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짓

약간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5. 손 씻고 방에 들어가 작업한다.
6. 10분 뒤 커피를 놓고 들어왔다는게 생각나 다시 나간다. -_-;;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난 이제 병신짓 같은건 안해. 반드시 소변보고 커피 들고 들어간다. 잊지말자!’ 하고 다짐한다.
5.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6. 손 씻고 방에 들어가 작업한다.
7. 10분 뒤 자괴감에 빠진다. OTL

진짜 병신짓
1. 밤에 작업하다가 커피를 다 마셔서 새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간다.
2. 부엌에서 커피를 타다 말고 소변이 마려운 걸 느낀다.
3. 커피를 방에다 가져다 놓고 다시 화장실 다녀오는건 미련해 보인다.
4. 화장실 문 근처에다 커피를 두고 소변보러 들어간다.
5. 손 씻고 (손 반드시 씻고!) 커피를 들고 방에 들어와 작업한다.
6. 10분 뒤 커피를 놓고 들어왔다는게 생각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머리를 쥐어 뜯는다.)

—>

kldp.org에 쓴 글 옮김. 실제로 매번 이럼. 찔리시는 분 많을 듯. ㅎㅎ

청소

최근에 동생은 실직을 하고 재취업을 준비중이다. 한마디로 백수란 이야기. 나름 토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토익시험을 두서너달 준비하고 1월과 2월에 걸쳐 두번의 시험을 보았다. (학원도 안다니고 해커즈 토익책을 사서 인터넷 강의로만 공부했다는… 미친놈. -_-;;)

아무튼 그런 연유에, 최근 대부분의 집안 일은 동생 차지다. 청소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가끔 밥도 해놓고 빨래도 곧잘 한다. 우리집에서 나만 빼놓고 비교적 청결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갖고 있는데, 유독 동생은 그 마무리가 맵씨있다.

오늘 출근하면서 동생이 안방 청소를 하고 있길래 반 농담조로 ‘야, 형 방도 그렇게 청소해봐.’ 했다. 내 방은… 내가 생각해도 더럽다. 정리가 안되어 있다거나, 지저분하다거나 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너 이런 방에 살면서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잘 자라준게 고맙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실까.

나는 농담이었는데, 기어이 동생은 내 방을 청소했나보다. 오후에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 내 일생 일대의 역작이야. 살면서 이렇게 힘들게 청소한 적은 처음이었어.’

ㅋㅋㅋㅋ

그 뒤로 퇴근하신 아버지랑 어머니가 줄줄이 전화해서 ‘감격했다.’는 둥 ‘이건 전문 청소 용역 업체보다 월등히 나은 수준’이라는 둥 ‘너 동생한테 꼭 수고비 줘야 한다’는 둥 하고 말씀하신다.

내 방 들어가서 적응 못하면 어쩌지? 흐흐.

금주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시러 나가니 아직 금주는 아닌데, 치과 치료 때문에 금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날 압박한다. 그냥 마시고 지지 칠까.

솟구친다는 건 아주 쉬운일이야.

근황

인간이 놀라운 것은 그 어떤 지옥같은 생활에도 기어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합성 마약보다도 몇백배나 더 지독히 강력한 내뇌 마약을 뿜어 가면서 우리는 결국 일상 궤도로 수렴하게 된다.

잠깐, 지독한 치통이 되살아 날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는 어느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다가, 신기하게도 근질욱씬거리는 치통을 은근히 기다리는 내 자신을 깨달으면서 어둑한 커튼 너머로 살폿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통증을 느끼는 부위와 통증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동일시 하려는 인간의 상식 때문일 것이다. 가끔 그런 통증들이 몸 곳곳에서 봉기한다. 흉통과 치통과 두통과 근육경련과 또, 또… 그러나 통증은 두뇌가 느낀다. 그러므로 모든 통증은 사실 두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뇌에는 감각기관이 없다는 것, 이 얼마나 빌어먹을 사기인가.

진통제가 작용하는 지점은 과연 어금니일까, 아니면 말초신경계일까, 아니면 두뇌의 어떤 부위일까. sympathy는 그저 환상일 뿐일까.

두 서너알 남은 진통제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대체 통증은 무슨 의미야. 주여…

where am i?

결혼한다는걸 잘 상상할 수 없는 동기가 갑자기 전화해서 결혼한다고 하고, 아는 선배가 낸 책이 오늘 인터넷 서점에 걸렸다고 하고.
나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스팸 트랙백을 지우고 그 소식을 전한다.

남에게 솔직하기란 무척 쉽다. 무관심하면 되니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는 그래서 훨씬 더 어렵다. 특히 나는 내 자신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과거가 시시 때때로 유령처럼 되살아나서 조소한다. 별 볼 일 없는 사내라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내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걸 깨닫는 순간, 나는 까무러칠만큼 지쳐버린다.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긍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자가 어떻게 타인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지극히 얍삽한 인간이다. 순서를 정해본다면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 비열한 토막들의 악취는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오랫동안 아무도 들춰보지 않아 썪은 내를 풍기는 이 두엄더미를 뒤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삶은 너무 길다. 아무도 날 구원해주지 못할꺼라는 불길한 상상이 나를 휘감는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이 raw-data의 형태로 서로에게 전해지는 세상을 떠올려보자. 물리적인 발화는 목적를 잃고 세계는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오히려 진화하여 서로는 서로에게 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라고 해서, 그러나, 다툼과 증오, 질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타협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다. 완전한 의미의 전달이 곧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까. 심지어 우리는 불완전하기까지 하다.

몇번이고 말이 가지는 무서움에 대해서 적으려고 했다. 이 세계가 얼마나 어둡고 참혹한 곳인지, 문만 열면 날선 말들이 도산검림을 이루는 사회에 대해서 적으려고 했다. 그런데 글을 적다 보면 내 말도 똑같이 비수같이 날카롭다는 느낌이 들어서 지우고, 또 쓰다가 지우고 그랬다. 완전한 소통을 꿈꾸는 것은 그래서 두렵다.

애정과 사랑,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더라도 우리는 결국 개인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평가하고 평가된다. 그 매개체는 말이다. 이건 가장 단순한 설명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슴을 열어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다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 실제로 내 사랑의 증거를 확인시켜 줄 수 있다고 해도, 네가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매 순간 나는 평가된다. 평가되는 순간 말은 가지치기를 당하고 무한한 가능성들이 하나의 사실로 수렴된다. 평가되어 고정된 말은 발화되기 이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투고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선전하고 외치고 웅변하고 호소해도,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다. 나는 말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의 계층 위에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봤다. 그것은 권력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권력 우위자는 항상 너일 수 밖에 없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게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너는 열리지 않는 신비고, 나는 그 숲을 탐색하는 여행자이다. 너는 조용히 세계 속에 흐르며 그 대지 위에 나를 가둔다. 나의 상상은 항상 네 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검찰은 용산 참화의 원인이 시위 주동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말의 가공할 힘이다. 그것은 비가역적이다. 우리의 상상은 이제부터 계속 그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인풋보다 더 뛰어난 아웃풋은 불가능하다. 평가되는 순간 결과는 고정된다. 바뀔 수 없다. 어디에선가 ‘희망이 모조리 사라진 순간이 바로 절망이다.’라고 적었다. 인간은 절망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전복하는 힘은 가능하지 않은 꿈꾸기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모순어다. 그것은 신을 넘어선다. 신은 결코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인간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어. 나는 불가능한 것을 꿈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네가 날 사랑하는 것을 꿈꾸는거야.
거꾸로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말이다, 모든 것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말해야해.
말을 멈추는 순간 존재는 의미를 잃어버려.
사랑해, 라고 말하고
아니야, 라고 말하고
모두 부숴버리자, 라고 말하고
승리, 라고 말하고
네 냄새가 그리워, 라고 말하고
안녕, 하고 말하고

어떤 그림

시작은 ‘러브크래프트 코드 3’권의 커버 일러스트였다. 나는 분명 어딘가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도무지 그게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온 곳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석화된 인간을 들고 관찰하는 그림이었다.

“빌어먹을… 영희야, 너 이 그림 기억 나? 분명 너하고 같이 봤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

영희는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보는 것처럼 눈을 찡그리며 감은 상태에서 고개를 휘저었다.

“야, 제발 그 더러운 것좀 치워줘. 기분 좋게 술마시러 와서 갑자기 왠 귀신 그림이야.”
“나 지금 이걸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내지 못하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맞아, 그때도 너 그렇게 못볼 걸 본 것처럼 굴었는데, 기억 안나?”
“몰라. 알아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나는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삼킨 뒤에 일어났다.

“미안해,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나 빨리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
“야, 너 뭐야! 그딴식으로…”

뒷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

분명 내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사이트를 보고서는 너무 기분이 묘해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다 이 작가를 소개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커뮤니티는 1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 다음은? 나는 그를 어디서 처음 알게 된거지? 아마도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검색엔진에 ‘러브크래프트’라는 키워드를 넣고 이미지를 검색해봐도 도무지 나오지가 않았다.

***

아니야, 뭔가 시작부터 잘못된게 틀림없어. 러브크래프트와 관련이 있었다면 나는 벌써 그를 찾아 냈어야만 했다. 벌써 4시간째 검색엔진을 뒤지고 있다.

***

잠깐, 저 선은…

***

우연히 어떤 그림을 발견했는데, 그 그림은 기괴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기억하는 그 작가의 화풍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발견한 그림은 디스커버리채널의 ‘Alien Planet’이라는 유사-다큐멘터리의 컨셉 아트였다.

***

아, 그제서야 모든게 기억났다. 한때 Alien Planet을 보고 존재하지도 않는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저리도 개연성 있게 그려냈을까 하면서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을 찾아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가 그린 ‘인페르노’ 시리즈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드디어 발견했다! 드디어 답답함이 사라졌다.

***

러브크래프트 코드 3의 커버 일러스트는 Wayne Barlowe라는 일러스트 작가의 인페르노 시리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http://www.waynebarlowe.com/barlowe_image_pages/inferno_7_ballsgone.htm

흉칙한 것이나 기괴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은 가급적 클릭을 삼가해주세요. 뭐 그다지 무섭지는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