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의식적으로 감각을 끊고 – 마치 플러그 뽑듯이 – 자욱한, 검고 어두운 바다의 심연으로 가라 앉는 시늉을 한다. 가끔의 대부분은 외풍이 드는 내 작은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질 때고,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이 어느 날 다 팔려서 그날 밤 소녀는 켤 성냥을 구하지 못해 얼어 죽었다는 블랙코메디를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아니, 그런데 어차피 소녀는 성냥이 있어도 얼어 죽었던 것 아니었나? 이래저래 가망이 없다.
전에 말 했던 것 같은데, 자각몽 말야. 꿈 속에서 그것이 꿈인 것을 깨닫게 되는 꿈. 드디어 조금씩 나는 그 신비로운 땅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그런 꿈을 꾸었다지. 첫번째 자각몽은 부끄럽게도 통제불능의 난교파티가 되어버렸는데 – 그마저도 끝까지 다 꾸지 못해서 아쉬워 – , 그 꿈을 꾼 다음에 나는 단단히 다짐했어. 고작 포르노 주인공이나 되는데에 귀중한 체험을 소모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두번째 자각몽을 꾸었을 때에, 기억을 역류해서 묻힌 의식의 공간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
네가 사기꾼이라고 말하던 그 프로이트 말야. 그 사람이 그랬데. 꿈은 의식의 검열이 약해지는 시간이라고. 짐작도 못 할 무의식의 꿈틀거림이 투사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렇다면 약해진 검열 과정 안에서 명징한 의식을 갖은 사람은 무의식도 총천연색으로 직시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문을 열었어.’
물론 ‘문을 연다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지. 좀 클리셰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그것 밖에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더라구. 그 곳은 아마 사월이나 오월쯤이 된, 숲 속의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가였던 것 같아. 문득 나는 이것이 꿈인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되자마자 초록 잎들에 반사된 녹색광이 넘실거리는 창문 맞은편 벽에 문이 생긴거지.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 왜냐하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나의 내부와 외부의 적극적인 모순성 같은게 느껴지질 않았거든. 이건 꿈이니까, 탁자며 집이며 바람이나 햇빛, 이 세계 전체가 나의 산물인거야.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실감해. 순간적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는게 가능하다면 그게 꼭 이런 기분일꺼야.
미리 짜여져서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갔어. 그리고 힘주어 문고리를 돌렸지. 빛, 그리고 빛, 그런데 빛, 그러나 빛, 그래서 빛. 초신성이 폭발하는 순간에 바로 그 앞에 있다면 태양의 백만배나 되는 빛을 볼 수 있데. 그런데 눈부시지가 않아.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다음이 정말 중요한 대목인데 말이지.
그런 굉장한 경험들을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니까 너와 무척 이야기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밖엘 나갔더니 이미 겨울이더라. 하늘이 파랬어. 공기는 시려워. 너와 교감하고 싶어. 보고 싶어.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주소는 불명. 안녕, 와일드 오키드. 코퍼스 크리스티 캐롤도 네게 안부를 전해달래.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