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말더듬이의 날

성형외과에는 환자 아닌 환자들이 몰려든다. 말더듬이들은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인 셈이다. 말더듬을 학계에서는 ‘유창성장애’라 부른다. 유창한 언어생활을 향유하는데 장애를 겪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일 성싶다. 말더듬을 단순한 습관이나 잘못 길러진 버릇으로 치부하지 말고 일종의 장애로 규정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자는 촉구다.

‘말더듬은 날’은 ‘International Stuttering Awarness Day’를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세계인구를 60억이라 가정할 때 약 1퍼센트 정도가 말을 더듬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인구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6,000만 명 가량의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에 상관없이 유창성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헌장은 절규한다. “말을 더듬는 이들에게 일상적 의사소통은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말을 더듬는 이들은 매일매일 투쟁을 한다. 조국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제축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재타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중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탈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장면 곱빼기”와 “여보세요”나, 혹은 “아저씨 신촌로터리 가주세요” 따위의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을 나열하고자 전신을 뒤틀고 심신을 쥐어짜며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내세의 지옥과 현세의 감옥의 중간지점에 아마 말더듬이의 세상은 존재할 게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나는 말을 더듬는데, 요즘도 더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시점을 계기로 말을 더듬고 그것을 교정하며 대화할 때 내가 말을 더듬는지 더듬지 않는지 신경쓰거나 막히는 단어들을 피하기 위해서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외우는 등의 일들을 하기가 귀찮아졌다. 그냥 좀 더듬기로 했고 몇몇 친구들은 내게 말을 천천히 하라거나 머리 속에서 할 말을 정리한 다음에 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별 말 없이 나와 대화해주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것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말을 현재도 더듬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아마 좀 더듬을 것이다. 여전히 막히는 단어가 좀 있고 긴장하면 주춤하게 된다.

세계 말더듬이의 날, 이란 것이 있는 걸 보곤 좀 마음이 푸근해졌달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이외의 말더듬이를 본 적이 거의 없는데, 통계적으로 봤을때 내가 말더듬이와 마주치지 못한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말더듬이들은 심각한 대인장애를 동반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 그랬다. 나는 주로 ㅈ, ㄷ 자음이 들어간 단어를 발음하기 힘들었다. 대학에 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디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매번 “팔팔”을 샀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말하지 못해서 중국집에 무언가를 시켜본 적도 없다. (요즘엔 잘 한다.)

지금은 물론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 이상 괴로운 일이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장애인이고 (물론 법적 장애인은 아니지만) 일반인에 비해서 소수자로써 장애인이 갖는 괴로움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말을 더듬는게 축복까진 아니어도, 내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 다가가는데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 굵은 글씨체로 되어 있는 인용문이 이해가 되세요? 나는 저거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일기

별로 술을 마실 일은 아니었는데, 언제나 후회는 때늦게 시작되듯이 그냥 먹기 시작한 술이 과했는지 새벽 내내 나는 위 속의 모든 것을 게워냈다. 지저분한 것들이 먼저 튀어 나왔고 끝내는 씁쓸한 체액까지 꼭꼭 씹어 뱉어냈다. 그리고 십분뒤엔 똑같은 지옥이 반복되었다.

아침엔 목구멍이 화끈거려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식구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버린 어둑한 방안에서 나는 그냥 멀건 미음을 끓여 입에 떠 넣는다. 언뜻 발치에서 두꺼운 안경태를 연신 손으로 밀어 올리며 개다리소반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는 주금깨 소녀가 환상처럼 보인다. 내가 신음하자 그녀는 당황해서 내게 돌아보고, “어디 좀 괜찮아? 물 좀 갖다줄까? 죽 좀 먹을래?” 하며 걱정해준다. “아아, 그냥 좀 속이 쓰려서. 아까 먹던 미음 좀 갖다줄래?” 그녀는 아뭇소리 안하고 미음을 적당히 데워서 간장과 함께 내온다. “그러길래 빈속엔 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엄밀히 말해서 안주하고 같이 먹었으니 빈속은 아니었어.”, “그러셔.” 하고 토라지는 그녀. “뭘 쓰고 있었어?”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냥 옛날 얘기. 잊어버릴까봐.”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얘기.

하하하, 웃으면 좀 나으려나.

근데,
나 사실 정말 외로웠던거 아냐?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영화 스윙걸즈에서 그녀를 봤을때 여러 사람이 오버랩되었고 매끈하고 화려하게 생긴 생김도 아니면서 은은히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그 매력때문에, 아 이런 배우도 있구나! 좋다! 했었다.

우연히 그녀가 나오는 신작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나도모르게 무릎을 치고 껄껄껄 웃고 있었으며 생전 처음으로 배우때문에 영화까지 보고싶어졌다.

아직 인터넷에 돌아다니지도 않은걸 보니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미개봉인 모양.

이봐, 진짜 거북이가 빨리 헤엄쳐? 키득키득~

Time – Alan Parsons Project

Time – Alan Parsons Project

Time, flowing like a river
시간, 그것은 강물처럼 흐르며
Time, beckoning me
시간, 그것은 내게 손짓하네
Who knows when we shall meet again
우리가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If ever
무수한 시간 속에서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
강물처럼 흐르는 무수한 시간 속에서

Goodbye my love, maybe for forever
내 사랑아, 이제 작별하자
Goodbye my love, the tide waits for me
내 사랑아, 파도치는 내 사랑아
Who knows when we shall meet again
우리가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If ever
무수한 시간 속에서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on and on)
강물처럼 흐르는 무수한 시간 속에서
To the sea, to the sea
바다로, 바다로 흐르는
Till it’s gone forever
영원까지 흐르는
Gone forever
그 강물처럼
Gone forevermore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Goodbye my friends, maybe forever
안녕 내 친구야
Goodbye my friends, the stars wait for me
이제 저 별로 되돌아 가야 할 시간
Who knows where we shall meet again
우리가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If ever
무수한 시간 속에서
But time keeps flowing like a river(on and on)
저 별빛처럼 흐르는 무수한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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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Woolfson에 따르면, 이 곡은 고대의 바다 선장이 미지의 세계로 발견의 여행을 떠날때나, 오늘날 우주 비행사가 우주를 유영할 때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from 고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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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밤을 새고 일을 하고 있으면, 새벽 네시쯤에서 다섯시 사이에 하나포스라던가 교보문고 같은데서 정기적으로 보내는 반정도는 스팸인 메일이 온다. 딩동-, 하고 시스템 트레이를 보면 역시나 같은 메일.

가을이 되어 새벽 공기가 매우 차다. 이런 기계같은 느낌이 그 메일로부터 전해져온다. 어떤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발송된다. 아마도 로그인해서 회원정보인가를 수정하면 메일이 오지 않게 할 수도 있을테지.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질 않는다. 요즘 같아선 그러한 메일조차도 새벽에 오지 않으면, 주위가 지나치게 조용하다.

이상한 망상에 시달린다. 관자놀이로부터 매끈한 스테인레스봉이 머리를 꿰뚫는다. 그리고 흑백인 시대에 바람에 잠깐씩 흔들린다. 피가 조금씩 스며나오기도 하고 그야말로 무거운 것이 머리 속에 있다는 실물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프지는 않다. 아무런 고통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낼 수 있는 아이. 나는 조종당한다.
예전에는 부드러운 고무재질의 검은 구체를 날카로운 면도칼로 자르는 망상에 시달렸다. 이건 어쩌면 스스로 벌을 주는 것 같다. 쇠가 머리를 뚫고 바람에 흔들림. 오죽했으면.

3000번째 방문자 이벤트

그동안 많이 귀엽게 봐주셔서 29XX번이나, 여러분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나는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3000번째로 방문해 준 누군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몇십번 안남았네요. 혹시라도 상품을 바라고 열심히 F5키를 누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알기로 이 태터툴즈는 1시간 이내에 같은 컴퓨터에서 방문한 기록에 대해선 유효방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아님 말구…

선물은 정말 작은거, 예를 들면 최신형 노트북이라던가 벤츠 어쩔씨구리 (난 이런 모델넘버엔 약해서 뭐가 좋은지 잘 몰라요) 라던가 개나 소나 다 가는 타워 팰리스 최상층 무료 입주권이라던가 뭐 그런거니까 너무 기대는 안하셔도 좋습니다. 참가상은 없냐구요? 참가상, 물론 없습니다. 있으면 좋을뻔 했는데요, 그쵸?

이번 이벤트에 협찬해준 이건히, 빌게이츠 등등 세계 굴지 기업주한테 심심하게 괘씸하다는 말 전합니다. 니들이 앞뒤 안가리고 있는거 없는거 다 긁어가는 바람에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며, 가난한 나라, 가난한 가족, 가난한 아이들이 오늘도 쫄쫄 굶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오늘 고기 먹었습니다.

3000번째, 딱 방문하는 분한테 딱 한번 이벤트 당첨 축하 창이 뜹니다. 팝업창이 아니니까, 구글 툴바나 xp sp2같은거 쓰셔도 무방합니다.

축하 창에는 모종의 문구가 적혀있는데, 이 문구를 안내메세지에 따라 제게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무사히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도 열나게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아, 내일은 토요일이군요.
부모님은 아이들과 함께, 미혼의 청춘남녀는 자신들의 짝과 함께, 고3은 열나게 공부하시고 고2까지는, 까짓꺼 하루 재끼고 피씨방에나 가서 열나게 레벨업 하시고 초딩들은 제발 좀 말 좀 순화해서 리플달고 유치원 이하 꿈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느즈막히 일어나 시냇가 옆에서 돌고래에게 정어리나 던져줄까 합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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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약 한달전부터 이상한 방문자 기록이 뜨고 있습니다. http://clip.daum.net… 으로 시작하는거 보니까, 어떤분이 다음에서 서비스하는 즐겨찾기에 제 사이트를 등록해놓고 줄기차게 들어오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이 빨갛게 달아 오를 정도로 궁금합니다. 대체 당신은 누구시길래…

1. 나는 남자다.
2. 나는 여자인데, 미성년자이거나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다.
3. 나는 여자인데, 주위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심한 반면에 마땅한 남자가 없어 고민중이다.
4. 나는 국회의원이거나 대기업 회장이거나 월평균 수입이 1000만원 이상이면서 일년에 내는 소득세는 10만원 미만이다. (이런 개X끼!!)
5. 나는 골프를 잘친다.
6. 나는 초능력자다.
7. 나는 이주 외계인이다. (12월 말 강제추방예정…)
8. 나는 10개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고 12개국어를 읽고 쓸 줄 안다.
9. 나는 성별을 밝힐 수 없는 인간인데, 같은 관심사에 대해서 소근소근 대화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10. 나는 저작권협회 알바생이다.

여기서 일단 1번, 2번인 분은 방문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세요.
4번은 앞으로 오지 마라.
5번이면 열심히 노력해서 해외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선수가 되어 대한민국을 빛내, 주든지 말든지…
6번이면 반갑습니다. 나는 텔레파시와 염동력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할 줄 아나요? 언제 한 번 만나서 지구정복이나 한 번?
7번이면 잘 아는 MIB요원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 정식으로 수속을 밟으면 지구인으로 귀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연락주세요, 초공간통신단말번호 #$#@%-343-3@#$343-^&$# 입니다.
8번이면, 좋겠습니다.
10번이면 나는 안드로메다성인이므로 지구법에 저촉받지 않습니다. 만약 충돌적인 법률 문제가 발생한다면, 국부 은하연방 지방 법원 민원실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국부 은하연방 지방 법원 민원실은 지구로부터 은하 중심으로 약 3만광년 거리입니다. 공용운송수단이 없으므로 반드시 지구 로켓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주차비가 매우 비싼데, 민원때문에 왔다고 해도 도장 안찍어주니까 유념하여 주십시오.

자, 문제는 3번과 9번인 경우입니다.
일단 9번인 경우에, 나도 당신과 같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물론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한두명쯤은 있지만 미묘한 알력같은게 있고 복잡한 치정문제도 얽혀있어서 순수하게 플라토닉한, 즉 가을의 맑은 바람과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드디어 3번.
축하합니다. 부디 코멘트라도 남겨주셔서(비밀글로) 서로 지속적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매우 바쁘지만, 곤란한 상황에 처한 여성을 그냥 두고 지나칠만큼 바쁜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기 2

학교 보건실이란델 처음 가봤다. 증상을 설명하니 액티피드 두 알을 건내주었다. 내 과, 이름, 학번 등등을 묻길래 대답하다가 그만 학번이 생각 안나서 대충 대답해버렸다. 약을 받고 나오면서 다시 학번이 생각났으나, 다시 되돌아가서 학번 잘못 불러드렸다고 말하는 것도 좀 우스워서 그냥 나와버렸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다, 액티피드.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와 함께 알약 하나를 넘긴다.

그나마 교양 수업 하나 있는게 오늘 세시간 연강이라 도저히 마지막 시간까지 버티질 못할 것 같아서 한시간 듣고는 (사정 설명하고) 나와버렸다. 낮에 먹은 감기약이 바야흐로 효과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노오란 구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육체적으로) 깊은 단절감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속이 허한대도 뭘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앙겔로풀로스가 보고 싶었다. “학의 멈춰진 걸음걸이.” 노오란 작업복(우비)의 이미지. 도처에 드러나는 구원의 실마리. 찐득하게 의자에 앉아서 그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렇죠, 형?) 그러니까 먼저 그 노오란 작업복이 생각났던거다. 감기약때문에, “영원과 하루”에서 자전거타고 잠깐 지나가는 노오란 우비까지. 완전히 자기 것이 된 이미지를 태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감독, 정말 대가다. 너무너무 보고싶으나, 아마 다시는 쉽게 볼 수 없을 것 같다. (혹시라도 이 작품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연락주세요..)

그러나 영화를 보는 대신에 집에 오자마자 밥먹고 약먹고 그냥 자버렸다. (지금 막 깨서 잠깐 일하고 글 씀)

감기

목이 많이 붓고 코가 막혀서 아프고 답답하며 짜증이 난다.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 어디 나갈 힘도 없고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 쌍십절 덕분에 학교엘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침부터 멍하니 누워서 껌뻑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고를 반복했다. 와중에 스무통쯤 전화가 왔다. 절반은 일때문에 온 전화였고 절반은 핸드폰때문에 엄마가 건 전화였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바꿀때가 되어서 (실은 어머니도) 주말 내내 바꾸니 마니 오늘은 문을 연 대리점이 있니 없니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젠가 한번 웃기지도 않은 에스케이텔레콤 우수 고객이라고 쓰던 아주 구형의 플립형 핸드폰을 중고 폴더형 핸드폰으로 바꾼적이 있다. 무료였는데, 그 속보이는 선심에도 부모님은 무슨 엄청난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주 좋아했다. 그러던 것이 또 몇 해가 지나자 배터리가 금방 닳고 통화도 잘 안되고 등등의 이유로 핸드폰을 새로 개통해야 할까 말까 하는 중이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통화료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엘지냐 케이티에프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그만 지난 주말에 아버지가 핸드폰을 분실, 어머니는 잘 됐다고 이 기회에 바꿔버리자, 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왜 내 핸드폰은 화음벨이 안되냐, 왜 내 핸드폰은 칼라가 안되냐 하시면서 거의 매년 할부기간만 끝나면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꾸는 동생의, 그야말로 2005년 최신형 위성 DMB폰을 만지작거리는게 끝내 마음에 걸려서 “제가 돈 낼테니까 바꾸세요.” 했는데, 드디어 오늘 은행앞에서 한달에 삼만 얼만가만 내면 된다는 그런 기종으로 어머니가 구입한 모양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신용 어쩔씨구리 상태이므로 내 명의로 개통하시느라,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도 대리점 직원이 “명의 확인차” 건 전화를 두 통인가 세 통쯤 받고 어머니의 전화도 받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혼몽한 상태에서 내내 나는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대리점 직원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불러 달라길래 한번 불러줬는데, 한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또 전화가 오더니 본인 확인을 해야한다고 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까 그 사람이었다. 짜증을 내면서 아까 당신이 한번 확인하지 않았냐, 왜 또 확인하냐 했더니 이건 절차상의 문제라는데 개뿔 와.. 속에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걸 꾹 참았다. 분명 옆에 어머니가 계셨으므로 내가 욕을 막 하면 어머니 입장만 난처해지겠지, 하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내 미칠것 같았다. 내 몫의 카드를 내어주고 백만원이건 이백만원이건 긁어버리세요, 하고 싶었다. 제발 나한테 말걸지 말고 맘대로 하세요. 게다가 오후쯤에 갑자기 수도가 안나오기 시작했고.. 그 뒤는 더이상 말하면 그때의 짜증이 상기되는 것 같아서 그만두련다.

저녁엔 조금 정신이 들어서 앞집 윗집으로 물이 안나오는 이유를 물으려 다녔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우편함에 보니 울산MBC에서 온 우편이 있었다. 지난주에 고래사랑 사이트 관리하시는 이재훈님이 귀신고래 다큐 DVD를 보내주신다고 하더니, 그거였다. DVD-ROM에 넣고 몇 분쯤 보다가 머리가 아파와서 그만 정지시켰다.

아아… 나는 언제쯤 숲 속 옹달샘, 토끼도 찾지 않는 깊은 물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춥고 배고픈 것이다. 배가 고프면 더 춥고 추우면 열을 내기 위해 몸을 떨게 되므로 더 배가 고파진다. 이 두 고통이 이중나선구조로 상승한다.

오늘 하루 나는 매우 심란했다. 계속되는 복통과 피로, 무력감 같은 것들이 나를 잡고 뒤흔드는데 제발 놔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듣질 않았다. 거의 모든 일반적인 것들이 구토가 날만큼 혐오스럽다. 오직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은 담배와 잠, 뿐이다. 어떤 녀석이 있는데, 난 그 녀석이 매우 싫어졌다, 지난 몇 일 동안 나는 기차의 덜컹임처럼 그 녀석을 떠올렸다. 떠올릴때마다 조금씩 싫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매우 싫어지게 되었다. 술집에서 들었던 말들, 그냥 상상, 생각.. 아마도 이런 것들이 싫어지게 된 요인 같다. 그런데 그 뿐이다. 그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비교적 이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맹렬하게 싫어하고 미워하고 혐오스러워 할 뿐이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살아간다. 나는 천칠백명 정도를 싫어하고 오십세명 정도를 극도로 미워하며 열세명 정도를 죽이고 싶다. 이미 머리 속에서는 수없이 살인이 이뤄졌다.

요즘 정말, 계속 현무암이 되고 싶다. 현무암.. 깊은 음영.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들.

그렇고 그런 것

왠지 아래 글에 달린 두 개의 코멘트가 “너의 음악적 지평이란 고작 김원영 정도도 벗어나지 못하느냐”라는 엄한 질타로 들려 변명아닌 변명을 위해 한 곡 올립니다.

기타에 안토니오 뽈시오네, 보컬에 사비나 슈바. 어딘가에서 읽은 이들에 대한 짤막한 평, “더운 여름 밤에 흑맥주나 한 병 마시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들으면 조금씩 기분이 좋아집니다.”에 한표 던지면서, 음, 네 요즘엔 이쪽 세계 음악이 너무 좋아요. 얼마전에 개봉했었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OST의 조르쥬(?) 드렉슬러도 한참 꿈속에서 써라운드로 울려퍼졌을만큼 맹렬하게 들었었고… 근데 빌 위더스 ain’t no sunshine의, 엄청 긴 호흡으로 부르는 I know.. 부분을 완벽하게 따라하실 수 있나요? 전 두번에 한 번 성공합니다. 이정도면 하루에 담배 한갑을 소화하는 제 폐로써는 성공스런 결과죠. 그러나 지금은 너무 춥습니다.

오랜만에 병민이가 꼬여내서 목동 사거리 영일만 꼼장어집에서 쏘주 한 잔 했다. 이즈음의 나이들이 그렇듯이 한참 힘들고 한참 꿈도 있고, 뭐 그런 얘기를 했다. 뜬금없이 과자가 먹고 싶었는데, 꾸욱 참았다.
2차로 9층짜리 건물 옥상의 맥주집엘 갔는데, 한 백평쯤 되는 술집에 손님이라곤 우리하고 두서너 테이블밖에 없어서 왠지 잘못 온게 아닌가 싶었는다. 의외로 맥주가 맛있었다. 중간에 뜬금없이 (정말 뜬금없이!) 라이브 공연을 해서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노래들을 따라불렀다. 잔을 부딪히고 한모금 넘긴 뒤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잔을 부딪히고 그랬다. 별이 안보여, 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