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맥레이 첫 내한공연 후감, Tom Mcrae first gig in Seoul

나는 왜 이 69년 영국산 청년이 대한민국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자, 이건 팬으로서의 오피셜한 발언이고.

아직까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그다지 크지도 않은 공연장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객석에 앉아서 시작시간 전까지 무의미하게 흘러 나오는 무딘 경음악들을 애써 참아내며 나는 확실히 뭔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분명 파퓰러한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동시대를 살아내고 가끔 전화해 꾀어 내면 시덥지 않은 고기 몇 점에 소주 한 잔을 걸치더라도, 그래서 이 무궁한 삶들이 누추하게 느껴질 지라도 끝끝내 네가 있어 산다, 나는 끝끝내 변혁할 것임을 믿는다 고백하며 내일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상상이었다. 가끔씩 집중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꼬부랑 글씨들 턱에) 그의 글들을 읽어 보면 10년의 나이 차이가, 대한민국과 영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짱구 굴리는 모양새는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트와 바이트로, 또 동축케이블이나 광케이블로 연결된 활자화 된 관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어느 순간 그가 나타나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미몽같던 상상들은 천장으로부터 추락해 내게 실물의 톰 맥레이를 던져주었다. 그건… 그다지 멋진 일이 아니었다. 스폿 라이트로부터 그의 각진 미간이 만들어 내는 어두운 눈덩이라던가, 왼발 오른발로 탁탁 바닥을 때리며 리듬을 맞추는 스타일은 지금까지는 내 상상 속에서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아, 이러니까 내가 무진장 위험한 스토커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젠 그게 아니라는걸 알아버린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살아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주체였다. 이건 아마도 스타와 팬 사이의 풀 수 없는 오래된 오해 같은 것일까.

아무튼 정제된 스튜디오에서의 완벽한 곡만 듣다가, 가끔 박자를 놓치거나 줄을 실수로 뮤트시키는 등의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를 듣는다는 것은 그것대로 멋진 경험이었다. 아직 신보인 King of Cards를 구하지 못해서 종종 처음 듣는 곡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가 부르며 유명해진 곡들 ‘Still Lost’, ‘Walking 2 Hawaii’, ‘For The Restless’, ‘End Of The World’, ‘You Cut Her Hair’ 등등을 남몰래 따라 부르며, 몇십년 전에 내한했던 클리프 리차드에게 팬티를 벗어 던졌다는 무시무시한 우리 엄마 세대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프로그램에 없었다면 미친듯이 뛰어나가 그의 멱살을 잡고 신청했을 나만의 톰 맥레이 18번 ‘The Boy With The Bubblegun’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을 때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고 좌석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생각하는 톰의 강점은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이다. 다시. 물론 어느 뮤지션인들 자신의 음악에 진지하지 않을까. 다시. 내가 생각하는 톰의 강점은 그의 진지함의 형태가 나를 움직이게,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버블건 소년의 가사는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터져 나오는 격한 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의 한계에 이르러 오히려 외면적으로 고요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시퍼렇게 날이 선 예리한 칼날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다시 오기를 희망한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적이 있어서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클로징 멘트였어도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활동하던 그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아시아 투어를 온 것인지는 나도 어리둥절 할 정도지만 (그나마도 아직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뿐이다.), 그의 노래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동쪽의 한 나라에 한 청년을 감동시켰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가 언젠가 다시 방문할 그 날엔 우리는 더 많아 질 것이고 계속 그렇게 더 많아 질 것이다.

하나, 오늘 9시에 홍대 클럽 Freebird에서 조촐한 팬미팅 (아, 팬미팅이라니!) 과 함께 몇 곡을 부를 예정이라고 한다. 공연장이야 무턱대고 혼자 갔지만서도, 클럽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가봤으면 좋겠다.

둘, 혹시 어제 공연장에서 사진 찍으셨던 분 계시면 트랙백 좀 쏴주세요. 촬영 안되는 줄 알고 카메라를 안가져 갔더니 후회막심이네효!

Tom, It was a great gig to me last night. I’m afraid you might have been disappointed about small fans. But don’t forget your saying that you hope you’ll come to this country again. We’ll be getting more and more.  

진퉁과 짝퉁

며칠 전에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명품위조단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는 그들의 치밀한 짝퉁 명품가방 유통과정을 밝히면서, 그들이 만든 제품이 진품과 매우 흡사해서 본사 직원이 와서 확인을 해도 제대로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대로 에이전시 샾에 걸어 놓아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걸 두고 한국인 손재주의 쾌거라고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웃지 못할 일이 되었다.

그런데, 진품과 그정도로 흡사하다면 그건 이미 진품이 아닐까? 심리철학의 사고실험 가운데 ‘중국인의 방 논증’이라는 것이 있다. 밀폐된 두 방에 다국어에 통역에 능통한 사람과 기계가 들어 있고 그 두 방에 번역되기를 바라는 영어 문장을 넣었을 때 우리는 이 조건만 가지고는 기계의 상태, 즉 기계가 인간과 같이 입력받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처리해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가에 대한 답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고실험은 다시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관찰자가 타인을 관찰할 때 결코 그의 심적상태를 활자 읽듯이 명징하게 사실화 할 수 없다. 밑천이 빈약해 더 이상 깊게는 안들어가지만…

아무튼 진퉁과 짝퉁의 얘기다. 표면적 증거만으로는 두 제품의 진/가를 판단할 수 없을때, 과연 어느 하나를 짝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재질이 다를 것이다, 라고 한다면 우리는 명품을 구매할 때 엄증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제품의 재질을 하나하나 검사하지는 않는다고 말 할 수 있다. 커다란 상자처럼 생겼고, 안에 식재료를 넣어 두면 시원하게 만드는 기계를 ‘냉장고’라고 하지 않는다면 과연 뭐라고 할 것인가?

자, 그런데 확실히 진퉁과 짝퉁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의 기이한 소비 유행에 근거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진품 구찌가방은 결코 진품 구찌가방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건 구찌에서 만든 가방이다. 그게 짝퉁이라도 구찌에서 만들었으면, 즉 일반적인 명품의 제품 기준 (견고성, 디자인 등등) 에 미달하는 제품이라 할지라도 그건 진퉁이 되는 것이다. 명품이 더 오래 쓰니까 결국은 합리적 소비다 라고 하는건 순전히 거짓이다. 백만원짜리 진품 가방을 십
년 쓰느니 만원짜리 짝퉁을 일년씩 열번 사는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

뻔한 얘기지만 결국 우리가 소비하는 명품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명품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럼 왜 우리는 그토록 광적으로 진퉁과 짝퉁을 구분하려고 하는가. 왜 짝퉁을 그리도 못살게 하는가. 그정도로 구분하기 힘든 짝퉁이라면 오히려 값싼 짝퉁을 구매해서 진퉁처럼 여기면 될 일이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이거 진품이야, 하고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면 된다. 그러나 진퉁 제조사의 입장에서 그건 말도 안될 일이다. 짝퉁을 인정하고 소비하는 풍조는 그들의 매출 격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애초 구분하기도 힘든 진퉁과 짝퉁을 계속적으로 구분하게 만들고, 지적재산권이니 무역협정이니 하면서 사람들에게 진퉁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거의) 모든게 자본의 논리다.

꼬리를 내려야겠다. 나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시민이고, 결코 짝퉁 옹호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가 가져올 수도 있는 경제적 혼란을 노리는 사회교란세력도 아니다. 가끔 우리는 모든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신한카드가 준다는 엄청난 포인트를 당연히 생각하고 쇼를 하면 극장표도 막 주는 걸로, 국민 건강을 걱정한다는 보복부가 매년 담배값 인상을 시도 하는 것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당연한건 당연한게 아닌게 될 수도 있다. 속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멍청한 플롯 (idiot plot)

멍청한 플롯 idiot plot

문 학과 영화 비평에서, 멍청한 플롯은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멍청이들이라서 먹히는 플롯이다. 왜냐하면 멍청한 플롯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이성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편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류 공포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동료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데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대응할 생각을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돌아다니면서 살인자의 눈에 쉽게 눈에 띄도록 실수를 연발한다. 다시 말해 살인마가 집안을 휘젓고 다녀도 여주인공은 집 밖으로 달아나기는커녕 지하실에 숨을 궁리만 하는 식이다.

이 용어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영화에서는 비평가 로저 에벗(Roger Ebert)이 1966년 서부영화 <추한 녀석들 The Ugly Ones>을 리뷰하면서 사용한 이래 자주 이러한 표현을 즐겨 썼고 과학소설에서는 작가이자 비평가인 제임스 블리쉬(James Blish)가 일찍부터 이러한 언급을 했던 모양이다. 이에 한술 더 떠서 과학소설 작가이자 비평가 데이먼 나잇(Damon Knight)은 사회구성원들이 죄다 멍청이여야만 돌아가는 가상의 사회를 담은 과학소설을 “2번째 멍청한 플롯(second-order idiot plot)”이라 이름 지었다.

– SF 카페, 안드로메다 ‘고장원’님 글 가운데서. (http://cafe.naver.com/sfreview.cafe)

잠든 꿈

가끔 의식적으로 감각을 끊고 – 마치 플러그 뽑듯이 – 자욱한, 검고 어두운 바다의 심연으로 가라 앉는 시늉을 한다. 가끔의 대부분은 외풍이 드는 내 작은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질 때고,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이 어느 날 다 팔려서 그날 밤 소녀는 켤 성냥을 구하지 못해 얼어 죽었다는 블랙코메디를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아니, 그런데 어차피 소녀는 성냥이 있어도 얼어 죽었던 것 아니었나? 이래저래 가망이 없다.

전에 말 했던 것 같은데, 자각몽 말야. 꿈 속에서 그것이 꿈인 것을 깨닫게 되는 꿈. 드디어 조금씩 나는 그 신비로운 땅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그런 꿈을 꾸었다지. 첫번째 자각몽은 부끄럽게도 통제불능의 난교파티가 되어버렸는데 – 그마저도 끝까지 다 꾸지 못해서 아쉬워 – , 그 꿈을 꾼 다음에 나는 단단히 다짐했어. 고작 포르노 주인공이나 되는데에 귀중한 체험을 소모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두번째 자각몽을 꾸었을 때에, 기억을 역류해서 묻힌 의식의 공간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

네가 사기꾼이라고 말하던 그 프로이트 말야. 그 사람이 그랬데. 꿈은 의식의 검열이 약해지는 시간이라고. 짐작도 못 할 무의식의 꿈틀거림이 투사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렇다면 약해진 검열 과정 안에서 명징한 의식을 갖은 사람은 무의식도 총천연색으로 직시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문을 열었어.’

물론 ‘문을 연다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지. 좀 클리셰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그것 밖에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더라구. 그 곳은 아마 사월이나 오월쯤이 된, 숲 속의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가였던 것 같아. 문득 나는 이것이 꿈인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되자마자 초록 잎들에 반사된 녹색광이 넘실거리는 창문 맞은편 벽에 문이 생긴거지.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 왜냐하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나의 내부와 외부의 적극적인 모순성 같은게 느껴지질 않았거든. 이건 꿈이니까, 탁자며 집이며 바람이나 햇빛, 이 세계 전체가 나의 산물인거야.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실감해. 순간적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는게 가능하다면 그게 꼭 이런 기분일꺼야.

미리 짜여져서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갔어. 그리고 힘주어 문고리를 돌렸지. 빛, 그리고 빛, 그런데 빛, 그러나 빛, 그래서 빛. 초신성이 폭발하는 순간에 바로 그 앞에 있다면 태양의 백만배나 되는 빛을 볼 수 있데. 그런데 눈부시지가 않아.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다음이 정말 중요한 대목인데 말이지.

그런 굉장한 경험들을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니까 너와 무척 이야기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밖엘 나갔더니 이미 겨울이더라. 하늘이 파랬어. 공기는 시려워. 너와 교감하고 싶어. 보고 싶어.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주소는 불명. 안녕, 와일드 오키드. 코퍼스 크리스티 캐롤도 네게 안부를 전해달래.

그럼.
이만 총총.

말싸움

A와 B가 C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지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본 적이 별로 없으므로, 이 경우 ‘토론’을 ‘말싸움’으로 바꿔 읽어도 뜻은 통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이를테면 올바른 스승 밑에서 정순한 내공을 쌓지 못하고 여기저기 싸움판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터득한 몇가지 잡기로 살아 온 사람들이 쓰는 비겁한 수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장님 따귀 때리기’ 라고 (내가 이름 붙인) 한다.

자, 말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일단 잘 들어야 한다. 그는 대부분 상대방이 한 말을 연역하고 덧붙이고 개작해서 새로운 논지를 만들어낸다. 즉, 나는 ‘개고기 도축의 비인간성과 유통 과정의 비위생성’을 이야기 하는데, 상대방은 이것을 ‘개고기 반대론자 -> 친 브리짓트 바르도파 -> 반한파 -> 매국노’ 로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그가 상대하는 것은 ‘한민족의 전통성을 부정하는 비열한 매국노의 논리’ 가 되고, 상대방을 논박하여 무너뜨리는 것은 ‘시대가 그에게 내린 역사적 사명’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민주 애국 시민들에게 이 존엄한 십자군 전쟁에 동참하기를 선동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데 조중동을 따를 만 한 곳은 없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24265

만화영화 ‘인크레디블 맨’에서 대체 뭘 읽어냈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이것은 그들의 흔적 가운데 빼어난 수작이다. 기자는 처음부터 ‘좌파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반민족적 사학법과 언론법 개정’ 을 까기 위해 인크레디블 맨을 개작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내가 사회에 공헌한게 얼만데!’ 하는 소외된 초인가족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들은 한번 더 논지를 꼬기 시작한다. 사학/언론법의 개정이 주는 피해를 기층의 피해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년에 돈 백억 이상 버는 사람들은 누진세를 적용해서 소득의 7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고 하면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일년 소득의 7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게 생겼습니다! 이건 빨갱이가 국정을 장악한 결과입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이번 대선에서 빨갱이를 몰아내야 합니다!’ 하는 격이다. 그리고 그 뒤에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작게 ‘단, 여러분이 100억 이상을 벌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 적는데, 이건 잘 안보인다.

아무튼 수많은 장님 낭인무사들 사이에서 따귀를 맞지 않으려면, 꾸준히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협잡을 깨닫는 것이다. 고작 저런 수법 몇가지로 배운 척, 고매한 척 하는구나 하면서 콧방귀를 뀌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말싸움을 잘 못한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나날이 근검착실하게 고민하는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영등포

돈이 다 떨어졌다. 아니 조금 남아 있는데, 다음 달 공과금이며 나갈 돈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하던 차였다. 나는 신기하게 내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한 1년을 붓고 있던 보험을 깰 생각을 했다. 이자도 붙지 않는 삼년짜리 환급보험을 왜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개나), 아무튼 이 상황으로 봐서는 삼년이 지나기 전에 내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한 탕 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묵묵히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줘 잘 해 봤자 본전치기라 큰 맘 먹고 보험을 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 보험은, 기억하기로 내가 한 때 돈을 조금 벌때, 어머니 교회 아시는 분이 보험설계일을 시작하시면서 실적을 내지 못해 하는걸 두고 강제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온라인으로는 해약이 안된다고 해서 영등포 고객센터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고, 어제 눈이 내렸다는데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객센터에는 온갖 고객의 수발을 다 드느라 정신이 없는 센터직원이 하나 앉아 있었다. 먼저 응대하던 사람이 있어 나는 쇼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왼쪽에서는 틀어 놓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른쪽에서는 뭔가 상담하느라 이상한 보험용어들이 쏟아졌다.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한쪽 테이블에 놓인 고객용 커피를 타서 차근차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삶이 더 모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낱말로 형용 불가능한 병과 만나면 그저 죽는 것이 ‘네 팔자’가 되어버리던 (돼지라도 한 마리 치던 집이라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해봤겠지만)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저축하는 일은 상상 밖에 존재했을 것 같다. 아니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저축하게 될 오늘 일용할 양식은 곧 오늘의 배고픔과 같은 말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괴질’은 백혈병과 암과 심근경색과 고혈압과 동맥경화라는 사회적 교양언어로 바뀌었고, 자칫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거나 지하철에 치이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이 곳의 불안을 저 곳으로 퍼다 나르고 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구체화 되는 미래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더 심란한 미래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미래를 더 세세히 구분해서 각각의 상황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웃소싱해서 매달 구천구백원으로 안심하는 ‘베스트자녀사랑보험’같은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월 구천구백원이면 싸지 않나요? 이만큼 생각하니까 고객센터 복도에 커다랗게 붙어 있던 보험설계사의 월 실적표가 이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투신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불안을 돈으로 처방하는 것, 키에르케고르 형님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아무튼 나는 영등포로 나갔던 길만큼을 되밟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크릴 창문이 온실처럼 열을 가두어 나른한 봄날 같았다. 나는 레드 제플린의 Ten years gone을 계속 반복해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날아가는 철새였다.

일기

낮에 세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몇년 전에 잠시 필요해서 신고했던 회사 믹스넛의 세무내역이 몇년째 전혀 없다고, 당연히 없지 일을 한게 없는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앞으로도 계속 가휴업 상태라면 폐업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안그래도 나는 법과 관련된 일들에 매우 취약하고 두려워서, 폐업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중이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핸드폰 노이즈가 지나가고 나서 그는 직권폐업을 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벌써 꽤 오랫동안 밖엘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예를 들면 담배를 사러 나가곤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아니면 드문드문 약속이 생겨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자의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새 이 콘크리트 격벽이 매우 친근히 느껴졌다. 대신에 바깥은 매우 낯설다. 센티맨털하게, 때늦은 가슴앓이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요즘 나는 번뜩이는 자기파괴, 기만의 욕구가 강하게 든다. 아마도 내 추잡한 인간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히 나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면 또 얼마나 나는 추잡한 것인가. 본능밖에 남지 않은 작은 생물처럼 꾸물꾸물 연명을 위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는, 또 나는 얼마나 저열한 것인가. 방황하는 자의 正義는 언제나 나락임을 판결함.

올름을 추억한다. 수억년 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다는 희귀한 양서생물. 기온의 변화도, 빛도, 천적도 없는 어두 컴컴한 동굴 안에서 극소량의 미생물로만 생존하는 생물. 먹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 어느 연구가가 올름을 채집해 통 안에 물과 함께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한 것을 깜빡 잊고 12년간이나 지내다가, 그 후의 어느 날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느슨히 살아 있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부터 ‘그들은 멸종 대신 망각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 평을 읽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게 서글프다. 나도 죽음 대신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냉장고에서 12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말고.

ETQW(Enemy Territory – Quake Wars) Demo Valley Map 캠핑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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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료 전략 FPS 게임이었던 Enemy Territory(이하 ET)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다. FPS라는게 누가 더 잘 움직이고 더 잘 쏴맞추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긴 하지만 (난 이런 게임을 잘 못한다. 적이 느닷없이 앞에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총을 쏘질 못하기 때문에..), 유독 내가 이 게임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1. 무료였고 2. 협동을 통한 전략적 공략 없이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선 람보처럼 혼자서 적진을 쓸고 다니는 것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오직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전투만이 필요할 뿐이다. 고장난 탱크를 고쳐야 하고, 이 탱크를 에스코트해서 적진 깊숙히 침투해야 하며, 곳곳에 진지를 만들어 점령한 지역을 방어해야한다. 혼자서 열심히 탱크를 고쳐도 옆에서 엄호해주는 사람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아무튼 그런 게임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이 ET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길래 데모버젼을 다운받아 플레이 해봤다. 기본적인 시스템들은 모두 동일하지만, 전작인 ET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었다면, ETQW는 외계인인 스트로그 (Strogg) 가 지구 (GDF) 를 침공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근미래적 배경은 유명한 게임인 Quake에 근거한다고 한다. (Quake를 안해봐서 잘 모름.) 일단 데모버젼이라 플레이 가능한 지역은Valley Map 밖에 없으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 Strogg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는 느낌이다. 안면부터 먹어주고 들어가니, 가뜩이나 새가슴인 나는 이들과 마주치면 말 그대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또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희안한 무기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Strogg로 플레이해보면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

예전 ET 시절부터 근접전에 약한 이유로 주로 플레이했던 병과는 코옵이었다. (Covert Ops, ET류 게임 내에서 선택 가능한 병과 가운데 하나. 주로 원거리 저격, 침투, 교란 등을 담당함.) 내게는 어느 정도 관음증세가 있는 것 같다. 그마저도 실력이 미천해 제대로 맞추질 못하니 팀에 폐만 끼치는 신세지만. 그래도 원거리 저격이란게 꼭 적을 사살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전장을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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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y Map
– 맵 내용 : 스트로그가 어디더라 미국 서부 어느 계곡에 ‘오염기계’를 설치해 지역 주민을 좀비로 만들려 하고 있다. GDF는 이를 저지해야 한다. (스트로그 플레이어라면 GDF가 ‘오염기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GDF의 첫번째 리스폰 지역은 맵의 우측 하단이며, 스트로그라면 2번 포인트 위치쯤 되는 터널 안이 첫번째 리스폰 지역이다. GDF가 진영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서 만나는 첫번째 다리는 무너져있다. 엔지니어는 빨리 이 다리를 복구해야 하고, 스트로그는 복구를 막아야 한다. 바로 이 무너진 다리가 첫번째 전장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폰 지역으로부터 전장까지 스트로그의 거리가 짧으므로 GDF는 공략에 애를 먹는다. 다른 병과는 잘 모르니까 코옵을 위주로 설명하겠다. 어차피 GDF 측에서 본 적절한 캠핑 포인트 (스나이핑 하는 것을 캠핑이라고 한다.) 를 소개하는게 목적이었으니까.

1번 포인트 : 일단 시작하면 바로 진영 뒷문을 통해 1번 포인트로 이동한다. 탈 것이 남는다면 탈 것을 타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게 좋다. 그리고 만약에 탈 것을 타고 이동했다면 반드시 1번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탈 것을 호수 속에 쳐박는게 좋다. 스트로그 플레이어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훤히 보이는 탈 것이 호수 건너편에 있는 것을 두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1번 포인트야 말로 첫 전장을 최대한 신속히 끝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인데, 왜냐하면 이곳은 1. 평평한 지형이라 포복 자세에서도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고 2. 노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사계가 바로 첫 전장의 스트로그 플레이어들의 주 진지의 측면이며 3. 낮은 풀들이 우거져서 포복하면 이쪽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코옵은 화력 지원 장비나 방어 장비들을 설치하려는 엔지니어를 최대한 빠르게 사살해야 한다. 시간이 남으면 가끔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옥상의 적 스나이퍼나 멍하니 서 있는 더미 플레이어들을 잡아준다. 잘 진행되어서 다리가 복구되었다면 MCP (이동형 명령소) 가 안전하게 다리를 건널때까지 사계 방향을 계속 주시하면서 혹시나 적의 저항이 없는지 살핀다. MCP가 터널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잽싸게 2번 포인트로 이동.

2번 포인트 : 터널 입구의 건물 뒷편에는 산등성으로 갈 수 있는 샛길이 있다. 점프슈트가 없는 GDF가 올라 갈 수 있는 최대 높이의 지역이다. 일단 2번 포인트는 좋은 스나이핑 장소가 가져야 하는 수직적으로 높은 지대넓은 시야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은/엄폐에 매우 취약하다. 여기서 몇 번 총을 쏘고 나서 바로 이동하지 않으면, 유능한 적 스나이퍼가 반드시 당신을 노리게 된다. 또 점프슈트를 입은 스트로그 플레이어나 비행기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세명을 사살했다면 바로 3번 포인트로 이동한다.

3번 포인트 : 3번 포인트도 1번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경험상 이 곳에서 적에 의해 당한 적은 몇 번 없다. 왜냐하면 수직적으로 매우 높은 지역적 특징 때문에 지상에서는 저격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MCP를 막으려는 스트로그 플레이어들과 1번 포인트와 같이 화력 지원 장비나 방어 장비를 설치/수리하려는 적 엔지니어, 필옵들을 잡아준다. 만약 여기서 혹시나 사살당했다면 몇 번 더 같은 장소에서 스나이핑을 시도하다가 MCP가 적 진영 입구에 다다르면 (4번 포인트의 사계 방향) 주저없이 4번 포인트로 향한다.

4번 포인트 : 4번 포인트부터 7번 포인트까지는 사실상 좋은 장소는 아니다. (수직적으로 높지도 않고, 시야도 좁으며, 무엇보다 은/엄폐가 안된다.) 다만 이미 전장의 중심이 적 진영에 도달했다면, 그 근처 외에는 저격할 마땅한 장소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장소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4번 포인트는 건물 안 2층 계단 부근이다. 반드시 포복한 상태로 발코니로 나가서 적 진영 입구쪽 방향의 적들을 노린다.

5번 포인트 : 4번 포인트에 도달한 시점으로부터 MCP가 적 진영의 목표 장소에 도달해 SSM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4, 5, 6, 7번 포인트를 오가며 적을 막으면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상 이 시기에 코옵이 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적 장비들을 해킹해서 disable 상태로 만들 수도 있지만,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언제 가만히 서서 그짓을 할까.) 차라리 이때엔 MCP를 수리하는 엔지니어를 보호하는게 가장 중요하므로, 막강한 화력의 병과를 선택해 화력 지원을 맡거나, 엔지니어를 치료하거나 하는 것이 좋다.

6번 포인트 : 6번 포인트는 적 리스폰 지역 바로 뒷편이다. 좀 어이없는 장소이긴 하다. 그래도 시도하는데 의의를 둔다면, 막 리스폰한 스트로그 플레이어 몇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반격당하긴 하겠지만.

7번 포인트 : 여기도 사실은 말도 안되는 장소. 그래도 혹시나 눈 먼 플레이어라도 걸리면 저격이 가능하긴 하다.

8번 포인트 : SSM이 발사되고 나면 이제 전장은 적의 최후의 보루로 이동한다. 아마도 이 지역의 전투는 Valley 맵 가운데서 가장 치열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리스폰 지역인 7번 포인트 근처에서 북쪽으로 크게 돌아 들어가면 별다른 적의 저항 없이 8번 포인트로 이동할 수 있다. 8번 포인트는 급수탑 옥상인데, 전장의 중심 근처이면서도 적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적 스나이퍼가 이미 나를 노리고 있다면 GG) 여기서 한참 저격하다가 사살당하면 주저하지 말고 9번 10번 포인트로 이동하자.

9번/10번 포인트 : 8번 포인트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산등성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 9번 10번도 수직적으로 높고 시야가 넓어서 저격하기 좋은 장소이다. 다만 적 스나이퍼가 이미 점프슈트를 타고 같은 곳에서 대기중인 경우가 많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좋은 캠핑 포인트가 가지는 요건은

1. 수직적으로 높은 곳일 것
2. 시야가 넓을 것
3. 은/엄폐가 잘 될 것

이 세가지이므로, 여기에 부합하는 장소라면 어디서나 캠핑이 가능하다. 다만 같은 맵을 수없이 반복해 온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에 왠만한 포인트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보는게 좋다.

tom mcrae 첫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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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mcrae의 tour 일정을 업데이트하는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그가 곧 유럽투어를 종료하고 한국과 일본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아..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같이 가실 분!!

국문과 지훈이형

내가 지금도 드문드문 지훈이형을 기억하는 건 우리 둘의 사이가 긴밀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5년 이상, 우리는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너무 그 사람이 그리워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가끔 그가 트럭의 짐칸에 앉아서 발악하며 부르던 자두의 ‘대화가 필요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지훈이형이 떠오르는 것이다.

02년도 여름방학, 철학과와 국문과, 그리고 중앙대 몇 명의 친구들은 전남 영광으로 환경현장활동을 떠났다. 환경현장활동이란 타성화되던 농민연대활동(농활, 농촌봉사활동이 아님)의 대안으로,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문제를 통해… 뭐 그런 내용인데, 그 사안적 중요성과 대안적 실천방안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층 활동세력의 붕괴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하면서 검색해보니 여전히 환경현장활동은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뭐가 잘 안됐던 환활이었다. 기둥적인 역할을 하던 고학번이 모두 사라진, 그래서 스스로 기둥이 되어야 할 우리들 조차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전남 영광의 지역적 특성(핵발전소와 폐기물 매립장 등) 때문에 거기엔 수많은 이권들이 개입하고 있었고, 사실 반대의 깃발을 드높이며 내려갔던 우리들, 아니 나조차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때문에 주된 활동들은 기존 농활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답답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어두워지는 저녁 여덟시만 되면 씻고, 밥 먹고, 불끄고 자려고 준비하는 고단한 농가에 어떻게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 그들을 깨워서 핵발전소, 폐기물 매립장의 부당함에 대해서 강의할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지역농민들과 말 한마디라도 붙이려면 무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물론 그건 절대 고까운 일이 아니었다. 가보면 안다, 농촌에 가보면… 저문 강에 삽을 씻는다는, 정희성 시인의 그 시가 뭘 의미하는지, 법 보다 무서운건 밥이라는걸, 새끼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농촌의 경쟁력 강화, 뭐 이런 소리는 씨알도 안먹힌다. 대체 육칠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남지 않은 그 곳에 강화할 경쟁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수박을 수확하고, 담배밭에서, 고추밭에서 묵묵히 일을 거드는 것 외에는…

아무튼 그런 날들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상황버섯을 재배중이라던데, 자기 일 좀 도와달라고 은근슬쩍 말을 건내는데, 당신보다 훨씬 나이 드신 어른들 밭도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도와드리지 못하는데, 생존이 아닌 치부를 위한 일에 손을 빌려 줄 수는 없다고 말하려는데, 또 우리는 가슴이 작아져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나올까 싶어, 그럼 오전만 도와드릴께요, 하고 인력시장에서 팔리는 사람들처럼 트럭에 짐처럼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지훈이형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노래를 불렀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할 말 있으면 터 놓고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