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우산은 천국에 간다.

친애하는 민주애국시민여러분께.

먼저 제 소개 올리겠읍니다. 저는 인천 만수동에서 수십년 넘게 살아온 토박이로써, 인생의 대부분을 우산을 만들거나 고쳐 되파는 일로 보냈읍니다. 칠십년대에서 팔십년대가 지나는 즈음에 산업화로 우산을 만드는 큰 공장들이 생기기 전까지만해도 저는 우산일로 재미를 좀 보았읍니다. 기술이 있는 인간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저는 제 자식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큰 공장들이 생긴 뒤에도 저는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공장에서 만든 우산은 제가 여적까지 만들던 것보다는 부실해서 천이 찢긴다거나 살이 나가는 등의 고장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는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했기 때문이지요. 공장에서는 우산을 고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 하지 않았읍니다. 저는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우산을 고쳐서 천원이나 이천원을 받았읍니다. 자식들도 장성해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큰 돈이 들 곳은 없어서 그런 돈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읍니다. 자식들은 항상 이제 그런 일은 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지만 평생을 우산살만 만지며 살아온 사람이 집에서 쉰들 무슨 낙이 있겠읍니까?

그렇게 또 수십년을 살았읍니다. 자동우산이 나오고 이단에 한 단을 더한 삼단우산이 나오고 꽃무늬가 그려진 우산이 나오고 천의 재질이 제가 처음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을때의 귀한 옷보다 더 좋은 재질로 바뀌어도, 우산이란게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평생 우산을 만지며 살아왔기에 요즘 시대에 나온 우산을 고치는 일도 어렵진 않았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고장난 물건 그대로 버리고 새로 사지 않읍니까? 하물며 우산 하나가 큰 돈 들여 사야 하는 물건도 아닌데 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 일은 줄지를 않았읍니다. 오히려 더 늘었지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고쳐서 쓸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더 많은 우산을 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니까 요는 이렇습니다. 만약에 우산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한 푼의 사람들만 우산을 고친다고 생각하면 말이지요, 그런데도 우산을 고쳐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우리는 우산을 더 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깜짝 놀랄 일을 알게 되었읍니다. 제 자식놈 가운데 하나가 (이 녀석은 서울대학을 나왔습니다. 경제학과를 나와서 지금은 외국의 큰 회사에 다니고 있지요.) 하루는 그러더군요. “아버지가 지금 우산을 만드는 공장을 하고 있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을텐데요.” 하면서 “아버지 한 해에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우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글쎄 30억개가 넘는다고요. 이번에 회사에서 시장조사를 하면서 알게됐어요.” 저는 이상했읍니다. 저도 수십년 동안 우산일을 하면서 맺게 된 인연이 적지 않고, 그 가운데는 큰 우산 공장 사장들도 있읍니다. 다 옛날 이야기지요. 잘 나갈 때에는 전국에 열서너개가 넘는 우산 공장이 있었읍니다만, 지금은 고작 하나만 있읍니다. 이 나라에서 그 많은 우산을 다 만드는 것이 아니니 아마 다른 나라에서 그만큼 우산을 많이 만드는가보다 했읍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30억개는 너무 많았읍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산 공장을 운영하는 옛 친구에게 연락을 넣어 물어봤읍니다. 자네 한 해에 전세계에서 30억개의 우산을 만든다던데 알고 있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껄껄 웃더니 무슨 소리냐는 겁니다. 지금 우산은 사양산업이고, 외국 거래처들도 줄었고 이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우산을 만드는 공장은 다 도산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또 조사한 것은 놀랄만한 것이었읍니다. 우산천은 폴리에틸렌과 나일론을 섞어 만든 실로 짠 천에 특수한 방수처리를 합니다. 사실 이 천의 쓰임은 우산 밖에 없기 때문에 만드는 곳도 많지 않고 한 해 생산량도 일정합니다. 그런데 그 생산량이란게, 제가 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말이지요, 30억개의 우산을 만들려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생산량에 따르면 한 해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우산은 30억개가 아니라 300만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아야 합니다. 대체 30억개라는 숫자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산천 뿐만 아니라 우산살로 쓰이는 금속도 마찬가지로 30억개의 우산을 만들기에는 부족했읍니다.

제가 예전부터 끈질긴 기질이 있어서 좀 더 조사를 해보았읍니다. 우산을 파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어디서 가져오는지를 물었읍니다. 몇몇 중간도매상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더군요. 이번엔 중간도매상에 전화를 걸어 물었지요. 장사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간도매상이 큰도매상을 따로 연결해주는 일은 드뭅니다. 그래도 제가 끈질기게 묻자 한 곳이 큰도매상을 알려주었읍니다. 그 곳은 제가 사는 인천에 있었고 한 번 기회를 봐서 그 곳까지 찾아갔읍니다. 사장이 젊은 사람이었읍니다.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일러주며 큰도매상은 어디서 우산을 받아오는지를 물으니, 처음에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않다가 절 보니 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자기도 장소는 모르고 전화로만 거래한다며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읍니다. 그리고 신신당부를 하며 자기가 알려주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읍니다.

다음날 저는 전화를 걸었읍니다. 한참을 신호가 가는데도 받질 않았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누군가 제 집 문을 두드렸읍니다.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읍니다. 문을 여니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안경을 쓴 인간이 검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읍니다. 그것 외에는 그 인간 자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없었읍니다. 꼭 누가 제 귀에 대고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안경을 쓴 인간이 검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읍니다.’ 하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읍니다, 제가 먼저 물어보기도 전에 말이지요.

“인간들이 만든 300만개의 우산을 제외한 29억 9천 7백만개의 우산은 저희 우산본부에서 태어난 녀석들로 채웁니다. 그리고 죽은 우산은 모두 천국에 갑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것 뿐입니다.”

그 말 뿐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뒤로 돌아 걸어 사라졌는데, 찾아왔을 때와 같이 사라진 것도 누가 제 귀에 대고 ‘그리고 그는 뒤로 돌아 걸어 사라졌읍니다.’ 하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계속 죽은 우산들이 간다는 천국에 대해서 생각했읍니다. 서울대학을 나왔다던 자식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걱정하는 눈치더군요. 치매에 걸린 줄로 알았나봅니다. 하지만 제 정신은 올바릅니다. 올바른 정신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읍니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산은 어떤 이유로 태어나고 죽…

주헌은 역삼역에서 어느 누추한 노인이 건낸 팜플렛을 받아 읽다가, 방송에서 내릴 역이 호명되자 허둥지둥 선반에 올려 둔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사람들에 밀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침 오늘 퇴근하며 만천원이나 주고 산 우산을 가방과 함께 선반에 올려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지하철에 우산을 놓고 내린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는 잠시 자괴하다가 어차피 잃어버린 것에 계속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그가 마음을 쓰지 않기로 하고 우산에 대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그 순간, 그리고 플랫폼을 떠나는 지하철 안에서 그 누구도 선반 위에 놓인 우산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 그 순간에 우산은 사라졌다. 우산은 죽었다. 죽은 우산은 천국에 갔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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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생존

오래전 와우를 할 때의 일이다. 공대가 막넴에서 자꾸만 전멸하자 공대장이 이렇게 얘기했다.

“여러분,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생존이 제일 중요합니다. 마지막까지 살아 남아야 탱도 빛을 보고 딜도 그렇고 힐도 마찬가집니다. 생존이 제일 중요해요. 다시 한 번 트라이 합시다.”

그날 우리가 끝내 막넴을 잡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생존이 중요하다는 저 말 만이 여전히 기억난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것들이 꽤 많다.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도 중요하고… 여하간에 자신에게 유효한 자원들을 최대한 안배해가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불꽃처럼 타오르던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의 자원은 나같은 (혹은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쪼랩들보다는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영웅에겐 영웅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쪼랩에겐 쪼랩만의 방법이 있는 법이다.

요즘 나는 너무 많은걸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회사에서의 일들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연애도, 친구들과의 우정도 그렇다. 나름대로 자원 분배를 잘해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말이야, 난 이제부터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살아볼까 한다.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냐, 내 책임이 아냐… 아마 다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을꺼야, 하는 식으로.

오랜만에 블로그 글이 이런거라 미안하네. 허허…

Network, 1976

나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어.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불경기지. 모두가 이미 실직 상태이거나 실직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어. 돈 들고 나가봐야 살 수 있는건 거의 없고, 은행들은 파산하고, 가게 주인들은 카운터 밑에 총을 놔두지. 펑크 빠돌이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누구도 뭘 어째야 할지 모르고 있어. 아무도 언제 이게 끝날지 몰라. 공기가 나빠서 숨쉬기도 어렵고 음식도 더러워서 먹을 수도 없어. 우리는 그저 앉아서 어떤 지역 방송 아나운서가 오늘은 열다섯명이 살해당했고 예순 세 건의 강력범죄가 일어났습니다 하고 지껄이는걸 보고 있지, 마치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런 것처럼.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어, 진짜 문제가 뭔지. 미친 놈들 천지야. 온 세계가 미쳐가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린 밖엘 나가지 않지. 우린 그저 집에 앉아서 서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좁아져 가는걸 견디고 있어. 그리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제발, 적어도 이 집에서만은 우릴 가만히 놔둬요. 내가 토스터를 사게 놔둬요, 티븨를 사게 둬요, 강철 벨트가 들어있는 타이어를 사게 놔둬요, 그럼 아무 소리 안할게요. 제발 우릴 놔둬요!’ 라고 말이지. 그래? 하지만 난 널 혼자 가만 놔두지 않을꺼야. 난 네가 미치길 원해! 난 네가 데모하는건 원치 않아. 난 네가 폭동을 일으키기도 원치 않아. 난 네가 국회의원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도 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네가 탄원서에 뭐라고 써야할지는 나도 모르니까. 난 이 불경기와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에 대해서, 그리고 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에 대해서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내가 아는건 먼저 네가 미쳐야 한다는거야. 넌 이렇게 외쳐야 해. ‘나는 인간이다, 씨발! 내 삶은 가치가 있다!‘ 자, 이제 일어나. 모두 의자를 걷어차. 지금 당장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곧게 세우며 이렇게 외쳐라. ‘나는 지금 지극히 미쳐있다,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What of me – Trespassers William

 

What of me
– Trespassers William

 

It’s a place that’s not so far
I dream there and sometimes I wake there
Do you want me caring less
Sometimes we don’t ask for what we need
And I guess how I want to be loved
And I’ve guessed what of me you need
It doesn’t matter if we lie
Your sentences never defined you
Do you think that I can’t feel
When I touch you there’s words on your body
Should you be scared
When I say sometimes I’d want you dead
So no one else can have you when it ends
How’d I reach this point on my own
And how fragile right there I was
This is not the first time
That I’ve watched the end of that thing that had no end
Do you want me caring less
Sometimes we let go of what we need
Why can’t you guess how I want to be loved
You can’t even tell me what of me you need

아줌마 저기 그거… 그러니까… 제가 맨날 피우던게 뭐죠?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께 담배를 피우겠다는 선언을 하고 흡연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때 잘나가는 아이들이 말보로 피우던 모습을 가끔 목격하기도 했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내가 처음 선택했던 담배는 88이었다. 그러다 곧 88 골드로 기종(?)을 바꿨고, 가끔 도라지 필터를 끊고 피우는 등의 빠른 진도를 보이기도 했다.

내 군시절은 소위 군팔이 군디스로 바뀌는 시기였고 덕분에 군팔과 군디스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군디스를 보급받던 시절에 휴가를 나가면 선배들이 부럽다는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선배들은 모두 양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므로 나는 속으로 막 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 후에는 줄곧 디스를 피웠다. 88을 구할 수 없던 것도 아니지만, 군대에서 1년간 디스를 피우고 나니까 다시 88로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말보로나 던힐, 마일드 세븐을 피우던 여자 동기들은 여전히 말보로나 던힐, 마일드 세븐을 피우고 있었다. 애국자도 아니었으면서 양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가격 차이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1학년때의 어떤 일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학생회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학내의 어떤 행사에… 아니다 그 얘긴 안하는게 좋겠다. 어쨌든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 양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던거다.

친구들이 모두 제대를 하고 난 다음부터, 세련된 국산 담배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건 시나브로 (친구들은 시나브로를 디스를 똥구멍에 넣었다 뺀 담배라고 불렀다.), 레종, 타임, 더 원… 아이들은 점점 디스를 버리고 레종으로 타임으로 옮겨갔다. 나는 여전히 디스를 피웠다. 줄곧 디스를 버린 녀석들에게 나는 반쯤 농담으로 부르주아 새끼들이라고 불렀는데, 하루는 친구 하나가 디스랑 자기가 피우는 레종인가랑 백원 차이밖에 안나는데 어째서 부르주아냐고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디스 플러스가 나오고 난 자연스럽게 디스 플러스로 이적. 아마 가장 오랜 시간동안 피웠던 담배가 디스 플러스였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에 다니던 회사 회식때 담배가 떨어져서 어쩔까 하는 와중, 경리 아가씨가 피우던 담배가 있길래 하나만 달라고 해서 피웠던게 팔리아멘트였다. 그런데 이게 꽤 괜찮았다. 아… 양담배를 이래서 피우는구나 싶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당장 팔리아멘트로 담배를 바꿨다. 그렇게 또 그걸 한 1년 피웠다.

최근에 피우는 담배는 던힐 밸런스다. 내가 이걸 피우게 된건 두어달 되지 않는데, 자주 가는 술집에서 담배가 떨어져 아는 사람 담배를 하나 빌려 피운다는게 던힐 밸런스였던 것이다. 맛은 뭐 그냥 무난했다. 팔리아멘트나 던힐 밸런스나. 그런데 내가 담배를 또 바꾸게 된 이유는 던힐 밸런스는 종이 덮개 안에 비닐 덮개가 하나 더 있어서 담배가루가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던힐 밸런스를 피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냐면, 내가 던힐 밸런스에 대해서 뭔가 심리적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는지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어가면 갑자기 던힐 밸런스 이름이 생각 안나는거다. 던힐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밸런슨가 뭔가가 생각이 잘 안난다. 몇 번은 무의식적으로 팔리아멘트를 달라고 했다가 바꾸기도 했다.

오늘도 퇴근 후에 집 근처 가게에 들어갔다가 한 십초를 ‘어… 음… 아줌마 담배… 음… 뭐였지? 아줌마 저 뭐 피우죠?’ 했던거다. 허허.

뭐 그렇게 삽니다.

ain’t no sunshine

10년 전에 그녀는 이혼했다.
6년 전에는 다시 한 번 더 술을 마시면 다음에는 자기가 아니라 장의사를 만나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핀잔을 들었으며,
2년 전에는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9개월 전부터는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 때문에 하이힐은 커녕 십 분 이상 서 있기도 힘들었다.
19일 전에는 삼개월이나 밀린 방세 때문에 드디어 집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클럽 주인인 조니의  배려로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간신히 분장실 한 쪽 간이침대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그래도 웃으며 무대에 선다. 웃으며, 나는 웃음을 판다.


Joan Osborne – “Ain’t No Sunshine” – Live at The Roxy

(* 위 내용은 실제 Joan Osborne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삼각형 모양의 하루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어깨가 또 굳어왔다. 민방위 훈련장에서는 내내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핵폭발시 행동요령을 듣고 있자니 쓴 웃음이 났다. 굵은 팔뚝에 퍼렇게 문신을 한 사내와 세 번을 마주쳤다. 한 번은 담배 피우다가, 또 한 번은 화장실 앞에서, 마지막은 훈련이 끝나서 귀가하던 도중에.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가 그 곳에서는 어느 노선을 타도 집에 갈 수 없다는걸 깨닫고는 다시 한 번 쓴 웃음이 났다.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운전 내내 딸과 아들 자랑이었다. 그의 딸은 노스랜드인가 뉴질랜드인가에서 2년간 영어를 배웠고 무슨 교육 자격증을 따서 귀국 후 유치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그게 돈이 꽤 된단다. 젊은 것이 독하게 하루에 몇 탕을, 그의 표현을 빌자면, 뛰는걸 보고 세 탕만 뛰고 나머지는 과외를 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그게 그의 딸에 대한 염려라면 염려였다. 전문대 밖에 못나온 아들은 기특하게도 삼성 하청 회사에서 일한다는데, 3년만에 대리를 달았고 연봉이 또 얼마라는 이야기를 했다. 최근엔 매월 20만원을 더 준다는 경쟁 회사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고민했다는데, 또 호통을 치며 옮기지 말라고 했단다. 가만 있기가 뭐해서, 잘 하셨어요 회사 자주 옮기는건 좋지 않죠,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다른 한쪽으로 진저리를 쳤다. 다행스럽게 그 즈음에서 내릴 곳이 되었다.

돌아오며 동사무소에 들러서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제출할 등본을 떼고 언덕을 내려가는데, 그만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십분 전 기억이 꿈처럼 모호했다. 실시간으로 모호함이 갱신되었다. 한쪽으로는 자기파괴가 진행되고 다른 한쪽으로는 자기수복이 진행되는, 터미네이터의 T-1000이 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자체로는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있기만 하면’ 되었다. 항상 전쟁은 나의 최전방에서만 일어났고, 중심의 뒷편에 있는 나는 관찰하기만 하면 되었다. 알아서 하라지, 알아서 세 탕을 네 탕을 뛰라지, 알아서 이직을 하고 알아서 대리를 달라지, 나는 여기서 계속 관찰할테다, 움직이지 않을테다. 하지만 이 어지러움과 구역감의 원인은 세계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었음을, 나는 여전히 알고 있고 부인할 수 없다.

오래 전에 나는 가능하면 내가 믿는 이야기 대신 믿지 않는 이야기만 하기로 다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믿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더 좋아했다. 그래서 차마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네가 제공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

민방위 훈련의 훈련 일정을 묻기 위해 동사무소에 전화를 건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직원은 담당이 아닌듯,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담당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돌려주었다.

“이번 민방위 훈련 일정 때문에 전화드렸는데요. 제가 이번주에 훈련 참가를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죠?”

“이번에 못받으면 다음에 받으면 되요.”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남성이 불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전화드렸잖아요.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일정이… 5월 15일 16일에 있고… 17일이랑 18일에…”

“이번주에 사정이 있어서 훈련을 못받는다구요. 다음주는 어떻게 됩니까?”

“다음 일정은, 그러니까 31일, 27일… 에, 또…”

“아무튼 다음주에도 훈련이 있는거죠?”

“네.”

“다음주 무슨 요일…”

“(딸깍)”

“…”

나는 친절함을 원하진 않는다. 사랑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답해주기를 바란다. 17일에 훈련 일정을 묻는 사람에게 15일날 훈련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원하는게 다음주 훈련 일정이면 다음주에 훈련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무슨 요일에 몇시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31일, 27일은 또 뭐야. 대체 저 fully-꼰대풀한 답변은 뭐냐고.

그냥 그런 얘기

아르바이트 몇 개를 했거나 하고 있는데, 내가 처음부터 작업을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변형하거나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코드도 육개월이 지나면 보기 싫어지고 뭔가 자꾸 리팩토링 하고 싶어지거나, 싹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어지는게 이 바닥의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남이 여러해 전에 날림으로 만든 것이야 오죽할까. 끔찍한 비유지만, 마치 태어나자마자 개천에 버려진 기형의 아기가 끈질긴 목숨으로 살아나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장담하건데, 이 코드를 만든 사람도 자기가 뭘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게 분명했다. 의미없이 이 파일이 저 파일을 인클루드하고, 그런게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물론, 그래 물론, 나도 이런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마 아무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딱히 뭔가 짚고 싶은건 없다. 말 나와 봐야 똑같다. 그 얘기가 그 얘기. 뭐 좀 더 잘하자, 정도? 책임을 지자? 우습다. 누가 책임을 져. 그거 만든 개발자만의 책임도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납기일만 되뇌이며 쪼는 PM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모르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것만 가지고 이런거 가능하죠? 쉽죠? 운운하는 클라이언트 문제도, 이쯤 되면 나오는 대한민국은 원래, 하는 것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 코드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 그래,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것. 소스코드는 원래 겉으로 드러나는 생산물이 아니다. 사용자(user)는 인터페이스만 본다. 심지어 게시글을 GD 라이브러리를 통해서 이미지로 구워서 보여줘도, 이쁘게만 보이면 그만이다. 그냥 보이면 된다.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해도 오케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우리 세계는 조금씩 불안과 우연을 얼기설기 이은 지푸라기 위에서, 더 위로, 더 위태로운 그 위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이번에 농협 시스템 장애도 걸고 넘어가보자. 전산시스템을 아웃소싱 했다고 하는데, 그게 그쪽 생리인지는 몰라도 금융권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이 금융사 자신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는건 내 깜냥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건 그냥 커뮤니티 사이트가 아니라 하루에도 수백억씩 오고가는 시스템이다. 이 바닥에선 이런 시스템을 미션 크리티컬(mission critical)한 서비스라고 부른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한두사람 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 아웃소싱해도 처음엔 시스템이 잘 도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사람들 인터넷 뱅킹 하는데 문제 없고 이것저것 서비스 하는데 문제가 없으면 오케이. 그냥 그러고 넘어간 것이다. 아무도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왜 이렇게 돌아가고 뭐가 어디에 붙어 있으며 그건 무슨 기능을 담당하고 어쩔씨구리 저쩔씨구리 그런건 신경 안쓴거다. 그리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러면 된거 아닌가?’ 했겠지. 차는 굴러가면 되고 집은 비바람을 피하면 되고 밥은 먹어서 배부르면 되고… 이런 양적 만족감에만 하악하악하고 있었다는건, 누구의 말대로 이 시스템들이 얼마나 우연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3차 테이프 백업본 있어서 그걸로 복구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 진지하게 묻고 싶다. 혹시 백업 플랜을 짜면서 그냥 데이터만 디립따 아카이빙하고 있었는건 아닌지. 가끔가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서, 혹시라도 누군가가 ‘백업 제대로 되고 있는지 테스트 서버에다 리스토어해서 한 번 돌려볼까?’ 하고 말해 본 적은 있는지, 그냥 궁금하다. 그냥 아카이빙만 풀어 놓으면 예전처럼 시스템 제대로 돌아갈꺼라고 믿는 그런 순진한 사람들인가, 싶다. 뭐? 열시간이면 된다고? 야 이놈들아, 내가 쪼끄만 사이트 데이터 이전하고 셋팅하고 문제되는 부분 잡고 하는 시간만 해도 그정도다. 이놈들아.

뭐 됐고. 혹시나 내 대출정보도 함께 날아가는 아쌀한 이벤트가 있을까 싶어 들어가봤더니, 그건 여전하데. 허허. 뭐 됐어. 잘 돌아가면 된거지. 안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