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돈이 다 떨어졌다. 아니 조금 남아 있는데, 다음 달 공과금이며 나갈 돈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하던 차였다. 나는 신기하게 내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한 1년을 붓고 있던 보험을 깰 생각을 했다. 이자도 붙지 않는 삼년짜리 환급보험을 왜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개나), 아무튼 이 상황으로 봐서는 삼년이 지나기 전에 내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한 탕 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묵묵히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줘 잘 해 봤자 본전치기라 큰 맘 먹고 보험을 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 보험은, 기억하기로 내가 한 때 돈을 조금 벌때, 어머니 교회 아시는 분이 보험설계일을 시작하시면서 실적을 내지 못해 하는걸 두고 강제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온라인으로는 해약이 안된다고 해서 영등포 고객센터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고, 어제 눈이 내렸다는데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객센터에는 온갖 고객의 수발을 다 드느라 정신이 없는 센터직원이 하나 앉아 있었다. 먼저 응대하던 사람이 있어 나는 쇼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왼쪽에서는 틀어 놓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른쪽에서는 뭔가 상담하느라 이상한 보험용어들이 쏟아졌다.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한쪽 테이블에 놓인 고객용 커피를 타서 차근차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삶이 더 모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낱말로 형용 불가능한 병과 만나면 그저 죽는 것이 ‘네 팔자’가 되어버리던 (돼지라도 한 마리 치던 집이라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해봤겠지만)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저축하는 일은 상상 밖에 존재했을 것 같다. 아니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저축하게 될 오늘 일용할 양식은 곧 오늘의 배고픔과 같은 말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괴질’은 백혈병과 암과 심근경색과 고혈압과 동맥경화라는 사회적 교양언어로 바뀌었고, 자칫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거나 지하철에 치이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이 곳의 불안을 저 곳으로 퍼다 나르고 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구체화 되는 미래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더 심란한 미래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미래를 더 세세히 구분해서 각각의 상황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웃소싱해서 매달 구천구백원으로 안심하는 ‘베스트자녀사랑보험’같은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월 구천구백원이면 싸지 않나요? 이만큼 생각하니까 고객센터 복도에 커다랗게 붙어 있던 보험설계사의 월 실적표가 이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투신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불안을 돈으로 처방하는 것, 키에르케고르 형님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아무튼 나는 영등포로 나갔던 길만큼을 되밟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크릴 창문이 온실처럼 열을 가두어 나른한 봄날 같았다. 나는 레드 제플린의 Ten years gone을 계속 반복해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날아가는 철새였다.

일기

낮에 세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몇년 전에 잠시 필요해서 신고했던 회사 믹스넛의 세무내역이 몇년째 전혀 없다고, 당연히 없지 일을 한게 없는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앞으로도 계속 가휴업 상태라면 폐업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안그래도 나는 법과 관련된 일들에 매우 취약하고 두려워서, 폐업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중이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핸드폰 노이즈가 지나가고 나서 그는 직권폐업을 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벌써 꽤 오랫동안 밖엘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예를 들면 담배를 사러 나가곤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아니면 드문드문 약속이 생겨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자의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새 이 콘크리트 격벽이 매우 친근히 느껴졌다. 대신에 바깥은 매우 낯설다. 센티맨털하게, 때늦은 가슴앓이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요즘 나는 번뜩이는 자기파괴, 기만의 욕구가 강하게 든다. 아마도 내 추잡한 인간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히 나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면 또 얼마나 나는 추잡한 것인가. 본능밖에 남지 않은 작은 생물처럼 꾸물꾸물 연명을 위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는, 또 나는 얼마나 저열한 것인가. 방황하는 자의 正義는 언제나 나락임을 판결함.

올름을 추억한다. 수억년 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다는 희귀한 양서생물. 기온의 변화도, 빛도, 천적도 없는 어두 컴컴한 동굴 안에서 극소량의 미생물로만 생존하는 생물. 먹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 어느 연구가가 올름을 채집해 통 안에 물과 함께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한 것을 깜빡 잊고 12년간이나 지내다가, 그 후의 어느 날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느슨히 살아 있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부터 ‘그들은 멸종 대신 망각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 평을 읽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게 서글프다. 나도 죽음 대신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냉장고에서 12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말고.

ETQW(Enemy Territory – Quake Wars) Demo Valley Map 캠핑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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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료 전략 FPS 게임이었던 Enemy Territory(이하 ET)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다. FPS라는게 누가 더 잘 움직이고 더 잘 쏴맞추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긴 하지만 (난 이런 게임을 잘 못한다. 적이 느닷없이 앞에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총을 쏘질 못하기 때문에..), 유독 내가 이 게임을 열심히 했던 이유는 1. 무료였고 2. 협동을 통한 전략적 공략 없이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선 람보처럼 혼자서 적진을 쓸고 다니는 것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오직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전투만이 필요할 뿐이다. 고장난 탱크를 고쳐야 하고, 이 탱크를 에스코트해서 적진 깊숙히 침투해야 하며, 곳곳에 진지를 만들어 점령한 지역을 방어해야한다. 혼자서 열심히 탱크를 고쳐도 옆에서 엄호해주는 사람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아무튼 그런 게임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이 ET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게임이 나왔다길래 데모버젼을 다운받아 플레이 해봤다. 기본적인 시스템들은 모두 동일하지만, 전작인 ET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었다면, ETQW는 외계인인 스트로그 (Strogg) 가 지구 (GDF) 를 침공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근미래적 배경은 유명한 게임인 Quake에 근거한다고 한다. (Quake를 안해봐서 잘 모름.) 일단 데모버젼이라 플레이 가능한 지역은Valley Map 밖에 없으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 Strogg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는 느낌이다. 안면부터 먹어주고 들어가니, 가뜩이나 새가슴인 나는 이들과 마주치면 말 그대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또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희안한 무기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Strogg로 플레이해보면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

예전 ET 시절부터 근접전에 약한 이유로 주로 플레이했던 병과는 코옵이었다. (Covert Ops, ET류 게임 내에서 선택 가능한 병과 가운데 하나. 주로 원거리 저격, 침투, 교란 등을 담당함.) 내게는 어느 정도 관음증세가 있는 것 같다. 그마저도 실력이 미천해 제대로 맞추질 못하니 팀에 폐만 끼치는 신세지만. 그래도 원거리 저격이란게 꼭 적을 사살하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전장을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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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y Map
– 맵 내용 : 스트로그가 어디더라 미국 서부 어느 계곡에 ‘오염기계’를 설치해 지역 주민을 좀비로 만들려 하고 있다. GDF는 이를 저지해야 한다. (스트로그 플레이어라면 GDF가 ‘오염기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GDF의 첫번째 리스폰 지역은 맵의 우측 하단이며, 스트로그라면 2번 포인트 위치쯤 되는 터널 안이 첫번째 리스폰 지역이다. GDF가 진영을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서 만나는 첫번째 다리는 무너져있다. 엔지니어는 빨리 이 다리를 복구해야 하고, 스트로그는 복구를 막아야 한다. 바로 이 무너진 다리가 첫번째 전장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폰 지역으로부터 전장까지 스트로그의 거리가 짧으므로 GDF는 공략에 애를 먹는다. 다른 병과는 잘 모르니까 코옵을 위주로 설명하겠다. 어차피 GDF 측에서 본 적절한 캠핑 포인트 (스나이핑 하는 것을 캠핑이라고 한다.) 를 소개하는게 목적이었으니까.

1번 포인트 : 일단 시작하면 바로 진영 뒷문을 통해 1번 포인트로 이동한다. 탈 것이 남는다면 탈 것을 타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게 좋다. 그리고 만약에 탈 것을 타고 이동했다면 반드시 1번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탈 것을 호수 속에 쳐박는게 좋다. 스트로그 플레이어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훤히 보이는 탈 것이 호수 건너편에 있는 것을 두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1번 포인트야 말로 첫 전장을 최대한 신속히 끝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인데, 왜냐하면 이곳은 1. 평평한 지형이라 포복 자세에서도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고 2. 노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사계가 바로 첫 전장의 스트로그 플레이어들의 주 진지의 측면이며 3. 낮은 풀들이 우거져서 포복하면 이쪽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코옵은 화력 지원 장비나 방어 장비들을 설치하려는 엔지니어를 최대한 빠르게 사살해야 한다. 시간이 남으면 가끔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옥상의 적 스나이퍼나 멍하니 서 있는 더미 플레이어들을 잡아준다. 잘 진행되어서 다리가 복구되었다면 MCP (이동형 명령소) 가 안전하게 다리를 건널때까지 사계 방향을 계속 주시하면서 혹시나 적의 저항이 없는지 살핀다. MCP가 터널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잽싸게 2번 포인트로 이동.

2번 포인트 : 터널 입구의 건물 뒷편에는 산등성으로 갈 수 있는 샛길이 있다. 점프슈트가 없는 GDF가 올라 갈 수 있는 최대 높이의 지역이다. 일단 2번 포인트는 좋은 스나이핑 장소가 가져야 하는 수직적으로 높은 지대넓은 시야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은/엄폐에 매우 취약하다. 여기서 몇 번 총을 쏘고 나서 바로 이동하지 않으면, 유능한 적 스나이퍼가 반드시 당신을 노리게 된다. 또 점프슈트를 입은 스트로그 플레이어나 비행기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세명을 사살했다면 바로 3번 포인트로 이동한다.

3번 포인트 : 3번 포인트도 1번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경험상 이 곳에서 적에 의해 당한 적은 몇 번 없다. 왜냐하면 수직적으로 매우 높은 지역적 특징 때문에 지상에서는 저격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MCP를 막으려는 스트로그 플레이어들과 1번 포인트와 같이 화력 지원 장비나 방어 장비를 설치/수리하려는 적 엔지니어, 필옵들을 잡아준다. 만약 여기서 혹시나 사살당했다면 몇 번 더 같은 장소에서 스나이핑을 시도하다가 MCP가 적 진영 입구에 다다르면 (4번 포인트의 사계 방향) 주저없이 4번 포인트로 향한다.

4번 포인트 : 4번 포인트부터 7번 포인트까지는 사실상 좋은 장소는 아니다. (수직적으로 높지도 않고, 시야도 좁으며, 무엇보다 은/엄폐가 안된다.) 다만 이미 전장의 중심이 적 진영에 도달했다면, 그 근처 외에는 저격할 마땅한 장소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장소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4번 포인트는 건물 안 2층 계단 부근이다. 반드시 포복한 상태로 발코니로 나가서 적 진영 입구쪽 방향의 적들을 노린다.

5번 포인트 : 4번 포인트에 도달한 시점으로부터 MCP가 적 진영의 목표 장소에 도달해 SSM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4, 5, 6, 7번 포인트를 오가며 적을 막으면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상 이 시기에 코옵이 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적 장비들을 해킹해서 disable 상태로 만들 수도 있지만,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언제 가만히 서서 그짓을 할까.) 차라리 이때엔 MCP를 수리하는 엔지니어를 보호하는게 가장 중요하므로, 막강한 화력의 병과를 선택해 화력 지원을 맡거나, 엔지니어를 치료하거나 하는 것이 좋다.

6번 포인트 : 6번 포인트는 적 리스폰 지역 바로 뒷편이다. 좀 어이없는 장소이긴 하다. 그래도 시도하는데 의의를 둔다면, 막 리스폰한 스트로그 플레이어 몇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반격당하긴 하겠지만.

7번 포인트 : 여기도 사실은 말도 안되는 장소. 그래도 혹시나 눈 먼 플레이어라도 걸리면 저격이 가능하긴 하다.

8번 포인트 : SSM이 발사되고 나면 이제 전장은 적의 최후의 보루로 이동한다. 아마도 이 지역의 전투는 Valley 맵 가운데서 가장 치열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리스폰 지역인 7번 포인트 근처에서 북쪽으로 크게 돌아 들어가면 별다른 적의 저항 없이 8번 포인트로 이동할 수 있다. 8번 포인트는 급수탑 옥상인데, 전장의 중심 근처이면서도 적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적 스나이퍼가 이미 나를 노리고 있다면 GG) 여기서 한참 저격하다가 사살당하면 주저하지 말고 9번 10번 포인트로 이동하자.

9번/10번 포인트 : 8번 포인트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산등성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 9번 10번도 수직적으로 높고 시야가 넓어서 저격하기 좋은 장소이다. 다만 적 스나이퍼가 이미 점프슈트를 타고 같은 곳에서 대기중인 경우가 많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좋은 캠핑 포인트가 가지는 요건은

1. 수직적으로 높은 곳일 것
2. 시야가 넓을 것
3. 은/엄폐가 잘 될 것

이 세가지이므로, 여기에 부합하는 장소라면 어디서나 캠핑이 가능하다. 다만 같은 맵을 수없이 반복해 온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에 왠만한 포인트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보는게 좋다.

tom mcrae 첫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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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mcrae의 tour 일정을 업데이트하는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그가 곧 유럽투어를 종료하고 한국과 일본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아..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같이 가실 분!!

국문과 지훈이형

내가 지금도 드문드문 지훈이형을 기억하는 건 우리 둘의 사이가 긴밀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5년 이상, 우리는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너무 그 사람이 그리워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가끔 그가 트럭의 짐칸에 앉아서 발악하며 부르던 자두의 ‘대화가 필요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지훈이형이 떠오르는 것이다.

02년도 여름방학, 철학과와 국문과, 그리고 중앙대 몇 명의 친구들은 전남 영광으로 환경현장활동을 떠났다. 환경현장활동이란 타성화되던 농민연대활동(농활, 농촌봉사활동이 아님)의 대안으로,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문제를 통해… 뭐 그런 내용인데, 그 사안적 중요성과 대안적 실천방안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층 활동세력의 붕괴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하면서 검색해보니 여전히 환경현장활동은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뭐가 잘 안됐던 환활이었다. 기둥적인 역할을 하던 고학번이 모두 사라진, 그래서 스스로 기둥이 되어야 할 우리들 조차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전남 영광의 지역적 특성(핵발전소와 폐기물 매립장 등) 때문에 거기엔 수많은 이권들이 개입하고 있었고, 사실 반대의 깃발을 드높이며 내려갔던 우리들, 아니 나조차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때문에 주된 활동들은 기존 농활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답답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어두워지는 저녁 여덟시만 되면 씻고, 밥 먹고, 불끄고 자려고 준비하는 고단한 농가에 어떻게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 그들을 깨워서 핵발전소, 폐기물 매립장의 부당함에 대해서 강의할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지역농민들과 말 한마디라도 붙이려면 무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물론 그건 절대 고까운 일이 아니었다. 가보면 안다, 농촌에 가보면… 저문 강에 삽을 씻는다는, 정희성 시인의 그 시가 뭘 의미하는지, 법 보다 무서운건 밥이라는걸, 새끼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농촌의 경쟁력 강화, 뭐 이런 소리는 씨알도 안먹힌다. 대체 육칠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남지 않은 그 곳에 강화할 경쟁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수박을 수확하고, 담배밭에서, 고추밭에서 묵묵히 일을 거드는 것 외에는…

아무튼 그런 날들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상황버섯을 재배중이라던데, 자기 일 좀 도와달라고 은근슬쩍 말을 건내는데, 당신보다 훨씬 나이 드신 어른들 밭도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도와드리지 못하는데, 생존이 아닌 치부를 위한 일에 손을 빌려 줄 수는 없다고 말하려는데, 또 우리는 가슴이 작아져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나올까 싶어, 그럼 오전만 도와드릴께요, 하고 인력시장에서 팔리는 사람들처럼 트럭에 짐처럼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지훈이형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노래를 불렀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할 말 있으면 터 놓고 말해 봐…

광기의 산맥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단편을 써왔다. 물론 크툴루 신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신화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된 인공적인 세계는 크툴루 신화가 처음이었다. (반지전쟁의 톨킨처럼) 그는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아이디어를 직조해 어둡고 광막하며 우주적인 공포(Cosmic Horror)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열광적인 독자들에 의해서 이 신화는 정리되어서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가 되었다.

그는 장편은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 드문 장편 가운데서도 수작이 바로 광기의 산맥이다. 광기의 산맥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유일한 장편(유일한 장편으로 알고 있다.)인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관한 오마쥬다. 남극으로 탐사를 떠난 탐험대와 그들의 눈에 펼쳐진 초고대의 거대문명. 그리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 만약 이 이야기가 매우 낯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암중으로 우리의 미디어 곳곳에 침투했다는 이야기다.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모두가 그렇듯이, 그의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하고 오래된 어두운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일부러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꼭대기 부분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마루 뒤쪽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만을 노려보았다…

중략

.. 신경 쇠약의 증세가 한 단계 더 심해진 댄포스는 침착하지 못했다. 초조한 듯 몸을 뒤채던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멀어지는 핏빛 하늘과, 이상한 모양의 동굴 입구가 나있는 산봉우리와, 사각형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는 산등성이, 거대한 성벽으로 빼곡하게 뒤덮인 구릉지대,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기이한 모양을 빚어내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중략

… 댄포스는 그토록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던 마지막 공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내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중략

… 이상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온 거석 도시나 동굴,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기이한 광기의 산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했었다. 소용돌이치는 수증기 구름 한가운데서, 고대의 존재들조차 멀리하고 두려워했던 거대한 보랏빛 산맥 너머의 끔찍한 광경을 순간적으로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도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선가 밝혔던대로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무튼 깊은 밤에 두서없이 공포영화를 보다가 문득 광기의 산맥이 영화화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펴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 하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는데, 모든 원작을 영화화 하려는 작업이 그렇듯이 과연 이 훌륭한 원작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공포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되기 쉽다. 걸작으로 남는 공포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강렬한 캐릭터가 그 중심에 있다. (프레디, 제이슨, 핀헤드… 또 뭐 있지?) 하지만 광기의 산맥의 진수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위치한 백색의 대지, 남극에 있는 것이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권말에 적힌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의 이야기를 싣고 싶은데, 타이핑으로 옮기기에 너무 길고 귀찮아서..) 여기서는 심지어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쫓기는 사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러브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면 매우 지루해 할 것이다. 결국 기예르모는 이 두 영화의 요소를 적절히 배분해야 할텐데, 과연 얼마나 양자(일반/매니아)의 사랑을 받게 될른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알 것이다.

음식만들기 – 국

국 끓이기의 핵심 – 요리를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1. 가급적 천연 조미료를 이용한다.

다시다나 감치미 대신에 건멸치, 건새우, 건표고 등등을 갈아서 사용하면 좋다. 대신에 이런 천연 조미료는 인공 조미료에 비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풍미는 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소위 ‘감칠맛’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정제/추출된 상태로 인공 조미료에 첨가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 원료는 많이 먹을 수록 뇌에 장애나 과잉행동장애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인공 조미료가 아니라, 인스턴트 식품이다. 인공 조미료는 천연 조미료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햄, 소시지, 라면, 이온음료, 과일통조림, 캐첩 등등에 들어가는 인공 조미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체는 아주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 천연 조미료로 재료를 막 바꾸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섬세한 맛들에 시간이 지날 수록 미각이 예민해져서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태양광에 과도 노출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빛이, 어두운 밤에는 보이는 것과 같다.
나는 일전에 만두국을 끓이면서 소금이나 인공 조미료를 아예 넣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대신에 건멸치로 육수를 우려내고 국이 끓던 도중에 조미료 대신으로 만두 하나를 터뜨렸다. 아… 그 풍미란! 만두소에 포함된 고기나 야채들에서 우러난 진하고 깊고 복잡한 맛이,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2. 가급적 재료를 적게 쓴다.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양 조절이다. 우리 아버지도 지금은 요리를 잘 하시지만, 처음에 요리 하실땐 무조건 많이 넣으면 맛있어지는 줄 아셨던지 그 양이 엄청났다. 조미료도 심하게 넣고, 소금도 그랬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는 적당히 넣는 것이 좋다. 아니, 적당히약간 모자란듯 한의 그 미묘한 경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음식 만화의 지존인 ‘맛의 달인’의 어떤 챕터에는 숙련된 요리사가 보이는 소금간 시범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요리사는 그냥 물을 끓이고 거기에 약간의 소금을 넣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끓인 소금물은 매우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에 소금으로 정확하게 간을 맞춘다고 해서 맛이 정말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그 챕터가 가지는 내용의 핵심은 아주 미묘한 경험으로써의 간이 있다는 것이다. 국에 들어가는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국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끓임으로써 그 맛의 정수들이 국물로 모인다. 때문에 너무 많이 넣거나 너무 적게 넣는다면 원래 기대했던 맛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자, 그런데 왜 재료는 적게 써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재료를 적게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재료를 더하면 된다. 하지만 재료를 너무 많이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물을 넣어서 간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한 간에 물을 넣으면 전혀 맛이 없다. 정확한 간을 익힐 때까지는 조금씩 재료를 더하며 간을 맞추는 것이 훨씬 낫다.

3. 재료를 넣는 순서가 있다.
카레의 재료는 보통 감자, 당근, 고기, 양파, 카레가루, 물 등이다. 자, 그럼 맛있는 카레를 만들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식재료는 각자 익는 시간이 다 다르다. 감자나 당근은 보통 두툼하게 썰고 단단하므로 쉽게 익지 않는다. 그리고 양파는 제일 빨리 익는다. 조리가 끝났을 때 모든 재료가 각자 제일 적당한 정도로 익을 수 있도록, 재료를 넣는 순서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레의 경우 감자와 당근이 제일 늦게 익기 때문에 가장 먼저 넣어 볶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익어갈 즈음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경험 뿐이다. 아니면 젓가락으로 찔러봐도 된다.) 고기를 넣고 볶는다. 그리고 뒤에 양파를 넣고 양파가 거의 다 익을 즈음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다. 즉,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 시점에서 감자, 당근, 고기, 양파는 모두 비슷하게 익어야 한다.
사실 모든 식재료가 익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수많은 요리 가운데 생겨난 경험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4. 푹 끓인다.
돼지김치찌개의 핵심은 김치의 얼큰시원한 맛과 어우러진 돼지고기의 풍미일 것이다. 고기는 보통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오지도 않는다. 김치도 그렇다. 김치는 야채로 만든 것이어서 금방 익고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올 것 같지만, 푹 익은 김치는 왠만한 시간으로는 그 본래 맛을 내어주지 않는다. 때문에 돼지김치찌개의 경우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5~6분, 길게는 10분까지 끓여야지만이 본래의 맛이 우러나게 할 수 있다.
일본의 국에는 이랄까, 진하게 우려낸 같은 것이 없다. (라멘 육수 같은 것은 제외하고) 왜냐하면 일본 국의 핵심은 각각의 식재료들이 가진 맛의 정수를 최대한 이끌어 낸 정도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라멘 국물까지 다 마시는 법이 잘 없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국의 핵심은 모든 식재료의 맛이 국물에 집중되어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은 국물을 마시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5. 상상력!
상상력은 놀라운 힘이다. 만약 우리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해물된장찌개같은 시원한 된장찌개는 영원히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력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힘이기도 하다. 매번 같은 조리법에 질렸다면,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변화를 주는 것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요즘 주력하는 분야는 만두인데, 만두를 먹다가 왜 만두는 한끼 식사로만 먹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만두를 먹거나 밥을 먹지, 만두와 밥을 같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두의 만두소는 그 맛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충분히 반찬으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만두덮밥을 만들었다. 우선 먼저 건멸치로 낸 육수로 만두를 끓인다. 물의 양은 평소보다 조금 적게 하면 된다. 그리고 소금간은 하지 않고 대신 간장과 가스오부시액(한국에는 가스오부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스오부시액을 사용했다.)으로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게 간을 한다. 그리고 나는 파를 매우 좋아하므로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4분쯤 지났을 때 파를 듬뿍 넣는다. 그리고 1분간 더 끓여준다. 다 끓였으면 만두를 건저서 밥 위에 얹는다. (한끼 식사에는 보통 4~5개가 적당하다.) 그리고 육수는 버리지 않고 절반쯤 따라 낸 뒤에, 남은 것은 또 팔팔 끓여서 약간 졸게 만든다. 졸은 육수를 만두 위에 끼얹어 주면 맛있는 만두덮밥이 완성된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이나 깨소금을 약간 넣으면 좋다.

gidon kremer & kremerata baltica

인터미션 전에 연주된 두 곡은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현대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그래도 기든 크레머니까 집중하는 척은 해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 내 앞줄에 앉아 있던 두 중년 남녀의 엿 같은 짓거리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한 것은 참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떳떳한 새끼들은 용서할 줄 모른다. 다행히 인터미션이 끝나고 그 두 남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전문 감상자도 아니고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어서, 연주가 어땠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앉았던 자리가 3층이어서 그런지 음이 매우 풍부하게 울렸다. 사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는 꽤 여러 번 갔었는데, 그때마다 한국 교향악단의 연주는 예쁘지만 너무 마른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음과 음 사이에 공간이 많은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 연주들은 모두 1층에서 들었다. 앞으로는 3층에서 들어야겠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The Cinema’란 주제로 이어진 영화음악의 연주는 그럭저럭 들을만 했다. 기든 크레머라는 연주자 자체가 워낙 개성 있고 독특한 인물이어서 그런지, 그가 만든 악단 kremerata baltica도 굉장히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이 강했다. 연주 중간마다 코믹한 상황극(?)을 연출하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다만,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연주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는 어떤 연출이나 편곡, 기교도 없이 내가 자주 들었던 그 아다지오 그대로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몇 곡을 연주했고 (가벼운 느낌의 재즈곡) 드디어 고대하던 피아졸라의 순서가 되었는데, 아… 내가 항상 녹음 된 음반만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실황의 느낌이랄까, 기든 크레머적인 무언가가 적잖이 빠진 연주가 되어버려서 약간 실망을 했다. 프로그램에 실려 있던 대로 피아졸라는 그의 ‘필살기’인데 말이다. 피곤했던걸까…

아무튼 연주가 다 끝나고 앙콜 2곡 더 하고 막이 내렸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서 몰려나와 벤츠나 그랜저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혹은 버스나 나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땀 냄새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생애 최초로 거장을 만났다는 긴장감이 단추 풀리듯이 풀려버렸다. 그리고 긴장감의 빈자리에 공허함이 몰려왔다. 아마 대부분 공연이 이렇겠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기든 크레머는 정말 훌륭한 연주가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지.

열한 시 반쯤 집 근처에 내려서 문득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고, 편의점에서 김밥 몇 개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bigger than others’ from tom mcrae’s journal

tom mcraejournal들을 뒤적이다가, 공감가는 글을 읽어서 옮겨본다.
개인으로서의 신념과 실천에 관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냥 훌훌 넘겨봐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정치에 관한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거’에 관한 – 생각은 나도 많이 공감하고 있다. 좀 더 숙성되어야 할 것 같지만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난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하고 나서 다시 읽어봐도 문장들이 잘 이어지질 않는 것 같다. 이해가 안된다 싶으면 원문을 참조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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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sed to argue with my dad about many things, but mainly about religion and politics, and the state of the world. The arguments would usually end the same way. He would pause, sigh and then say in his best vicar’s voice: ‘well what would you do in the same circumstances?’ at once both neatly ending the debate, and also challenging me to get involved, to do something. And that is how I feel about many things today, I argue, I rant, I complain – often without being fully conversant with the facts – but then I usually decide to do something.
자주 아버지와 종교나 정치, 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끝난다.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고 탄식하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넌 어떻게 할꺼니?” 아주 매끄러운 끝맺음인 동시에 나로 하여금 진짜 뭔갈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큰소리치고 불평할때마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I stopped going to church when I realised there was no God – amusing my family no end in the process. I stopped eating meat when I thought me not having a bacon sandwich would bring about compassion in world farming. I marched against every new war, I helped drink the bar dry in solidarity with whichever Turkish miners’ union I felt sympathy with at the time. I bought fair trade coffee, organic eggs and Green and Black’s chocolate.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집에는 계속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지 않는 것이 ‘세계 영농을 위한 연민(동물보호단체)’의 뜻과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시위행진에 가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터키 광부 노조의 단결을 위해서 술을 마신다. 공정 무역을 통해 거래된 커피와 유기농 달걀과 초콜렛을 산다.

None of these activities has yet to have any major impact on the world (argue all you like) and in the end the smell of bacon tempted me back into the world of the carnivorous, and anyway…. some days you just want a Starbucks. L’Oreal bought The Bodyshop (right on, Anita – I met her once, not a terribly bright woman) Nestle bought Green and Black’s, and now the chances are any single way you try to act as a ‘caring consumer’ you’re putting money in the hands of one evil empire or another. My point is, we’re all hypocrites, even if it’s unwitting.
이런 결단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직 이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베이컨의 유혹에 넘어가 육식의 세계로 다시금 되돌아 가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스타벅스도 다시 마시게 될지 모른다. 로레알이 바디샵을 점령하고 (아니타를 한 번 만난적 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네슬레는 유기농 산업을 집어 삼키고 있다. 사려깊은 소비자가 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결국은 악의 제국의 배를 불려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린 모두 위선자들이란거다.

But some days I read a paper or watch the news and I still ask myself ‘what would I do?’. Would I have invaded Iraq, I hope not. Would I be spending my country’s tax revenues on protecting opium growers in Afghanistan – nope, I’d legalise all drugs, classify them and charge a market rate, but that’s just me. Would I be partnering up with the most dangerous man in history, and by doing so undermining the position of the U.N, and making myself a pariah state and target for terrorism – again, I’d like to think not. Would I have shot a guy in his East London for home for the crime of having a beard? I’ll let you guess the answer to that one.
하지만 신문이나 티븨뉴스를 볼때면 나는 항상 자신에게 ‘내가 뭘 했어야했지?’ 하고 되묻는다. 이라크나 침공해야 했을까? 아니길 바란다. 그럼 내가 낸 세금으로 아프카니스탄의 아편 재배자들이나 보호하고 있어야 했을까? 아니다. 차라리 난 모든 약물들을 합법화 시켜서 그걸 등급별로 분류한 다음에 합당한 시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는, 뭐 그런 정도밖에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아마도 죠지 부시)과 작당하여 UN의 입지를 약화시킨 다음에, 내 자신이 테러의 목표가 되는 불쌍한 민간인들이 되는 짓을 반복해야 할까? 절대 아니다. 빵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East London에 사는 그 사람을 쏴야만 했을까? 어째야 했을지 답해보시길 바란다..

But those are all hypothetical questions, I’m not the President or the PM, or Chief of Police… so what as an individual can I do? Well, I’m not famous enough for people to pay attention to the random rants of a minor songwriter with a cult (for cult, read smalll, loyal, intelligent, often physically beautiful, with nice hair and a fragrant smelling) audience, so that just leaves my voting rights. But – and here’s a minor controversial point – in much the same way I grew out of God, I’ve grown out of my belief in democracy. There is no longer any principle at the heart of politics, and the prime motivation of every party is election, followed by four years of campaigning for re-election. We all know this. I wrote a song about it once – big whoop. Smart people vote to keep out the BNP – or other fascists – and because our grandparents fought wars so we could, and because Emeline Pankhurst threw herself under a horse. But no one votes in the belief that anything will change. Do they? We have zero choice and zero expectations. The same thing has decided elections since the first man posted the first ballot in the first ballot box: it’s the economy stupid. Offer tax cuts you’ll get in. Pursue a stable economy at the expense of developing nations and the environment, you’ll get in. We all want jobs, homes and widescreen tv’s, Preferably with ‘ambi-light’ (A bulb in it. Ambi-light. Genius.) I know I do. How else will I enjoy Rooney firing home the winner in the world cup final. But I digress.
물론 위의 질문들은 모두 거짓이다.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며, 경찰서장도 아니다… 그런 ‘개인으로서’ 나 자신은 뭘 할 수 있을까? 글쎄, 난 그다지 유명하지가 않아서 컬트적인 팬이나 갖고 있는 인기없는 싱어송라이터의 돌발적인 이런 발언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것이 나의 결정을 조금 더 유보하게 한다. 신으로부터 내 자신이 성장한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나는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정치의 핵심에는 어떠한 원칙이 없으며, 모든 정당의 핵심 동력은, 4년마다 재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이것에 관한 노래 – big whoop – 를 쓴 적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영국국민당 (BNP, British National Party) 이나 다른 파시스트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한다. 우리 조부모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Emmeline Pankhurst가 왕의 경주마(King’s horse)에 몸을 던져 죽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tom은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왕의 경주마에 의해 살해당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었던 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의 멤버인 Emily Wilding Davison였다. 구글링을 해봤는데 영국인 가운데서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이란 믿음에 투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권도 없으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첫번째 투표소에서 첫번째 사람이 투표를 함과 동시에 매번 같은 문제가 선거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세금을 인하하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국토와 환경을 개발하여 안정적인 경제를 만들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우린 모두 일자리를 원한다. 집도, 와이드스크린 티븨도 (가급적이면 지능형 조명연출 기능이 추가된 것이기를 바란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루니가 승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겨를이나 있을 것인가. 조금 이야기가 빗나갔다.

So, as ethical consumers we’re fucked. The first rule of capitalism is that money will end up in the hands of those who already have it – Nestle, l’Oreal, and even BP – the oh-so-ethical-oil company working hard to develop new eco-energy whilst destroying Alaska drilling for oil. Now that’s old school, BP. Some would call that pissing down my back and telling me it’s raining. Please take the British out of your name – I’m ashamed enough as it is. Beyond Petroleum… my big fat, hairy (actually pert and smooth) butt.
어쨌든, 윤리적 소비자로서 우리는 완전 좃같다. 자본주의의 첫번째 법칙이란 돈은 결국 자본을 소유한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이다. (네슬레, 로레알, 심지어는 영국석유 (BP, British Petroleum)까지도 자본을 소유한 자들이다. 영국석유의 경우는 자칭 ‘우리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윤리적인 석유회사에요’ 하고 광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석유 굴착을 위해 알래스카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석유가 좋았던 것도 다 옛 말이 되었다. 누군가 당신의 등에 오줌을 누면서 ‘아 비가 오네요’ 하는 격이다. 제발 그 이름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부끄러운데… 하지만 ‘석유’만 남아도.. 에이 머저리들.)

And now as voters we’re fucked. Cameron, Blair/Brown/A.N Other, Menzies Campbell… who would you vote for? Green? Good luck with that. ‘But if enough of us do, Tom, we can change the planet’. ‘What if they held a war and no one turned up maaaan?’ No. Ain’t gonna happen. Once again it’s the economy, stupid. And if they held a war (which they will do every week until the end of time – not actually that far off) the Americans will still turn up to do some ass-whooping, with the trusty British gimp at their side.
그리고 이제는 투표자로서의 우리도 완전 좃같다.  캐머런, 블레어/브라운/A.N Other, 멘지스 캠벨 (누구지 이 사람들?)… 누구를 찍을 것인가? 녹색당? 오, 당신의 투표에 행운이 있기를.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만 실천한다면요, 톰,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있을꺼에요.’, ‘만약에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요오오오?’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만약에 ‘미국인들이’ 전쟁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마 그들은 세상이 멸망 – 멸망까지 얼마 남지도 않아 보이지만 – 할때까지 매주 계속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꺼다), 같잖은 영국이 그들 편에 서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환호를 지르며 경제적인 문제들로 (석유나 각종 이권들을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Again… I hear my father’s voice…’what would you do?’… well, I won’t be voting again that’s for sure. Please don’t mistake this for cynicism, it’s not. It’s the opposite: it’s hope. I will, in my small, and very ignorable way, remove myself from the process. I will never be involved in a ‘rock-the-vote’ campaign, not that I’d get asked. Bastards. Come the next election I will hold a ‘fuck-the-vote’ rally, campaigning to have my refusal to participate in electing the next generation of murderers recognised. I want my spoilt ballot counted. If the rules of the game suck, then you can chose to not play, or you can seek to change the rules. And seeing as not playing is no longer an option, what would you do, Tom? What would you do?
다시.. 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그래, 넌 어떻게 할꺼니?’… 글쎄, 한가지 확실한건 난 투표따위는 하지 않을꺼란 사실이다. (혹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것) 이걸 냉소적인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말 반대이길 바란다.) 난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 그것들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 내 자신을 선거의 한 과정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난 이제 다시는 ‘투표합시다!!’ 따위의 캠페인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개새끼들. 다음 선거가 오면, 나는 ‘투표따위는 엿먹어라!!’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살인자들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지 말자는 것이다. 난 내가 던지는 사표(死票)도 하나의 표로 인정되기를 원한다. 선거판 자체가 좃같다면, 선거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판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것, 그것은 더 이상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꺼니, 톰? 어떻게 할꺼니…?

Clearly I had too much fair trade coffee this morning, and read about the shelling of Palestinians in Gaza. My first reaction was to want to have my records withdrawn from sale in Israel. Like anyone would notice. But then not every Israeli fires missiles into beaches, just as not every Palestinian is a terrorist. You never read about the Israeli peace movement – because no one prints those stories. It’s a fucked up situation that knee-jerk reactions won’t help. And where exactly would I sell my records if I didn’t agree with that country’s leaders? (Bless you, Belgium).
정말로 오늘 아침 나는 공정무역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폭격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내가 첫번째 반응은 이스라엘에서의 내 앨범들을 철수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해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처럼. 아마 이스라엘인들의 평화 운동에 대한 기사는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기사로 만들지 않는다. 난 내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게 엿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가 해당 국가의 수장에 반대한다고 해서 앨범을 풀지 않겠다고 하면, 대체 내 앨범들은 어디서 팔릴 것인가? (다행인줄 알아라, 벨기에)

‘But you’re a songwriter, Tom, and you shouldn’t be involved in politics’… I have a well worked out riposte to that one: fuck you. I have a right to an opinion, I have a website and I’m reasonably good with words…. I’ll say what the fuck I like, when and to whom. Notice the ‘to whom’. See?
‘하지만 당신은 그냥 노래하는 사람일 뿐이잖아요, 톰,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가져선 안되요’… 요런 말들에 대해서 나는 한마디 해줄 말이 있다, 조까. 난 내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고, 웹사이트도 있고, 합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난 언제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라고 한 것에 주목해라. 알아 듣겠냐?

Again ‘what would you do?’ Well, the best I could do was to write this.
Artists can agitate as well as soothe, I hope. Also I bought a big book on Israel, a general history of the world, and a high-powered rifle. One of those items was slightly harder to come by in Wood Green. I intend by the end of the week to have solved the problem of the Middle East – on paper at least – I’ll probably do it during half-time tomorrow. I’m not serious about the rifle, but I am serious about not voting. The world is a different, far more dangerous place to that of 1945. Democracy’s strength used to be that it evolved slowly over time, with checks and balances…. slow was good. Well, the planet’s dying – time isn’t running out, it’s already left the building and is right now in a jacuzzi, with Einstein and Darwin (my personal gods) and of course, Nina Simone – she’s there because she has the voice I always wanted, bitch.
다시 ‘넌 어떻게 할꺼니?’ 로 돌아와서.. 글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아티스트들이란 가능한 조용하게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믿고 싶다.) 또, 난 이스라엘에서 세계의 역사에 관한 책과 강력한 소총 한자루를 살 수도 있다.. 물론 이 물건들 중에 어떤건 우드 그린 (영국의 한 지명, 아마도 톰이 사는 동네인듯) 에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주말까지 동아시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글이나 쓰는 것이겠지만) 아마 내일 내내 하게 될 것 같다. 소총에 대한건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투표 거부는 진심이다. 이 세계는, 매우 위험했던 1945년 (2차 세계대전) 과는 분명 다르다. 민주주의의 힘은, 많은 교정과 균형들을 통해 서서히 발전해왔다. ‘서서히’ 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또..

So….What would you do?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Next week we’ll be asking the questions ‘Is cranberry juice the fuel of the future? Is Sigur Ros the new Enya? And why are Keane?
아마 다음주에 우리는 이런 질문들이나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딸기쥬스(cranberry juice)가 미래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나요?’, ‘Sigur Ros는 엔야의 새로운 버전인가요?’, ‘왜 인가요?’

So who wants to hear about my new record?
그러니 누가 내 새로운 앨범을 들으려고 하겠는가.

좋은 것들은 일찍 사라진다.

자려다가 문득 책장 구석에 먼지 쓰고 잠들어 있던 고장난 셀빅 pda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이걸 고쳐서 다시 쓸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놈하고 참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것 같다. pda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요즘에도 낯선 일인데, 02년도에 지하철에서 셀빅으로 이북을 보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바로 그놈을 귀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신기하다기 보다는 (미친게 아닐까 걱정된 표정으로) 경악하며 나를 쳐다봤다. 한번은 궁금해서 못참겠던지 어떤 아저씨가 그건 뭐하는 기계냐고 묻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그만한 가격에 자체 os와 수많은 공개 어플리케이션, 게다가 16 gray까지 지원하여 시원한 가독성을 보이는 pda는 아직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정도였다.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망했다는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pda로 이동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pmp가 있고 심지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mp3? 요즘 mp3 플레이어 없는 사람 (도 있겠지만) 도 있나? 가장 기본적인 text 중심의 개인 데이터 오거나이저의 역할만 제대로 해낸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pda다. 셀빅이 그런 존재였다. (나는 그 뒤로 명품이라는 바이저 프리즘도 클리에도 wince 계열의 pda도.. 이것저것 다 써봤지만, 예전과 같은 시원한 만족감은 느낄 수 없었다.)

삼성에서 만든 것중에 유일하게 맘에 들었던 이지프로도 그렇다. 핸드헬드 피씨라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아이템 (타블렛 피씨의 효시격이라고나 할까..) 으로, 동급 최강의 화면과 화면이 돌아가서 마치 노트패드처럼 보이는 ‘스위블’ 기능까지 갖춘 궁극의 기기. 이걸로 이북보면 정말 책보는 느낌이 났다. 노트북과는 비교도 안되는 배터리 용량 (구동장치가 없으므로 배터리 효율도 노트북에 비해 극히 높다.) 으로 한번 충전해서 학교에 갖고 가면 이틀은 레포트 쓰랴 학생회 회의록 정리하랴 아무 걱정도 없었다. 게다가 노트북에 비해 크기도 월등히 작고 가벼워서 극강의 휴대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바보같은 삼성은 이 라인업을 잘 살려 주무기는 못되어도 꽤나 인정받는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단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종시켜버렸다. 예전에 프리챌에 이지동이 제일 컸는데, 거기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이 제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어떤 사람은 기기 자체를 개조해서 사용할 수 없었던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가, 삼성이 마음을 고쳐먹고 이지프로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비밀리에 개발중이라는 fake 기사를 인용한다던가 하기도 했었다. (말 나온김에 수집해둔 프리챌 이지동 글 몇개 링크.. 1 2 그리고 정말 ‘말 나온 김에’ 프리챌에 다시 들어가봤더니 이지동 아직도 살아있었다…)

모든게 좀 더 손 끝에 가까웠던 시절. 마음이 충실하게 움직였던 시절..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