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그건 아주 검은색이었지. 모닥불 말야. 굵은 강모래 위에 피워 놓았던 그거. 적은 내부에 있다. 불길은 아주 검게 타들어가다 졸아붙어. 무거운 눈꺼플이 감기기 시작하면 병풍같은 절벽 위로 하얀 달이 떠올랐어. 나는 노래를 불렀지, 차가운 물이 날 휘감을때… 하는 노래를. 삼십육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서도 나는 추워서 벌벌 떨었다.

머리가 복잡해.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이 불어 넘치는 것처럼, 머리 속이 꼭 그래.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라. 아주 추웠지. 달빛이 눈처럼 내렸어. 뽀드득뽀드득 얼음물을 건너서 호빵같은 돌들을 타넘다보면 아주 제대로 돌았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어.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야단을 치고 누구는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목마르다. 누구 나를 위해 잔에 소주를 채워줄 사람 어디 없소. 없어.

한 세번째 말하는건가 싶은데, 왜 이렇게 나는 옅어지는걸까. 외롭다거나 슬프거나 그런 감정을 말하는게 아냐. 물론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편의점 가판대 위에 놓인 물건들같아. 아주 공평하게 진열된 감정들. 말하고 싶은건 그냥 옅어진다는거야. 말 그대로, 점점 더.

아무튼 난 여름 밤이 싫어.
그리고 또 이렇게 며칠전에 쓰다 만 글의 꼭지를 억지로 더 쓰려고 쥐어 짜는 것도 싫어.

어떤

갑자기 황지우를 읽었다. 사실 나는 황지우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데, ‘흐린주점..’ 시집 발간 기념으로 사인회를 했던 수(십)년전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였다. 그때 나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스승님에게 바칠 책을 골라보려고 나간 것이었고 마침 때가 그 날이었다. 뱀처럼 길게, 지렁이처럼 서 있는 사람들 뒤에서 한참을 멍하니 교보문고 천장 유리에 비친 모습들로 시간을 떼우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서 시집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름이 뭡니까?’, 내 이름으로 하긴 그랬고 스승님의 이름을 댔다. ‘뭐라구요?’, 다시 한 번 스승님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적은 시집을 건내주었다.

수(십)년이 지났다. 스승님은 (물론) 다 나았다. 그러나 어떤 조짐들, 이를테면 회복 불가능의 유리판에 생긴 금 같은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듯이 그는 다시 이륙하는 법이 없었다. 까닭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상처받는 일이 많더라도 힘내라, 고 오늘자 스포츠신문 79년생의 운세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황지우를 읽었다. 매우 아득한 느낌의 황지우. 시인들은 매우 엘레강스하게 망가지는 반면에, 우리는 핵연쇄반응처럼 망가졌었다. 절대 다시 재조립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영이는 동해인가 목포인가에 가버렸다고 하고 원식이형은 미아처럼 터미널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때 밤을 새고 까칠한 살갗으로 멍하니 바깥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안토니오 뽈시오네의 기타소리같은 명멸하는 빛깔로 흰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삼십도를 웃도는 열기가 휘몰아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이십삼도에 맞춰진 에어컨 바람 아래서 피아노를 쳤다. 딸깍딸깍소리만 나는 고장난 피아노였다.

모든 것은 다 제자리에

아무도 말을 않고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이곳이 마치 수심 1000미터 아래를 고요히 항행하는 잠수함 내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에어콘과 서버만 웅웅 소리를 내고, 가끔 메신저에 누가 접속했다, 는 신호음만 들린다.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진척은 늦고 아무래도 휴가 이야기는 꺼내기 힘들게 될 것 같다. 휴가는 커녕 주말에 단 하루라도 좋으니 쉬었으면 좋겠다고도 말 하기가 쉽지 않다. 결혼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하는 어떤 사내가 된 기분이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서로에 대해 다 모순적이다. 그래서 무생물 기계처럼 나도 웅웅거리며 작게 진동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입력에 대한 출력만 하고, 어떤 스스로의 판단이나 결정도 필요없는 평온한 내부 공간처럼 나를 힘껏 구부려 유리처럼 투명한 어떤 상자 안으로 구겨 넣는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시간은 사라지고 나는 언제나 있었으므로, 조금씩 고통스러운 날들로부터 이격될 수 있을 것이다. 왈츠처럼 평화롭게.

바람이 불어 올까. 장마가 끝나자마자 다시 장마는 시작된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는 확실히 종료되는 것들은 없다. 적어도 내년에 다시 봅시다, 만 있었다. 한번 썼던 코드들은 언젠가 다시 작성해야 한다. 즐겁지가 않다.한번 내가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생각하다가 너무 끔찍해서 그만두었다. 아마도 희망하는 것들을 볼 때 나는 그것들을 스크린에 투영되는 영화보듯이 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된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도 웃긴 것 같다. 휙휙, 삶을 넘겨가며 살 수 있다면 누군들 오분 이상 살 수 있을까. 이것도 봤고 저것도 봤고, 하면서 끝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겠지.

아니. 좋은 음악, 좋은 친구, 좋은 술과 먹을 것. 좋은 저녁만 있으면 돼.

몸이

에릭 크립튼의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 가운데 “그래 내가 보안관을 쐈다.”를 들으면 피가 끓는다. 목구멍으로부터 간질간질하니 까끌한 욕설같은게 튀어나오려고 발악을 한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 가사 가운데 “내가 쏜건 보안관이지 보안관 대리 따위가 아냐” 라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이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쏘려면 보안관 정도는 쏴야 하는거 아닌가. 같은 교수형이라면 차라리 보안관 살해죄로 죽는게 낫지, 안그래? 아님 말고.

아무튼 요즘 상황이 좀 그렇다. 크게 한 건 하고 잠적할까 하고 생각중이다. 그리고 이 잠적은 아마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잠적하면 슬퍼할 많은 팬들이 있기에.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내 입에서 이런 고백이 쑥스럼 없이 튀어 나올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네. 아님 말고.

내가 없어도 다들 잘 살고.. 내가 없어도 너는 어제와 같고. (아마) 나에게도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 검은 현무암이거나, 겠지. 그정도가 딱 좋다. 검은 현무암. 서사모아 제도 같은데서 지구 생성부터 지구가 폭발할때까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현무암 말이다. 파도에 녹기도 하고 바람에 쓸리기도 하면서 차츰 키가 줄어드는 나는야 검은 현무암(이 되고 싶다). 아님 말고.

이상한 꿈

첫번째 꿈은 월드컵 토고전이 있던 날이었나, 그날 뭔가로 인해 심히 의기소침해 있던 과장님을 꼬드겨 비교적 일찍 퇴근을 하고 저녁 겸 반주 해서 각자 소주 한 병씩 마시고 또 맥주를 몇 병인가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월드컵 경기를 미쳐 다 보지 못하고 잤던, 기분 참 싱숭생숭했던 날 밤에 꿨던 꿈이었는데, 그때 나는 갑자기 부는 강풍에 떨어진 간판을 맞는 기분으로 우울하게 그 분의 부고를 들었고 꿈 속이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아침이 되어 핸드폰 알람에 맞춰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고, 두번째 꿈은 그 뒤로 며칠이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잔업에 한참을 또 시달리다 억지로 청한 잠 속에서 옛 애인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표정이 어색해 싱숭생숭한 마음이 되었다가, 뒤늦게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찾아 온 후배가 슬쩍 나를 불러 한다는 얘기가 형 누나 이미 결혼했어요 하는데 그만 또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눈에서 나는 눈물은 거짓이라. 사실 눈물은 부어 오르는 목구멍에서 나는 것이고 덜컹 내려 앉는 심장에서 나는 것이며, 때로는 이야기 하는 입에서 또 때로는 글을 쓰는 손 끝에서 나는 것이라. 삐걱삐걱 흔들리는, 하루에 단 두번만 운행한다는 강원도 산골의 어느 버스에 두고 내린 손가방, 그리고 그 안에 넣어 두었던 잊고 싶은 것들을 적은 쪽지가 변덕스럽게 후회가 되어 한참을 뛰어가며 소리지르고 제발 좀 세워달라고 그 안에 두고 내린 것이 있다고 해도 버스는 나를 위해 되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런데 우리가 또, 아니 내가 또 언제는 현재의 것을 소중히 여겼던 적이 있는가. 현재는 인식하는 순간 과거, 였었고 그래서 내 아끼는 마음은 언제나 후회형의 것들.

아주 먼 훗날에, 혹은 아주 먼 과거에 우리는 때때로 블랙홀과 마주쳤다. 그 중심으로부터 스며나오는 불길한 중력들에 발생한 기조력이 우리를 길게 잡아 찢을 것이다.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깝게 말이다. 슬프냐고, 아프지 않냐고 묻지는 마시길.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까운 상태로 말이다.

태엽감는 사람

다시 대구. 발바닥 쯤인가, 오년 전엔 그게 겨드랑이에 있었지, 하는 태엽을 누군가 되감아 놓고 나는 삐꺽삐꺽 움직인다. 마음은 가라앉는데 마감일정은 그 반대로 분주히 가속한다. 사람이 사는 곳, 그 어디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펄펄 끓는 질척한 아스팔트 위 아지랭이는, 하지만 아주 가벼웁게 흔들리며 꼭 무언가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속삭여 준다. 하얀 뇌가 뚝뚝 녹아 흐른다. 심장은 에어컨 바람에 꽝꽝 얼어가는데도. 그럼 안녕,

하고 또 내일을 기다리고.

서울

올라오는 길은 술취한 등산객들과 멀미난 아이의 토악질과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간장독의 진한 냄새같은 퀴퀴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동에서 멀어질수록 서울은 가까워졌겠지만, 마음은 어느 사이엔가 샛길로 빠져나가 발광하는 초록 능선들을 헤매었다. 드문드문 산이 떨어지는 곳에 집들이 몇 개 서 있었고 그때마다 몇 개의 생이 떠올랐다 스러졌다. 잠깐, 기형도의 감회가 느껴졌달까. 죽은 자들, 죽어가는 자들은 정말 국토에 깊었다.

여덟시가 넘어도 밖은 훤했지만 어두워지기전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예감같은게 서늘히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제서야 네가 당도한 곳이 이곳으로부터 이억만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모든게

잠깐 머물다 떨어진다.

출장중

안동에 내려와 있다. 지급받은, 생에 첫 노트북으로 글을 써본다. 키보드가 무르다. 점심 뒤 밀려오는 2B연필같은 피로감이 발목에 찰랑인다. 여기는 안동이다. 도산서원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으로 나갔다. 높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안동. 서울의 가장 한적한 동네 조차도 이곳보다는 매우 소란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까무라칠 정도로 깊숙한 열기가 시내 위를 무겁게 내리 누른다. 움직임이 없는 도시. 간혹 살랑이는 바람 없이는, 나는 도저히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늙은 개 같은 도시. 저쪽에 하나, 또 저쪽에 하나. 도처에 웅크리고 있는 불온함들. 사람들은 매우 적대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이 도시의 숨죽인 적의에 비하면.

주의. 안동에 내려 올때, 특히 여름이 시작되려는 때에는 항상 여분의 심장을 준비하시오.

…2

어제는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나오려다가 어떻게 저떻게 해서 비교적 가깝게 된 과장님 한분이 맥주 한 잔 하고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맥주를 한 참 마시다가 학교에 가서 학회 후배들을 만나 소주를 또 먹고 가까스로 집에 왔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서 너무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 노곤해지려는 정신을 꼬집느라 세수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무려 석잔씩이나 마셨는데도 퇴근시간은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잠이 깨어서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다.

멀리 돌아가는, 그러나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훨씬 아늑한 버스를 타고 방배동 근처를 지날 즈음에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옆에 서 있는 어느 커플 가운데, 여자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저기, 어디까지 가세요?”

짐작으로, 그녀는 매우 피곤한듯 보였고 내 목적지가 멀다고 판단되면 다른 자리 옆으로 옮기려는 것 같았다.

“봉천동까지 갑니다.” (봉천 사거리에서 다시 한 번 버스를 갈아탄다.)

남자친구가 함께 있는 여자를 동정할 여유가 내게는 없다. 그리고 나는 냉담하게 읽던 신문에 코를 묻고 마음 속에선 여러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저도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저는 대중교통수단에서 장애인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형평성의 문제지요. 만약 지금 당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내게 있어서 그 동안 양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이 되거든요. 물론 이상한 생각이지요.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 세계는 타인과 공유가 가능한 간섭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속에서만 살아서 자기의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뱀이지요. 이것에 관해서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서 커플은 냉큼 그 곳으로 옮겨갔다.
갑자기 맥이 풀려서 읽던 신문을 접고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꺼낸다. 꽤나 얇은 책이어서 한번 읽고 이번이 두번짼데, 여전히 프랑스인들은 난해한 문장을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래서 그것도 몇 장 읽다 말고 가방에 집어 넣고 말았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본다. 하루가 서서히 착륙하는 저녁. 그 어느때 보다도 길게 늘어진 차량의 빨간 후미등들이 명료하게 빛난다. 다들 돌아가고 있다.
엠피쓰리가 없어도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언젠가 누가 한 말처럼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듣고 있지 않아도 잘 들린다. 머리 속에 저장된 수 많은 음원들 가운데 몇 개를 골라 되살린다. 매우 낡아서 가끔 원하지도 않는 구간반복이 되는 그런 음원들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나는

서서히 공기에 융해되기 시작했다.

구스타프 홀스트라고 알아? 정말 알아?
나는 잘 몰라. 언젠가 우연히 ‘슈만과 클라라’에서 다운받은 그의 ‘행성’이라는 교향곡을 듣고 있어. 어떠냐구? 더도 덜도 말고 딱 영화음악같아.

나는 오늘 정말 멍청하게 사고를 치고 말았어.
일정이 대박 급하게 당겨져서 오늘 저녁 열시까지 끝마쳐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빡시게 하다보니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겠더라구.
일단 한 파트를 다 끝내놓고 (서너시간 걸려서) 서버에 업로드 하려고 Ftp를 켰지. 그런데 내가 정신이 없는건지 정신이 내가 없는건지, 멍하니 있다가 그만 서버에 있던 파일들을 로컬로 내려받았지 뭐야. 아 젠장. 서너시간 걸려서 한 일이 완전 사라져버렸어. 덕분에 팀장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시간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버젼관리 시스템 같은거 적용 안하고 무대뽀로 Ftp업로드 다운로드를 반복했었는데, 아 정말 이런 일이 생기고야 만거야.

아무튼 구스타프 홀스트를 들어.
어제 많이 들어서 오늘은 좀 지겹다.
오늘은 뭘 들을까.
오늘은 라벨의 ‘거울’을 들어야지.
전에 외숙모가 준 와그너(바그너?) 씨디는 아직 뜯지도 않았어.
뜯어서 들었다가 맘에 안들면 참 그렇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