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카페 투어 4일째, 많은 싱어-송라이터들과 차를 함께 타는 것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었다. 평화로운 첫째날 이후로 사람들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거나, 끼리끼리 모여 정치적 모임을 갖거나, 열정적으로 16세기 프랑스 시에 대해서 토론했다. 물론 전지구적 온난화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논쟁도 빼놓지 않았다. 난 차라리 가죽바지나 입고 코카인이나 빨아대는 락밴드이고 싶었다.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여긴 모든게 가능한 아메리카니까. 심지어 좆같은 새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9월 10일, 보스톤 Tom Mcrae
낮에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랑 벤치에 앉아 간만에 뮤직배틀을 했다. 뮤직배틀이란 차례로 상대에게 누구나 듣기만 하면 인정할만한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난 후에 “인정”이라고 말하면 다시 상대방 차례로 넘어가고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넘어간다. 이 배틀의 좋은 점은 승부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매우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엔 나와 비슷한 취향 – 이 음악적 취향이라는 것은 영국 락밴드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음악가중에 요절한 사람이 한명이상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내 경우 너댓명은 되는것 같다.) – 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아무튼 내가 날린 선방은 Tom Mcrae의 The Boy with the Bubblegun이었고 녀석은 주저없이 인정했다.
집에 돌아와 잠깐 이런저런 일을 하고 기묘한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한 숨 잔 뒤에 지금 새벽 네시에 일어나 어제 일을 떠올린다. 톰 맥레이. 번역하다 만 그의 9월 10일자 일기를 꺼내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음악을 듣는다. 톰 맥레이의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 사람이 장르적으로 포크라는 것과 전체적으로 그다지 맹렬한 음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적인 격렬함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누구나 인정할만한 싱어-송 라이터 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그쪽에서는 그를 밥 딜런이나 닉 드레이크, 폴 사이먼과 같은 희대의 악마적인 시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평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청년 김민기 정도로 이해가 될까.
아무튼 당분간 다시 이 녀석의 음악을 들을 것 같다. 요즘 한동안 정신이 산만해서 가사가 있는 노래는 듣지 못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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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
알고보니 담배에 관한 공익광고 가운데 여자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박 문대던 거였나 아니면 하수도 맨홀에 얼굴을 쳐박던 거였나에 삽입된 You cut her hair라는 노래도 이 사람 노래다.
청년 김민기라…하하하^^ Where any idiot can grow up to be President…의 번역이 좋군요!
간만에 Soulseek;; 를 돌려봐야겠네요. 인정?일지… / 공익광고는 제무덤파기 정도가 적당한것 같습니다…-┏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무서웠던 청년.
렌//뭐, 그냥 내 느낌이야. 인정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고. ㅎㅎ
lunamoth//솔식!! 이거 대단한데요. ^^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의 영국은 아마도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60, 70년대 비틀즈가 그랬듯이.
나는 물론 라디오헤드를 좋아하긴 해도, 원 누가 나오기만 하면 다들 성급하게 라디오헤드와 어떻게 닮았다는 둥 이야기 하기 바쁘니..
맥레이는 오히려 콜드플레이와 닮았어요. 콜드플레이도 어떻게 보면 포크음악이고..
맥레이 음악은 오피셜 사이트에 가면 대부분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http://www.tommcrae.com 정말 멋진 놈. ㅎㅎㅎ
Jh//그러고보면 맥레이는 어느 정도 치기어린 면이 있네요. 역시 김민기는 좀 무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