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이틀전인가… 우연하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매운음식 자꾸 먹게 되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자꾸만 그만 보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어서 끝내 백갠가가 넘는 이야기를 다 보았다. 십오년만에 무서워서 잠이 잘 안왔다.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화알짝 열어 놓은 창문 밖에 백열등에 의해 생긴 기묘한 음영들이 자꾸만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까놓고 얘기해서, 중간에 창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물론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까, 다시 모든 것에 무덤덤해졌다. 오늘의 창밖은 어둡다. 가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간다.

모든게 뒤죽박죽이 된 십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임계점이 있다면,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아닌 딱 그 점에 서 있는 경우가 최악이다. 유리컵에 조금씩 물을 붓다 보면 어느 순간 표면장력에 의해 컵 높이 이상으로 물이 ‘쌓이게’ 된다. 저 물은 과연 언제 쏟아질 것인가, 뭐 이런 얘기다. 나는 아마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심약한 정신.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을 굉장히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 ‘정신’을 두고 보면, 나는 지하 십팔층 감옥에서 온 몸에 팔뚝만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을 상상한다. 쇠사슬은 단단하게 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는 결코 몸을 바닥에 뉘일 수 없다. 그래도 미치지 않는게 다행일까? 이제 그냥 이거 놔버리고 싶은데.
문제는 정말 없다. 나는 좋은 가족과 좋은 친구들, 경제적으로도 당장 굶을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대학도 다니고 키도 약간 큰 편이고 생긴 것도 뭐 이만하면 됐다, 고 생각하며 연애도 한 번 해봤고… 일반적으로 이것을 두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딱 어제 오후 두시에서 세시경의 하늘 같은 상황이다. 요즘같으면 저녁 여덟시에서 아홉시가 제일 견디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이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느낌이다. 뭘 잘 설명할 수도 없는데, 예를 들어서 가장 확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수학적 진리, 즉 1+1 = 2 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세계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고… 내가 나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걸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힘들면 웃음이 나고, 기쁘면 우울해지거나 한다. 나는 그 상반된 감정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갑자기 Scatterbrain이 듣고 싶으면서, 산양젖을 마시고 싶다. 머리가 아파. 몸이 아프면, 희안하게 정신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확연하게, 만져진다.

자,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2학기 복학하려고 한다. 복학은 이미 했고, 수강신청도 일단은 마쳤고. 깡 좋게 한번 듣다가 실패했던 형이상학을 다시 신청했다. 선생님도 같은 분. 미쳤다, 나. 아마 그거 열심히 듣다 보면 나 돌아버릴지도 몰라, 진짜로.

일기”에 대한 2개의 생각

  1. 저도 복학 신청 마쳤고, 수강신청은 조금 있으면 합니다.
    저도 들으려다 만 수업, 들으려다 만 선생님
    하지만 그때와는 기분이 달라요…

  2. 야심한 밤에 뭐하니… 수강신청 준비하는 것이냐.

    자꾸만 바람에 나뭇잎이 사각거린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가도 슬프다. 또 이 소리는, 귀뚜라민가 개구린가. 비가 무지막지하게 온 며칠이면 길가 하수로에서 두꺼비가 꺼이꺼이 운다.

    곧 개강이구나.. 개강.. 개강.. 그럼 내가 드디어 최고학번이 되는건가? 하하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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