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많이 붓고 코가 막혀서 아프고 답답하며 짜증이 난다.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 어디 나갈 힘도 없고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 쌍십절 덕분에 학교엘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침부터 멍하니 누워서 껌뻑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고를 반복했다. 와중에 스무통쯤 전화가 왔다. 절반은 일때문에 온 전화였고 절반은 핸드폰때문에 엄마가 건 전화였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바꿀때가 되어서 (실은 어머니도) 주말 내내 바꾸니 마니 오늘은 문을 연 대리점이 있니 없니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젠가 한번 웃기지도 않은 에스케이텔레콤 우수 고객이라고 쓰던 아주 구형의 플립형 핸드폰을 중고 폴더형 핸드폰으로 바꾼적이 있다. 무료였는데, 그 속보이는 선심에도 부모님은 무슨 엄청난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주 좋아했다. 그러던 것이 또 몇 해가 지나자 배터리가 금방 닳고 통화도 잘 안되고 등등의 이유로 핸드폰을 새로 개통해야 할까 말까 하는 중이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통화료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엘지냐 케이티에프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그만 지난 주말에 아버지가 핸드폰을 분실, 어머니는 잘 됐다고 이 기회에 바꿔버리자, 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왜 내 핸드폰은 화음벨이 안되냐, 왜 내 핸드폰은 칼라가 안되냐 하시면서 거의 매년 할부기간만 끝나면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꾸는 동생의, 그야말로 2005년 최신형 위성 DMB폰을 만지작거리는게 끝내 마음에 걸려서 “제가 돈 낼테니까 바꾸세요.” 했는데, 드디어 오늘 은행앞에서 한달에 삼만 얼만가만 내면 된다는 그런 기종으로 어머니가 구입한 모양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신용 어쩔씨구리 상태이므로 내 명의로 개통하시느라,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도 대리점 직원이 “명의 확인차” 건 전화를 두 통인가 세 통쯤 받고 어머니의 전화도 받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혼몽한 상태에서 내내 나는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대리점 직원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불러 달라길래 한번 불러줬는데, 한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또 전화가 오더니 본인 확인을 해야한다고 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까 그 사람이었다. 짜증을 내면서 아까 당신이 한번 확인하지 않았냐, 왜 또 확인하냐 했더니 이건 절차상의 문제라는데 개뿔 와.. 속에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걸 꾹 참았다. 분명 옆에 어머니가 계셨으므로 내가 욕을 막 하면 어머니 입장만 난처해지겠지, 하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내 미칠것 같았다. 내 몫의 카드를 내어주고 백만원이건 이백만원이건 긁어버리세요, 하고 싶었다. 제발 나한테 말걸지 말고 맘대로 하세요. 게다가 오후쯤에 갑자기 수도가 안나오기 시작했고.. 그 뒤는 더이상 말하면 그때의 짜증이 상기되는 것 같아서 그만두련다.
저녁엔 조금 정신이 들어서 앞집 윗집으로 물이 안나오는 이유를 물으려 다녔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우편함에 보니 울산MBC에서 온 우편이 있었다. 지난주에 고래사랑 사이트 관리하시는 이재훈님이 귀신고래 다큐 DVD를 보내주신다고 하더니, 그거였다. DVD-ROM에 넣고 몇 분쯤 보다가 머리가 아파와서 그만 정지시켰다.
아아… 나는 언제쯤 숲 속 옹달샘, 토끼도 찾지 않는 깊은 물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