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시리다.

카메라가 없을때, 나는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것은 물론 글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왠지 글에는 나의 어떤 욕망같은게 투사되는 듯 하여서 몇 번 메모하다가 말았다. 마치 땅거미가 질 무렵에 점점 깊은 명도로 희석되는 피사체 같은 기분이었다. 자꾸만 ‘원래 거기 있던 것’들은 희미해지고 마지막엔 잘 분간되지 않는 뿌연 욕망만 남았다.

내게도 카메라가 생겼다. 2006년 물가를 감안해, 짜장면을 거의 500그릇 이상 먹을 수 있는 돈이 들어갔다. 내가 스스럼없이 나의 어떤 것을 위해 쓴 돈 가운데 가장 큰 액수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카메라가 생기니까 그렇게 기록하고 싶던 순간들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울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던 그 서글한 눈매였던가 아니면 따뜻한 촉감의 스웨터였던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쨍알대는 톤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목소리는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다.

누가 쓴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예술에 관한 어떤 아티클이 있었다. 아마 10년전에 컴퓨터 관련 잡지에 실린, 디지털 아티스트가 쓴 것이었다고 아주 힘껏 짜내어 기억해 본 바로는 그렇다. “形은 色을 능가해야 한다.” 별로 무엇을 찍어야 하나, 나는 뭘 원하는가 따위를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떠올린 단 한 문장이었다. 그것은 운이 좋으면 내 초라한 취미생활에 어떤 화두 비슷한 것이 될 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게 미니멀리즘적인 취미는 없다.

다시 이야기 하고 싶다. 짧게 얘기해서 기록은 무엇인가, 어떤 것을 남기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새로운 창작물은 사실 과거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무슨 거창한 작업을 진행중인 것처럼 보여서 매우 흡족하다. 빈약한 인간은 이런 식으로라도 자기 자신을 치장하고 위안해야 시린 뼈를 녹여서 몇 걸음 더 걸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겨울이 매우 싫어졌다.

어젠가 그젠가 워녕이놈과 지난주에 보기로 했던 ‘다섯개의 시선’을 봤다. 오프닝 화면에 ‘국가인권위원회’의 로고가 떠오르자 – 다섯개의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왠지 재미도 의미도 없는 공익영화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고 영화 자체는 매우 재밌었다. 재밌었다?) 아무튼 꼭 보시길 바란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장진감독을 매우 좋아하기로 했다. 임순례감독이 깜짝 까메오로 출현하는 장면도 있는데, 이 부분에선 모든 관객이 뒤집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글로부터 나는 당분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후로도 두서너번 술을 마셨다.

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국 결정했고 부모님께 (아직 어머니한테만) 말씀을 드렸다. 한참을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첫번째는 이 양반은 도대체 나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하나 없을 뿐더러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느냐, 라는 역질문은 이 경우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어머니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내 결심을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나는 어머니를 이해한다. (나는 어머니가 기획부동산에서 일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그녀가 사학법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며, 노무현을 씹어 먹을듯이 증오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정말 이제는 이해 할 수 있다.) 전혀 화는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깜짝 놀랐을 뿐이다. 두번째는, 나조차도 내가 하려는 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몇달간 생각한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나중엔 슬슬 웃음도 나왔다. 어쨌든 어머니는 개강 전까지 좀 더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물론 나는 더 생각할 것이다.

얕은 연못은 가벼운 바람에도 일렁인다. 그러나 바람이 잠시 약해지면 또 금방 잠잠해지기도 한다. 깊은 호수는 심한 바람에도 잠잠하지만, 한번 일렁이기 시작하면 바람이 약해져도 계속 일렁인다.

방금 생각났는데, 다섯개의 시선을 보고 저녁 겸 간단하게 원영이와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그 녀석이 “물론”이란 말을 우리는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 “물론”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의 반론을 미연에 저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며, 어쩌면 철학과 다녔다고 티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막 웃으면서, 나도 블로그에 낙서하면서 물론이란 말을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했으며 대개의 경우 네가 말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쓰임을 의도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아닐때도 있다.

나는 이제 점심을 먹고 미뤄두었던 일을 할 것이다. 오랫만에 라면을 먹을까 한다. 아무도 없는 정오, 어두운 반지하 주방에서 불도 안켜고 라면을 끓이는데에 나는 완전히 달인이 되어버렸다.

별명

내 기억으로는 꽤 오래 전부터 인 것 같은데, 어쩌면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이)주발’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름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 같은데, 딱히 듣는 입장에서 기분 나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설레이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화낸다고 해서 다른 식으로 불러줄 사람들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러고 있다.

얼마전에 무료해서 검색엔진에 ‘이주발’을 검색해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주발은 안파신단다. 당연하지. 누가 날 팔아.


이주발의 주인이 거지였던가!!! 아, 나만 몰랐던 것인가!!!

아주 오래전에 나우누리라는 PC통신에 한참 매진해 있을때, 그 곳 사용자 메뉴 가운데 이름으로 회원을 검색하는 것이 있었다. 종종 내 이름으로 검색해보곤 했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검색되었다.
이주헌은 난데, 그럼 저 사람들은 누구인걸까 하는 얘기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고 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는 찰나이며 더 이상 세계가 따뜻하고 아늑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다.

너의 의미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 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두껍고 어두운 커튼이 가득 닫혀 있다. 그 사이가 조금 벌어져 가는 틈이 생겼지만 새어 들어오는 빛은 삼일 전 소주집 구석에서 술에 취해 주워 삼은 하찮은 농담 두서너 마디보다 훨씬 더 적었다. 나는 밤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 동생은 벌써부터 부산을 떨다가 일하러 나갔다. 그러면 오늘은 아마도 월요일이겠지.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할까 하다가 덜컥 겁이 났다. 눈을 감을까 하다가 덜컥 겁이 났다. 왜 겁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겁은 대상에 대한 무지에 기인하는 법이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겁이 나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겁조차 나지 않는 인간이 되면, 그건 그야말로 미친 인간이 아닌가.

언젠가

스폰지형 귀마개를 하고 잤더니 간밤에 일어났던 일들이 모두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용욱이의 코고는 소리를 꿈에서 들은 것 같다. 어쩌면 그건 현실인데, 귀마개때문에 꿈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벽엔 김워녕이 핸드폰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고 빨려 나오듯이 잠에서 깼다. 아니, 또 어쩌면 나는 계속 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잠을 자고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 눈만 감고 있는 그런 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분간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싸하게 아리는 새벽, 반갑게 김워녕과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85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김포공항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고 나는 거기서 651번으로 갈아타야 했지만, 오랫만에 김포공항이고 해서 주변을 휘적휘적 돌아다녔다.


국내선 라운지에 앉아서 스튜어디스들을 보았다. (그녀들을 찍는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멋적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찍고 말았다.)


갑자기 이상하게 활력이 솟았다. 기묘한 일이다.

심야의 Ketil Bjornstad

점점 연말기분, 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주위의 분위기도 그렇고, 날짜가 지나가는 것도 왠지 기계적으로, 어제 다음이 오늘 오늘 다음이 내일, 하는 식이어서 지금이 12월이고 (게다가 벌써 중순에 가까워지고) 눈이 오고 하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 내가 그 모습 안으로 끼어드는 것이 어쩐지 정당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요일은 언제나 하루 종일 잠만 잔다. 또 슬슬 라이프사이클이 붕괴되고 있다. 지금은 새벽 한시 사십분인데, 아까 저녁 먹고 또 너무 졸려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가 이제야 일어난 것이다.
간만에, 그러니까 어제와 오늘 낮, 에 잠들었을때는 꿈을 꾸지 않았으나 (혹은 기억도 못할만큼 피곤했었으나) 저녁에 들었던 잠에서 꾼 꿈은 어렴풋하게 기억할 수 있다. 와, 간만에 야한 꿈을 꾸었다. 그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라 깨고 나니 좀 민망하기도 하다. 잔뜩 욕구불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꿈 속에서 내가 상당히 비범한(?) 성행위에 몰입해 있기도 해서 혹시 내 성향이란게 그런게 아닐까 하는 가벼운 불안감도 있고,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퍼블릭 도메인이니 구구절절이 그때 그의 그것은 어땠고.. 하는 식으로는 말 못하고.. ㅎㅎㅎ 그런데 어쩐지 조만간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이 얘길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주헌이는 괴상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다, 는 소문이 은은하게 퍼질지 모르겠다. 그러라고 하지 뭐.

영혼탐색기로 어제는 에릭 크립튼의 것들을 잔뜩 받았고, 또 그 이전에는 뉴스그룹에서 산울림 전집과 패닉과(참, 패닉 돌아온다던데..) 넥스트와 퀸의 것들을 잔뜩 다운받아서 한동안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산울림은 정말 최고였다. 그걸 설명한다는 것은 웃긴 짓이고… 넥스트는 간만에 들어보니 최악. 신해철이는 그냥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네..’ 시절이 최고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비범하며 여러가지 것에 대해서 고뇌하는 인간인지를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서 알리려는 것 같다. 얼마전에 맥주홀릭님 블로그에서 김윤아에 대한 아쉬움, 같은, 혹은 짜증남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고 그 아래 달린 샤XXX님의 댓글에서 무릎을 치고 말았는데, ‘감동없는 매혹’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나는 매우 맞다고 생각한다. 감동없는 매혹. 너무 무섭다.

어쨌든 Ketil. 사실은 이걸 틀어 놓으니 연말분위기가 난다, 는 이야길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쩌구 하는 음악은 아니다. 캐롤도 아니고, 연말에만 자주 들리는 곡도 아닌데 그냥 이 말랑말랑한 피아노 멜로디를 들으니, 문득 간간히 눈발이 나리는 강남역이나 밤이 깊어도 사람들 헤어질지 모르는 종로, 같은게 떠올랐다. 그렇다고 내가 연말에 간간히 눈발 나리는 강남역에 가봤다거나, 헤어질지 모르는 종로에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분위기다.

요즘엔 연말만 되면 솔로부대 단결하라 어쩌구, 올해도 케빈과 함께 뭐 이런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나도는데, 그런 얘긴 쉽게 해선 안된다. 크리스마스야 뭐 특별한 날이겠냐만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 날에 애틋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왠지 겨울이 더 추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포토샵을 키고 이미지를 보정하며, Ketil을 듣다가 강남역에서 누군가와 반갑게 조우하는 나 자신을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연말에 강남역은 왠지 지옥같을 것 같다.)

못먹는 것

어쩌면 이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어떤 옷이 내게 잘 어울리겠거니 하거나 어디서 살면 정말 좋겠거니 하는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부분 입거나 먹거나 자는 것, 이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써놓고 정말 내가 그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편식하지 않는건 좋은 습관이라고 하고 다행스럽게도 편식같은건 모르고 자랐다. 어린 시절엔 서울 근교의 농(깡)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귀했다.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해서- 그런게 아니라, 군것질꺼리를 살 돈이 있어도 구멍가게에 있는 것이라곤 새우깡, 뭐 그런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 과자같은건 잘 먹지 않았고 차라리 뒷산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 산딸기, 개암, 칡뿌리, 머루, 다래… 뭐 이런걸 먹거나 했고, 가끔은 한동네에 같이 살았던 외할머니와 함께 막걸리에 설탕을 타서 한사발씩 마시곤 했던게 전부였다. (막걸리에 설탕을 타면 최고의 음료수가 된다.) 이렇다보니 뭔가를 강렬하게 먹고싶어하는 열망같은게 희박해진 것 같다. 산에서 나는 것들이야 내가 안먹어도 거기 있는거고 사실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지냈던 것이다. 구하기가 좀 힘들지만, 산에서 다래를 만난 날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래는 엄청 달거든요. 또 어린 마음에 칡술을 담근다고 산에서 통통한 놈으로 칡을 캐와서 정성들여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마당에 묻어두었을꺼에요. 나중에 꺼내서 아빠 드려야지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그런데 그 뒤로 칡술을 묻은 기억을 까맣게 잊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죠. 지금 가보니 제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그 위에 콘크리트 빌라가 생겼더군요. 아마 지금쯤 꺼내면 대략 20년은 된 칡술이 되어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정말 먹고 싶은게 없다는 말은 곧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잘 먹는다는 말이 되는 것.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게 하나 있는데… 나는 멍게를 못먹는다. 뭐 이 악물고 먹으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다지먹고 싶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멍게 킬러. 한번은 멍게 한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까먹은 적도 있다. 으웩.

동생도 가리는거 없이 잘 먹는데, 이 녀석은 신기하게도 굴을 극도로 싫어한다. 걘 ‘굴’ 한마디만 해도 기겁을 할 정도다. 어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티븨에 굴요리 스페셜, 뭐 이런게 나왔는데 녀석은 티븨를 돌리지도 못하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굴을 양식하는 사람들을 다 구속해야 된다느니, 굴을 즐겨 먹는 사람들은 다 인간말종이라느니 온갖 험한 욕설은 다 해댔다. 옆에서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은 그다지 가리는 음식이 없는듯하다. 대충대충 있는거 먹고 없음 말고, 이런 식이다.

음식은 큰외숙모가 정말 잘하는데, 가끔 외갓댁에 무슨 모임이라도 있으면 나는 정말 기쁘다.

요즘은 매운 음식만 먹으면 자꾸 토하거나 설사를 해서 가급적이면 안먹으려고 한다.

해삼도 무척 좋아함. 하지만 못먹은지 육천만년은 된 것 같음.

입김이 하얗게 퍼져, 멀건한 보름달이 구름도 없는 하늘에 뻔뻔히 떠 있네. 얼마 안되는 엄마 월급, 내가 사라지면 다 누나에게 줄 수 있겠지. 누나는 행복해지겠지. 어떤 중삐리는 뻔뻔하게도 겨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띵동-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어떤, 스물 여섯살짜리 여자의 일상을 대담하게 엿봤다. 24시간이 지나니까 서서히 실감되기 시작하는, 살얼음같은 일상. 불안한 ‘즉흥환상곡’의 환상이거나, 접혀서 수첩 사이에 꼽아 놓은 몇천원이었던. 나는 시간마다 분열된다. 왜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왜냐하면 분명히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진보를 꿈꾸거나, 따뜻한 겨울을 그리워하거나, 일산에 음악적 취향이 같은 친구를 두었거나, 새벽 두시에 느닷없이 누군가 날 불러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가수를 발굴하거나, 며칠째 공무로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어긋나거나, 점점 속이 안좋아져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거나, 잠을 서른 다섯시간씩 자거나, 만 삼천원짜리 웰트화를 사거나, 엄마하고 싸우거나 하는 나, 와 나, 와 나 사이의 나, 였거나 나, 가 될 나, 거나, 말거나. 수많은 나 들 사이에서의 화해, 같은게 힘들어진다. 내가 원했던 나 아닌 내가 되려는 시도는 이런게 아니었어. 내가 아닌게 되려던거지 수많은 나를 원한게 아니야. 아, 토하고 싶어.

내가 가진 거라고는 손재주뿐… 이걸로 뭘 할까… 미술? 이미 늦었어…

어떠한 우울을 유발하는 것, 불안이거나 공포, 강박, 부담을 야기하는 것을 따로 분리해 둔다. 그것을 여기에 적는다. 추위를 지켜본다. 아, 하나님. 제발 날 지켜주세요…

쓰고, 남기고, 결합시키고, 굳힌다. 방부제처리를 하고, 추상의 감옥, 전자적 실체의 세계에 가둔다.

프레드릭 폴의 SF 단편, ‘설계된 인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시키는만큼, 현실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기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더 뮤직 인 더 일산

그러니까, 뜻밖이었고 비일상이었으며, 충동적이었거나 불협음 같은 이었다. 김워냉군은 “간만에 서로 안취한다?” 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점심을 먹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종로 어디쯤에 있던 일식 선술집에서 우리는 소주와 뭐라더라, 사케, 인가 하는걸 마셨다. 사실 취할만큼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지 뭐. 또 술집을 나와 애매한 시간에 한 잔 더, 를 외쳤고 바에 가서 양주를 사먹었다. 나는 꽤 돈을 썼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받았으니 괜찮은 거래다, 싶었다. 아우, 우린 음악 얘기를 두시간 가량 했다. 롹과 포크, 재즈에 대해 얘기 했고 아무래도 음악에는 어떠한 내재적 실체, 진리, 간주관적으로 지각 가능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얘기했고 자연히 그리스(Greece)도 얘기했다. 민호, 혜란이, 원주에 대해 갖는 막연한 죄송함 감사함 존경함에 대해 얘기했다.

오 마이 갓뜨, 나는 지금 일산이다. 녀석의 집이고 어제의 그 다음 날이며 혼자다. 녀석은 이미 출근했다. 나는 곧 이 집을 나가야겠다.

어제 밤, 이 아담한 원룸은 작은 콘서트장 – 7년전 사당동의 재현, 혹은 마지막 우드스탁의 재현 – 이 되었다. 간만에 새벽 2시,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이 크게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들었다. 킥킥킥킥. 야, 나 미치겠다 이 음악은 진짜다, 가만 있어봐 이 부분이 아냐, 뭐냐 이보다 위대하냐?, 요 다음 이 쾅! 그래 이 쾅! 쾅! 쾅!, 자끄 루시엘 트리오의 에릭 사티는 즐거우면서도 기품이 있었어. 그러나 그 어떤 노래보다도 내가 발굴(?)한 The Czars의 Drug보다 강렬하진 못했지. 이걸 내가 틀어주는 순간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음악이 끝나니까, ‘야, 다시 한 번 더 듣자.’, ‘야,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 ‘…’
이거 매형한테 들려주면 끝나버릴까? 완전 죽을껄. 킬킬킬킬킬!!!

그러나 지금은 조용한 원룸. 방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그의 일상과 먼지같은 고독들이 스멀스멀 유령처럼 기어나온다. 견딜 수 없어 틀어 놓은 티븨에선 이경규가 뭐라뭐라 시끄럽다. 어떤 경우에, 티븨는 충분히 한 인간의 대용을 한다. 윤대녕의 ‘사슴벌레 여자’의 사슴벌레 여자는 냉장고가 한 밤에 쿵쿵대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넓직하고 든든한 한 남자의 등 같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애처롭다. 조금은 멜랑콜리해진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암튼.

Tom Mcrae

Day 4 of the Hotel Café tour, sharing a van with this many singer-songwriters was bound to cause trouble. After a peaceful first day several people are now trying to grow beards, form independent political parties, or passionately discuss 16th century French poetry… while still arguing about who’s to blame for global warming. I should have been in a rock band, snorting coke from a hooker’s navel and wearing leather trousers. In fact I still might. This is America after all, where anything is possible. Where any idiot can grow up to be President…. (하략)

호텔 카페 투어 4일째, 많은 싱어-송라이터들과 차를 함께 타는 것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었다. 평화로운 첫째날 이후로 사람들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거나, 끼리끼리 모여 정치적 모임을 갖거나, 열정적으로 16세기 프랑스 시에 대해서 토론했다. 물론 전지구적 온난화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논쟁도 빼놓지 않았다. 난 차라리 가죽바지나 입고 코카인이나 빨아대는 락밴드이고 싶었다.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여긴 모든게 가능한 아메리카니까. 심지어 좆같은 새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9월 10일, 보스톤 Tom Mcrae

낮에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랑 벤치에 앉아 간만에 뮤직배틀을 했다. 뮤직배틀이란 차례로 상대에게 누구나 듣기만 하면 인정할만한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난 후에 “인정”이라고 말하면 다시 상대방 차례로 넘어가고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넘어간다. 이 배틀의 좋은 점은 승부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매우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엔 나와 비슷한 취향 – 이 음악적 취향이라는 것은 영국 락밴드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음악가중에 요절한 사람이 한명이상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내 경우 너댓명은 되는것 같다.) – 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아무튼 내가 날린 선방은 Tom Mcrae의 The Boy with the Bubblegun이었고 녀석은 주저없이 인정했다.

집에 돌아와 잠깐 이런저런 일을 하고 기묘한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한 숨 잔 뒤에 지금 새벽 네시에 일어나 어제 일을 떠올린다. 톰 맥레이. 번역하다 만 그의 9월 10일자 일기를 꺼내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음악을 듣는다. 톰 맥레이의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 사람이 장르적으로 포크라는 것과 전체적으로 그다지 맹렬한 음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적인 격렬함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누구나 인정할만한 싱어-송 라이터 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그쪽에서는 그를 밥 딜런이나 닉 드레이크, 폴 사이먼과 같은 희대의 악마적인 시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평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청년 김민기 정도로 이해가 될까.

아무튼 당분간 다시 이 녀석의 음악을 들을 것 같다. 요즘 한동안 정신이 산만해서 가사가 있는 노래는 듣지 못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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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

알고보니 담배에 관한 공익광고 가운데 여자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박 문대던 거였나 아니면 하수도 맨홀에 얼굴을 쳐박던 거였나에 삽입된 You cut her hair라는 노래도 이 사람 노래다.

일기

별로 술을 마실 일은 아니었는데, 언제나 후회는 때늦게 시작되듯이 그냥 먹기 시작한 술이 과했는지 새벽 내내 나는 위 속의 모든 것을 게워냈다. 지저분한 것들이 먼저 튀어 나왔고 끝내는 씁쓸한 체액까지 꼭꼭 씹어 뱉어냈다. 그리고 십분뒤엔 똑같은 지옥이 반복되었다.

아침엔 목구멍이 화끈거려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식구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버린 어둑한 방안에서 나는 그냥 멀건 미음을 끓여 입에 떠 넣는다. 언뜻 발치에서 두꺼운 안경태를 연신 손으로 밀어 올리며 개다리소반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는 주금깨 소녀가 환상처럼 보인다. 내가 신음하자 그녀는 당황해서 내게 돌아보고, “어디 좀 괜찮아? 물 좀 갖다줄까? 죽 좀 먹을래?” 하며 걱정해준다. “아아, 그냥 좀 속이 쓰려서. 아까 먹던 미음 좀 갖다줄래?” 그녀는 아뭇소리 안하고 미음을 적당히 데워서 간장과 함께 내온다. “그러길래 빈속엔 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엄밀히 말해서 안주하고 같이 먹었으니 빈속은 아니었어.”, “그러셔.” 하고 토라지는 그녀. “뭘 쓰고 있었어?”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냥 옛날 얘기. 잊어버릴까봐.”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얘기.

하하하, 웃으면 좀 나으려나.

근데,
나 사실 정말 외로웠던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