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지훈이형

내가 지금도 드문드문 지훈이형을 기억하는 건 우리 둘의 사이가 긴밀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5년 이상, 우리는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너무 그 사람이 그리워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가끔 그가 트럭의 짐칸에 앉아서 발악하며 부르던 자두의 ‘대화가 필요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지훈이형이 떠오르는 것이다.

02년도 여름방학, 철학과와 국문과, 그리고 중앙대 몇 명의 친구들은 전남 영광으로 환경현장활동을 떠났다. 환경현장활동이란 타성화되던 농민연대활동(농활, 농촌봉사활동이 아님)의 대안으로,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문제를 통해… 뭐 그런 내용인데, 그 사안적 중요성과 대안적 실천방안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층 활동세력의 붕괴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하면서 검색해보니 여전히 환경현장활동은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뭐가 잘 안됐던 환활이었다. 기둥적인 역할을 하던 고학번이 모두 사라진, 그래서 스스로 기둥이 되어야 할 우리들 조차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전남 영광의 지역적 특성(핵발전소와 폐기물 매립장 등) 때문에 거기엔 수많은 이권들이 개입하고 있었고, 사실 반대의 깃발을 드높이며 내려갔던 우리들, 아니 나조차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때문에 주된 활동들은 기존 농활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답답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어두워지는 저녁 여덟시만 되면 씻고, 밥 먹고, 불끄고 자려고 준비하는 고단한 농가에 어떻게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 그들을 깨워서 핵발전소, 폐기물 매립장의 부당함에 대해서 강의할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지역농민들과 말 한마디라도 붙이려면 무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물론 그건 절대 고까운 일이 아니었다. 가보면 안다, 농촌에 가보면… 저문 강에 삽을 씻는다는, 정희성 시인의 그 시가 뭘 의미하는지, 법 보다 무서운건 밥이라는걸, 새끼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농촌의 경쟁력 강화, 뭐 이런 소리는 씨알도 안먹힌다. 대체 육칠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남지 않은 그 곳에 강화할 경쟁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수박을 수확하고, 담배밭에서, 고추밭에서 묵묵히 일을 거드는 것 외에는…

아무튼 그런 날들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상황버섯을 재배중이라던데, 자기 일 좀 도와달라고 은근슬쩍 말을 건내는데, 당신보다 훨씬 나이 드신 어른들 밭도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도와드리지 못하는데, 생존이 아닌 치부를 위한 일에 손을 빌려 줄 수는 없다고 말하려는데, 또 우리는 가슴이 작아져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나올까 싶어, 그럼 오전만 도와드릴께요, 하고 인력시장에서 팔리는 사람들처럼 트럭에 짐처럼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지훈이형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노래를 불렀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할 말 있으면 터 놓고 말해 봐…

‘bigger than others’ from tom mcrae’s journal

tom mcraejournal들을 뒤적이다가, 공감가는 글을 읽어서 옮겨본다.
개인으로서의 신념과 실천에 관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냥 훌훌 넘겨봐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정치에 관한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거’에 관한 – 생각은 나도 많이 공감하고 있다. 좀 더 숙성되어야 할 것 같지만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난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하고 나서 다시 읽어봐도 문장들이 잘 이어지질 않는 것 같다. 이해가 안된다 싶으면 원문을 참조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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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sed to argue with my dad about many things, but mainly about religion and politics, and the state of the world. The arguments would usually end the same way. He would pause, sigh and then say in his best vicar’s voice: ‘well what would you do in the same circumstances?’ at once both neatly ending the debate, and also challenging me to get involved, to do something. And that is how I feel about many things today, I argue, I rant, I complain – often without being fully conversant with the facts – but then I usually decide to do something.
자주 아버지와 종교나 정치, 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끝난다.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고 탄식하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넌 어떻게 할꺼니?” 아주 매끄러운 끝맺음인 동시에 나로 하여금 진짜 뭔갈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큰소리치고 불평할때마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I stopped going to church when I realised there was no God – amusing my family no end in the process. I stopped eating meat when I thought me not having a bacon sandwich would bring about compassion in world farming. I marched against every new war, I helped drink the bar dry in solidarity with whichever Turkish miners’ union I felt sympathy with at the time. I bought fair trade coffee, organic eggs and Green and Black’s chocolate.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집에는 계속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지 않는 것이 ‘세계 영농을 위한 연민(동물보호단체)’의 뜻과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시위행진에 가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터키 광부 노조의 단결을 위해서 술을 마신다. 공정 무역을 통해 거래된 커피와 유기농 달걀과 초콜렛을 산다.

None of these activities has yet to have any major impact on the world (argue all you like) and in the end the smell of bacon tempted me back into the world of the carnivorous, and anyway…. some days you just want a Starbucks. L’Oreal bought The Bodyshop (right on, Anita – I met her once, not a terribly bright woman) Nestle bought Green and Black’s, and now the chances are any single way you try to act as a ‘caring consumer’ you’re putting money in the hands of one evil empire or another. My point is, we’re all hypocrites, even if it’s unwitting.
이런 결단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직 이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베이컨의 유혹에 넘어가 육식의 세계로 다시금 되돌아 가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스타벅스도 다시 마시게 될지 모른다. 로레알이 바디샵을 점령하고 (아니타를 한 번 만난적 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네슬레는 유기농 산업을 집어 삼키고 있다. 사려깊은 소비자가 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결국은 악의 제국의 배를 불려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린 모두 위선자들이란거다.

But some days I read a paper or watch the news and I still ask myself ‘what would I do?’. Would I have invaded Iraq, I hope not. Would I be spending my country’s tax revenues on protecting opium growers in Afghanistan – nope, I’d legalise all drugs, classify them and charge a market rate, but that’s just me. Would I be partnering up with the most dangerous man in history, and by doing so undermining the position of the U.N, and making myself a pariah state and target for terrorism – again, I’d like to think not. Would I have shot a guy in his East London for home for the crime of having a beard? I’ll let you guess the answer to that one.
하지만 신문이나 티븨뉴스를 볼때면 나는 항상 자신에게 ‘내가 뭘 했어야했지?’ 하고 되묻는다. 이라크나 침공해야 했을까? 아니길 바란다. 그럼 내가 낸 세금으로 아프카니스탄의 아편 재배자들이나 보호하고 있어야 했을까? 아니다. 차라리 난 모든 약물들을 합법화 시켜서 그걸 등급별로 분류한 다음에 합당한 시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는, 뭐 그런 정도밖에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아마도 죠지 부시)과 작당하여 UN의 입지를 약화시킨 다음에, 내 자신이 테러의 목표가 되는 불쌍한 민간인들이 되는 짓을 반복해야 할까? 절대 아니다. 빵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East London에 사는 그 사람을 쏴야만 했을까? 어째야 했을지 답해보시길 바란다..

But those are all hypothetical questions, I’m not the President or the PM, or Chief of Police… so what as an individual can I do? Well, I’m not famous enough for people to pay attention to the random rants of a minor songwriter with a cult (for cult, read smalll, loyal, intelligent, often physically beautiful, with nice hair and a fragrant smelling) audience, so that just leaves my voting rights. But – and here’s a minor controversial point – in much the same way I grew out of God, I’ve grown out of my belief in democracy. There is no longer any principle at the heart of politics, and the prime motivation of every party is election, followed by four years of campaigning for re-election. We all know this. I wrote a song about it once – big whoop. Smart people vote to keep out the BNP – or other fascists – and because our grandparents fought wars so we could, and because Emeline Pankhurst threw herself under a horse. But no one votes in the belief that anything will change. Do they? We have zero choice and zero expectations. The same thing has decided elections since the first man posted the first ballot in the first ballot box: it’s the economy stupid. Offer tax cuts you’ll get in. Pursue a stable economy at the expense of developing nations and the environment, you’ll get in. We all want jobs, homes and widescreen tv’s, Preferably with ‘ambi-light’ (A bulb in it. Ambi-light. Genius.) I know I do. How else will I enjoy Rooney firing home the winner in the world cup final. But I digress.
물론 위의 질문들은 모두 거짓이다.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며, 경찰서장도 아니다… 그런 ‘개인으로서’ 나 자신은 뭘 할 수 있을까? 글쎄, 난 그다지 유명하지가 않아서 컬트적인 팬이나 갖고 있는 인기없는 싱어송라이터의 돌발적인 이런 발언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것이 나의 결정을 조금 더 유보하게 한다. 신으로부터 내 자신이 성장한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나는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정치의 핵심에는 어떠한 원칙이 없으며, 모든 정당의 핵심 동력은, 4년마다 재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이것에 관한 노래 – big whoop – 를 쓴 적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영국국민당 (BNP, British National Party) 이나 다른 파시스트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한다. 우리 조부모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Emmeline Pankhurst가 왕의 경주마(King’s horse)에 몸을 던져 죽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tom은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왕의 경주마에 의해 살해당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었던 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의 멤버인 Emily Wilding Davison였다. 구글링을 해봤는데 영국인 가운데서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이란 믿음에 투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권도 없으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첫번째 투표소에서 첫번째 사람이 투표를 함과 동시에 매번 같은 문제가 선거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세금을 인하하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국토와 환경을 개발하여 안정적인 경제를 만들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우린 모두 일자리를 원한다. 집도, 와이드스크린 티븨도 (가급적이면 지능형 조명연출 기능이 추가된 것이기를 바란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루니가 승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겨를이나 있을 것인가. 조금 이야기가 빗나갔다.

So, as ethical consumers we’re fucked. The first rule of capitalism is that money will end up in the hands of those who already have it – Nestle, l’Oreal, and even BP – the oh-so-ethical-oil company working hard to develop new eco-energy whilst destroying Alaska drilling for oil. Now that’s old school, BP. Some would call that pissing down my back and telling me it’s raining. Please take the British out of your name – I’m ashamed enough as it is. Beyond Petroleum… my big fat, hairy (actually pert and smooth) butt.
어쨌든, 윤리적 소비자로서 우리는 완전 좃같다. 자본주의의 첫번째 법칙이란 돈은 결국 자본을 소유한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이다. (네슬레, 로레알, 심지어는 영국석유 (BP, British Petroleum)까지도 자본을 소유한 자들이다. 영국석유의 경우는 자칭 ‘우리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윤리적인 석유회사에요’ 하고 광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석유 굴착을 위해 알래스카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석유가 좋았던 것도 다 옛 말이 되었다. 누군가 당신의 등에 오줌을 누면서 ‘아 비가 오네요’ 하는 격이다. 제발 그 이름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부끄러운데… 하지만 ‘석유’만 남아도.. 에이 머저리들.)

And now as voters we’re fucked. Cameron, Blair/Brown/A.N Other, Menzies Campbell… who would you vote for? Green? Good luck with that. ‘But if enough of us do, Tom, we can change the planet’. ‘What if they held a war and no one turned up maaaan?’ No. Ain’t gonna happen. Once again it’s the economy, stupid. And if they held a war (which they will do every week until the end of time – not actually that far off) the Americans will still turn up to do some ass-whooping, with the trusty British gimp at their side.
그리고 이제는 투표자로서의 우리도 완전 좃같다.  캐머런, 블레어/브라운/A.N Other, 멘지스 캠벨 (누구지 이 사람들?)… 누구를 찍을 것인가? 녹색당? 오, 당신의 투표에 행운이 있기를.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만 실천한다면요, 톰,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있을꺼에요.’, ‘만약에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요오오오?’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만약에 ‘미국인들이’ 전쟁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마 그들은 세상이 멸망 – 멸망까지 얼마 남지도 않아 보이지만 – 할때까지 매주 계속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꺼다), 같잖은 영국이 그들 편에 서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환호를 지르며 경제적인 문제들로 (석유나 각종 이권들을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Again… I hear my father’s voice…’what would you do?’… well, I won’t be voting again that’s for sure. Please don’t mistake this for cynicism, it’s not. It’s the opposite: it’s hope. I will, in my small, and very ignorable way, remove myself from the process. I will never be involved in a ‘rock-the-vote’ campaign, not that I’d get asked. Bastards. Come the next election I will hold a ‘fuck-the-vote’ rally, campaigning to have my refusal to participate in electing the next generation of murderers recognised. I want my spoilt ballot counted. If the rules of the game suck, then you can chose to not play, or you can seek to change the rules. And seeing as not playing is no longer an option, what would you do, Tom? What would you do?
다시.. 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그래, 넌 어떻게 할꺼니?’… 글쎄, 한가지 확실한건 난 투표따위는 하지 않을꺼란 사실이다. (혹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것) 이걸 냉소적인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말 반대이길 바란다.) 난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 그것들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 내 자신을 선거의 한 과정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난 이제 다시는 ‘투표합시다!!’ 따위의 캠페인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개새끼들. 다음 선거가 오면, 나는 ‘투표따위는 엿먹어라!!’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살인자들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지 말자는 것이다. 난 내가 던지는 사표(死票)도 하나의 표로 인정되기를 원한다. 선거판 자체가 좃같다면, 선거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판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것, 그것은 더 이상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꺼니, 톰? 어떻게 할꺼니…?

Clearly I had too much fair trade coffee this morning, and read about the shelling of Palestinians in Gaza. My first reaction was to want to have my records withdrawn from sale in Israel. Like anyone would notice. But then not every Israeli fires missiles into beaches, just as not every Palestinian is a terrorist. You never read about the Israeli peace movement – because no one prints those stories. It’s a fucked up situation that knee-jerk reactions won’t help. And where exactly would I sell my records if I didn’t agree with that country’s leaders? (Bless you, Belgium).
정말로 오늘 아침 나는 공정무역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폭격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내가 첫번째 반응은 이스라엘에서의 내 앨범들을 철수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해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처럼. 아마 이스라엘인들의 평화 운동에 대한 기사는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기사로 만들지 않는다. 난 내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게 엿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가 해당 국가의 수장에 반대한다고 해서 앨범을 풀지 않겠다고 하면, 대체 내 앨범들은 어디서 팔릴 것인가? (다행인줄 알아라, 벨기에)

‘But you’re a songwriter, Tom, and you shouldn’t be involved in politics’… I have a well worked out riposte to that one: fuck you. I have a right to an opinion, I have a website and I’m reasonably good with words…. I’ll say what the fuck I like, when and to whom. Notice the ‘to whom’. See?
‘하지만 당신은 그냥 노래하는 사람일 뿐이잖아요, 톰,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가져선 안되요’… 요런 말들에 대해서 나는 한마디 해줄 말이 있다, 조까. 난 내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고, 웹사이트도 있고, 합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난 언제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라고 한 것에 주목해라. 알아 듣겠냐?

Again ‘what would you do?’ Well, the best I could do was to write this.
Artists can agitate as well as soothe, I hope. Also I bought a big book on Israel, a general history of the world, and a high-powered rifle. One of those items was slightly harder to come by in Wood Green. I intend by the end of the week to have solved the problem of the Middle East – on paper at least – I’ll probably do it during half-time tomorrow. I’m not serious about the rifle, but I am serious about not voting. The world is a different, far more dangerous place to that of 1945. Democracy’s strength used to be that it evolved slowly over time, with checks and balances…. slow was good. Well, the planet’s dying – time isn’t running out, it’s already left the building and is right now in a jacuzzi, with Einstein and Darwin (my personal gods) and of course, Nina Simone – she’s there because she has the voice I always wanted, bitch.
다시 ‘넌 어떻게 할꺼니?’ 로 돌아와서.. 글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아티스트들이란 가능한 조용하게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믿고 싶다.) 또, 난 이스라엘에서 세계의 역사에 관한 책과 강력한 소총 한자루를 살 수도 있다.. 물론 이 물건들 중에 어떤건 우드 그린 (영국의 한 지명, 아마도 톰이 사는 동네인듯) 에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주말까지 동아시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글이나 쓰는 것이겠지만) 아마 내일 내내 하게 될 것 같다. 소총에 대한건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투표 거부는 진심이다. 이 세계는, 매우 위험했던 1945년 (2차 세계대전) 과는 분명 다르다. 민주주의의 힘은, 많은 교정과 균형들을 통해 서서히 발전해왔다. ‘서서히’ 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또..

So….What would you do?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Next week we’ll be asking the questions ‘Is cranberry juice the fuel of the future? Is Sigur Ros the new Enya? And why are Keane?
아마 다음주에 우리는 이런 질문들이나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딸기쥬스(cranberry juice)가 미래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나요?’, ‘Sigur Ros는 엔야의 새로운 버전인가요?’, ‘왜 인가요?’

So who wants to hear about my new record?
그러니 누가 내 새로운 앨범을 들으려고 하겠는가.

좋은 것들은 일찍 사라진다.

자려다가 문득 책장 구석에 먼지 쓰고 잠들어 있던 고장난 셀빅 pda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이걸 고쳐서 다시 쓸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놈하고 참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것 같다. pda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요즘에도 낯선 일인데, 02년도에 지하철에서 셀빅으로 이북을 보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바로 그놈을 귀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신기하다기 보다는 (미친게 아닐까 걱정된 표정으로) 경악하며 나를 쳐다봤다. 한번은 궁금해서 못참겠던지 어떤 아저씨가 그건 뭐하는 기계냐고 묻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그만한 가격에 자체 os와 수많은 공개 어플리케이션, 게다가 16 gray까지 지원하여 시원한 가독성을 보이는 pda는 아직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정도였다.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망했다는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pda로 이동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pmp가 있고 심지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mp3? 요즘 mp3 플레이어 없는 사람 (도 있겠지만) 도 있나? 가장 기본적인 text 중심의 개인 데이터 오거나이저의 역할만 제대로 해낸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pda다. 셀빅이 그런 존재였다. (나는 그 뒤로 명품이라는 바이저 프리즘도 클리에도 wince 계열의 pda도.. 이것저것 다 써봤지만, 예전과 같은 시원한 만족감은 느낄 수 없었다.)

삼성에서 만든 것중에 유일하게 맘에 들었던 이지프로도 그렇다. 핸드헬드 피씨라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아이템 (타블렛 피씨의 효시격이라고나 할까..) 으로, 동급 최강의 화면과 화면이 돌아가서 마치 노트패드처럼 보이는 ‘스위블’ 기능까지 갖춘 궁극의 기기. 이걸로 이북보면 정말 책보는 느낌이 났다. 노트북과는 비교도 안되는 배터리 용량 (구동장치가 없으므로 배터리 효율도 노트북에 비해 극히 높다.) 으로 한번 충전해서 학교에 갖고 가면 이틀은 레포트 쓰랴 학생회 회의록 정리하랴 아무 걱정도 없었다. 게다가 노트북에 비해 크기도 월등히 작고 가벼워서 극강의 휴대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바보같은 삼성은 이 라인업을 잘 살려 주무기는 못되어도 꽤나 인정받는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단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종시켜버렸다. 예전에 프리챌에 이지동이 제일 컸는데, 거기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이 제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어떤 사람은 기기 자체를 개조해서 사용할 수 없었던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가, 삼성이 마음을 고쳐먹고 이지프로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비밀리에 개발중이라는 fake 기사를 인용한다던가 하기도 했었다. (말 나온김에 수집해둔 프리챌 이지동 글 몇개 링크.. 1 2 그리고 정말 ‘말 나온 김에’ 프리챌에 다시 들어가봤더니 이지동 아직도 살아있었다…)

모든게 좀 더 손 끝에 가까웠던 시절. 마음이 충실하게 움직였던 시절.. 일까.

고백


“이제 좀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아니.”
전혀 놀랍지 않았다. 마음을 연다고 비애가 사라진다는 말을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단지 슬픔과 비애의 일부만이 타인에게 퍼져나갈 뿐이다.

중략

… 여동생을 강간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비밀이고 끔찍한 죄악이었다. 나는 귀가 더렵혀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꾀죄죄하고도 보잘것없는 이야기였고, 이제 나는 그것을 평생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다.


– 로버트 실버버그, ‘두개골의 서’

자기부정

담뱃갑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영화배우

특히,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하고 대사를 읊는 영화배우.

방정식

요즘 꿈을 너무 심하게 꾼다.

어제는 꿈 속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방정식을 생각해냈다.

n(n-1)(n+1) = 3n

이라는 방정식인데, 당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이 방정식을 생각해낸건지
이 방정식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낮에 이 방정식을 풀어 보았다. 나는 수학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짚어주시길 바란다.

n(n-1)(n+1) = 3n
=> n(n^2-1) = 3n
=> n^3-n = 3n
=> n^3-4n = 0

이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정수의 해는 ±2 밖에 없다.

꿈 속에서 이 방정식을 떠올리고는 ‘해냈다!!’ 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영 찜찜.

어떤 고난

데이터 저장용으로 사용하던 하드디스크가 날아가버렸다. 지난 수년간 작업했던 결과물들도 찍은 사진들도 희귀한 영화 파일도 다 날아가버렸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건 언제든지 빈 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란거, 알았다. 됐다, 잊자. 잊자.

다시는 정같은거 주지 않을테다.

농사

어디서 어떻게 어쩌다가 우연히 귀농해서 대관령에서 감자, 고구마, 옥수수나 유기농 야채들을지어 스스로 만든 인터넷 쇼핑몰에 내다 파는 농사꾼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쇼핑몰 홈페이지 폼을 보니 대충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뚝딱 지은 티가 나도 꼼꼼히 농사일기를 올리거나, 감자/옥수수/고구마 맛있게 삶는 법 뭐 그런 생활의 지혜도 올리고, 고객게시판도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 모습이 내가 언젠가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야금야금 혼자만 아는 비밀의 장소를 찾듯이 몰래 훔쳐보곤 했었다.
물론 그곳에서 뭐 하나 산 것은 없었지만..

그러던게 요 이삼주 가량 고객게시판에 연일 배송이 늦다는 둥, 이럴꺼면 환불을 해달라는 둥, 배송 온 옥수수는 익지도 않아서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는 둥 불만의 글들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올라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을 봤다.

‘막 익은 맛좋은 옥수수를 보내드리려고 옥수수가 익기만을 기다리는데, 요 며칠 계속 비가와서 옥수수가 익지도 않고 따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 일이 없기에 옥수수는 다 따놓고 파는 줄 알았더니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밭에서 옥수수를 보내는 모양이다. 타들어가는 농사꾼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만은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참 애가 타겠다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농사꾼이기에 이런 일로 혹시나 주문한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여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도매금으로 귀농하여 농사짓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지나 않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제 슬슬 날이 좋아질 때이니 잘 되겠지 생각하고 한동안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게 오늘 아침 홈페이지가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 연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아예 사이트를 닫아버린 것이다. 자세한 전후 사정이야 내가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물을 수 있는 기회도 없으니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홈페이지를 닫아버리면 물건을 주문하고 배송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나같이 하릴없이 들락거리던 사람들은 오해를 풀 기회조차 없지 않은가. 아예 옥수수나 감자 들을 수확할 수가 없어 더 이상 쇼핑몰을 운영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주문을 넣은 사람들에겐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해주면 될 일이었다.

아무튼 마음이 좋지 않아서 계속 열리지도 않는 쇼핑몰을 F5키를 눌러 새로 고쳐본다.
그러는 사이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또 태풍이 온다지?
오늘도 또 비온다며 속이 썪을 강원도 대관령 어느 농사꾼이 슬슬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두운 마음

매번 월말이 되어 다음 달 서버 회선료를 결제하러 사이트에 접속할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아무 생각도 안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블로그를 통해 육만원 어치의 소통을 했냐 하면 역시나 백분지 일도 안했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뱀이 자기의 꼬리를 물듯이 육만원이, 또 은행의 잔고로 연결되고, 또 밤낮이 바뀐 생활에 연결되고, 또 어두운 미래와 마음과 짓기도 전에 폐허가 되어버린 미래같은 구렁텅이의 무한반복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후다닥 결제를 마치고 나오고 잊어버린다. 내가 평균보다 더 절망적으로 사는걸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고, 그게 주제넘고 꼴같잖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그렇게 따지면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은게 어디 있겠어. 잊어버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변화하고… 이상하게 그런게 잘 안된다. 나는 내가 평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다지 절망적이지도 않다.

밤에 일을 하다가 갑자기 막 어지러워서 후다닥 누워버렸다. 올 여름 내내 그랬듯이 자동적으로 선풍기를 켜뒀는데, 중간에 으슬으슬 추워서 다시 일어나 선풍기를 껐다. 저녁 뉴스에 폭염은 끝났습니다,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그다지 멜랑콜리해서가 아니라 단지 하루 종일 선선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레드 제플린

제프 버클리가 끝나고 나자 사장님은 그의 아버지인 팀 버클리의 음악을 걸면서, 나는 그래도 아버지의 음악이 좋다, 둘은 매우 닮았다 하면서 팀 버클리의 음반 재킷을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이 둘은 웃기게도 매우 닮았다. 생김도 (당연히 부자지간이니) 그렇고, 보컬도 그렇고, 음악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잘 생겼네도 아버지도, 하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라 실내에는 스탠딩 체어에 앉아 있는 나와, 어떤 아저씨 둘 뿐이었고 그마저도 아저씨는 곧 값을 치르고 사장님과 한참을 인사하다 나가버렸다. 나는 내가 너무 일찍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영업을 시작하기 전의 무거운 공기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서 사장님은 계속 유투브를 검색하며 마그나 카르탄가, 무슨 밴든가의 음악을 찾으면서 아 이게 아닌데, 왜 그게 없지 하고 나를 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잠시 빈 시간을 위해 틀어 놓은 노래에 계속 마스커레이딩~ 어쩌구 하는 가사가 있어서, 나는 문득 플래툰 OST에 실려 있던 스모키 로빈슨의 Tracks Of My Tears가 듣고 싶어져서 그걸 청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다음주 토요일에 레너드 스키너드를 연주하는 밴드가 라이브를 한다고 하니 꼭 오라는 말을 뒤로 하고 나도 집에 가야지 하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 하루는 매우 길었다, 하고 적는다. 오늘 난 대체 몇 명을 만나고 다닌걸까. 새벽인데도 거리에는 차들이 즐비했고, 테일 램프의 빨간 등이 요란하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중간에 무슨 일인가로 목청을 돋우고 공무원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는 아까 저녁에 사둔 책을 서너 줄 읽고 나서 곧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