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낮에 세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몇년 전에 잠시 필요해서 신고했던 회사 믹스넛의 세무내역이 몇년째 전혀 없다고, 당연히 없지 일을 한게 없는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앞으로도 계속 가휴업 상태라면 폐업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안그래도 나는 법과 관련된 일들에 매우 취약하고 두려워서, 폐업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중이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핸드폰 노이즈가 지나가고 나서 그는 직권폐업을 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벌써 꽤 오랫동안 밖엘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예를 들면 담배를 사러 나가곤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아니면 드문드문 약속이 생겨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자의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새 이 콘크리트 격벽이 매우 친근히 느껴졌다. 대신에 바깥은 매우 낯설다. 센티맨털하게, 때늦은 가슴앓이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요즘 나는 번뜩이는 자기파괴, 기만의 욕구가 강하게 든다. 아마도 내 추잡한 인간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히 나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면 또 얼마나 나는 추잡한 것인가. 본능밖에 남지 않은 작은 생물처럼 꾸물꾸물 연명을 위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는, 또 나는 얼마나 저열한 것인가. 방황하는 자의 正義는 언제나 나락임을 판결함.

올름을 추억한다. 수억년 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다는 희귀한 양서생물. 기온의 변화도, 빛도, 천적도 없는 어두 컴컴한 동굴 안에서 극소량의 미생물로만 생존하는 생물. 먹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 어느 연구가가 올름을 채집해 통 안에 물과 함께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한 것을 깜빡 잊고 12년간이나 지내다가, 그 후의 어느 날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느슨히 살아 있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부터 ‘그들은 멸종 대신 망각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 평을 읽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게 서글프다. 나도 죽음 대신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냉장고에서 12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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