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2007. 11. 3
둘러보다가 유투브 링크가 죽어버려서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아마도 유투브쪽의 제프 버클리는 온통 된서리를 맞은 모양이네요. 다른 곳의 제프 버클리 클립들도 다 죽거나, 사용중지 상태입니다. 다행히 한국의 클립들이 살아 있어서 대체했습니다.

나는 정말 죽은 놈들 한번씩 다 만나서, 말은 안통하겠지만 진탕 술 한 번 마셔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어요. 죽을때 안아팠냐고.
—>
음악을 하는 외사촌동생이 있다. 녀석은 드럼을 친다. 나는 사실 녀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는 한 동네에 살았고 녀석은 집에 레고블럭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자주 녀석, 그러니까 외삼촌댁에 놀러가서 함께 레고블럭을 가지고 놀았다.
너무 여렸고 자주 울었다. 그게 어떠한 성격적 결함이라고 한다면, 인간 중에 결함이 아닌 이가 없을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녀석은 그냥 좀 소심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녀석이 학교를 어떻게 다녔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무슨 지랄을 하고 다녔으며 왜 대학을 포기했는지, 왜 합기도를 배우러 다녔는지 왜 음악을 시작해야만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아주 길게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하고 나보다도 껑충 더 큰 키로 나타났을 뿐이다. “형, 잘 지냈지?”, “어, 그래. 짜식.”

이번에 녀석이 새로 컴퓨터를 맞춘다고 했고 내가 조립을 했다. “주헌아, 강욱이 음악하니까 다른건 몰라도 스피커는 좀 좋은걸로 해줘야 한다.” 외삼촌이 부탁을 하셔서 열심히 골랐다. 밤늦게 지하에 따로 있는 녀석의 방에 가서 컴퓨터를 대충 설치해주고 우리는 스피커 조립에 들어갔다. 수많은 선들을 간신히 제대로 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 음악 좀 깔아봐라.”, “형 이거 한번 들어봐.” 했다. 처음에 녀석은 며칠 뒤 공연이 있다며, 공연에서 할 음악을 하나 들려줬다. 익스트림의 무슨 곡이었고 우리는 그 곡을 들으며 막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형, 형 아마 이거 좋아할꺼야.” 하면서 녀석은 멜론 플레이어에 접속해서 제프 버클리를 고른다.

Grace – Jeff Buckley

매우 기묘한 곡이었다. 아득한 과거에 들었던 먼 미래의 꿈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제프 버클리는, 그래 그는 90년대 필드에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 약에 찌들어 자살했고 김광석이도 자살했고 닉 드레이크(사실 닉 드레이크는 70년대 중반에 자살했지만)도 자살했던 그때다. 그 이전도 그랬지만, 특히나 90년대에는 자살이 하나의 심벌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이상한 나날들(strange days)이었다. 뮤지션들은 인기에 질식했고 외부로 부터 오는 영감들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약에 의지해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서 만난 것은 무한한 검은 지옥 뿐이었을 것이다. 묘사되는 것처럼 뜨거운 불길도 없고 피부를 벗겨내고 소금을 뿌리는 거대한 뿔의 악마도 없는 지옥. 목적도 방향도 알 수 없는 무중력의 지옥.

“형, 근데 이런 음악하면 다 죽는다.”

나는 뜨끔했다.

“왜?”

“얘도 자살했걸랑.”

제프 버클리. 그는 97년 두번째 앨범을 녹음하다가 잠시 친구와 여행을 즐기던 도중, 미시시피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그러나 곧 사라졌고, 일주일 뒤 인근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촌동생은 현재 공장에서 일을 하며 틈틈히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프레스기에 손을 다쳤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스틱을 쥘 수 있다. 녀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Everyday Fallin’ In Love” 라는 현란한 이미지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다.

grace”에 대한 6개의 생각

  1.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자꾸만 뒷걸음질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 내 얼굴에 써놓기는 뭐하고 삐라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집 담장에 처덕처덕 발라놓으면 하루도 못버티고 떨어질 낙서라서 여기쯤이면 어떨까 싶었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머리속의 그것들을 쏟아 내려고만 하면, 그 시도만으로도 기화가 시작되어 끄트머리를 잡아 당길라치면 이미 존재의 기억까지 동시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화장실 벽의 낙서건 하드커버 10권짜리 대하소설이건 뭔가 글자로 적을줄 아는 사람은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착색되지 않은 것은 없어.
    읽어보다가 The Doors의 노래가 생각나서(strange days) 시작했지만, 머리하고 꼬리가 잘린 생선 도막처럼 뭔지 나도 모르게 되었다. 리셋 해버리기엔 귀찮다구.

    • 당신도 병에 걸렸군요. 계절 중에 봄이 가장 싫지요? 멍게를 못먹고… 요즘에 이상하게 초콜렛을 자주 찾지는 않나요?

      나는 상관없으니, 맘대로 와서 낙서해도 괜찮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