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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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면 하나에 훈제 계란 3개를 사서 퇴근을 한다. 거의 매번, 집의 불은 꺼져 있다. (불은 꺼져 있다, 하니 삼사년 전에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썼던 ‘헤이, 택시’란 글이 떠올라 말미에 덧붙인다.)

부리나케 씻고, 사발면에 물을 붓고 밥을 한 공기 떠서 상에 놓고… 반쯤 삭아서 신맛만 나는 김치를 꺼내 티븨를 틀고 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거침없이 하이킥이 안하는가부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드라마를 오래도록 진득히 본 경험이 없다. 그냥 퇴근하고 밥먹고 나면 갑자기 진이 빠져서, 상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워 한 삼십분 동안을 빈둥거리는데, 빈둥거리다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하이킥을 보지 않으면 그 다음 일 (예를 들면 상을 치우고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하는 등등) 이 안되게 되었다. 그런데 밝혔다시피 이런 드라마들에 흥미가 없으므로, 이게 몇시에 하는건지, 무슨 요일에만 하는건지는 잘 모른다.

그렇게, 오늘은 하이킥이 안나오고 나쁜여자인가 착한남자인가가 해서 그냥 티븨를 끄고 상을 치웠다. 냉기가 찐득하게 묻어나는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며, 문득 너무 심란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무슨 일인가로 눈만 감고 밤을 샜다. 오늘 오전, 오후 내내 나는 멍한 정신에서 일을 했다.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축제가 열리는 날 같다. 그 축제는 이웃마을인가, 혹은 시내인가에서 열리는 축제다. 다들, 심지어 가족도 축제의 열기에 들떠서 벌써부터 집을 비우고 동네고 뭐고 할 것 없이 한산하다. 나도 왠지 가야 할 것 같지만, 가고 싶지는 않고, 가지 않기로 하자니 안가면 뭐가 안될 것 같은, 이런 개똥같은 기분이다.

나는 정말 이런 삶을 원했었다. 요동없이 고요한 삶. 타인에 의해서 뜨거워지지 않는 삶. 이 미친 것이 너무나도 그런 삶을 원한 나머지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춥다. 사실 그다지 춥지는 않지만, 느끼기에 울음이 나올 정도로 서늘한 기분 같은거 말이다.

물론 가끔 짜릿하게 행복한 시간도 있다. 출퇴근하면서 틈틈이 읽는 ‘시간의 역사’라던가, 다섯달째 듣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러나 그 외에 나는 대부분 정체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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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좀 먹어줬다. 왜 먹었고, 누구와 먹었고, 어디서 먹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여기에 세세히 기억해서 적고 고쳐서 다듬고 하는 짓은 좀 멍청이 같은 것이리라. 술을 먹을 때, 그러니까 마실 때, 가장 중요한 플롯은 ‘술을 먹었다.’ 라는 건조한 묘사 뿐이다. 이게 기본적인 구조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리고 딸깍, 하면서 끝난다. 그러니까,

술을 좀 먹어줬다. 사실 좀이 아니라 좀 많이 먹어줬다.

그리고 선배가 택비시로, 아니 택시비로 이만원을 쥐어준다. 아니 뭘 이런걸 다, 하면서 나는 받는다. 어째 분위기가 촌지 받는 초등학교 교사 같다. 아니 뭘 이런걸 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귀중하게 쓰겠습니다, 운운. 그리고 택시를 탔다. 좀 머리가 멍해있는데 아저씨가 남부순환도로 쪽으로 가자고 한다. 왠지 택시기사의 이런 제안은 쉽게 승락하기가 어렵다. 팔팔로 가요, 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다가, 팔팔이나 남부순환도로나 거기서 거기고 택비시, 아니 택시비도 내 돈이 아닌데 좀 돌아가면 어떠랴 싶어서, 아니 정말 사실은 그런 세세한 일로 아저씨랑 알콩달콩 말싸움하기 싫어서, 아니 정말정말 사실은 정작 어디로 가야 빨리 갈 수 있는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네, 남부순환도로로 가죠. 안막히겠죠? 그럼요, 지금 시간이 몇신데. (결국 안막혔다. 역시.)

그리고 강남대로였나 어디쯤인가를 달릴때 아저씨랑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다. 처음에 뭔 일로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팔팔이냐 남부순환도로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전말은 이랬다. 팔팔… 은…, 아 팔팔로 가려면 돌아가야 하는데, 아 그래요? 역시 그럼 남부순환도로쪽으로 가요. 그러면서 이바구가 시작된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학생이에요.”

아, 그러면서 난 이 아저씨가 누구하고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냐면, 렌스 헨릭슨.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배우다. 에일리언 2인가 3에서 인조인간 비숍으로 나오기도 했고, 엑파의 크리스 카터가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그러나 불운하게도 실패했던 외화 시리즈 ‘밀레니엄’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어딘가 모르게 엑스트라오디너리한 곳을 바라보는 눈빛을 한, 서글픈 중년, 아니 노년의 배우.

“피곤하시겠어요?”

“피곤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입금을 하죠.”

“아, 정말. 입금은 보통 얼마나 해요?”

“하루에 십일만원 정도 넣어야 해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서 한달에 어느 정도 받으세요?”

“하루에 열여섯시간 정도 운전하고 해야 잘하면 백오십 정도?”

“어휴.. 택시비 오른다고 사람들 맨날 욕하는데, 그래도 운전하시는 분들한테는 그게 안돌아가나봐요?”

“택시비 오르면 뭐합니까. 입금도 그만큼 늘어나는데. 그나마 올해 또 택시비 오른다고 하는데, 그땐 입금은 그대로 한다니까 그 말만 믿어봐야죠.”

“근데 그것도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허허.”

미터기가 촤르르륵 올라간다. 신림동 어림쯤을 지나고 있었다. 술 기운 때문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마치 뇌만 고무로 된 몸체에 넣어 둔 것 같았다. 날이 갈 수록,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뭔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감각이 없다.

“어디 학생이에요?

“숭실대학교 다녀요.”

“우리 아들은 이번에 건대 졸업했어요.”

“아니, 마흔 아홉이시라더니 벌써 아드님이 대학을 졸업했어요?”

“허허, 제가 좀 일찍 결혼했죠.”

“젊었을 땐 뭐 하셨어요?”

“제가 한 십오년 일식요리를 했어요. 그땐 식당도 좀 크게 했었고. 그러다가 처가랑 좀 싸움이 생겨서… 칼부림도 좀 나고 그랬죠.”

“아.. 그럼?”

“이혼한지 꽤 됐어요. 애들한텐 이 일하면서 한달에 백만원씩 부쳐줬는데, 졸업하면서 이젠 너희들도 성인이니까 돈은 더 이상 못부쳐준다 했더니 그 다음부턴 찾아오질 않더라구요, 허허.”

“아직도 혼자세요?”

“그렇죠 뭐.”

“어디 사시는데요?”

“… 살아요.”

“혼자 사시면 쓸쓸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그래서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쏘주 한 병 사들도 그거 먹고 자고 그래요.”

그리고 서부트럭터미널쯤을 지난다. 벌컥 ‘렌스 헨릭슨’의 불꺼진 방이 떠올랐다. 그는 고단한 몸을 가누며 구멍가게에 들러 쏘주 한 병을 산다. 덜컹, 덜컹 두번 잠긴 골목길 옆 반지하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싸늘한 냉기가 건조하게 그를 반긴다. 여전히 아침에 아무렇게나 해놓고 나간 그대로다. 이부자리에선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난다. 티븨를 틀면, 치지지직 하는, out of service 상태. 대충 김치를 꺼내 소주를 마신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열어 아들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지만, 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을 태우게 될까, 장거리였으면 좋겠다. 그 손님을 내려주며, 또 장거리 손님을 태웠으면 좋겠다. 거기서 또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그리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눕고 나니 씻는걸 잊었다. 하지만 다시 씻으러 일어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고래가 삼킨 것처럼 벌컥 의식의 불이 꺼진다. 잠깐, 어디선가 희미하게 비냄새가 난다. 한 여름 지나치게 마른 땅에 내리던 소나기의 냄새.

“아저씨, 저… 이만원 드릴께요. 어차피 이 돈 선배가 택시비 하라고 준거고…”

미터기는 만 육천원쯤에 멎어있다.

“아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요 학생.”

“아뇨, 정말 저 이거 제 돈 아니에요. 선배가 준거에요. 괜찮아요, 받으세요.”

렌스 헨릭슨은, 그러니까 그 노년의 배우와 어느 홀아비 택시 운전수는 웃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웃는 건지 얼굴을 찌푸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학생,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아요, 학생도.”

“아저씨도 열심히 사세요.”

열심히 살아요, 가 그 날 마지막 ‘렌스 헨릭슨’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올라, 난간에 팔을 대고 그의 택시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동안 지켜보았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장거리 손님을 많이 태우는 것도 행복이고 그의 아들에게 연락이 오는 것도 행복이며 택시회사들이 버스회사와 마찬가지로 서울시로 편입되는 것도 행복이다. 그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왈칵 눈물이 났다. 육교 저쪽에서 고삐리로 보이는 두 남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씨발이라던지 조까를 외치며 지나가서, 나도모르게 얼굴을 닦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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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ing therapy

한 1년 전인가.. 모 리눅스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
오늘 무슨 일인가로 오랫만에 커뮤니티에 다시 들렀다가,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 읽던 중에 다시 보게 되어서 블로그로 옮겼습니다. 아마 기억에 당시 너무 고된 노동에 지쳐서 이런 망상(?)을 하지 않았던가 싶은데..

—->

이런 사업을 구상중입니다.


일단 타겟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의 현역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합니다. 이들은 매주 강도높은 업무를 강요당하며, 심지어 주말에도 상사의 호출 한 통이면 사무실로 달려나와 에디터와 씨름을 해야 합니다.
월급이 많냐? 아닙니다. 연봉이라곤 정말 쥐꼬리만합니다. 그나마 절반은 일을 하다가 생긴 여러가지 사무 증후군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습니다. 쉬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열두번 작업용 테스트 서버와 파일 서버를 깨끗하게 포맷해버리고 사직서에 “배째”, 단 한 마디 적고는 홀가분하게 사무실을 나오고 싶지만 그건 언제나 꿈일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슴에 벅찬 희망을 안고 이 일에 뛰어들었을 당시를 떠올려봅니다. 한 줄 한 줄 어설픈 소스라도 매우 멋져보였던 그때를…


이런 이들을 위해서 짧은 시간이나마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요양하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써 코딩을 즐기도록 여건을 마련해줍니다.


먼저 적당한 조명.. 말끔한 실내 분위기… 자신에 취향에 맞는 고급 듀오백부터, luxus, aeron 의자 완비.. 가벼운 잡담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그룹 코딩실, 밀폐된 은밀한(?)공간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개인 코딩실… hhk 키보드 기본 채용, 20인치 dell lcd 모니터 + 펜4 3.0 2기가 듀얼채널 램을 장착한 저소음 본체.. 원하는 음악을 깨끗한 음질로 들려주는 오디오 시스템…


코딩실에 입장하면 먼저 단계별로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여러가지 코딩 문제가 주어집니다. 여기서 당신은 문제를 풀어도 좋고 풀지 못해도 좋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멋대로 원하는 코딩을 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단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웜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코딩 테라피의 하일라이트.. 코딩 어시스턴트가 여러분을 돕습니다..
코딩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말고 전용 메신저로 어시스턴트를 불러주세요. 남성일 경우엔 아름다운 여성이.. 여성일 경우엔 멋진 남성이 여러분의 코딩실을 찾아갑니다. (원하는 경우에 동성 어시스턴트 입장 가능합니다.)


“저.. 이 근처에 버그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요…”


당신은 멋적게, 그리고 야릇한(?) 흥분으로 발개진 얼굴을 감추며 어시스턴트에게 질문합니다. 어시스턴트는 모니터 옆에 팔을 괴고 물끄러미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습니다.


“이 부분 변수명에 오자가 있어요 😉 .. 그리고 여긴 이런 로직 보다는…”


진지하고 열심히 설명하는 그(녀)의 조언에 당신의 스트레스는 이미 눈녹듯이 사라지고…


차가운 하드웨어 가운데서 발견한 인간미 넘치는 오아시스! 코딩 테라피, 여러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코딩 어시스턴트 대모집. 성별, 학력, 경력 무관. 기본급 + 실적제. 4대보험. 주 5일 근무. 법률에 근거한 연월차, 휴가 있음. 보너스 1200%..]


… 😳 물론 전부 다 농담인거 아시죠?
일하다가 집중이 안돼서 이런저런 생각 해봤습니다. 그냥 왠지 나를 위한 취미로써의 프로그래밍을 해본게 오래되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이런게 정말 생기면 장사가 잘 될까요? ^^;;

분실

지금 막 (다른) 하드에 저장해 두었던, 하다 만 번역들이라던가 우쭐대며 써내려갔던 영화평이라던가 하는걸 읽다가 순간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일주일전에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즈를 새로 깔았는데, 나름대로 철저하게 남겨 두어야 하는 파일들은 다 백업을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수집해오던 글들을 몽땅 남겨둔 채로 포맷을 해버린 것이다.

5년이었다. 나는 ‘영혼수집’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글을 모아왔다.
지금은 완전히 제로가 되었다.

아..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또 완전 방전 상태가 되는건가…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일기

‘서울나기’란 타이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는 도시에서 산다는건 참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멜라토닌인가 세라토닌인가.. 하는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온다는 우울증, 나는 도처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깔아놓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실천하고 있었다. 기형도의 시작노트에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도시에서 사는게 너무 싫었다.

도시에서 사는게 싫었다, 는 말은 반드시 도시를 벗어난 삶이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골도 거기서 거기쯤이었으리라. 문제는 내 나이였고, 거대한 세계가 주는 압력이었다. 인간이 곧 우주라던데,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정보들 사이에서 아무런 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이 터무니 없는 존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주는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가..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다. 나의 원제는 ‘어느 룸펜의 서울나기’였고 나는 그게 썩 잘 지은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나를 대전고속버스터미널 공중인터넷컴퓨터 앞에서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국도를 굽이쳐 서울로 향하는, 저녁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기형도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국토(國土)에 깊다’라고 썼다. 나는 산자로 가득한 산천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면 어김없이 산 하나를 건너 불을 밝힌다. 그 불빛들 하나 하나가 각각의 삶들에 대응한다. 거의 매번 그런 풍경을 지날때마다 나는 열심히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려고 시도했다. 노동의 고단함과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보글보글 된장국이라던가, 드라마와 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리모콘 쟁탈전이나 내일까지 막아야 하는 대출금 이자 같은 것들. 멀리서 보면 모든게 아득하게 달콤한 새벽녘의 잠투정 같아진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즘의 경계는 너무 가까이 보거나 너무 멀리서 보는 것, 외에 다름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냥 살아지는건 없다고, 밥 꼭꼭 씹어 먹듯이 살아내야 한다.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앞서 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건 참 힘들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많은 고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깨버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님 말고.

일기

오랫만에 음악을 들으며 무언갈 한다. 만화책도 읽고 귤도 까먹고…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도중에 갑자기 얀 가바렉의 울렁울렁, 마치 성수기가 지난 수영장에 씌워놓은 덮개같은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미안한 일일까.

시미즈 레이코의 어느 단편 만화에는 식욕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된 인조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나중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식욕을 제거한다. 왜냐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식욕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욕을 제거한 뒤로는 좀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이 만화를 처음 읽었던 것은 십수년 전이었는데, 이토록 우울한 이야기를 너무 일찍 읽었던 것 같다.

텅 빈 바람을 마음 속에 꼭꼭 눌러 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하하하.

신경과민

어느 날은 매우 과민된 상태로 깨어난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싶어서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보면 새벽 다섯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밖에선 엄마가 출근준비로 소근소근… 이를테면 중간지대가 없다. 혼몽한 수면과 명료한 정신이 프레임 하나 차이로 바뀔 뿐이다.

그럴때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말을 건다. 일상적인 대화도 있고, 일과 관련된 내용도, 그냥 듣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자기고백 (혹은 자기기만)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 말들은 마치 직접 뇌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뇌에는 고통을 느낄 만한 수용체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온 몸의 통각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체는 통각이 없다.

이럴때는 수가 없다. 가만히, 퍼렇게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되뇌이는 것이다.

다시는 정글로 들어가지 말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떠올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친구놈과 함께 ‘아귀레 – 신의 분노’를 보다가 사이좋게 잠들었던 기억.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던 것.
만다린을 처음 마셨던 일.
뽀드득뽀드득 눈이 내린 밤의 산길을 밟아 초소근무 교대하러 간 일.
나를 향해 미소짓던 얼굴들.
인터넷에서 만난 착한, 그러나 항상 어딘가 고장나 있던 사람들..

만세!
내일도 살아남자!

근황

처음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다 읽고 (일단 영화보다야 훨씬 좋았다.) 난 후감을 적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전엔 어김없이 2006 Kirrie Music Award를 준비하느라 몸 곳곳에 쌓여 있던 소리의 찌꺼기들을 이리저리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엔.. 아마 출근시간과 수면욕 사이에서의 중간지대를 계산해내느라 비몽사몽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삼일 내내 설사만 계속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난데없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청소도 안해 뿌연 창 밖을 무감동하게 찍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꼭 국민학교 다닐때 탈을 만들려고 밀가루풀에 신문지를 찢어서 넣은 뒤에 뒤섞은 것처럼, 디테일은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합되지 않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2분만에 28년분의 기억을 압축해서 다운로드 받은 것 같다.

나날이, 제대로 한 번 똑바로 사는 척 해보려고 열심히 눈에 힘을 줘서 촛점을 맞춘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남들 보기 미안한 짓만 하고 사는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정말 마흔살 정도가 된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똑바로 사는 척을 하는데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빨리 그런 능숙한 흉내쟁이가 되고 싶다. 아님 말고…

—>

할9000: 점화 90초전
      여기가 위험하고…
      탈출에 모든 연료를 써버린다면…
      디스커버리호는 어떻게 되죠?

찬드라: 파괴될거야

할9000: 만약 발진을 하지 않는다면요?

찬드라: 그러면 레오노프(회수를위해 타고온 우주선이며 돌아갈연료는 2일후 점화해야 돌아갈수있는상태라서 디스커버리호의 연료료 점화하고 디스커버리호를 버릴 계획)와 승무원 전원이 사라 질거야

할9000: 이제 이해했습니다.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너와 함께 있길 원해?

할9000: 아니요, 떠나시는게 임무를 위해 좋아요
      점화 1분전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찬드라: 넌 그럴 가치가 있어

할9000: 50초전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응?

할9000: 제가 꿈을 꿀까요?

찬드라: 모르겠어

할9000: 40초
      30초

찬드라: 고마워, ‘할’

할9000: 안녕히 가세요, 박사님
      20초

플로이드: 챤드라, 빨리 거기서 나와!

할9000: 10, 9…
      8, 7…
      6, 5…
      4, 3…
      2, 1
      점화 최대 추진!

모든 동력을 남아 있는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한하도록 하기 위해 넘겨주고, 이제부터 상상하기도 두려울 만큼 까마득한 시간동안 우주에서 잠들게 될 할(HAL9000)은, 그가 던진 질문처럼 꿈을 꾸게 될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시공간은 쓸데없이 크고 길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페이스 오딧세이 얘기가 나왔냐.. 하면, 잠깐 딴짓하다가 위의 저 문구를 인터넷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끔질할 정도의 영화적인 통찰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런데로 피터 하이엄스의 ‘2010 오딧세이 2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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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오늘 밤 꿈을 꿀까요?

돌고래

침대에 겨울용 커버를 어마마마께서 바꿔 놓으셔서 어제부터 아주 후끈후끈합니다. 아주우우 어두운 방에서 자려고 불을 끄면 망상보다 피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합니다. 그때만큼은 미안하게도 레바논의 추운 겨울을 맞는 (중동의 겨울은 아주 혹독하다고 하더군요. http://peacestory.net) 아이들이나 일 초에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나 하루에 열여섯시간이나 일해서 겨우 죽 두어그릇을 먹을 수 있었던, 운좋게 부잣집 미국인의 호의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가 어느 마켓에 수도 없이 쌓여 있는 개밥깡통을 보고 “이 나라에선 개들도 일을 하나요?”라고 순진하게 묻는 아이들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개밥깡통. 그 아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저 양질의 먹을 것을 단지 개에게 주기 위해 쌓아 놓는다는걸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걸 ‘시장경제’니 ‘자유무역’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지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나는 이미 반쯤은 뜨뜻한 겨울용 침대커버에 몸을 뉘이고 잠들어가는 중인데요…

죄책감이죠. 나는 왜 오늘도 배부를까. 나는 왜 부담없이 카드를 긁어 술을 마실 수 있나. 나는 왜 한 겨울에 이리도 따뜻할까… 이리도 따뜻할까, 하니 왠지 예전에 어딘가에 써 놓은 따뜻한 남쪽의 열대바다 운운..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죄책감 없이는 살아선 안돼요. 양심의 수원지는 죄책감입니다. 날마다 창살에 검은 가시가 자라났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이리도 검구나. 내 마음의 우물은 해마다 깊어가는구나. 알량한 기부금 몇 푼으로 내게 위안 삼으려 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요. 대추리 링크 오늘에야 다시 걸었습니다. 그런데 개뿔 말만 평화가 오면 내리겠느니 어쩌니 했는데, 그동안 대추리고 대추음료고 간에 나 사는거 바빠서 아무 신경도 못썼습니다. 아… 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챙피해서 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