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시작은 ‘러브크래프트 코드 3’권의 커버 일러스트였다. 나는 분명 어딘가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도무지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온 곳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석화된 인간을 들고 관찰하는 그림이었다.

“빌어먹을… 영희야, 너 이 그림 기억 나? 분명 너하고 같이 봤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

영희는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보는 것처럼 눈을 찡그리며 감은 상태에서 고개를 휘저었다.

“야, 제발 그 더러운 것좀 치워줘. 기분 좋게 술마시러 와서 갑자기 왠 귀신 그림이야.”
“나 지금 이걸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지 못하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맞아, 그때도 너 그렇게 못볼 걸 본 것처럼 굴었는데, 기억 안나?”
“몰라. 알아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나는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삼킨 뒤에 일어났다.

“미안해,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나 빨리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
“야, 너 뭐야! 그딴식으로…”

뒷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

분명 내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사이트를 보고서는 너무 기분이 묘해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다 이 작가를 소개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커뮤니티는 1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 다음은? 나는 그를 어디서 처음 알게 된거지? 아마도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검색엔진에 ‘러브크래프트’라는 키워드를 넣고 이미지를 검색해봐도 도무지 나오지가 않았다.

***

아니야, 뭔가 시작부터 잘못된게 틀림없어.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었다면 나는 벌써 그를 찾아 냈어야만 했다. 벌써 4시간째 검색엔진을 뒤지고 있다.

***

잠깐, 저 선은…

***

우연히 어떤 그림을 발견했는데, 그 그림은 기괴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기억하는 그 작가의 화풍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발견한 그림은 디스커버리채널의 ‘Alien Planet’이라는 유사-다큐멘터리의 컨셉 아트였다.

***

아, 그제서야 모든게 기억났다. 한때 Alien Planet을 보고 존재하지도 않는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저리도 개연성 있게 그려냈을까 하면서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을 찾아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가 그린 ‘인페르노’ 시리즈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드디어 발견했다! 드디어 답답함이 사라졌다.

***

러브크래프트 코드 3의 커버 일러스트는 Wayne Barlowe라는 일러스트 작가의 인페르노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http://www.waynebarlowe.com/barlowe_image_pages/inferno_7_ballsgone.htm

흉칙한 것이나 기괴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은 가급적 클릭을 삼가해주세요. 뭐 그다지 무섭지는 않습니다만.

기예르모 델 토로, ‘광기의 산맥에서’ 제작 추가 정보 2

영진공에서 기예르모의 헬보이 2에 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오랫만에 다시 델토로필름의 ‘광기의 산맥에서’ 프로젝트 페이지에 가봤다.

새로운 내용이 좀 추가되어 있어서 옮겨 봄.

What GDT Had To Say
From an interview posted on SciFi.com:

With regard to At the Mountains of Madness, I’d love to see you tackle H.P. Lovecraft in a way that hasn’t been done.

Del Toro: Me too. Me too. … Part of the arrangement with Universal–in being essentially there for now until 2017–part of the arrangement was they would finance research and development for Mountains of Madness. And we are doing it. There are many technical tools in creating the monsters that don’t exist, and we need to develop them. The creatures, Lovecraft’s creatures, the tools that exist for CG and the materials that exist for makeup effects, you need to push them to get there and we’re going to push them.

기예르모 델 토로와 SciFi.com의 인터뷰에서’광기의 산맥에서’를 떠올려 보자니, 당신이 정말 색다른 시도를 통해 러브크래프트를 재현하는걸 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델 토로 : 네, 정말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현재로부터 2017년까지에 해당하는 유니버셜사와의 협정사항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슨, 유니버셜사가 광기의 산맥에서에 관한 제작비나 개발 사항들을 처리한다는 거지요. 실제로 그건 진행중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괴물들을 만드는 기술적인 방법들도 수없이 많고요, 그걸 통해서 괴물들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괴물 말이죠,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생명체들. CG로 할 수도 있고 특수분장으로 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당신들도 (SciFi.com) 그들 (유니버셜사) 에게 압력을 좀 넣어보세요, 함께 압력을 좀 넣어봅시다.

TORN interview, 22-Oct-2008:

And allow me to add one thing – because of all those projects, there is one that is to me – in a way I it may not be as complex and as monumental at first sight as The Hobbit, but is ‘At The Mountains of Madness’. And that movie I have kept alive for many, many years and I want to keep it alive to do as soon as I can. Right now I am fortunate that most of my projects rest at the same place, and that is Universal, including Saturn and the End of Days. So I want to send a message out that, that that movie is alive and well and that there’s a lot of research and development that has to be done to create the creatures in that movie, and the City. Some artists and key technicians have been working on for now years, and will continue to work through the production and post production of The Hobbit. Scrutinized by me, but they have their own set of logarithms and chemical materials to solve before we can create those creatures properly. So that movie is not dead – it’s not instated, it continues to evolvewith Te Hobbit. And it is my belief that a lot of the stuff we’re going to develop in terms of digital and make-up tools for The Hobbit will be used for that.

TORN 인터뷰, 2008년 10월 22일.

…그리고 하나만 더 말하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사실 그 모든 프로젝트들이 제게는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호빗’은 처음 대할 때에 매우 복잡하고 기념비적인 작품은 아닌 것처럼 여겨질 지는 몰라도 확실히 ‘광기의 산맥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광기의 산맥에서’는 제가 매우 많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시작해보려고 노력했던 작품이고, 정말 가능한 한 만들어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은 제 영화 프로젝트들이 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니버셜사죠. 그래서 (팬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요. ‘광기의 산맥에서’는 잘 진행중이고, 영화에서 사용될 생명체들을 창조하기 위한 작업들도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호빗’의 제작 후에 계속 진행될꺼구요. 그런데 제가 좀 자세히 알아 본 바에 따르면, 아마 그때쯤 되면 (유니버셜사가? 혹은 다른 개발진들에 의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생명체들을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것들이 이미 해결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광기의 산맥에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않아!!!) 뭐 확실하게 영화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건 영화 ‘호빗’과 연계에서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호빗’에서 사용된 많은 기술들이 ‘광기의 산맥에서’에서 재사용될꺼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론

  • ‘광기의 산맥에서’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제작에 착수한 것은 아니다.)
  • 예전에 언급한 워너 브라더즈사와의 ‘광기의 산맥에서’에 관한 협력은 캔슬 된 것 같다.
  • 새롭게 유니버셜사와 이 문제에 대해 타진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인다.
  • 현재 영화 ‘호빗’을 만드는데 (혹은 이미 만들어서 개봉했던가) 사용된 기술의 축적이 ‘광기의 산맥에서’에서 재사용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호빗은 광기의 산맥에서를 위한 프로토타입의 성격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

  • 새로운 소식이라고 기뻐했건만 열어보니 사실은 별게 없다.
  • 그냥 ‘믿어 달라, 우리는 진행중이다. (working on it)’ 정도?

관련 글

기예르모 델 토로의 ‘광기의 산맥에서’ 추가 정보

.. 랄 것도 없지만서도, 우연히 몇가지 정보를 더 찾아서 추가합니다.

At The Mountains Of Madness   

Status: In Development
GDT’s Role: Writer & Director

Summary

Project in development. Based on the H.P. Lovecraft short novel.

Notes

  • Latest news, posted 18 Jun 2006 by GDT: “Budgeting from
    scratch with WB physical production dept. I love working in this place!
    Hope they’ll make it-“
  • Ron Perlman may play the role of “Larson”
  • William Stout did some preliminary art design for AtMOM.

What GDT Had To Say

Posted 30-Nov-2007 on Hellboy 2 Message board:

“ATMOM is a delicate project to push through a studio: no love interest, no female characters, no happy ending…

BUt i believe its time to resurrect the BIG TENTPOLE horror movie.
The EVENT HORROR movie. Like THE EXORCIST was or THE SHINING or ALIEN
or JAWS in their time…”

http://www.deltorofilms.com/ProjectPage.php?projectid=9

광기의 산맥에서
진행상황 : 구상중
기예르모 델 토로 역할 : 각본 / 감독

요약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으로부터 구상중.

노트

  • 2006년 6월 18일 기예르모 델 토로의 코멘트 : “워너 브라더스 사와 예산문제를 기초부터 협의중입니다. 여기서 일하는건 정말 즐거워요. 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찍자고 했으면 좋겠군요.”
  • 론 펄만 (헬보이 아저씨) 가 “라슨” 역으로 나올지도 모름
  • 윌리엄 스타우트가 영화 광기의 산맥의 기초적인 아트 디자인을 맡아 작업해줬음.

기예르모 델 토로가 한 말들
2007년 11월 30일
“광기의 산맥은 영화사들을 통해 만들기에는 좀 빈약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랑 얘기도 없고, 여자도 안나오고, 해피 엔딩도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진짜 호러 영화들이 (참조 tentpole)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엑소시스트나 샤이닝이나 에일리언이나 죠스같은 진짜 호러 영화 말이죠.”

뒤에 이은 글들이 좀 있는데, 아직 뭐 하나 확실한건 없군요. 단지,

1. 기예르모 델 토로 (GDT) 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인 광기의 산맥을 영화화 하고 싶어 한다.
2. 그 주변인들도 이에 대해 긍정적이다.
3. 하지만 이 ‘러브스토리도 없고 여자도 안나오고 게다가 해피 엔딩도 아닌‘ 영화에 투자할 영화사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정도가 답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IMDB에 GDT의 ‘광기의 산맥에서’를 찾아보면 2010년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나와 있기까지 하네요.

참고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원제목은 ‘광기의 산맥에서’가 맞지만 국내 번역서의 제목이 ‘광기의 산맥’으로 나왔던 관계로 제목으로 그 둘을 혼용했습니다.

광기의 산맥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단편을 써왔다. 물론 크툴루 신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신화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된 인공적인 세계는 크툴루 신화가 처음이었다. (반지전쟁의 톨킨처럼) 그는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아이디어를 직조해 어둡고 광막하며 우주적인 공포(Cosmic Horror)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열광적인 독자들에 의해서 이 신화는 정리되어서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가 되었다.

그는 장편은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 드문 장편 가운데서도 수작이 바로 광기의 산맥이다. 광기의 산맥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유일한 장편(유일한 장편으로 알고 있다.)인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관한 오마쥬다. 남극으로 탐사를 떠난 탐험대와 그들의 눈에 펼쳐진 초고대의 거대문명. 그리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 만약 이 이야기가 매우 낯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암중으로 우리의 미디어 곳곳에 침투했다는 이야기다.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모두가 그렇듯이, 그의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하고 오래된 어두운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일부러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꼭대기 부분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마루 뒤쪽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만을 노려보았다…

중략

.. 신경 쇠약의 증세가 한 단계 더 심해진 댄포스는 침착하지 못했다. 초조한 듯 몸을 뒤채던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멀어지는 핏빛 하늘과, 이상한 모양의 동굴 입구가 나있는 산봉우리와, 사각형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는 산등성이, 거대한 성벽으로 빼곡하게 뒤덮인 구릉지대,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기이한 모양을 빚어내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중략

… 댄포스는 그토록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던 마지막 공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내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중략

… 이상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온 거석 도시나 동굴,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기이한 광기의 산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했었다. 소용돌이치는 수증기 구름 한가운데서, 고대의 존재들조차 멀리하고 두려워했던 거대한 보랏빛 산맥 너머의 끔찍한 광경을 순간적으로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도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선가 밝혔던대로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무튼 깊은 밤에 두서없이 공포영화를 보다가 문득 광기의 산맥이 영화화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펴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 하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는데, 모든 원작을 영화화 하려는 작업이 그렇듯이 과연 이 훌륭한 원작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공포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되기 쉽다. 걸작으로 남는 공포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강렬한 캐릭터가 그 중심에 있다. (프레디, 제이슨, 핀헤드… 또 뭐 있지?) 하지만 광기의 산맥의 진수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위치한 백색의 대지, 남극에 있는 것이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권말에 적힌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의 이야기를 싣고 싶은데, 타이핑으로 옮기기에 너무 길고 귀찮아서..) 여기서는 심지어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쫓기는 사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러브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면 매우 지루해 할 것이다. 결국 기예르모는 이 두 영화의 요소를 적절히 배분해야 할텐데, 과연 얼마나 양자(일반/매니아)의 사랑을 받게 될른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