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기본적으로 난 못난 자식이고 그래서 매년 어버이 날이 다가올 때마다 반은 거북하고 반은 두렵고 뭐 그런 심신 상태에 접어든다. 그런데 올 해엔 정신 없다는 핑계로, 당장 어버이 날 당일이 될 때까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버이 날 기념 & 할머니 생신 겸 외식 어쩌구를 하려고 용인 할머니댁에 가는데, 주위에 온통 카네이션을 단 어버이들이 와와 다니시길래 솔직히 속으로 좀 찔렸으나 겉으론 태연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자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계속 네시 반까지 집에 와서 차를(자가용이 없어서 외삼촌 차를 빌렸다.) 돌려줘야 하는데, 하는데 하시고 아버지는 오랜만에 눈에도 안들어 올 조그만 승용차를 모시려니까 적응이 안되는지 연신 기어 변속에 실패한다. 한 뼘도 안되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중이다.

 솔직히 난 친가쪽 식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으니 어른들 보기가 부담스럽고.. 어쩌구.. 뭐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 친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 군상의 전형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거기엔 룰도 없고 사상도 없고 의미도 없고 소음만 있다. 물론 그건 주관적인 견해다. 의미 정도는 있을 것인데, 도무지 난 그 의미를 짐작 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명절때가 되어 할머니댁에 갈 때면 난 슬그머니 정신을 집에 두고 나온다. 가서 실컫 웃고 어른들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위해서다.

 뭐 됐다. 나도 의미 없으니까 딱히 그쪽이 의미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 갈비집은 정말 맛이 없었다. 진짜 참나무 숯으로 갈비를 굽는건 신선했지만, 서비스도 엉망이고 고기도 퍽퍽하거나 너무 느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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