 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는 결코 몸을 바닥에 뉘일 수 없다. 그래도 미치지 않는게 다행일까? 이제 그냥 이거 놔버리고 싶은데.
문제는 정말 없다. 나는 좋은 가족과 좋은 친구들, 경제적으로도 당장 굶을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대학도 다니고 키도 약간 큰 편이고 생긴 것도 뭐 이만하면 됐다, 고 생각하며 연애도 한 번 해봤고… 일반적으로 이것을 두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딱 어제 오후 두시에서 세시경의 하늘 같은 상황이다. 요즘같으면 저녁 여덟시에서 아홉시가 제일 견디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이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느낌이다. 뭘 잘 설명할 수도 없는데, 예를 들어서 가장 확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수학적 진리, 즉 1+1 = 2 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세계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고… 내가 나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걸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힘들면 웃음이 나고, 기쁘면 우울해지거나 한다. 나는 그 상반된 감정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갑자기 Scatterbrain이 듣고 싶으면서, 산양젖을 마시고 싶다. 머리가 아파. 몸이 아프면, 희안하게 정신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확연하게, 만져진다.

자,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2학기 복학하려고 한다. 복학은 이미 했고, 수강신청도 일단은 마쳤고. 깡 좋게 한번 듣다가 실패했던 형이상학을 다시 신청했다. 선생님도 같은 분. 미쳤다, 나. 아마 그거 열심히 듣다 보면 나 돌아버릴지도 몰라, 진짜로.

대항해시대 온라인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다시 깐 바람에, 이전에 종종 기분전환용으로 즐기던 게임들과 완전히 바이바이 해버리고 말았다. 길드워는 누군가의 말처럼 유료화 되자마자 길드워는 어떻게 먹으면 맛난 음식인데?가 되어버렸고, 워록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잔인해서 하기가 싫어졌고, 잠시 좌백과 진산 부부가 공동으로 개발에 참여했다는 가십때문에 시작했던 구룡쟁패도 일주일만에 초단순반복형 레벨링이 지겨워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별로 미련도 없고 미련하게 다시 게임들을 다운받아 인스톨하는 것도 귀찮아서 죠이스틱을 사서 동생이랑 비행기 슈팅게임이나 하고 그랬다.
lunamoth님의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관한 글을 보다가, 그럼 이거나, 하는 심정으로 클로즈드 베타테스터에 신청해서 이틀 전인가 당첨(?)이 되었고 클라이언트를 다운받아 잠시 플레이해본다.
이제 뭔들 ‘억!’ 한게 없다. 육개월 전이었으면 아마 식음을 전폐하고 달려들었을텐데, 지금은 모든게 시들하다. 차라리 멍하니 음악 들으며 가을로 깊어지는 맑은 공기를 감상하는게 오히려 더 즐겁다. 어쨌든.

롤플레잉 게임이란게, role playing game이다. 역할극 놀이. 게임 내에서 나는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창조된 새로운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 보는 것이다. 시금털털한, 대한민국 이십대 후반의 청년으로 살아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벗고 다른 ‘내’가 되어본다.
어떨까? 즐겁지 않나? 나는 그래서 빈약한 진실을 더 사랑하게 된다. 결국 사람든 돌아와야 할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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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라는 지평의 확대. 16세기 초 대양항해기술의 발달. 성공, 부와 명예. 확장, 정복. 편가르기. 발견하면 그야말로 모두 내것이 되던 시절. 그러나 발견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재앙의 시작이었던, 또 그런 시절.

리스본 뒷골목에서 태어난 kirrie. 태어난 직후 부모에게 버려져, 당시 리스본의 실력자였던 바스톨로뮤가 지원하는 성당 직할의 고아원에 맡겨진다.
매사에 무기력하고 항상 희미한 예감의 냄새를 따라 불투명한 스테인드 글라스 저 편, 푸른 바다만을 그리워하는 나날이 계속되다가, 그녀 나이 십칠세에 고아원을 탈출하여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는 배에 밀항한다.

… 그리고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십년 후. 그녀는 리스본에, 왼쪽 눈가에 생긴 긴 흉터 그리고 얼마의 돈과 함께 돌아온다.

“십년.”

십년. 입밖에 내어 보지 않으면 그녀 자신이 세월을 실감할 수 없을 것 같아 내뱉은, 짧막한 첫마디. 부둣가의 소음 사이로 곧, 십년은 묻혀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굉장히 불쾌한 묘사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폭풍우 뒤 많은 모래가 쓸려간 해변에 삐죽히 드러난 난파선 조각같은 지난 십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 부둣가에서 그녀가 산 럼주를 단 한잔이라도 마셔 본 뱃사람이라면 한달이나 두달쯤 계속해서 토해내도 다 토해내지 못할 만큼 방대한 그 이야기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찬찬히 듣고 기억하며 가슴 아파해야 한다. 우선은, 그 흉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어디서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 그녀를 거쳐간, 혹은 그녀가 거쳐간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나 우린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웅크려 있거나 주점에서 매우 취해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시시컬컬한 농을 주워섬기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많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 이 부두의 누구나 조금씩 손대본 밀교역도 하지 않고 (사실은 재주가 없어 항상 손해를 본다.), 그저 가끔 주점을 찾는 의뢰인들로부터 들어오는 해역의 조사나 소문의 진상을 파해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제법 일처리가 꼼꼼해서 단골로 그녀를 찾는 의뢰인도 몇몇 생겼다.

그녀의 꿈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무인도를 발견하는 것과 고아원에서 헤어진 동생 세나를 찾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동생과 함께, 고원과 같은 무인도에서 살아가려는 것 같다.

몇몇 남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지만,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만큼 가까워지진 않았다.

자주 하는 말은 ‘너나 잘하세요.’다.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에 대해

동물원은 어떻습니까? 동물원 좋아하십니까? 전 그다지 동물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동물원이 참혹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평생을, 그나마 몸집이 큰 동물들에게는 몇백평에서부터, 작은 동물들은 몇십평, 몇 평 밖에 되지 않는 우리 안에 갖혀 지내야 하는거에요. 완전 미쳐버리는거죠. 그래서 요즘엔 동물들도 정신병을 앓는답니다.

좀 뜬금없긴 해도, 사소한 이유들로 반평생을 손바닥만한 방에서 수형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뭐라구요? 적어도 우린 그네들을 구경하러 다니진 않는다구요? 하하하. 하하. 하… ㅎ..ㅏ……

[#M_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more.. |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less.. |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WDCS is concerned about the development of a new dolphinarium near Rome in Italy by the company Zoomarine, which is already involved in the display of dolphins in Portugal and Malta.

The number of captive facilities displaying dolphins continues to expand in Europe. Yet more people are realising that it is cruel to keep dolphins in captivity and there is a growing recognition that the dolphin captivity industry is having a negative impact on the welfare of the individual dolphins involved and on the conservation of the animals in the wild.

Whales and dolphins continue to be captured from the wild to supply the growing demands of the captivity industry and to replace animals dying prematurely in these artificial environments. Scientific evidence indicates that whales and dolphins suffer extreme mental and physical stress in captivity. This is revealed in aggression between themselves and towards humans, boredom, and a lower life expectancy and higher infant mortality than in the wild. WDCS believes it is impossible to accommodate the mental, physical and social needs of whales and dolphins in captivity and that it is cruel to confine them.

We have just learned that Zoomarine has imported bottlenose dolphins for display at its new facility in Pomezia near Rome. Italy has specific legislation relating to the holding of bottlenose dolphins in captivity, including conditions relating to education and research. We believe that any dolphins imported for this facility will not be held for the purpose of education and research, but primarily for commercial gain. We are working with the Italian organisation Animalisti Italiani to persuade the Italian authorities not to allow further dolphin trade and display in Italy.

Please help us stop the continued expansion of the dolphinarium industry in Europe. To send a campaign e-card to the Italian authorities, click here.

Source: WDCS

사육되는 돌고래들, 이탈리아로 보내지다.

WDCS는 Zoomarine이라는 기업에 의해서 이탈리아 로마 근처에 새로 개관 준비중인 돌고래 수족관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Zoomarine은 포루투칼과 말타에서도 이러한 수족관을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최근 다수의 돌고래 수족관들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돌고래를 사육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로 돌고래 전시 산업(돌고래 수족관)이 자연상태 그대로 동물과 교감하는 것보다 (교육적인) 효과가 없으며, 사육되는 각 돌고래 개체들의 생활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래와 돌고래들은, 늘어나는 사육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인공적인 환경에서 태어나 미성숙한 상태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야생상태로부터 계속적으로 포획됩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고래와 돌고래들도 사육되는 상태에서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포획사육 상태가 공격적인 행동이나, 권태감, 짧은 수명, 야생상태에서보다 높은 어린 개체의 사망률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WDCS는 사육상태에서는 절대로 고래와 돌고래들의 정신적, 육체적, 혹은 사회적 요구들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둬놓는 것은 잔인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막 Zoomarine사가 로마 근처 포메지아(Pomezia)에 새로운 돌고래 전시시설을 개관하기 위해 병코돌고래들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접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병코돌고래 사육 개체수에 관한 특별한 법률이 있으며, 그것과 관련된 교육과 연구에 관한 법률도 있습니다. (즉,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만 특별히 병코돌고래를 제한된 개체수로 사육할 수 있다는 의미인듯 함.) 우리는 관람시설을 위해 수입된 모든 돌고래가 연구와 교육의 목적이 아닌, 단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탈리아의 Animalisti Italiani라는 단체와 연계해 이탈리아 정부로 하여금 돌고래 거래 및 관람을 허용하지 말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돌고래 수족관 산업의 팽창을 막기 위해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단지, 이탈리아 정부에 e-card를 보내는 것만으로 캠페인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눌러 참여해주세요.

출처 : WD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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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o cat

어느 날 밤늦게 담배를 사러 간다. 길을 걷다 모퉁이,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다. 고된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까치발로 살금살금 돌아가려는데, 그만 슬리퍼가 아스팔트에 길게 끌리는 바람에 고양이가 흘끔 나를 돌아본다.

“저, 나는 그냥 담배사러 가는 길이니까 그냥 계속 먹어도 돼. 장난치지 않을게.”

고양이는 내 말의 진위를 따져보려는 듯이 날 한참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식사에 열중한다. 가끔 딱딱한 뼈다귀라도 씹는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아간다.

“모든 사람이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으련만.”

“뭐라고?”

고양이가 말을 했다.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말한거야?”

“그럼 여기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분명히 니코틴 금단현상일꺼야. 빨리 담배를 사러 가야지…”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후다닥 슈퍼로 뛰어가 디스플러스를 샀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요즘 너무 무리하는걸까.”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간다.

“이봐, 놀란거야?”

흠칫.

“뭘 이런걸로 놀라고 그래. 로켓을 쏴서 화성까지 보내는 시댄데, 고양이가 말 좀 한다고 해서 놀라 후다닥 뛰어갈 필요는 없잖아?”

쓰레기 봉투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

“이리 와 봐. 사람은 안잡아먹어.”

나는 홀린듯이 고양이에게로 다가간다.

“담배 산거야? 뭐 샀어? 디스플러스?”

“..으, 응.”

“한 대 줘봐. 식후땡.”

불을 붙여 담배를 건냈다. 저 고양이발로 과연 담배를 집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뭐 어떻게 잘 피우고 있다.

“다음부턴 레종 피워. 그거 한 갑 피우면 우리 고양이들한테 1퍼센트씩 모델료가 떨어지거든.”

“그건 좀 비싼데…”

“시끄럽고, 피우라면 피워. 알겠어?”

“응. -_-;;”

“너 저 위에 화평빌라 다동에 사는 애지? 맨날 밤새도록 불켜놓고 있는.”

“응.”

“애들이 가끔 네 얘기 하더라. 너 언젠가 네 창문가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먹을거 줬다면서?”

“몇 번.”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우리 고양이들도 프라이드란게 있다구. 우린 스스로 구하지 않은 먹이는 먹으면 안돼.”

“그 고양이는 잘 먹던데.”

“그때 걘 임신중이어서 뭐든 질 좋은걸 먹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였고, 아무튼 주지 말라면 주지 마.”

“있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다 찢어놔서 맨날 아줌마들이 골치아파한데.”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꽁꽁 싸매놓은걸 이 손으로 어떻게 풀란 말야. 인간들은 참 웃기다. 어차피 버릴꺼, 뭘 그렇게 매듭을 지어 놓는거야? 버리는건 편하게 버리라구. 거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건 다 먹어치울테니까, 나머진 새벽에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가져가겠지.”

“사람들은 그걸 예의라고 생각해. 쓰레기봉투를 꽉 매듭지어 놓는거.”

“정말 예의를 지켜야 할때나 지키라고 해. 나는 인간들이 쓰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이 골목 고양이 대장은 오래 살아서 그런지 신문인가 하는걸 읽더라구. 대장이 그러는데, 니들은 정말 필요할 때엔 무신경하고 불필요할때에만 열심이라고 하더군.”

“할 말은 없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게 예의야.”

“너는 이름이 뭐야?”

“고양이는 이름이 없어. 그냥 고양이지.”

“너는 다른 ‘너희’들과 어떻게 네 자신을 구분하니, 그럼?”

“왜 구분을 해?”

“불편하잖아, 그런건… 누굴 불러야 할때도 그렇고.”

“누굴 불러야 하면 그 녀석한테 직접 가서 이야기하면 돼.”

“아무리 그래도…”

“우리 고양이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양이면서 총체적으로도 모두 고양이야. 부분과 전체가 통일되어 있는거지. 우리는 집단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면서, 존중받는 개체들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어디에서나 같아.”

“밤에 자지 않고 있으면 너희들도 꽤 싸우던데…”

“발정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구.”

“발정.”

“그래, 발. 정.”

담배를 다 피워서, 고양이는 꽁초를 땅에 그냥 버리더니 발로 능숙하게 비벼 껐다.

“안뜨거워?”

“뜨거워.”

“대단하시군.”

“뭐, 별로.”

바람이 불자, 나무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다음에 또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

“내가 내키면.”

“있잖아, 언제라도 배가 고프면 내 방 창가로 와서 먹이를 구해가.”

“누가 주는건 안먹는대도.”

“나는 그냥 버릴테니까, 그 뒤는 알아서 하라구.”

“너 이자식, 머리 쓰는거냐?”

당황.

“아니, 난 그냥…”

“심심하면 놀러갈께. 먹이 따윈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괜히 걱정해줄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이제 가.”

“알았어. 잘 지내.”

“너도.”

두서너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더니, 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기

아주 러프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의사코드(pseudo code)를 작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while(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 {

돈을 번다.

}

while이란 구문은 () 안의 조건식이 참일 경우에만 {}안의 명령을 반복해서 실행한다. 이 경우, ‘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가 거짓이 될 때까지, 즉 ‘나는 이제 그럭저럭 살만해졌다.’가 될 때까지 ‘돈을 번다’는 명령을 실행한다.

내 스스로 보기에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모든게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내내 이렇게 살고 있다. 살만해질때까지 끊임없이 돈을 번다. 그 외에는? 없다.

프로그래밍에서 while은 상당히 주의깊게 사용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구문이다. 왜냐하면 종료조건(괄호 안의 조건식이 거짓이 되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프로그램은 while문 안에서 무한히 명령을 반복실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경우가 예상하지 못하게 발생하는 것을 두고, 프로그램 버그라고 부른다.

위 의사코드는 일견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의 머리에 세뇌된 환상같은 이 선언이 여전히 루프(Loop)를 도는 한 저 코드는 유효한 코드다. 우리는 끊임없이 종료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즉 부유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명령을 반복실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우리집 구성원은 전부가 일을 한다. 부모님은 십수년 넘게 자의에 의해서 손에 일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몇 번 타의에 의해 일을 쉰 적이 있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을 한다. 동생도 이래저래 쓰는 돈이 많긴 해도, 제대 후 한번도 아르바이트를 안한 적이 없다. 나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밤을 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가족의 종료조건은 먼 것 같다. 나는 이게 잘 이해가 안된다. 우리 아버지는 근 삼십년간 이런저런 일을 하셨는데, 삼십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모아 놓은 재산은 마이너스다. 어머니의 재산도, 동생이나 내 재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 환상대로 열심히 일했다. 죽을만큼 일했고 사치도 안했다. 때마다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강남의 어떤 가족 얘기를 듣는다. 우리 가족은 이십칠년동안, 내가 열일곱살이었던가 했던 해 단 한번 강릉으로 1박 2일 피서를 갔었다.
왜 우리 가족은 부유해지지 않는 것일까? 부유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돈때문에 걱정하고 살아야 하지는 않아야 할 때가 되야하는건 아닐까? 여전히 압류한다 어쩐다 나불나불 최후 통첩같은 엽서가 배달된다.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걸까? 그러면 나아질까?

우리에겐 보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한 열번쯤 명령을 반복 실행해도 구문이 종료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구문을 종료시켜야 한다. 돈이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정부가 대신 갚을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무이자 오십년상환, 정도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보조해라.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만 있어도, 이런 일은 가능해진다. 대기업한테 좀 더,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세금을 걷어라. 그러면 while은 돌 필요도 없다.

이상, 폭우를 뚫고 새벽에 차례차례 일 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때문에 몇 자 적었다. 아.. 썅, 화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