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꿈

첫번째 꿈은 월드컵 토고전이 있던 날이었나, 그날 뭔가로 인해 심히 의기소침해 있던 과장님을 꼬드겨 비교적 일찍 퇴근을 하고 저녁 겸 반주 해서 각자 소주 한 병씩 마시고 또 맥주를 몇 병인가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월드컵 경기를 미쳐 다 보지 못하고 잤던, 기분 참 싱숭생숭했던 날 밤에 꿨던 꿈이었는데, 그때 나는 갑자기 부는 강풍에 떨어진 간판을 맞는 기분으로 우울하게 그 분의 부고를 들었고 꿈 속이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아침이 되어 핸드폰 알람에 맞춰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고, 두번째 꿈은 그 뒤로 며칠이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잔업에 한참을 또 시달리다 억지로 청한 잠 속에서 옛 애인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표정이 어색해 싱숭생숭한 마음이 되었다가, 뒤늦게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찾아 온 후배가 슬쩍 나를 불러 한다는 얘기가 형 누나 이미 결혼했어요 하는데 그만 또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눈에서 나는 눈물은 거짓이라. 사실 눈물은 부어 오르는 목구멍에서 나는 것이고 덜컹 내려 앉는 심장에서 나는 것이며, 때로는 이야기 하는 입에서 또 때로는 글을 쓰는 손 끝에서 나는 것이라. 삐걱삐걱 흔들리는, 하루에 단 두번만 운행한다는 강원도 산골의 어느 버스에 두고 내린 손가방, 그리고 그 안에 넣어 두었던 잊고 싶은 것들을 적은 쪽지가 변덕스럽게 후회가 되어 한참을 뛰어가며 소리지르고 제발 좀 세워달라고 그 안에 두고 내린 것이 있다고 해도 버스는 나를 위해 되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런데 우리가 또, 아니 내가 또 언제는 현재의 것을 소중히 여겼던 적이 있는가. 현재는 인식하는 순간 과거, 였었고 그래서 내 아끼는 마음은 언제나 후회형의 것들.

아주 먼 훗날에, 혹은 아주 먼 과거에 우리는 때때로 블랙홀과 마주쳤다. 그 중심으로부터 스며나오는 불길한 중력들에 발생한 기조력이 우리를 길게 잡아 찢을 것이다.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깝게 말이다. 슬프냐고, 아프지 않냐고 묻지는 마시길.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까운 상태로 말이다.

하늘 맑음

비온 뒤 갬. 적정 노출에서 한 두스탑 정도 낮추고 찍어야 나올 것 같은 짙은 파랑. 하얗고, 또는 회색인 구름들. 정오가 되어도 어쩐지 태양빛이 인공의 것 같다. 열기가 없이 눈꺼플에만 맴돌다 떨어진다. 바람이 분다.

압정에다 정신을 박고 천정에 고정시키지. 가끔 눈가에 누군가 어른거리는 환상이 보여. 정말 난 아무래도 괜찮아. 라고 했던 말 때문에 벌을 받는거야.

태엽감는 사람

다시 대구. 발바닥 쯤인가, 오년 전엔 그게 겨드랑이에 있었지, 하는 태엽을 누군가 되감아 놓고 나는 삐꺽삐꺽 움직인다. 마음은 가라앉는데 마감일정은 그 반대로 분주히 가속한다. 사람이 사는 곳, 그 어디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펄펄 끓는 질척한 아스팔트 위 아지랭이는, 하지만 아주 가벼웁게 흔들리며 꼭 무언가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속삭여 준다. 하얀 뇌가 뚝뚝 녹아 흐른다. 심장은 에어컨 바람에 꽝꽝 얼어가는데도. 그럼 안녕,

하고 또 내일을 기다리고.

서울

올라오는 길은 술취한 등산객들과 멀미난 아이의 토악질과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간장독의 진한 냄새같은 퀴퀴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동에서 멀어질수록 서울은 가까워졌겠지만, 마음은 어느 사이엔가 샛길로 빠져나가 발광하는 초록 능선들을 헤매었다. 드문드문 산이 떨어지는 곳에 집들이 몇 개 서 있었고 그때마다 몇 개의 생이 떠올랐다 스러졌다. 잠깐, 기형도의 감회가 느껴졌달까. 죽은 자들, 죽어가는 자들은 정말 국토에 깊었다.

여덟시가 넘어도 밖은 훤했지만 어두워지기전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예감같은게 서늘히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제서야 네가 당도한 곳이 이곳으로부터 이억만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모든게

잠깐 머물다 떨어진다.

출장중

안동에 내려와 있다. 지급받은, 생에 첫 노트북으로 글을 써본다. 키보드가 무르다. 점심 뒤 밀려오는 2B연필같은 피로감이 발목에 찰랑인다. 여기는 안동이다. 도산서원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으로 나갔다. 높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안동. 서울의 가장 한적한 동네 조차도 이곳보다는 매우 소란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까무라칠 정도로 깊숙한 열기가 시내 위를 무겁게 내리 누른다. 움직임이 없는 도시. 간혹 살랑이는 바람 없이는, 나는 도저히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늙은 개 같은 도시. 저쪽에 하나, 또 저쪽에 하나. 도처에 웅크리고 있는 불온함들. 사람들은 매우 적대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이 도시의 숨죽인 적의에 비하면.

주의. 안동에 내려 올때, 특히 여름이 시작되려는 때에는 항상 여분의 심장을 준비하시오.

맹렬한 허기

발을 씻어도 씻어도 무좀인가 습진은 계속 퍼진다. (네 알아요 알아. 왜 이러는지. 그러니까 그럴땐 어떻게.. 하는 조언은 노땡큐)

얼마전부터 카메라에 광각렌즈 대신 망원렌즈를 물려 놓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좁은 시야만큼 깊숙하게 찌른다. 내가 카메라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뷰파인더나 LCD, 혹은 그 이상의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상이 육안과는 다르게 왜곡된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마치 한번 발 담근 강물에 다시 발 담글 수 없다는 격언같았다. 너희는 결코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처음으로 이런 저주를 인간에게 내렸다. 나는 그게 아주 멋진 저주라고 생각한다. (이놈의 빌어먹을 영어식 말투, I think…) 혹은 그건 아주 멋진 저주였다. 모든게 미묘하게 다르다. 나는 평생동안 영어를 공부해도 영어를 모를 것이며, 태국어도 그렇다. 심지어 내가 보는 것조차도 다르다. 아무튼 카메라를 다루며 그런 생각을 했다. 광각은, 누군가 그랬듯이 인간의 판단 가능함을 뛰어 넘은 세계라고. 육안의 시야율은 의외로 굉장히 좁다. 어안(Fish-Eye)쪽으로 가면 더욱 점입가경이다. 그리고 내게 냉정히 묻는다. 너는 무엇을 보느냐고.

망원은 이와는 반대로 인간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간다. 작은 것들이 더 작은 것들로 균열한다. 그것이 몇차례 반복되다 보면 한동안 이런 미시세계와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 이 세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기나 한걸까 하면서 심란해진다. 그리고 내게 냉정히 말한다. 웃기지 말라고.

그래 웃기지 말아야지. 웃기게 살지 말아야지. 한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한참 모자라고, 내게 핀잔을 주는 것들은 모두 나의 좋은 스승들이다.

주말

토요일 아침부터 지금까지 줄곧 잠을 잤다. 잠이 오지 않아도 억지로 잠을 자려고 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저녁. 일요일이다.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잎들이 모두 검게 물든다. 이제 조금씩 여름이 된다. 매년 그랬듯이 몇달간 지옥이 계속 될 것이다. 번호표를 쥐고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아주 긴 지옥. 케르베로스가 땀을 뻘뻘 흘리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말한다, “아저씨 거기 새치기 하지 마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아저씨 차례가 온다니까요!”

아, 조금씩 물에 녹는 계절.
조금씩 부어오르는 계절.

…2

어제는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나오려다가 어떻게 저떻게 해서 비교적 가깝게 된 과장님 한분이 맥주 한 잔 하고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맥주를 한 참 마시다가 학교에 가서 학회 후배들을 만나 소주를 또 먹고 가까스로 집에 왔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서 너무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 노곤해지려는 정신을 꼬집느라 세수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무려 석잔씩이나 마셨는데도 퇴근시간은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잠이 깨어서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다.

멀리 돌아가는, 그러나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훨씬 아늑한 버스를 타고 방배동 근처를 지날 즈음에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옆에 서 있는 어느 커플 가운데, 여자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저기, 어디까지 가세요?”

짐작으로, 그녀는 매우 피곤한듯 보였고 내 목적지가 멀다고 판단되면 다른 자리 옆으로 옮기려는 것 같았다.

“봉천동까지 갑니다.” (봉천 사거리에서 다시 한 번 버스를 갈아탄다.)

남자친구가 함께 있는 여자를 동정할 여유가 내게는 없다. 그리고 나는 냉담하게 읽던 신문에 코를 묻고 마음 속에선 여러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저도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저는 대중교통수단에서 장애인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형평성의 문제지요. 만약 지금 당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내게 있어서 그 동안 양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이 되거든요. 물론 이상한 생각이지요.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 세계는 타인과 공유가 가능한 간섭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속에서만 살아서 자기의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뱀이지요. 이것에 관해서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서 커플은 냉큼 그 곳으로 옮겨갔다.
갑자기 맥이 풀려서 읽던 신문을 접고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꺼낸다. 꽤나 얇은 책이어서 한번 읽고 이번이 두번짼데, 여전히 프랑스인들은 난해한 문장을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래서 그것도 몇 장 읽다 말고 가방에 집어 넣고 말았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본다. 하루가 서서히 착륙하는 저녁. 그 어느때 보다도 길게 늘어진 차량의 빨간 후미등들이 명료하게 빛난다. 다들 돌아가고 있다.
엠피쓰리가 없어도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언젠가 누가 한 말처럼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듣고 있지 않아도 잘 들린다. 머리 속에 저장된 수 많은 음원들 가운데 몇 개를 골라 되살린다. 매우 낡아서 가끔 원하지도 않는 구간반복이 되는 그런 음원들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나는

서서히 공기에 융해되기 시작했다.

돈 빌려주기

오늘 집에 오면서 뜬금없이 ‘이녀석이 나한테 현재 가용한 돈은 전부 빌려달라면 나는 과연 얼마까지 흔쾌히 빌려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개해봅니다. 처음엔 별명을 적을까 하다가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이니셜로 적기로 합니다. (그래도 설명 보면 대충 이게 나구나 싶기도 할 것임.) 또한 아는 사람이 많긴 해도 제 블로그에 종종 들리는 분들로 한정.
사족하자면, 빌려 줄 수 있는 한계액수와 친분이 있는 정도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빌려주고 싶지 않아도 친구는 친구, 친한 사이는 친한 사이!
마지막으로 빌려준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말하자면 ‘그냥 주고 잊어버릴 수 있을만한 액수’ 입니다. 받는 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얼마건 못빌려주겠습니까. 단위는 만원 단위.

먼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TH형 : 절대로 이분은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 할 분이 아니기에 빌려줄 수 있는 액수도 상상 안됨.
HG형님 : 이분도 이런 말 할 분이 아니긴 하지만, 상상은 되기에 액수를 밝힘. 이천오백.
JH님 : 사백오십.
ST형 : 이 사람도 절대 내게 그런 말 안할 사람. 고로 상상 불가.
SW누나 : 백이십. 그리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도 이 이상으로는 말 안할 것 같음.

내 또래
00 : 삼천. 친해서라기 보다 이 녀석이 내게 부탁할 상황이면 가히 그 상황의 급박함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기에. (잊어버릴 수 있다고는 해도 삼천 정도면 언젠간 받아야겠지?)
MH : 오십.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액수와 친분의 정도는 관계없음. -_-;;
SS : 오백. SS야. 오백까진 빌려줄께. 나도 아직까지 못만져본 돈이다만..
HJ : 칠백. 사실은 이건 내가 이 녀석에게 빌리고 싶은 액수…
JY : 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천.

나보다 어린
BJ : 오천. 그냥 있는거 다 주고 싶다. 왠지 불쌍한 녀석.
IK : 육백. 이 녀석 생각했을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액수.
KR : 백이십. 이유 없음.

좀 더 생각하고 적고 싶은데 졸려서 이만…
돈 빌리고 싶은 사람은 코멘트로 알려주세요. 얼마까지 가능한지 즉시 감정해드림. ㅎㅎ

구스타프 홀스트라고 알아? 정말 알아?
나는 잘 몰라. 언젠가 우연히 ‘슈만과 클라라’에서 다운받은 그의 ‘행성’이라는 교향곡을 듣고 있어. 어떠냐구? 더도 덜도 말고 딱 영화음악같아.

나는 오늘 정말 멍청하게 사고를 치고 말았어.
일정이 대박 급하게 당겨져서 오늘 저녁 열시까지 끝마쳐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빡시게 하다보니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겠더라구.
일단 한 파트를 다 끝내놓고 (서너시간 걸려서) 서버에 업로드 하려고 Ftp를 켰지. 그런데 내가 정신이 없는건지 정신이 내가 없는건지, 멍하니 있다가 그만 서버에 있던 파일들을 로컬로 내려받았지 뭐야. 아 젠장. 서너시간 걸려서 한 일이 완전 사라져버렸어. 덕분에 팀장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시간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버젼관리 시스템 같은거 적용 안하고 무대뽀로 Ftp업로드 다운로드를 반복했었는데, 아 정말 이런 일이 생기고야 만거야.

아무튼 구스타프 홀스트를 들어.
어제 많이 들어서 오늘은 좀 지겹다.
오늘은 뭘 들을까.
오늘은 라벨의 ‘거울’을 들어야지.
전에 외숙모가 준 와그너(바그너?) 씨디는 아직 뜯지도 않았어.
뜯어서 들었다가 맘에 안들면 참 그렇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