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는 하루 종일 돌아간다. 미지근한 바람에 세수를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포토샵을 만진다. 불러 온 이미지들의 용량이 너무 크고 많아서 하나씩 선택하는데 컴퓨터 화면은 툭툭 끊긴다. 다시 부팅을 하면 좀 나아지겠지만, 다운로드 받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잠시 대기중이다. 그리고 나의 생활도, 대기중이다.
지난 한 달 간 집회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도 새로 만난 사람도 있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은 대개가 뜨악한 표정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조금씩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사실 별로 친한 사람들도 아닌데 장소가 장소고 때가 때인 만큼 억지로 친한 척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기간들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5초나 10초 정도 인사로 나누고 그리고 또 인파들 사이로 우리는 헤어졌다. 언제 또 만날까, 거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집회를 빙자해서 그냥 거리를 걷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통제 불가능한 폭도(?)들 사이에서, 언제 전경이 날 선 방패를 들고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불안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 나는 불안과 친구하기로 했으니까. 뭐, 다들 조금씩 그렇게 하고 사는거 아닌가.
참, 러브레터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했었는데. 한달쯤 전에 러브레터를 다시 봤다. 사실 첫번째 봤던 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처음 본거나 마찬가지. 러브레터, 이거 대단한 영화다. 솔직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보다야 훨씬 나은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도 나는 뭔가 거대 담론들에 대해서 실증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한거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무지하게 모여 있는데, 도무지 뭔가 안풀리는 그런 영화. 어,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맘 속에 묻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랑이 깨지고 나서 예전 좋아하던 사람을 만나고 나니 이번엔 다시 헤어진 사람이 그리워지는거. 애초에 사랑 따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다 허상이고, 봄 되면 녹는 눈 같은거.
에고 아침이네.
혼자 쓸쓸하게 있는 블로그 불쌍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 좀 쓰다 감.
너와 얘기하고 싶다아……..
우짜까… 불쌍한 자슥.. 전화번호 알지? 정말 말만 하지 말고 조만간 보자.
어. 홍콩간줄 알았는데 집에 있네. 러브레터는 내 이야기가 아닌데 니가 말한 비유는 내 이야기 같다. 얼마전에 사고를 냈지. 우회전 하려고 좌측에서 오는 차들을 보다가 차가 안오길래 악셀을 밟았는데 갑자기 앞에 택시가 있는거야. 이건 대체 어디서 있다 나타난건지. 쿵 . 그래서 차는 수리하고 택시기사는 3주를 입원하고 승객도 입원하고 하여간 그랬다. 오늘은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는날이라 학교를 가는데 하필이면 그뤼미오 바이올린에 하스킬의 반주로 모차르트 소나타가 나오는거야. 그래서 어흑. 감동의 물결이 한차례 휩쓸고 보니 난 이상한 곳을 운전하고 있는거 있지. 안양시내에 와 있는거야. 어흑. 그리고 저녁엔 아이를 가르쳤는데 바이올린 줄을 맞추는 튜닝머신을 두고 온거야. 전화가 왔더라구.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향하는데 우회전을 해야 되는거야. 그래서 좌측에 차가 달려오나 본 다음 악셀을 밟았는데 내 앞에 버스가 서 있었어. 그래서 쿵. 기사가 달려나왔지…. 나 좀 어떻게 해봐.
홍콩은 다음주에 간다오. 사실 홍콩은 가기 싫소. ‘친척 어른이 사비를 털어서 여행을, 그것도 외국에 보내준다는데 그 어찌 고맙지 않을쏘냐’라는 분위기라서 쉽사리 가기 싫다고 말하기도 뭐하다오. 나는 정말 가기 싫소. 가서 또 얼마나 허망해질 것이냐 하고 생각하면 아찔해지오. 하지만 가야하오. 자동차 본넷 안 온갖 톱니바퀴 기계장치들 속에 낑긴 기분이오.
형은 참 문제가 짙은 사람이오. 그 안은 대체 얼마나 검고 깊은 것이오. 너무 깊어서 빠져 나오려고 바둥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오. 혹시 지쳐서 그만 둔 것 아니오. 그냥 앉아서 어둠 속, 지나가는 시간만 우두망찰 맥손 놓고 견뎌내는 것 아니오, 형은.
녀석아, 좀 유머로 승화시켜주면 좋았을것을. 힝.
블랙 유머였는데, 너무 쓴 맛이이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