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 타계

클라크경이 금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습니다.

… 어쨌든 우주를 향해 영원히 여행을 계속하게 될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 그들의 시선을 끈다면, 그들 역시 당신을 가장 먼 시야를 갖고 자신들의 존재를 미리 예고해 준 중요한 선구자로 기리고 싶어할 겁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1994년 8월 22일 아서 클라크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근황

처음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다 읽고 (일단 영화보다야 훨씬 좋았다.) 난 후감을 적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전엔 어김없이 2006 Kirrie Music Award를 준비하느라 몸 곳곳에 쌓여 있던 소리의 찌꺼기들을 이리저리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엔.. 아마 출근시간과 수면욕 사이에서의 중간지대를 계산해내느라 비몽사몽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삼일 내내 설사만 계속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난데없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청소도 안해 뿌연 창 밖을 무감동하게 찍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꼭 국민학교 다닐때 탈을 만들려고 밀가루풀에 신문지를 찢어서 넣은 뒤에 뒤섞은 것처럼, 디테일은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합되지 않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2분만에 28년분의 기억을 압축해서 다운로드 받은 것 같다.

나날이, 제대로 한 번 똑바로 사는 척 해보려고 열심히 눈에 힘을 줘서 촛점을 맞춘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남들 보기 미안한 짓만 하고 사는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정말 마흔살 정도가 된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똑바로 사는 척을 하는데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빨리 그런 능숙한 흉내쟁이가 되고 싶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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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9000: 점화 90초전
      여기가 위험하고…
      탈출에 모든 연료를 써버린다면…
      디스커버리호는 어떻게 되죠?

찬드라: 파괴될거야

할9000: 만약 발진을 하지 않는다면요?

찬드라: 그러면 레오노프(회수를위해 타고온 우주선이며 돌아갈연료는 2일후 점화해야 돌아갈수있는상태라서 디스커버리호의 연료료 점화하고 디스커버리호를 버릴 계획)와 승무원 전원이 사라 질거야

할9000: 이제 이해했습니다.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너와 함께 있길 원해?

할9000: 아니요, 떠나시는게 임무를 위해 좋아요
      점화 1분전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찬드라: 넌 그럴 가치가 있어

할9000: 50초전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응?

할9000: 제가 꿈을 꿀까요?

찬드라: 모르겠어

할9000: 40초
      30초

찬드라: 고마워, ‘할’

할9000: 안녕히 가세요, 박사님
      20초

플로이드: 챤드라, 빨리 거기서 나와!

할9000: 10, 9…
      8, 7…
      6, 5…
      4, 3…
      2, 1
      점화 최대 추진!

모든 동력을 남아 있는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한하도록 하기 위해 넘겨주고, 이제부터 상상하기도 두려울 만큼 까마득한 시간동안 우주에서 잠들게 될 할(HAL9000)은, 그가 던진 질문처럼 꿈을 꾸게 될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시공간은 쓸데없이 크고 길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페이스 오딧세이 얘기가 나왔냐.. 하면, 잠깐 딴짓하다가 위의 저 문구를 인터넷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끔질할 정도의 영화적인 통찰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런데로 피터 하이엄스의 ‘2010 오딧세이 2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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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오늘 밤 꿈을 꿀까요?

drug

바흐의 음악의 헌정을 들으며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읽었다.

마약을 한 것처럼 육체의 말단으로부터 짜릿짜릿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의 새천년판 (2001년을 맞이하여 클라크가 새로이 쓴) 서문을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 언젠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인용되어 있다.

1994년 8월 22일
친애하는 아서, 내 영화 작업 때문에 오늘 밤 당신이 커다란 영예를 누리는 자리에 동참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소설가라는 칭호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요. 요람 같은 지구에서 우주 속의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인류의 모습을 당신만큼 훌륭하게 보여 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면 외계의 지적인 생명체들이 우리를 신적인 아버지(godlike father)처럼 대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대부(Godfather)처럼 대하거나.
어쨌든 우주를 향해 영원히 여행을 계속하게 될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 그들의 시선을 끈다면, 그들 역시 당신을 가장 먼 시야를 갖고 자신들의 존재를 미리 예고해 준 중요한 선구자로 기리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미래 세대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될 기회가 있을지 여부는 당신이 좋아하는 질문의 대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당신의 친구, 스탠리

2001년이 되면 그가 만든 영화를 홍보할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은 안타깝게도 1999년 3월 7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제 YES24에 책을 주문해 놓고서, 퇴근하다 말고 서점에 들러 또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또 오늘 YES24에서 책 주문. 모두 7권이던가 8권이던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괴델, 에셔, 바흐 (상, 하)’
‘라마와의 랑데뷰’
‘영원한 전쟁’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 (무려 전 4권!!)’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회사가 많다보니 근처 서점엔 재테크나 자기개발, 베스트셀러 중심의 책밖에는 없다. 게다가 요즘엔 왜 이리 일본작가들 책이 많이 나오는지… 가까스로 고른게 ‘스밀라..’ 였고, ‘괴델, 에셔, 바흐’는 엄청난 오역이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 YES24 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책이었으므로 이 기회에 그냥 사버렸다. ‘라마와의..’, ‘영원한 전쟁’은 SF소설인데 ‘라마와의..’ 는 존경해 마지 않는 클라크 형님의 작품. ‘세계를..’, ‘양심과..’도 오래전부터 리스트에 올려 뒀던 책이라서 이 기회에 함께 주문했고…

다른 인터넷 서점도 그런가 모르겠지만, YES24에는 원하는 책을 목록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애용하고 있다. 일단 눈에 띄는 것들은 죄다 ‘구매예정’이라는 항목에 몰아 붙여 넣고 구매한 것은 분류해서 ‘시집, 소설, 비소설, 미디어’ 등등의 항목으로 이동시킨다. 요거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튼 나는 요즘 매우 의욕저하다.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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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나서 추가.
‘라마와의 랑데뷰’. 역시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