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지 뭔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바뀌는건 봄에서 여름으로의 그것보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그것이 더 강렬한 것 같다. 일찌기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어두운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접어들때의 환희를 – 기억이 맞다면 – 어느 순간 사방이 ‘밝아졌다’는 짧지만 매우 공감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줄여 표현했었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전환도 그렇다. 낮이 길어지고, 사방이 갑자기 밝아져서 눈이 부시다. 꽃들과 여자들의 옷차림이.

그렇지만, 나는 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폭발하는 생명의 소란스러움은 수류탄 파편처럼 맹목적으로 내 나약함을 파고든다. 감당하기 힘든 그 공격에 날마다 초주검으로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아침이 되면 뿌연 창문 밖엔 또 어떤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 걱정이 앞서 맥손을 놓기 일쑤였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은 소란스럽다. 봄만 되면 모든게 귓가에서 앵알대는 파리의 날갯짓 같이 성가시고 괴롭다.

봄이란다. 매년 힘내서 피워내는 옆 빌라의 목련이 올 해에도 굳세게 만개했다. 딱딱하게 굳은 감각들도 조금은 풀어진 모양으로 봄이 봄인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가, 그리고 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간다. 이 문장에 담긴 비의를 체득하게 될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봄을 견뎌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조금씩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왔다가 갈 것이다, 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멍한 내 시선 바깥에서 봄은 왔다가 갈 것이다.

missed-call.com

http://www.missed-call.com

한 사람이 핸드폰 하나씩 (혹은 그 이상) 다 갖고 있는 요즘, 스팸은 개인휴대통신의 가장 큰 적이다. 일종의 텔레마케팅 식의 구매 권유 전화부터, 보이스 피싱, 스팸 문자, 원링 스팸 (한번만 울리게 하고 끊음으로써 휴대전화 가입자가 기록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게 유도하는 방식의 스팸) 까지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런 전화에 누가 속을까 하고 의아하지만서도, 최근엔 대학생까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돈을 날린 뒤에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속이려고 작정한 자’와 ‘속을 리 없다고 방심하고 있는 자’가 만나면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위 사이트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걸려온 전화가 스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주 간단한 로직이다. 이를 테면, 내게 missed-call (받지 못한 전화) 가 한 통 왔는데, 이게 스팸인지 아닌지는 전화를 걸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럼 위 사이트에 가서 해당 전화번호를 검색해 보면, 사이트 쪽에서는 ‘많이 검색된 번호 일 수록 스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를 가지고 사용자가 검색한 번호가 스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검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처나 직장에서 걸려온 전화가 스팸으로 오인될 리도 없고, 설사 내가 몇 번 거래처 전화를 검색했다 하더라도 나 혼자만 검색했기 때문에 스팸 가능성이 매우 낮은 (혹은 검색자가 검색 후에 스팸이 아님을 확인해주면 블랙리스트에서 제외된다.) 번호로 남게 된다.

거의 모든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이 서비스를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다.

또 이런 기능도 생각해봤다. 스마트 폰에서 전화가 걸려 오면 일차적으로 해당 사이트에서 번호를 검색해서 이 번호가 스팸인지 아닌지를 구분한 다음 정보를 리턴해주고, 전화기에서는 스팸이면 ‘스팸일 가능성이 높은 번호입니다.’를 표시해주는 것이다. 이런게 바로 진정한 매쉬업이 아닐까.. (모바일 프로그래밍쪽은 몰라서 이런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병신짓

약간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5. 손 씻고 방에 들어가 작업한다.
6. 10분 뒤 커피를 놓고 들어왔다는게 생각나 다시 나간다. -_-;;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난 이제 병신짓 같은건 안해. 반드시 소변보고 커피 들고 들어간다. 잊지말자!’ 하고 다짐한다.
5.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6. 손 씻고 방에 들어가 작업한다.
7. 10분 뒤 자괴감에 빠진다. OTL

진짜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5. 손 씻고 (손 반드시 씻고!) 커피를 들고 방에 들어와 작업한다.
6. 10분 뒤 커피를 놓고 들어왔다는게 생각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머리를 쥐어 뜯는다.)

—>

kldp.org에 쓴 글 옮김. 실제로 매번 이럼. 찔리시는 분 많을 듯. ㅎㅎ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소리 소문 없이 친구들이 사라졌던 몇 해 전, 광기어린 살육의 시기를 잘 버텨온 우리에게는 적절한 포상이 주어졌다. 발로 차거나 담배 불로 지지는 일 대신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때로는 맘씨 착한 주인을 소개 받기도 했다. 나와는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같은 동네의 점순이는 며칠 전에,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꼬마의 부모에 의해 입양되었다. 나는 그녀가 자동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별로 이별이 가슴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근처에서 볼 수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이럴때 술을 마신다지만, 나는 그냥 배회할 뿐이었다. 냄새를 맡고 영역을 표시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컹컹 짖고 나면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그 날은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내 영역에서 낯선 냄새를 맡기 전까진 그랬다. 전체적으로 숫자가 많이 줄어서 이제는 남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녀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던터라, 뉴페이스가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약간 기쁘기까지 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나니 시장 입구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낮게 으르렁 거렸다. 녀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리가 나는 내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더니 다시 시장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경계를 풀었다. 어차피 이 곳은 내가 혼자 독식하기에는 너무도 큰 장소였다.

나는 녀석의 옆에 앉아서 슬쩍 말을 걸었다.

‘서로 상처주는 일은 피하자고. 원하면 필요할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도 좋아.’

‘고맙군.’

‘이 근처에서는 못보던 얼굴인데?’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먼 곳에서 왔지.’

‘떠돌이 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야.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이제 어딘가에 정착해서 사는게 어때? 마침 여기는 나 혼자 관리하기도 벅차고 해서 말이야.’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아직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은 없네.’

‘뭐, 좋아. 언제든지 말만 하라구.’

그 순간 멍한 녀석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컹컹, 그는 저 먼 도로의 한 곳을 바라보며 짖었다.

‘이봐, 좋은 구경 시켜주지. 따라와.’

나는 녀석을 쫓아갔다.

‘저 늙은 사람은 말이야, 신기한 재주가 있어. 그가 들고 다니는 저것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나거든. 저걸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빈 기분이 들어. 마치 내가 전봇대 만큼이나 오래 산 것 같은 그런 기분.’

늙은 사람이 소리를 내고 그 주위엔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녀석은 가끔 컹컹하면서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을때부터 저 늙은 사람을 따라다녔어. 나는 항상 묻고 싶었지. 어째서 당신이 내는 소리가 나를 이토록 흔드는가 하고. 내가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일까, 나쁜 기분일까… 그것도 모르겠어. 아무 것도 몰라. 내 어미가 나를 낳고 어느 추운 날 우리 형제가 뿔뿔이 흩어졌고, 또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게 이 순간을 위해서 필요했다는 기분이 드는거야. 나는 이상한 개일까? 나는 이런걸 느껴서는 안되는걸까? 이봐, 젊은 친구. 자네는 뭐 느껴지는게 없나?’

‘인간의 소리라는 것 밖에는 모르겠는데. 이런건 여기선 자주 듣는다고. 빛이 나고 소리가 나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오고, 소리만 나오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와. 그런데 난 네가 느낀 것 같은건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는걸.’

‘그래… 그렇군. 역시 이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인가보군.’

그 뒤로도 저녁까지 우리는 함께 그 늙은 사람의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늙은 사람은 아침마다 같은 장소에서 소리를 냈고, 늙은 녀석도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늙은 녀석이 뭘 먹는걸 본 적이 없어서, 가끔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그는 먹는둥 마는둥 했다.

‘좀 먹지 그래. 이래서야 어디 팔려가지도 못하겠군.’

그는 웃을 힘도 없는지 입가만 약간 움직이다 말았다.

‘젊은 친구, 자네는 자네가 왜 개로 태어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이 세상 수만 생명 가운데 어째서 개일까 하고 말야.’

‘내 어미가 개였으니 나도 개인거지.’

‘자네 어미가 개인 것은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자기 어미가 개인 것을 모르는 개도 있단 말이야?’

‘내 말은, 그걸 자네가 기억하느냐 이거지.’

‘나는 내 어미 젖을 먹고 자랐어.’

‘그래 그 이전엔? 자네가 자네 어미의 자궁을 뛰쳐나와 첫 울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아니면 자네가 자네의 형제들과 함께 어두운 자궁 안에서 이따금 몸부림 치던 것들이 기억 나던가? 아니면 자네가 수태되던 그 어느 뜨거운 여름 날이 기억 나던가?’

‘그런걸 기억하는 생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가 다 자기의 형태대로 태어난 것을 알 수가 있는거지? 우리의 어미 아비가 태어나지도 않았을때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걸까. 내 마음은 어째서 산처럼 묵묵히 자기 있을 곳을 알고 있지 못할까. 내 마음은 어째서 봄날 민들레처럼 얕은 바람에도 하늘로 불려 올라가는걸까…’

‘병에 걸린 모양이군.’

‘맞아, 병이라면 병이지. 나는 개라는 병에 걸린거야. 병은 이름 붙이는 순간 병이라네. 마음병이지. 마음에서 모든게 시작된다네. 저 늙은 사람의 소리는 단지 내 마음에 불을 켠 것 뿐일지도 모르지.’

또 며칠이 지났다. 늙은 녀석은 몇 번 숨을 헐떡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늙은 사람은 그 순간 내던 소리를 멈추고 늙은 녀석을 옆구리에 끼더니 자리를 떴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가끔 늙은 사람이 다시 이 동네를 찾을까 싶어서 예전 소리를 내던 장소를 찾곤 했다. 내가 그 장소를 찾을때마다 내 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건 사람의 소리도, 개의 소리도 아니었다. 꽃이 피는 소리였다. 꽃이 피는 소리라니! 개의 감각이 아무리 예민해도 그런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꽃이 피는 소리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하늘에 반짝이는 것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내려오는 소리와, 바람이 산을 움직이게 하는 소리와, 땅이 움직이다가 멎는 소리와, 온갖 살아 있는 것이 나이 먹는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와, 태어나는 소리와…

나의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Q :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A : 개에게 물어보거라.

청소

최근에 동생은 실직을 하고 재취업을 준비중이다. 한마디로 백수란 이야기. 나름 토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토익시험을 두서너달 준비하고 1월과 2월에 걸쳐 두번의 시험을 보았다. (학원도 안다니고 해커즈 토익책을 사서 인터넷 강의로만 공부했다는… 미친놈. -_-;;)

아무튼 그런 연유에, 최근 대부분의 집안 일은 동생 차지다.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가끔 밥도 해놓고 빨래도 곧잘 한다. 우리집에서 나만 빼놓고 비교적 청결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갖고 있는데, 유독 동생은 그 마무리가 맵씨있다.

오늘 출근하면서 동생이 안방 청소를 하고 있길래 반 농담조로 ‘야, 형 방도 그렇게 청소해봐.’ 했다. 내 방은… 내가 생각해도 더럽다. 정리가 안되어 있다거나, 지저분하다거나 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너 이런 방에 살면서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잘 자라준게 고맙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실까.

나는 농담이었는데, 기어이 동생은 내 방을 청소했나보다. 오후에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 내 일생 일대의 역작이야. 살면서 이렇게 힘들게 청소한 적은 처음이었어.’

ㅋㅋㅋㅋ

그 뒤로 퇴근하신 아버지랑 어머니가 줄줄이 전화해서 ‘감격했다.’는 둥 ‘이건 전문 청소 용역 업체보다 월등히 나은 수준’이라는 둥 ‘너 동생한테 꼭 수고비 줘야 한다’는 둥 하고 말씀하신다.

내 방 들어가서 적응 못하면 어쩌지? 흐흐.

금주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시러 나가니 아직 금주는 아닌데, 치과 치료 때문에 금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날 압박한다. 그냥 마시고 지지 칠까.

솟구친다는 건 아주 쉬운일이야.

근황

인간이 놀라운 것은 그 어떤 지옥같은 생활에도 기어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합성 마약보다도 몇백배나 더 지독히 강력한 내뇌 마약을 뿜어 가면서 우리는 결국 일상 궤도로 수렴하게 된다.

잠깐, 지독한 치통이 되살아 날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는 어느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다가, 신기하게도 근질욱씬거리는 치통을 은근히 기다리는 내 자신을 깨달으면서 어둑한 커튼 너머로 살폿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통증을 느끼는 부위와 통증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동일시 하려는 인간의 상식 때문일 것이다. 가끔 그런 통증들이 몸 곳곳에서 봉기한다. 흉통과 치통과 두통과 근육경련과 또, 또… 그러나 통증은 두뇌가 느낀다. 그러므로 모든 통증은 사실 두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뇌에는 감각기관이 없다는 것, 이 얼마나 빌어먹을 사기인가.

진통제가 작용하는 지점은 과연 어금니일까, 아니면 말초신경계일까, 아니면 두뇌의 어떤 부위일까. sympathy는 그저 환상일 뿐일까.

두 서너알 남은 진통제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대체 통증은 무슨 의미야. 주여…

where am i?

결혼한다는걸 잘 상상할 수 없는 동기가 갑자기 전화해서 결혼한다고 하고, 아는 선배가 낸 책이 오늘 인터넷 서점에 걸렸다고 하고.
나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스팸 트랙백을 지우고 그 소식을 전한다.

남에게 솔직하기란 무척 쉽다. 무관심하면 되니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는 그래서 훨씬 더 어렵다. 특히 나는 내 자신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과거가 시시 때때로 유령처럼 되살아나서 조소한다. 별 볼 일 없는 사내라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내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걸 깨닫는 순간, 나는 까무러칠만큼 지쳐버린다.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긍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자가 어떻게 타인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지극히 얍삽한 인간이다. 순서를 정해본다면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 비열한 토막들의 악취는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오랫동안 아무도 들춰보지 않아 썪은 내를 풍기는 이 두엄더미를 뒤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삶은 너무 길다. 아무도 날 구원해주지 못할꺼라는 불길한 상상이 나를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