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 김치찌개

간만에 꽁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 동사무소 일을 보러 나간 김에 슈퍼에 들렀다. 꽁치 통조림이라고 들고 온 것이 알고 보니 고등어 통조림이었고, 다시 꽁치 통조림으로 바꿔왔는데 ‘꽁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되는 것은 오뚜기에서 만든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꽁치 통조림 하면 ‘펭귄’에서 만든게 제일 아니었나? 아무튼. 집에 있는 야채를 생각하니 양파는 조금 있었고, 파가 없어서 파 한 단을 더 샀다.

조리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요리는 각 재료들의 조리 원리와 맛에 대한 ‘상상력’이 전부일 뿐, 이라는 평소 지론대로 조리법을 치우고 혼자서 만들어 보기로 한다.

우리집 김치찌개의 기본 조리 과정은 ‘김치를 먼저 볶고 나중에 맹물을 붓는다.’ 인데, 이번엔 멸치 육수를 낸 것으로 먼저 베이스를 만들고 재료는 육수가 준비된 후에 넣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만든다는 것만 인터넷에서 참고했다.) 그리고 약간의 마법을 부렸다. 된장을 넣어보면 어떨까? 맛을 상상해보자. 된장은 일단 맵고 짜기 보다는 구수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거기다 단순한 김치찌개가 아닌 ‘꽁치’가 주가 되는 김치찌개 이므로 된장이 꽁치 특유의 생선비린내를 없애 줄 것이다. (이건 아마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마찬가지로 효과를 낼 것이다.)  그래서 멸치 + 다시마 육수에 된장을 조금 풀었다. 너무 많이 풀면 된장찌개가 될 것이므로 그냥 맛만 나는 정도로 넣어주었다.

김치는 먹다가 남긴, 냉장고에서 폭 익은 신김치를 이용했다. 우리집은 김치를 꺼내 먹다가 김치에서 신 맛이 나기 시작하면 안먹고 그냥 놔둔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리고 또 새로 김치를 꺼낸다. 그래서 신김치가 꽤 많다. 이 신김치를 물에 약간 씻어서 양념을 덜어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둔다. 양파는 한 개 반 정도를 썰어둔다. 양파는 정말 놀라운 야채다. 나는 양파를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무엇에든지 양파를 넣으면, 그 야채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단맛이 요리의 풍미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파 한 줄기 정도를 썰고, 마늘 다진 것도 조금 준비해 둔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멸치를 꺼내고, 다시마는 잘개 썰어서 다시 육수에 넣는다. 그리고 김치를 넣고 꽁치를 한 캔 그대로 다 넣었다. (꽁치 캔의 국물은 버린다.) 여기서 양념이 중요한데, 나는 일단 고춧가루를 한 큰 술 넣고 소고기 다시다를 조금, 그리고 우리집 최고의 조미료인 진짜 천일염을 한 두줌 넣어주었다. 정말 안타까운건 이 아름다운 소금이 이제는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진짜 천일염에 맛을 들이면 대기업에서 만든 소금 따위는 돌아보기도 싫어진다. 아.. 그 달콤한 짠맛이여!

그리고 다시 한소끔 끓여낸 다음에 마늘 다진 것 조금과 양파, 파를 넣고 15분에서 20분간 더 끓여준다.

나는 더 이상 맛을 보지 않아도 이 꽁치 김치찌개는 최고라는 것을 순간 직감했다. 이건 중독성 마약과 같은 매력을 무섭게 발산하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끓여 냈는데, 그 날 나와 아부지는 둘이서 절반을 먹었다.

Weird Fishes/Arpeggi by Radiohead

Weird Fishes/Arpeggi by Radiohead

In the deepest ocean
The bottom of the sea
Your eyes, they turn me
Why should I stay here?
Why should I stay?
I’d be crazy not to follow
Follow where you lead
Your eyes, they turn me
Sunk without a trace
The bottom of the deep
Your eyes, they turn me
Turn me into phantoms
I follow you to the edge of the earth
And fall off
Everybody leaves
If they get the chance
And this is my chance
Eaten by worms
And we’re fishies
Picked over by the worms
And we’re fishies
We’re fishies
We’re fishies
Hit the bottom of
Hit the bottom to escape
Escape
Hit the bottom of
Hit the bottom to escape
Escape
Escape
대양의 가장 깊은 곳,
그 바다의 밑에서
네 시선은 날 들뜨게 해
왜 나는 계속 여기에 머물러야 해?
왜 나는 머물러야 해?
네가 이끄는 곳으로
널 따라가지 않았다니, 미칠 것 같아
네 시선은 여전히 날 들뜨게 하는데
흔적도 없이 가라앉지
저 깊은 밑바닥으로
네 시선이 날 들뜨게 하는 곳으로
날 깡그리 태워버리는 곳으로
널 따라 지구의 끝에 도달하면
나는 곧 가라앉게 될거야
모두가 떠났어
그게 그들의 마지막 기회라면
내게도 기회겠지
지렁이에게 잡아먹혀
그래, 우린 생선이야
지렁이에게 낚이지
그래, 우린 생선이야
더 밑으로,
탈출하기 위해선 더 밑으로..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은 것은 정규앨범의 것이 아니라 각종 라이브 무대에서 불려진 것들을 팬들이 직접 녹음한 것으로부터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 곡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2005년 3월 27일 Ether Festival 공연이었다. 외국 팬들의 느낌은 Steve ReichPhilip Glass의 현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고 한다. 스티브 리치는 누군지 잘 모르겠고, 필립 글래스의 경우는 어쩐지 계속 듣다 보니 이상하게 낯익다 싶었던 것이 필립 글래스였다. (미니멀리즘의 대가!)

아무튼 정규앨범의 Weird Fishes/Arpeggi는 얌전빼는 진행이 별로 맘에 들지 않고, 오히려 라이브 무대의 것들이 내게는 더 맞는 것 같다. Ether Festival 공연의 연주를 두고 어떤 외국 팬은 ‘stunning’이라고 표현했는데, 뭐 그정도까지는 아니고, Arpeggi라는 곡의 뼈대를 수려하게 보여준 연주였달까. 어쨌든 내게는 토론토나 코펜하겐에서의 연주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가사를 해석해 본다고 했는데, 역시나 반쯤은 대충 얼버무렸다. 나는 가끔 많은 영어 가사들이 서술 중심의 한국어 가사와는 달리,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이미지들을 연결해 놓은 그물망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들은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저 영단어들에 대해 그들이 갖는 이미지를 비슷하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누군가가 이 가사를 이야기로 풀어내어 주었다.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wonderful clarity in blur deeps..lead by your expectations you follow without mentioning until you reach the edge.there is something,fishing.everbody has left,even your expectations and you are alone,an anxious fishie in the deep sea,you rather hit the bottom than being picked up by a fishing rod.one way or another,you`ll die.beautifully sad.
어떤 예감을 따라 침묵 속에서 지구 끝에 도달한다. 그 곳은 모든 것의 끝이고, 바로 네가 ‘낚이는’ 곳이다. 모두가 떠나고, 심지어 느껴지는 예감마저 사라져 버렸을 때, 너는 완전히 혼자가 되고 거기엔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생선 한 마리 밖에 남지 않는다. 자, 너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계속 바다 밑으로 가라 앉던지, 아니면 낚시대에 낚이는 것이다. 물론 그 어느 것을 선택해도, 네게는 죽음만이 예정되어 있지만. 슬프도록 아름답다.

songmeanings.net에서 dready vs. mason이 쓴 글.

songmeanings.net에서는 이 곡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어떤 팬들은 이 곡이 pymarid song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는데, 내게는 오히려 creep의 리메이크가 아닌가 싶다. 마치 scatterbrain이 bulletproof i wish i was과 관련맺고 있는 것처럼.

http://citizeninsane.eu/arpeggi.html 이 사이트에 가면 Apreggi에 대한 어떤 편집광의 기록을 볼 수가 있다. 징한 놈… 곡 하나 가지고 한 페이지를 만들다니…

야채 볶기

요즘 집안 살림의 절반은 맡아서 하고 있는 터라 정신이 없다, 는 것은 거짓말.
얼마전에 동생이 설날 선물이라고 햄셋트를 받아 왔는데, 간만에 햄을 왕창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비싼 햄이라 아껴두고 먹으려고 했더니 유통기한이 3월 초까지였다. 어쩔 수 없지.
시도 때도 없이 햄을 먹는다. 그냥 볶아서 먹고, 구워서 먹고, 볶음 밥 해서 먹고, 찌개에도 넣고…
아무튼 몇 덩이 안남았다.

그리고 야채랑 같이 볶아서 반찬으로나 할까 하고 냉장고를 뒤지니 남은 야채는 고작해야
지난 설날 때 부추전이랑 또 뭐 한다고 사 놓은 부추 한 줌, 미나리 한 봉지 그리고 된장국에 넣고 남은 달래
조금 뿐이더라. 그것도 반쯤 물러져서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간신히 먹을 수 있는 것들만 따로 추려서
씻고 올리브유 듬뿍 붓고 달군 프라이팬에 간을 조금 해서 햄이랑 신나게 볶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추랑 미나리, 달래 같은건 기름 듬뿍 넣어 볶으면 형체를 알 수 없이 뭉개져서 식감도 완전 꽝이고 맛도 별로 없어진다는 것!

생각해보니 나물 같은 줄기 야채는 단단하지가 않아서 볶는 것 보다는 국에 넣거나 살짝 무침을 하는게
더 나았다. 햄이랑 같이 볶기 좋은 야채는 당근이나 감자, 양파 같은 단단한 것이다. 특히나 햄에 부족한
식이섬유를 보충하기엔 당근이 좋았을 것이다.

결국 저녁에 집에 돌아 온 식구들 가운데 아무도 그 햄볶음을 먹지 않았다. OTL. 그래도 햄 맛으로 먹으면
되는데…

쪽팔려서 그냥 있기엔 멋적었고, 다행히 건미역이 많이 있어서 미역국을 끓였다. 최근에 부모님이 어떻게 저떻게
해서 진짜 천일염을 한포대 구해오셨는데, 이 천일염이 정말 장난아니게 맛있다. 미역국에 넣었더니
그 담백한 맛이란… -_-)=b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일기

긴 연휴였지만, 내게는 거의 의미가 없는 연휴였다. 오랫만에 뵌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셨고 (하지만 세월의 화살을 누가 피할 수 있으랴),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서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나이가 지나게 되었다. 한 주 내내 술을 입에서 떼지 못할 정도였다가 급기야 토요일에 귀국한 친구의 환송회(?) 자리에서 오버한 나머지 다음 날인 일요일 내내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복구모드’로 몸이 전환되는 것이다. 복구모드가 되면 나는 일체의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고 계속 잠을 자거나 뭔가를 먹어야 한다. 정말 많이 먹었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밥에 물을 넣고 끓여 먹기도 했고 야채국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하고…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야 정상.

‘정상’이란 말이 참 우습게 들린다. 패치에 패치를 거듭해서 원래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어떤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내게는 어떤 상태가 정상인가.

이제는 밤에 자고 낮에는 깨어 있을 수 있다. 이런게 정상이겠지. 가끔 자려고 누으면 너무 흥분을 해서 (성적인거 말고) 생각이 많아져 잠이 오질 않는다. 내 안에 묵은 상처들이 얼마나 깊은지, 검고 무서운, 무거운 분노들이 거품일듯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다시 약으로 억지로 잠들려고 해도 또 꿈은 얼마나 리얼한지, 한번도 편안히 잠든 적이 없다. 자도 현실이고 깨도 현실이고… 무슨 이토 준지 공포만화도 아니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잘 이해 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자아를 억누른다. 평범하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도 꿈이다. 깨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코드가 담백해서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엔 어제와 같다. 어제는 어제의 어제와 같고, 어제의 어제는 어제의 어제의 어제와 같다.

토니 타키타니

교보문고에 가면 가끔 DVD 파는 곳에 들린다. 이걸 어떻게 구하나 싶은 DVD 타이틀들이 3,900원이라는 초저가에 많이 풀리기 때문이다. 오즈 야스지로 시리즈도 여기서 3,900원에 구했고 (‘꽁치의 맛’을 샀고 또 뭐 하나 사서 사티형 선물로 주고, ‘동경이야기’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건 없었다.), 에릭 클립튼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도 구했고, 거스 반 산트의 것도 몇 개 구했다.

이게 재고가 항시 있는게 아니라 준비되는대로 갖다 놓는 모양이어서, 어제 있었던게 오늘 없을 수도 있다. 엊그제는 왕가위 시리즈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동사서독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것도 없었다. 동사서독은 국내 개봉판이 원래의 러닝 타임이 아니라 팍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시 구해봤으면 하고 있다.) 와 ‘말타의 매’라는 고전 헐리웃 영화 (가끔 이런 영화 보면 참 재밌다.), 그리고 이 문제의 ‘토니 타키타니’를 샀다. 타이틀 다섯개를 샀는데, 값은 고작 2만 얼마. 최신 출시작 타이틀 한개 값이다.

그래, ‘토니 타키타니’. 이건 동명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한때 미친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는데, 영화 보면서 서서히 예전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감독의 주제넘은 로맨티즘이 빚어낸 참극이다. 신선한 부분도 있긴 하다. 원작을 관통하는 하루키 특유의 거리감을 (혹은 공허함을) 평면적인 각도의 카메라 앵글로 표현하려했던 부분이라던가, 관찰자의 음성이 배우들의 독백으로 처리된다던가 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배우들의 감정의 누출은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상당히 센티멘털하다. 번번히 이 센티멘털한 음악이 먹먹한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또 원작에서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은 뒤에 물려 받은 재즈 레코드를 중고로 팔아 넘기면서 끝났던 이야기가, 끝났어야 했을 이야기가 감독의 어거지로 연장된다. 이를테면, 옛 기억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과거의 흔적들을 태운다는 장면이, 그냥 그렇게만 맺었어도 좋았을텐데 굳이 거기서 2년 전에 아내가 막 죽은 뒤에 아내의 빈자리를 이겨내기 위해 채용할 뻔 했던 여인의 이력서를 발견하고 그걸 따로 보관한다. 그리고 ‘그녀가 아내의 옷방에서 울먹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운운 어쩌구.

영화 내내 빈 자리들을 보여준건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실감, 공허감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대상인가. 꼭 사랑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렇게 끝낼 작정이었으면서도 어째서 카메라는 매번 피사체와 거리를 두었는가. 이건 이를테면 한 입으로 두 말한 격이 되는거다.

암튼 감독을 제외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특히 미야자와 리에는 예뻤다. 아, 이건 연기하고 상관 없는건가? 아니 그래도 예뻤다. 73년 생이라는데, 어째 이제 갓 스무살 밖에 안된 것처럼 솜털 뽀얀 얼굴이었다. 게다가 이 미야자와 리에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스케일링

토요일부터 왼쪽 어금니 잇몸 부분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져서 오늘 치과엘 갔다. 증상을 말하니, 의사는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한다. 현상된 엑스레이 필름을 한참 들여다보던 의사 왈,

“스케일링 부터 해야 할 것 같구요, 충지도 많고, 사랑니도 뽑으셔야겠어요.”

그래서 일단 스케일링을 했다.

나는 고통에 대범한 편인데도 스케일링이 끝나고 나자 꼭 쥔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기절해버리고 싶었던 것은, 군대 이등병 시절 일요일에 몰래 포상에 올라가 낮잠을 자다가 인원점검을 하는 일직사관에게 걸려서 내무반으로 끌려갔던, 막 내무반 문을 열기 전 그때 이후로 간만이었다. 이를 잘 닦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난 정말 이 열심히 닦는데! 제대로 3분씩 꼭 닦는데!)

충치 치료와 사랑니의 경우 천문학적으로 돈이 들어 갈 것 같아서 일단 그 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중.

스케일링 도중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둔중한 치통은 좀 나아졌다. 진통제도 큰 몫을 했다.

클로버필드, 비극의 실체에 닿은 관객들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토할 것 같았다. 돈주고 본게 아깝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다.
‘심지어’ 재미없다.

… 고 말 할 사람들은, 아예 미리부터 보지 말기를 권한다. 특히 토할 것 같다고 한 사람들이 많던데, 건강상의 문제로도 정말 보지 말기를 권한다.

나는 놀랐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칠천원인가 내고 ‘본’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재미없다.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이 영화는 고객서비스는 하나도 할 줄 모른다. 심지어 이 영화는 공간 지각에 장애를 일으켜 구토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단연코 볼만한 영화다. 영화가 재난 한 가운데로 관객을 ‘모셔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건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정적인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실제로 팔레스타인에서 테러의 위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실상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 아니라, ‘되라’고 한다.

개봉 몇달 전부터 부족한 티저 프리뷰만으로 ‘괴수의 정체’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던 에이브람스는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친다. 사실 괴수의 모습은 몇 컷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괴수가 어떻게 생겼냐, 얼마나 쎄냐, 얼마나 잘 부수냐, 얼마나 잘 죽이냐 이런건 이 영화 안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네가 지금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팝콘이나 주워 먹으며 ‘관람’하는게 아니라.

이건 어떻게 보면 정말 슬픈 얘기다. 한번도 비극의 실체에 닿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고통받는 개인들. 마치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잘 된 기획기사의 제목같아 보인다. 우리는 기사를 읽고, 공감을 하고, 좀 더 나아간 사람들은 기부를 한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냔 말이다. 여전히 지구 반대편에선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피흘리며 죽어간다. 절대로 ‘그들’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애인이 총탄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게 우리(관객)의 한계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이지 내 자신이 파편더미에 ‘매몰’되는 줄 알고 기겁을 했다.

써놓고 읽어보니, 이 글도 너무 피상적이다. 그냥 영화관 가서 봐라. 보고 ‘느끼’지도 말고 ‘체험’하지도 말고, 그냥 열심히 도망다니시길 바란다.

I Understand Completely

I Understand Completely by Paul Gilbert From Guitars That Rule The World

Instrumental Rock (일반적으로 악기 연주가 강조되고 가사는 없거나 거의 없는 음악의 한 장르).

Making it’s first appearance in 1992, The Guitars That Rule The World featured many legendary axe slingers, such as Yngwie Malmsteen, Earl Slick, Zakk Wylde and Richie Sambora demonstrating their diverse musical proficiency in vastly different ways. Everything from classical to blues was represented. The producers of this compilation simply made an offer to fourteen of the world’s greatest renowned guitarists to stretch their boundaries as far as possible, without any creative limits. The results are varied. Sonic highlights include tracks by Paul Gilbert, Alex Skolnick and the Malmsteen/Olausson offering, “Leviathan”. Ah, you’ll pine for the glory days when guitar mags actually wrote about this kind of technical heaviness! Instrumental Guitar (Electric (Heavy)/Shred/Hard Rock), total running time, 58:28
http://www.guitar9.com/guitarsthatrule.html

1992 년에 발매된 “(The) Guitars That Rule The World”는 잉웨이 맘스틴, 얼 슬릭, 자크 와일더, 리치 삼보라 같은 전설적인 기타 연주자(axe slinger)들의 음악적 성취를 다양한 방법으로 녹여내고 있다. 클래시칼 (롹) 부터 블루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망라된 이 앨범의 제작자는 열 네명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자들이 창조적 작업에 방해됨 없이 자신들의 영역을 자유롭게 넓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결과물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왔다. 폴 길버트의 저 눈부신 속주를 보라. 알렉스 스코-ㄹ닉과 맘스틴과 올라-우슨의 “Leviathan”은 또 어떤가. 오, 분명 당신은 예전에 기타 잡지들이 이러한 육중한 기교들에 대해 썼던 영광스런 나날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라디오 튜닝 소음 가운데서 한 아이가 말한다. ‘I understand completely.’ 이 한 마디는 곡 전체에서 유일하게 식별 가능한 한 마디다. 뭘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인지 친절한 설명도 없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것은 속주와 속주, 그리고 속주 뿐이다. 만약 누군가 기타를 빠르게 칠 수 있다면, 그건 그의 연습의 결과만을 보여줄 뿐이다. 속주는 그 자체로 어떤 예술적인 면을 가질 수 없다. 이 곡을 듣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I understand completely를 듣고 나서, 나는 적어도 폴 길버트에게만은 그런 선입견을 유보하기로 했다. 속주도 속주 나름이지… 그는 어쿠스틱 기타로 보여줄 수 있는 속도와 기교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올 정도다. 대체 인간이 어떻게 손가락을 놀려야 저런 연주가 나오는 것일까. 아찔해서 아름다운, 그런 기타다.

다시 I understand completely. 폴은 아이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한다. 나는 다 (완벽히) 이해했어. 나에겐 이 소음들은 전혀 의미가 없어. 나는 소음을 뚫고, 화음과 불협화음, 의미의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동시에 받아들이기로 했어. 정말 높은 것, 이를 테면 숭고함 같은 것… 그리고 낮은 것, 저열함들… 그건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나는 여길 떠난다. 나는 더 이상 이것과 저것을 나누는 장벽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나는… , 하고.

강철같은 전설들이 존재했던 시대가 문득 그립다.

전문가

“정치를 상당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라던가,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의 능력이 다소 결여가 된 이런 층에 있어서는 무분별한 수용, 이러한 위험을 낳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경영 현상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는 미디어 같은 경우에는 그에 대한 상당한 책임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사평론가라던가.. 하는 사람의 지난 PD수첩에 삽입된 한 꼭지다. 말하자면, 귀가 얇은 사람들은 이런거 보면 뻑가니까 보여주는 방송이 먼저부터 조심해야 한다, 이런 내용인데 이걸 전문가 의견으로 꼭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건 그 평론가의 소양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뻔한 내용을 억지로 전문가 의견을 넣는답시고 청취해 삽입한 방송의 문제인 것 같다. 앞에서 계속 허경영 신드롬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쭉 해왔다. 그리고 나서 대체 무슨 건설적인 결론이 나와봤자 더 나오겠는가? 지켜보자, 조심하자.. 이정도 밖에 더 있나?

“저렇게 많이 먹다가는 탈이 날 것 같은데요, 선생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네, 자신이 평소 소화해 낼 수 있는 양을 초과해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급성 소화불량이나 구토증상이 올 수 있으니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온정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연말연시 하면 묵은 해를 정리하고 새 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기간이지요. 이때만큼은 사람들의 마음도 다소간 따스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온정의 손길이 많은 것 같습니다.”

뭐 이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