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꽁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 동사무소 일을 보러 나간 김에 슈퍼에 들렀다. 꽁치 통조림이라고 들고 온 것이 알고 보니 고등어 통조림이었고, 다시 꽁치 통조림으로 바꿔왔는데 ‘꽁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되는 것은 오뚜기에서 만든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꽁치 통조림 하면 ‘펭귄’에서 만든게 제일 아니었나? 아무튼. 집에 있는 야채를 생각하니 양파는 조금 있었고, 파가 없어서 파 한 단을 더 샀다.
조리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요리는 각 재료들의 조리 원리와 맛에 대한 ‘상상력’이 전부일 뿐, 이라는 평소 지론대로 조리법을 치우고 혼자서 만들어 보기로 한다.
우리집 김치찌개의 기본 조리 과정은 ‘김치를 먼저 볶고 나중에 맹물을 붓는다.’ 인데, 이번엔 멸치 육수를 낸 것으로 먼저 베이스를 만들고 재료는 육수가 준비된 후에 넣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만든다는 것만 인터넷에서 참고했다.) 그리고 약간의 마법을 부렸다. 된장을 넣어보면 어떨까? 맛을 상상해보자. 된장은 일단 맵고 짜기 보다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거기다 단순한 김치찌개가 아닌 ‘꽁치’가 주가 되는 김치찌개 이므로 된장이 꽁치 특유의 생선비린내를 없애 줄 것이다. (이건 아마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마찬가지로 효과를 낼 것이다.) 그래서 멸치 + 다시마 육수에 된장을 조금 풀었다. 너무 많이 풀면 된장찌개가 될 것이므로 그냥 맛만 나는 정도로 넣어주었다.
김치는 먹다가 남긴, 냉장고에서 폭 익은 신김치를 이용했다. 우리집은 김치를 꺼내 먹다가 김치에서 신 맛이 나기 시작하면 안먹고 그냥 놔둔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리고 또 새로 김치를 꺼낸다. 그래서 신김치가 꽤 많다. 이 신김치를 물에 약간 씻어서 양념을 덜어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둔다. 양파는 한 개 반 정도를 썰어둔다. 양파는 정말 놀라운 야채다. 나는 양파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무엇에든지 양파를 넣으면, 그 야채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단맛이 요리의 풍미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파 한 줄기 정도를 썰고, 마늘 다진 것도 조금 준비해 둔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멸치를 꺼내고, 다시마는 잘개 썰어서 다시 육수에 넣는다. 그리고 김치를 넣고 꽁치를 한 캔 그대로 다 넣었다. (꽁치 캔의 국물은 버린다.) 여기서 양념이 중요한데, 나는 일단 고춧가루를 한 큰 술 넣고 소고기 다시다를 조금, 그리고 우리집 최고의 조미료인 진짜 천일염을 한 두줌 넣어주었다. 정말 안타까운건 이 아름다운 소금이 이제는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진짜 천일염에 맛을 들이면 대기업에서 만든 소금 따위는 돌아보기도 싫어진다. 아.. 그 달콤한 짠맛이여!
그리고 다시 한소끔 끓여낸 다음에 마늘 다진 것 조금과 양파, 파를 넣고 15분에서 20분간 더 끓여준다.
나는 더 이상 맛을 보지 않아도 이 꽁치 김치찌개는 최고라는 것을 순간 직감했다. 이건 중독성 마약과 같은 매력을 무섭게 발산하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끓여 냈는데, 그 날 나와 아부지는 둘이서 절반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