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토닉

오늘 오후에 밖에 나갔다가 주류상점이 눈에 띄이길래 무작정 들어갔다. 자꾸만 진 토닉이 마시고 싶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 토닉의 베이스인 드라이 진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좌측의 런던 드라이 진이 국산(-_-;;)이라 시중에서 구하기도 쉽고 값도 제일 싸다. 오른쪽의 코맨더 같은 경우는 나도 말로만 듣고 실제로 구입해 본 건 처음이다. 가격은 런던 드라이 진에 비해서 약간 비싼 편. 그리고 무려 주류상점에 비피터가 있었다. 그거 삼만원이나 하데. 씹라. 이름 값을 하는거냐.

진 토닉에서 ‘토닉’은 힘을 북돋아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름 그대로 여름 한 철 더위에 지쳤을 때 상콤한 레몬과 소다의 톡톡 튀는 탄산, 그리고 묵직하게 그 뒤를 잡아 주는 진의 풍미를 즐기다 보면 힘이 나는 걸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원래 레시피대로 하자면 토닉 워터도 있어야 하고 레몬이나 라임도 사야 하는데 이게 원 술값보다 악세사리가 더 비싸서 말이지. 나는 집에서 간편하게 즐기기 위해서 토닉 워터를 사이다로, 레몬을 레몬 액기스 즙으로 대신하고 있다. 오히려 이 편이 빈 속에 부담없이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칵테일… 이라곤 하지만, 나는 이 진 토닉 밖에 만들 줄 모른다. 지금도 한 잔 이미 말아서 마셔버렸고, 두 잔 째 말아다가 옆에 두고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작업을 하는데, 왠지 모를 호기가 뱃 속에서 치밀어 올라 프로그램 제대로 돌아가던 말던 무작정 코딩하고 있다. 으하하하하하.

갑자기 무리해서 진을 두 병이나 샀으니 당분간은 잠도 잘 오고 즐거울 것 같다.

어떤 노년

접근성에 대한 지리적 우위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맥이 좋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내가 사는 화평 빌라 앞 마당은 동네 노인들의 다운타운이다. 이런 현상이 시작된 시기는 약 1~2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엔 이 빌라에 사는 노인들만 모여서 한담을 나누거나 장기를 두거나 했는데, 점차 인근 빌라의 노인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중심에 대한 욕망은 공평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화평 빌라 마당이 다운타운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 기억으로 원래의 다운타운은 옆 빌라인 신월 빌라의 좁은 골목이었다. 여기에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서 가져다 놓은 의자가 있어서 노인들이 모였던 것이 신월 3동 46번지 일대 노인 다운타운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를테면 ‘신흥’ 다운타운인 화평 빌라로 그 세를 넘겨 주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화평 빌라 마당이 다운타운이 되자 운 좋게 ‘다운타운족’이 되어 버린 A군 노인들과 (화평 빌라에 사는 노인들과 모여드는 인근 빌라 거주 노인들. 인근 빌라 거주 노인들은 대부분 화평 빌라에 사는 노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다.) A군에 합류하지 못한 B군 노인들로 (아직까지도 신월 빌라를 고집하는 구세력) 이 세력을 나눠 볼 수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B군 노인들은 A군 노인들에 대해서 약간의 질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이 두 세력 간에 별다른 교류는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의 소일거리는 다음의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폐지 수집
페지 수집의 경우 화평 빌라에 사는 C 할머니가 신월 3동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이 할머니의 나와바리는 인근 화곡동까지 넘볼 지경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노인들의 폐지 수집이 ‘하루 벌어서 라면이나 사먹으려고’ 내지는 ‘손주 용돈이나 줘보려고’ 시작하는 생계형 폐지 수집이라면 C 할머니는 거의 기업형 폐지 수집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이 할머니는 폐지를 수집한 그 날 즉시 고물상에 넘기지 않는다. 거의 1.5톤 트럭 두대 분량의 폐지를 모아서 정리해 놓고 나서야 느긋하게 고물상 트럭을 호출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트럭한 15만원에서 30만원 정도라나. (이것도 지나가며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다.) 이 할머니는 폐지를 화평 빌라 바로 옆 도로에 쌓아 놓는데, 이것이 한때 화평 빌라의 집값을 하락하게 하는 중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주민들로부터 나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양자 간에 조정이 이뤄져, 현재는 할머니도 비교적 깔끔하게 폐지를 정리해 놓고 주민들은 주민들 나름대로 의외로 버리려면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되는 폐지들을 (박스나 옷가지, 기타 고장난 전자제품들) 쉽게 할머니에게 인계함으로써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누가 정말 생계형 폐지 수집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2. 장기, 바둑
장기나 바둑은 주로 할아버지들의 차지다. 내게 슬슬 졸음이 몰려 오는 하오 무렵부터 장기판에 알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빌라 옆엔 할아버지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 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를테면 ‘누가봐도 할아버지’인 부류가 있다면 ‘분명 아저씨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들과 같이 놀려고 하는 아저씨’가 있다는 것이다. 나름 다른 할아버지들보다 젊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아저씨는 이 부류에서 상당한 이슈 메이커다. 매 이슈마다 (비교적) 정확하게 사건의 개요를 들려주는 것이 아마도 매일 아침에 신문을 꼼꼼히 읽고 이야기 할 내용을 정리하는 폼세다.

3. 수다
역시 수다 하면 할머니들. 가끔 수다와 함께 반찬 거리를 다듬는 모습도 보인다. 더불어 급한 일이 생기면 빌라 새댁 애기도 봐준다. 역시 할머니 하면 이런 느낌. 나는 나름 밖에 나가는데 불편해서 (내가 나가면 일제히 할머니들이 날 본다.) 좀 그렇지만.

아무튼 왜 이 다운타운 운운 하면서 이야길 꺼냈냐면, 아까 아침 7시에 담배가 떨어져서 가계에 가다가 구 다운타운 (신월 빌라)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 7시 하면 누구에게는 꽤 시간이 흐른 아침 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이른 아침이다. 특히나 어디 출근 하는 것도 아닌 할머니에게는.

마치 그 자리에서 밤을 샌 것처럼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마실 나올 친구들을 기다린다고 하면 그건 너무 이른 시간인데, 하고 생각해 본다. 늙으면 잠이 줄어든다고 하지. 새벽같이 일어나 자식 내외 출근 준비 시키고 (혹은 할아버지 아침 올리고) 나니 정전 된 것처럼 할 일이 없어 나와 본 것 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왜 안 나올까, 너무 빨리 나온걸까, 하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그 할머니는 깨어서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꿈이 아니라 먼 과거의 꿈 말이지.

그나저나 우리 동네엔 왜 노인정이 없는걸까. 구청에 한 번 건의해 봐야겠다.

서있는 사람들 4 – 안녕, 앞 집 여자야

삼사년 전 회사 댕길 때 이야기니까, 지금 그녀는 한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꺼다. 아침에 출근할 때 또 좆같은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절망감 보다는 앞 집 여자와 마주쳐서 버스 정류장까지 의식하며 걸어야 하는게 더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만약에 같은 버스를 타야 하기까지 했다면 아마도 난 회사를 옮기거나 관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불편한 섬씽같은게 있었냐고? 혹시 주차문제 같은걸로 대판 싸운 적이 있었냐고? 아니.

그녀는 소아마비였다. (였을 것이다. 아니라면 다리에 뭔가 문제가 있었거나.)

혼자서 비척비척 걸을 수는 있는걸 보면 중증은 아닌듯 했다. 일반 걸음보다 훨씬 느린 걸음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그녀를 떨치고 먼저 걸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심각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녀 앞 삼사미터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걸었다. 이러고 보면 장애인 이동권 같은걸 입에 주워 담던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곧잘 느끼게 된다.

아무튼 한 십분쯤 걸어서 정류장에 당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면, 그녀가 저 멀리서 걸어 오는게 보였다. 어떤 날은 그녀가 먼저 버스를 탈 때도 있었다. 만원버스에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버스를 탄다. 그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람들의 시선과, 어쩌면 과잉 친절에 부담스러워 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그녀에게 지옥같았을 것이다. 대체 아침마다 어딜 가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걸 보면 대학생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어딘가에 출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걸 보면 학생은 분명 아니었지 싶다.) 회사에 출근했다면, 사무직은 아니었겠지. (이건 편견일까?) 아마도 공장 같은데 가서 옆 자리 언니랑 “언니, 오늘은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 이런 이야길 나눴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한 육개월을 마주쳤으면 서로 눈인사라도 나눴음직한데 눈인사는 커녕 제대로 얼굴을 본 기억도 없다. 그냥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름대로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우리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리고서 회사를 관두고 또 다른 회사에서의 출근시간이 늦춰짐에 따라서 그녀와 다시 아침에 마주치게 되는 일은 없었지만, 왜 그녀 이야기를 꺼냈냐면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그녀와 집 앞에서 또 마주쳤기 때문이다. 노오란 가로등 아래 저만치에서 비척비척 걸어 오는 그녀가 보였다. 손에는 무슨 참치캔 선물셋트 같은게 들려 있는걸 보면 회사에 다니는게 맞는 것 같다.

어두워서 얼굴을 분간하지 못해도 그 걸음걸이는 천만명 가운데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기랄. 밤이어서 그래. 인사라도 할까 하다가, 어두운 길가에서 (그녀가 날 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내가 인사하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래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뭐 그런 얘기.

지난 이틀간의 사투

전에 태환이형 외장형 ODD를 추천해 줄 때의 일이다.

브랜드도 없는 저가형은 내가 내키질 않고, LG는 괜찮긴 하지만 슬림하지가 않았고, 그나마 삼성께 가장 나은 선택 같아 보였다. 주저없이 그걸 권했는데, 형은 내게 꿀밤을 먹이고선 감히 ‘삼성 제품’을 권한다며 나무랬다. 아, 맞다. 삼성꺼. 일단은 맘에 안드는 회사, 게다가 램 빼고는 컴퓨터 관련 제품군에서 내세울게 없는 회사, 후진 품질을 막강한 A/S로 떼우는 회사…

잊고 있었다. 썅노무거 삼성 하드. 삼성 하드 후진거 벌써 예전 일이라고 속단해버린 내가 잘못이었다. 어제 분당까지 가서 서버를 뜯고 하드를 교체하고 OS를 인스톨하고 하는데, 케이스를 닫으니 잘 돌아가던 서버가 하드를 찾다가 뻗어버리는게 아닌가. 뭐지… IDE 케이블이 문젠가… 메인 보드가 어디서 쇼트 되는건가… 갖은 삽질 끝에, 상면 공간 관리 업체 직원까지 불러서 심도깊은 토론(?)을 하다가 결국 알아낸거, 3년이나 지난 시게이트 하드는 뻥뻥 아직도 잘 돌아가는데, 이노무거 삼성 하드는 2시간 만에 틱틱 하는 정체불명의 소음과 함께 맛이 가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눈 앞이 아득해지는…

이것 때문에 작업이 하루 더 늦춰졌다. 오늘은 아침에 겨우 일어나 용산엘 갔다지. 돈 더 줘도 되니까 다른 회사 하드로 바꿔달랬더니 삼성 하드 밖에 없단다. 환불 해달라고 했더니, 지마켓 통해서 하란다. 이런 썅노무거, 그럴 시간 있었음 용산 오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엔 제발 잘 돌아가길 바라며 새 삼성 하드로 교체하고 다시 분당으로 ㄱㄱ씽. 다행히 교환한 하드는 그럭저럭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분명 내 소유의 서버인데, 어제 처음 실물을 봤다. 인터넷으로 사고 업체에서 알아서 관리해주니 IDC에 갈 일이 있나… 예상외로 작고 외소한 블레이드형. 주위에 괴물같은 HP나 Compaq, 삼성 (썅 또 삼성), 썬 등이 포진한 가운데, 이름도 없는 조립품 내 서버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짜식, 나보다 낫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흉한 속을 드러내 보인 서버.
사용자 삽입 이미지파티셔닝 하고 있는 동안 음악 들으면서.

(사진 찍기는 더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보안상 찍으면 안된다고 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진만 올린다. 내가 간 IDC가 어딘지 얘기도 안했는데 보안이 어쩌구먼 어쩔꺼야.. -_-;;)

정식 IDC는 처음인데, 대학 서버실은 좀 돌아다녀 봤고, 전에 근무하던 회사 서버실은 내가 관리했었다.
대학 서버실들은 얼마나 추우냐면, 들어갔다 나오면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였다. 뭐 서버가 몇천대씩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한 여름에 거기 들어가면 시원하고 좋았다. 회사 서버실은… 사실 서버실이라고 하기 뭐하고 사무실 구석 창고에 대충 만들어 놓은거였고, 서버실이라기 보다 비품 창고였다. 아무튼 정식 IDC라고 해서 “야 (소음은 좀 나겠지만) 얼마나 쾌적할까!” 싶었는데, 왠걸… 바깥보다 약간 낮은 정도 였다. 몇천대씩 서버가 돌아가니 그 열기를 다 감당하긴 힘들겠지 뭐.

아무튼 다신 가고 싶지 않은 (너무 멀어서;;) IDC였다.

사진으로 말한다!

의문의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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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이 좀… 어쨌든.
의문의 스포츠카다. 그것도 메르세데스 벤츠. 두어 달 전부터 내가 사는 동네 골목에 종종 주차되어 있던 것을 목격, 어제야 사진을 찍었다.
영 어색하다.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가서 된장찌개를 시켜 먹는 기분이랄까. 이 동네는 벤츠는 커녕 각그랜져도 없는 곳이다. 자주 주차되는 것으로 보아 친구 집에 놀러 (아니 이런 차를 모는 사람의 친구가 우리 동네 살 리가 없어!) 오는 것 같지도 않다.

이 차를 볼때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일본 청년이 떠오른다. 그는 페라리를 너무 좋아해서 그걸 갖는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페라리는 커녕 지하철도 못타고 다닐 정도의 가난한 신세. 그래서 결국 그는 자위대에 입대하게 된다. 30년 할부였나.. 로 페라리를 구입하고, 자위대에 복무하면서 다달이 받는 월급의 거의 전부를 할부금으로 넣고 라면으로 끼니를 이으면서도 그는 행복했다나 뭐라나.

설마 진짜 그런 새끼가 우리 동네에 사는거 아닐까? 산다면 인정!

—>

우에노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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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드디어 오고야 말았어. 교보문고에서는 2만 5천원에 바로 배송이 되는데, 그놈의 포인트 때문에 3만원의 해외 주문으로, 그것도 14일이나 걸려서 예쓰24에서 주문하고야 말았어. 그래도 난 행복해. 주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고화질로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이건 내 평생 가보로 간직할꺼야. >_<)/

내가 무섭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비가 오다가 버스에 타니까 거짓말처럼 그치더라. 옌장. 낮게 먹구름 깔린 하늘을 무지무지 좋아해서 그냥 위안삼고 음악을 들었다.

등촌동 무슨 건물 5층이 사무실이어서 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려는데 3층에 엘리베이터가 선다. 문이 열리니까 내 허리에도 오지 않는 유치원 여자 꼬맹이들이 우글우글하다. 유치원 마치고 집에 가는 모양이다. 선생님이 뒤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
그런데, 애들이 엘리베이터에 안탄다. 다들 눈 크게 뜨고 나만 보고 있다. 선생님이 “왜 안타니? 빨리 타~” 한다. 왜 안탈까? 설마 나 때문에?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흩날리는게 거슬려서 머리를 묶고 있었더니 좀 위압(?)적으로 보였나부다. 가급적 적의가 없어보이는 표정으로 보이길 기대하며 씽긋 웃어준다. 이거, 몇몇 아이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옌장.
아무리 꼬맹이라도 숫자가 많으니, 엘리베이터 안이 아이들로 바글바글하다. 제법 시끄럽게 굴 만도 한데 조용하다. 그나마 나와 멀리 있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조그만 목소리로 뭔가를 소근거리는데, 당장 내 옆에 있는 애는 잔뜩 긴장해 있다. 야! 내가 잡아먹냐!
아무튼 쪼그만 애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으니 이것도 나름대로 너무 귀엽다. 병아리가 생각났다. 노오란 병아리. 아우 깨물고 싶어!

1층에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탈출한다. 우다다다 막 뛰어간다. ㅜ.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이 낮다. 이어폰에서 닉꾸 드레이크 동생 (4년 전만해도 형님이었으나 이제는 동생인) 의 노래가 나온다. 이거, 절묘하게 이런 날 어울리는 목소리와 멜로디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로이 부캐넌의 기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블로그에 공지 때려서 얼굴을 알던 모르던 다 함께 신림동 레드 제플린이나 가서 주인형님 욕할때까지 로이 부캐넌 신청하기, 였는데 지난 주는 한참 아파서 그러질 못했다. 옌장. 올해가 30주년인데.

잠자리

뭘 검색하다가 2002년도 출시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dragonfly’란 영화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 케빈 코스트너… 이 아저씨는 뭐하고 지내는가. 니콜라스 케이지엉아는 요즘 날아댕기더만.

아무튼 2002년도 출시작인데도 아직까지 공식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다. 들어갔더니, 사이트를 보기 위해서는 7가지 질문에 답해야 하며, 질문에 모두 답하게 되면 자신의 ‘영성’을 알려준단다. 아무튼 내 결과는 이렇다.

While your are a believer, there is a part of you that is unsure about the supernatural. You can appreciate the idea of life after death, near death experiences and the paranormal but aren’t ready to fully accept these theories. Among your peers, you’re on the fence: Not a quite a believer, but open to all possibilities.

어라, 그럴싸하지 않은가? 경계에 있다는 것. 언제까지나 양 영역 모두에게 이방인이며, 정처할 수 없다는 것. 이토록 시리게 설레이는 일이 또 어딨겠는가.

사이트 주소는 알아서…

나는 살아있다

이걸 정신적인 문제라고 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육체적인 문제라고 하면 사실 요즘 좀 많이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한 일주일 동안을 딱히 어디가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면서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주저앉아 있었다. 광복절 전날엔 조금 나아져서 일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술을 조금 했는데, 이제 몸이 맛이 가려는지 다음 날 피를 한바가지 토했다. 정말 맛가겠더군. 집엔 아무도 없는데, 병원엔 가야 할 것 같고 몸은 움직이질 않고… 간신히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심신 안정’ 하라고 해서 일단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이틀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엔 병원 안갔음.)

몸이 이러니 기계도 보조를 맞추려고 하는지 이번엔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나버렸다. (기존 번호에서 앞부분만 010으로 바뀌었음.)

지금은… 정신이 멍하다. 자동으로 하이버네이션 모드로 들어간다. 언젠가 누가 내 덮개를 열면, 그제서야 난 또 움직이겠지. 잠깐만 좀 멍하니 있자. 그래도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태양

어느 날 나는 늦은 오후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에 심취해 있었다. 먼지 입자들에 산란하여 기묘한 질감을 갖게 된 빛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 빛은 얼마나 먼 거리를 날아 온 것일까.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 진공의 우주를 지나며 자연 소멸되거나 다른 천체 혹은 우주 먼지들에 부딪히지 않고 용하게 내 방까지 당도한 광자들. 하지만 나는 태양의 표면에서 생성된 광자가 지금의 내 방에까지 당도한 그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복잡한 양자역학적 수식들이 보다 깊은 설명을 가능케 하겠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서 광대한 태양의 힘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이 현상이 신비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벽에 부딪힌 빛, 그리고 그림자들. 이런 것들로부터 태양 자체를 연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지독할만큼 넓다. 이토록 강력한 존재가 사방으로 현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너무 어둡다. 우주에는 아마 경계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몇가지 비전공자의 단순한 가정이 있다.

1.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 (그러므로 빛이 반사되지 않아 어둡게 보인다.)
2. 우주에는 경계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상이나 계산보다 훨씬 더 바깥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아직 반사된 빛이 지구에 당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혹은 아직도 반사되지 않았다.)
3. 우주에는 거의 무한할 정도의 천체가 존재하므로 반사된 빛이 천체에 흡수되어 어둡게 보일 뿐이다.

우주는 왜 어두운가, 에 대해서 3번과 관련된 설명을 어디서 읽은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