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생각

올 겨울은 추웠지만 사실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분명 예년보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훨씬 더 날카롭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치 생애 마지막 겨울인 것처럼 미친듯이 보일러를 틀었고 결과적으로 방안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은 내게, 그것은 매우 따뜻한 겨울이었다. 또 어떻게 보면 나조차도 발 하나 들여놓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 그런 마음이 되었고 을씨년스럽고 어두우며 보라빛의 세계였다. 그리고 빼앗긴 생에도 봄은 오는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폐병쟁이의 각혈처럼 드문드문 부서진 채로 올 것이다. 개나리가 무슨 색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혈관 속에는 피보다 우울이 더 많이 흐르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그러나. 행복하기로 했다. 행복해야만 할 것이다. 기묘한 분열을 느낀다. 우울한 행복이거나 행복한 우울이거나. 흥분과 혐오와 저주, 자살금지 지금살자…

아무튼 나는 어떤 미친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불행하다는 것인데, 이 불행에는 어떤 당위가 포함된 것 같다. 아니 이 말은 내가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이 어떤 조화 아래 움직인다면, 모든 행복하려는 사람들과 동일한 농도로 어떤 불행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거룩한 자기희생… 이런 얘기도 아니다. 어이없는 시도들이 있다. 매우 보잘 것 없고 한편으로는 정신분열적인 판단들… 감히 내가 그 불행을 떠맡아도 될 것인가. 나는 유연해 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우 단단해져야 한다.

처음으로 호밀밭의 파수꾼 같이.. 그러나 내게는 피비가 없다. 아마 꼭 피비가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당신들 모두가 내게 피비였으면 좋겠다. 화난 코끼리. 눅눅해진 팬티. 어쩌면 땅콩. 어쩌면 담배꽁초.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언젠가 구로사와 아키라와 타르코프스키가 만난 적이 있었다. 구로사와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행성 표면의 몽환적인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냐고 물었다. (당시는 CG같은건 꿈도 못꿀 그럴 때였다.) 타르코프스키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거요… 그냥 천을 들고 흔들었을 뿐인데.’ 라고 대답하자 구로사와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고 한다.

알렉산더에게 있어서 멸망해가려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리아와 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

마지막으로 나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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