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까’보안법

본인, 국’까’보안법 잘 모른다. 왠지 무서운 법이야,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또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국’까’보안법과 항상 함께 곁들여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이적’행위다.
사실 국까보안법 잘 몰라도 된다. 중요한건 ‘이적’행위를 하면 국까보안법으로 잡혀간다는건데…

‘이적’이 밤에 문 걸어 잠그고 와이프 몰래 하는 그 행위가 ‘이적’행위냐, 하면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싸르르 한 유머가 아닌가 싶어서 살짝 발그레 부끄러워지는 그런거 아니겠냐. 이건 농담이고, 이적행위는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다 해서, 거의 국가배신죄에 해당하는 무거운 죄다 이 말씀이다. 그리고 요거 읽다보면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대뇌변연계 구석탱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억 하나, 있으시겠다.
그래, 우리의 ‘주적’ 북괴!

자, 다시 상콤하게 정리해보자면

1.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주적은 북괴!
2. 우리의 주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하면 나뿌운~ 놈~
3. 그래서 국까보안법에 잡혀가욘! >_<)/

이정도 되시겠다.

근데 말이지… 대한민국 법전 어디를 뒤져봐도 우리의 적은 누구다! 라고 맹랑하게 까발려 놓은게 없다는거다.
알아, 알아.. 법전에만 없다 뿐이지, 한반도는 현재 정전상태고 그렇게 보자면 우리의 주적은 북괴일 수 밖에
없다는거. (근데 니들 북한과 북괴가 어떻게 구분되고, 북괴는 또 뭔 얘긴지 아니? 네이버에 물어봐~)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일본이나 중국도 우리 주적이고, 나아가서는 미국도 주적 아니겠어?
문제는 과연 이러한 다양한 잠재적 적국을 어느 정도로 수용할 것인지, 또 외교적 노력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는 건데… 또 이렇게 보자면 사실 북괴도 잘 얼르고 달래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거잖아. 그래서 이 ‘주적’이란게 참 애매모호한 개념이란 말씀이지.

한 사백만번쯤 양보해서 북괴가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주적이라고 치자. 그럼 이적행위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게 되는데, 그럼 씨바 현대아산도 이적행위중이고 (지금은 중단), 개성공단에 공장 돌리는
사장님들도 다 이적행위중이고, 국제 적십자사나 유니세프도 (대한민국 입장에서) 이적행위중이겠네?
일자 드라이버에 맞게 홈이 파인 나사에다가 억지로 십자를 들이대는 것처럼 뭔가 잘 안맞지?

국까보안법도 사람이 만든 법인데, 좀 잘 해보자고 만들었겠지 니들 씨발 좃돼봐라 하면서 만들진 않았겠지.
근데 이 단 한마디 ‘이적행위’란 것때문에 지난 수십년 동안 국까보안법은 눈에 걸면 눈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거였어. 또 우리는 북괴를 사실상의 적국으로 지정 하면서도 겉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니
평화니 하면서 모순된 태도를 갖고 있었지.

나 사실 초능력자야. 생각만으로도 누군가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지. 그래 너, 지금 이 글 읽고 있는 너 말야.
나 지금 너 죽일꺼야. 열심히 시도중이야. 이제 곧 네 심장은 멈출꺼야.

라고 했는데 네가 죽지 않으면 난 살인 미수일까? 조까는 소리지. 내가 진짜 식칼을 들고 네 앞에서 흉악하게 위협하면 몰라도 말야. 자, 난 법을 잘 모르지만 어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내가 정말 죄를 저지르려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이외에 내가 충분히 그 죄를 저지를 수 있을 만 한 능력이 있어야할꺼야. 63빌딩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늘부터 하루에 열번씩 빌딩 벽에 정권지르기를 한다고 해서, 뭐 경비아저씨한테 욕 좀 먹겠지만 그게 죄가 되겠어?
말하자면 그런거야. 이적행위고 자위행위고 간에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씨발 이 빌어먹을 남한 사회에서 그 빌어먹을 ‘이적행위’를 통해 실질적으로 국가가 전복하는 일이 발생할까, 하는거 말이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6/2008082601169.html

일부러 좃썬일보 기사를 구해다가 달았어. 훠이훠이, 소금 좀 뿌리고. 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어. 집회때 뜬금없이 사노련 깃발이 휘날려서 예전 ‘사노맹’의 후신인가 하기도 했고 (맞나?), 아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무섭다… 했는데, OO형님도 첨 듣는 단체라고 하시니 그건 아닌가보다 했지. 어쨌든. 대체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무엇이 우리의 적을 이롭게 했는가. 아니, 이롭게 할 힘이나 가진 자들인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진짜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이런거 먼저 야그해봐야 하지 않겠어?

위 기사 댓글에 달린 것처럼 사회주의가 이미 머리 속에서만 가능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린 그걸 무서워 할 필요도 없을꺼야. 또 위 기사 댓글에 달린 것처럼 북한이 붕괴한 이후에도 ‘이적행위’가 존재한다고 감히 씨부려 쌓는 새끼가 존재한다면, 그때의 국가의 적은 바로 너란걸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아 씨발 경찰은 아무나 하나부다… 나도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답답해.

모란공원

추석을 맞아서 모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일행은 김원영과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그녀.


매번 방문할때마다 이상하게 더워서 땀을 뻘뻘흘리게 됩니다.

추석이 가까워서 그런지 성묘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래전이형 옆자리의 전태일 열사 묘에는 어떤 아주머니와 외국인, 그렇게 둘이서 묘지를 다듬고 있었어요. 원영이가 그녀에게 짧게 래전이형을 소개하는 동안 저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간단히 묘지 주변을 청소했지요. 우리는 사간 소주와 북어를 놓고 간단하게 형의 안부를 물었고 형의 그 굳은 표정 아래서 술을 마셨습니다. 북어가 참 맛있었고… 음.

글쎄요, 정말 변하긴 변한걸까요. 으리으리한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어요. 분명 모란공원에는 열사들만 묻혀 계시는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괜한 심술이 났습니다. 좋은 차, 좋은 음식,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 머리가 너무 어지럽군요.

하지만, 변한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2001년 숨진 어느 여성열사는 예쁜 두 아이의 어머니였어요. 묘지 앞 유리케이스에는 두 아이의 해맑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같은건 전혀 예감하지 못하는 그런 미소였지요. 정말 변한건 쥐똥만큼도 없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아, 참.

추석 잘 보내세요.

518 그리고 야한새끼들

1년만이다. 나는 잊지 않았다. 다만, 매일의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많은 일이 (항상 그랬듯이) 있었고 내게 있는 칠백팔십만가지 가운데서 절반쯤을 버렸다. 남은 절반의 절반은 잃어버렸다. 절반의 절반을 잃고 남은 절반의 절반은 일년 동안 단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한 개피 담배를 피운다.)

이십주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물 여섯해가 지났다. 한때 체가 그렇게 되었듯이, 광주도 어느덧 상품처럼 정치인들에 의해 팔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독재의 주역들이 광주에서 정권의 심판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우리도 말 할 수 있다 운운, 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스물 여섯해나 지났으면 이제 좀 잊고 편히 사셔도 좋을텐데,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성에가 자라듯 자라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반대편 사람들이고 사과도 없고 부끄러워함도 없이 항해중이다.

오늘 개발중인 프로그램의 소스를 백업하면서 날짜를 붙인다. Entra_518.zip.

조선일보는 상당히 야한새끼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기사를 이따구로 쓴다. 내가 아는 한 그새끼들은 한결같이 이런 식이었고, 아마도 입사와 동시에 육개월간 사상교육을 받는 것 같다. 니들이 아무리 진보가 없다고 해도, 세상은 꾸준히 진보한다. 그게 한걸음이던 열걸음이던.

수십년을 일군 땅이 한순간에 포크레인이 뒤집혀지고 아이들의 학교가 수십분만에 철거되고 여럿이 다치고 울고 불고 짜고, 심지어 군대가 투입되어 역사가 역전되는데도 우리는 이런 것에만 분노한다.

미안하고 항상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불쌍한 한 후배가 말한다.

형, 아마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아.

아냐, 아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돌아야 한다. 하루가 사십년이 되어도 지구는 돌아야 한다. 어느 날 태양이 팽창해서 폭발하며 태양계를 휩쓸어버리는게, 그게 바로 내일이 되더라도 지구는 돌아야한다.

우리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 됩시다.

이천육년 오월 십팔일, 하고 싶은 말의 오퍼센트도 다 못했지만 피곤해서 이만 줄이며.

[옮김] 한 초등학생의 일기

아래의 글은 평택범대위의 자유게시판에 어느 분이 올린 글입니다. 가족끼리 휴일을 이용해 대추리를 찾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건 제가 나이가 들어서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게 될 때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자유와 평화, 연대, 사랑에 대한 따뜻하고 올곧은 마음.
세상에는 점점 이런 가정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많을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5월 어느날 평택 대추리를 방문한 한 초등학생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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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7일 일요일
날씨: 햇볕 때문에 눈을 못 뜨겠다.
제목: 평택 대추리에 다녀와서

어린이날 평택에 갔다. 일산에서 영등포 까지 간 다음, 거기서 기차를 타고 평택역까지 간 다음, 16번 버스를 타고 대 추리로 갔다. 평택 대추리에 들어가자마자 경찰버스가 보였다. 우리는 다 내려서 아빠는 학교 앞 에 있고 나랑 엄마는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대추분교가 있던 자리에는 다 부셔진 폐허 밖에 없었다. 그리고 폐허 한 가운데 평화라고 쓰여진 깃발이 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대추분교를 본 후 이제는 마을에 가보았다. 마을에는 빈 집이 많았다. 평택에 살던 주민들이 떠난 집들이다. 그런데 집이 다 부셔져 있었다. 집을 그대로 두면 평택 지킴이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기 때문에 국방부에서 집을 다 부시고 가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빼앗으면서 살던 터전까지 부시고 가라는 명령을 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떠날 때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가지 않았다. 책상, 라이타, 시계, 전화기 그런 것들을 왜 가져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다 보니 집회할 시간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말도 했고, ‘미군기지 반대 한다’ ‘올해에도 농사짓자’ 구호도 많이 외쳤다. 집회를 하고 있는데 전경들이 왔다. 한 할머니가!
손에 모래를 담아서 막 전경들 쪽으로 뿌렸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전경들이 먼저 갔다. 집회를 하고, 논으로 갔다. 가보니 전경들과 군인들이 있었다. 군인들 쪽에선 “우리 군은 국민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 방송이 나왔다. 나는 그걸 듣고 어떻게 될지 두고 보라지 했다. 저 논 끝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1000명 정도 되었다. 그러고 나서 경찰과 군인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나랑 엄마는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져 있었다.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여기는 평택 대추리 땅이고 대추리 땅은 대추리 주민들건데 왜 정부가 맘대로 기지를 만들려하나? 땅의 주인인 주민들이 안 된다고 했으면 안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걸 알면서도 왜 군인들과 경찰들을 보내서 미군 기지를 만들려할까?
집회가 끝나고 엄마와 나는 대추리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경찰들이 한밤중에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했다. 대추리가 농민의 땅이라고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을 왜 잡아가야하는지? 대추리는 평화를 원하는 데 말이다.

<시>

대추리

대추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희망도 주었습니다.
행복도 주었습니다.
기쁨도 주었습니다.
이제 대추리는 또하나를 남기고 떠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입니다.
무너진 대추분교 사이로 슬픔이 보입니다.

대추리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윤민하

[옮김]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먼저 아래의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는 민중가요 스트리밍 서비스, 감격적인 피엘쏭닷컴 게시판에 들렀다가 본 글이며, 비슷한 이야기로 한참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 글을 보고는 제 것이 너무 부끄러워 차마 공개하지 못하고, 이것으로 대신 할까 합니다.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그랬구나
내 잠시 잊었구나, 잊고 있었구나
‘개혁’입네 ‘참여정부’네 이런 게 죄다 입발린 말이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철저하게 껍데기인줄 내 잠시 잊고 있었구나

수천 명 광주시민 학살한 전 모씨 청문회에서
명패 집어던지며 이름날려 대통령된 자가
얼룩무늬,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군인들
제 어미 아비 제 삼촌 이모 형들 곤봉으로 패 잡으라고 시킬 줄이야

국회의원 시절 ‘공무원에게도 완전한 노동3권 보장해야 한다’고
그런 번듯한 말 언제 했냐고 입 싹 딱고 공무원노동자 열라 조질 때도 알아는 봤다만,
‘협력적 자주국방’이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그 무슨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말 해대며
미국에겐 굽신, 비정규직노동자 농민들 졸라 조질 때도 내 진작 알아는 봤다만,

그랬구나, 그래 정말 그랬구나
사진으로 비디오로만 봤던 80년 5월 광주학살이
‘동북아 허브센터’니 ‘세계 11대 경제국’이니 ‘IT산업 선진국’이니
아, 듣기만 해도 머리 어찔해 알아 먹지도 못할 말잔치 풍성한
21세기 자랑하는 지금 대한민국 평택 땅에서,
몰랐구나, 내 눈앞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벌어질 줄이야 참말이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구나

‘올해도 농사짓자’는 게 올해 소원의 전부인 순박한 대추리 농민들에게
시퍼렇게 날선 방패로 후려치고 군인들 곤봉으로 내려 조져,
그렇게 모진 구박에도 씨뿌려 싹튼 잎사귀들 군홧발로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청와대 노 모씨야!
이쁜 우리 자슥들 우짜든지 무지랭이 농투성이 되지 말라고
등짐 져 날라다 어찌어찌 세운 대추분교가 단 몇 분만에 포그레인에 박살난 폐허 위에서
통곡하는 저 머리 허연 대추리 주민들은 너와같이 한솥밤 먹던 이 나라 백성이 아니더냐
‘협력적 자주국방’하려면 제 나라 백성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더냐, 정녕 그렇더냐

민심은 천심이라.
제 나라 민심이 이젠 천심이 아니라, 제 나라 백성은 이미 지 상전이 아니라,
바다 건너 모 씨가 하늘인, 부시가 부르기에도 참으로 편한 ‘easy man’ 노 씨여,
배반의 땅, 불효막심한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대통령이여!
‘빨갱이’라면 그렇게 불러도 좋고, ‘폭도’라면 또 그렇게 불러도 좋아

아, 평택이여! 우지마라 대추리여!
짓이긴 땅 보듬고 쓰러진 폐허 위에 또다시 희망의 싹을 틔워 가리니,
아 평택이여! 제 나라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배반의 땅이여!
또다시 살아오는 5월 광주의 투혼으로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자주와 평화의 깃발을 세우고 말리니.
제 2의 광주학살 넘어,
마름질하는 대통령 넘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야 말리니!

이제 또 월드컵의 계절이군요. 아무튼 간에 저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터라 큰 기대도 설레임도 없습니다만, 대추리, 이 완전히 빗나간 미쳐버린 세월에 포박당해 함께 전진하지 못하고 월드컵의 함성에 잊혀져갈 그들이 생각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하냐구요? 왜요… 우리는 4년 전에도 월드컵 함 해보자고 모질게 동포를 내치지 않았습니까. 상암동에 살면서 월드컵 경기장 때문에 용역깡패들에게 쫓겨나야 했던 그들 말입니다.

나는 이 나라가 참 신기합니다. 채 반백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군인들에 의해 백수대낮 민간인들이 학살당해야 했던 엄청난 기억도 쉽게 잊어버리고 또 다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핍박하는, 역사가 역전되는 아이러니컬한 세월에 그저 몸을 맡길 뿐이라니요. 지만원 이 개새끼는 하는 말이라곤, 시위대에게 발포를 해야 했었느니 이따구 개수작이나 부리고, 거기에 응응 동조하는 꼴통들이 전국에 수십, 수백만이 넘을텐데도 사람들은 결코 아픈척을 안하는군요.

사회윤리학 시간에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흔히 머리, 손, 발 등으로 어떤 사회를 비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상처가 생겨 고름이 날 경우 환부를 도려내는 것을 두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회의 병적인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도려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과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도려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환부는 그냥 환부가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라고.

평택, 대추리 사람들은 결코 환부가 아닙니다. 병적인 요소도 아니구요. 그냥 그분들은 여태껏 농사짓고 살아 왔던 땅에서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추리가 친북반미 세력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굽쇼? 차라리 그들이 우익이고 싶다면, 좀 제대로 된 우익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디 다치는 사람 없이 평화로운 대추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면서.

푸울 메탈 자켓

먼저 이거부터 읽어보시고,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해 ‘국민’이나 ‘국가’, ‘애국’, ‘국익’같은 허구적 관념, 어 그러니까 이데올로기가 결합하기 시작하면 이 사안은 더 이상 사안이 아니라 ‘베트콩 수색’이 된다.

‘베트공 수색’

총을 난사할때 도망가는건 다 배트콩이지 도망가지 않는것들.? 그 놈들은 훈련받은 베트콩이지.

왜냐하면 ‘국민’, ‘국가’, ‘애국’, ‘국익’ 같은 단어의 개념 (이데올로기로써가 아닌 그 자체로써의 의미) 은 이 사회에서 그대로 어떠한 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 ‘효도’, ‘우정’, ‘충성’ 등등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선한 것에 반대하는 반동세력으로 여겨지고 그 반동세력이 어떤 주장을 펼치건 간에 검은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검다, 는 식이 된다.

정말 그들의 말대로 MBC는 매국노 집단일 수도 있고 PD수첩 PD는 개새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 있어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나 무섭다. 연구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나 견해 없이도 몇몇 신문기사를 읽고 맹렬한 애국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2002년에도 그랬지. 상암동에 경기장 만든다고 거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쫓겨나다시피 했고 내 기억에 아마 철대위도 생겼고 했던 것 같다. 집을 빼앗긴 (보상금 받았고 어쩌고 이런 말은 의미 없는거 아시죠?) 자들에게 있어서 2002년은 매우 우울한 해였을 것이고 월드컵은 전쟁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살 집을 빼앗는 월드컵 반대, 서울시 정책에 반대, 하면 어이없이도 그들은 곧장 빨갱이가 되거나 매국노가 되어야 했다. 왜? 월드컵은 국위를 선양하는 행사였거덩. 국위에 반하는 것들은 모두 개새끼, 매국노거덩. 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위기에 휩쓸려 빨간 티를 입고 종로 거리를 미친듯이 활보할 때, 신문/방송에서 온통 한국민의 저력이니 87년의 재현이니 찬사와 평가로 가득찼을때 그깟 자기 집 빼앗겼다고 월드컵 반대하는 새끼들은 길바닥이거나 여관이거나에서 우울하게 나를 지켜봤겠지.

어쨌든 그렇다. 의식적인 것이던 무의식적인 것이던, 세뇌당했던 학습한 것이던 간에 그것 이외에 불변하는 확고한 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세상에 그런건 없다. 국가가 최고의 선이면, 보트피플은 개망나닌가? 애국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면, 국적을 바꾸는 것은 패륜인가? (나는 이것에 대해 매우 웃긴 현상을 하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이 타국으로 귀화하는 것을 매우 혐오하면서도, 타국 국민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것은 매우 환대하고 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설명만이 존재한다면, 그 둘은 똑같이 혐오스러운 짓이거나 자랑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불변하는 것들이 있다면 아마도 – 사람과 자유, 음악 그리고 사랑. 뭐 이런 것들이겠지.

이 땅에서 살아가기

아주 러프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의사코드(pseudo code)를 작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while(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 {

돈을 번다.

}

while이란 구문은 () 안의 조건식이 참일 경우에만 {}안의 명령을 반복해서 실행한다. 이 경우, ‘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가 거짓이 될 때까지, 즉 ‘나는 이제 그럭저럭 살만해졌다.’가 될 때까지 ‘돈을 번다’는 명령을 실행한다.

내 스스로 보기에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모든게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내내 이렇게 살고 있다. 살만해질때까지 끊임없이 돈을 번다. 그 외에는? 없다.

프로그래밍에서 while은 상당히 주의깊게 사용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구문이다. 왜냐하면 종료조건(괄호 안의 조건식이 거짓이 되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프로그램은 while문 안에서 무한히 명령을 반복실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경우가 예상하지 못하게 발생하는 것을 두고, 프로그램 버그라고 부른다.

위 의사코드는 일견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의 머리에 세뇌된 환상같은 이 선언이 여전히 루프(Loop)를 도는 한 저 코드는 유효한 코드다. 우리는 끊임없이 종료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즉 부유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명령을 반복실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우리집 구성원은 전부가 일을 한다. 부모님은 십수년 넘게 자의에 의해서 손에 일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몇 번 타의에 의해 일을 쉰 적이 있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을 한다. 동생도 이래저래 쓰는 돈이 많긴 해도, 제대 후 한번도 아르바이트를 안한 적이 없다. 나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밤을 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가족의 종료조건은 먼 것 같다. 나는 이게 잘 이해가 안된다. 우리 아버지는 근 삼십년간 이런저런 일을 하셨는데, 삼십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모아 놓은 재산은 마이너스다. 어머니의 재산도, 동생이나 내 재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 환상대로 열심히 일했다. 죽을만큼 일했고 사치도 안했다. 때마다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강남의 어떤 가족 얘기를 듣는다. 우리 가족은 이십칠년동안, 내가 열일곱살이었던가 했던 해 단 한번 강릉으로 1박 2일 피서를 갔었다.
왜 우리 가족은 부유해지지 않는 것일까? 부유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돈때문에 걱정하고 살아야 하지는 않아야 할 때가 되야하는건 아닐까? 여전히 압류한다 어쩐다 나불나불 최후 통첩같은 엽서가 배달된다.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걸까? 그러면 나아질까?

우리에겐 보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한 열번쯤 명령을 반복 실행해도 구문이 종료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구문을 종료시켜야 한다. 돈이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정부가 대신 갚을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무이자 오십년상환, 정도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보조해라.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만 있어도, 이런 일은 가능해진다. 대기업한테 좀 더,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세금을 걷어라. 그러면 while은 돌 필요도 없다.

이상, 폭우를 뚫고 새벽에 차례차례 일 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때문에 몇 자 적었다. 아.. 썅, 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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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던가.. 그 날이 5월 18일인줄도 모르고 하루가 지나서야 깨닫고는 나조차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올 해엔 그나마 일주일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 좀 낫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엔 광주라도 내려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가게 된다면.. 생에 두번째 찾는 광주가 될 것이다.
첫번째 방문은, 좀 이상한 일을 겪기도 했던 환경현장활동에서 이뤄졌다. 영광으로 갔었는데, 가는 길에 잠깐 금남로를 들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2002년 일이니까 뭐.
광주, 하면 난 이상하게도 기형도가 떠오르는데, 기형도 전집에 보면 짧은 여행의 기록의 경유지,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사진에서 기형도는 무언가 잔뜩 표정을 찌푸리고 있다. 역광을 피하기 위해서 태양을 바라보고 사진을 (그러니까 소외 말하는 셀카) 찍어서 그런거겠지.
그는

“그곳은 십자가로 만든 땅인가, 넋들 위에 솟아난 도시인가. 나는 아무런 감정도 예감도 없이 무등(無等)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광주행에 앞서 밝힌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망월동행 차편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1년 전이지요. 7월 5일이에요. 3남매 중 큰아들이지요.” 한열이 어머니는 한숨을 토하듯, 그러나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멋모르고 캔만 빨아먹는 어린 손녀딸의 손을 힘들여 쥐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의 뒷모습과 너무 흡사했고, 그것은 감상도 계시도 아니었다. 망월동 공원 묘지 제 3묘원은 찌는 듯이 무더웠고 그것은 고의적인 형벌 같았다. 나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묵묵히 묘원의 인상만 자신없이 기억 속에 집어넣었다. 광주의 충장로와 금남로 교차로에 있는 이곳 충금 다방에서 광주와의 첫 만남을 적는다.

다모레스크의 검. 적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 너무나도 날카로워 만나는 상대마다 상처를 입히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귀신의 검.
그러나 우리는 항상 적보다 많다. 언제까지나 많을 것이다. 다모레스크의 검이 우리를 찔러 피가 흐르게 해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검이 지쳐 스스로 자신의 주인을 찌를때 까지도 많을 것이다.
적은 항상 이겨야 하지만, 우리는 한번만 이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