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피크어와 동무 이야기

요즘 읽다가 중간에 접어 둔 스티븐 핀커의 ‘언어 본능’을 다시 보고 있다.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온전한 이해가 가능 하겠지만, 정신만 좀 집중하면 수월찮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고 있기 때문에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대할 수 있기도 하다.

핀커는 그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몇가지 ‘상식적’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장들에 대해 논박을 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엔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서 심지어 명망 있는 지식인들에게 까지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 즉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한다.)’ 는 언어결정론에 대한 것도 있다.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과 미국인은 사이에는 언어의 차이에 의한 사고의 간격이 존재한다. 두 집단은 사용하는 모국어가 다르며, 모국어에는 그 집단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유의 개념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가 영어로는 “I have a son.” 인데, 미국인이 존재를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Have) 반면에 한국인은 존재를 자신과의 관계성 안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인의 사고는 물질적이고 실용적이며 객관적인 반면에 한국인의 그것은 정신적이고 관계지향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핀커에 의하면 이것은 논리적 비약이거나 이렇게 주장할 만 한 뚜렷한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첫번째로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류학적 관찰들은 허풍이거나 날조거나 도시괴담이다. 두번째로 언어결정론이 수용 가능하다면 그것은 언어 없는 사고를 가정할 수는 없어야 하는데, 최근의 사례들이나 실험에서는 인간이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인지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따른 생각의 작동원리에 관한 이론이 인간의 사고 활동에 관한 의문들을 정치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들의 내용이나 근거는 책에 다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찾아보시길 바란다.)

핀커는 이러한 내용들을 다루는 챕터의 첫번째 장에 오웰의 ‘1984년’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뉴스피크어의 목적은 잉속(Ingsoc, 영국사회주의)신봉자들에게 적절한 세계관과 마음의 습관을 위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밖의 일체의 사고 방식을 불가능 하게 만드는 것잉었다. 적어도 사고가 언어에 종속되어 있는한, 일단 그리고 영구히
뉴스피크어가 채택되어 올드 스피크어가 잊혀지게 되면 이단적 사고, 즉 잉속의 원칙에서 벗어난 사고는 말 그대로 생각 할 수 조차
없게 되리라는 것이 의도였다. 뉴스피크어의 어휘는 당원이라면 마땅히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의미를 정확하게, 때로는 아주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반면에 여타의 모든 의미들이나 간접적인 표현방식의 가능성은 배제됐다. 이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단어들을 고안함으로써, 그러나 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단어들을 제거하고, 그렇나 단어들에서 비정통적인 의미를 벗겨내고, 그리하여 가급적 일체의 이차적인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free라는 단어는 뉴스피크어에도 여전히 남아 있으나, This dog is free from lice(이 개에는 이가 없다). 또는 This field is free from weeds(이 밭에는 잡초가 없다). 와 같은 진술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 정치적·지적 자유는 개념으로조차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당연히 명명될 수도 없으므로, 이 단어는 politically free나 intellectually free라는 옛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 서양장기에 대해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이 ‘퀸’과 루크’의 이차적 의미를 모르듯이, 뉴스피크어를 유일한 언어로 사용하면서 성장한 사람은 equal이란 단어가 한때 politically equal이라는 이차적 의미를 가졌다거나, free라는 단어가 한때 intellectually free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수많은 범죄와 오류들이 지칭할 이름이 없고, 그래서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범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 일단 언어와 사고가 반드시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란 것에 주목하면서, 다음의 블로그 엔트리를 한 번 읽어보자.

http://poisontongue.sisain.co.kr/325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가 블로거 자격으로 북한에 방문하면서 있었던 일 가운데, ‘내가 본 북한의 10대 얼짱’이라는 제목으로 방문 기간 동안 만났던 안내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그는 거기서 각 안내원의 사진을 올리고 그녀들의 이름 뒤에 ‘동무’를 붙인다. 엠파스 국어사전에 따르면 북한어에서 사용하는 동무는 단순히 ‘친구, 벗’을 의미하는 남한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엠파스 국어사전 [북한어] ‘동무’)

고재열 기자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댓글에서의 많은 반응들이 이 ‘동무’라는 호칭을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많은 보수 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남한 사회의 심각한 안보 불감증을 반증하는 것이거나, 정치적 오염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보기에 안좋다라는 의견은 재론의 가치가 없으므로 무시함.) 왜냐하면 ‘동무’는 확실히 남한 사회에서는 죽은 언어이지만 북한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용중인 언어이며, ‘동무’가 가지는 북한 사람들이 합의한 사회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댓글들이 지적하고 있는 ‘동무’가 가지는 불온성에 대한 혐의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 구체적으로는 ‘동무’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진실로 그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견고하게 관련 지을 만 한 근거가 없다는 점으로 벗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한 턱 쏴라’ 할 때의 ‘쏘다’가 총을 발사하는 행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폭력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듯이.)

차라리 초상권이나 여성을 대상화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아야 했었다, 댓글러들은.

블로그 버전 업 & 스킨 변경

svn 태깅은 프로젝트마다 다 정하기 나름이지만, 일반적으로 branch, trunk (, sandbox) 정도로 운영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텍스큐브의 그건 좀 요상하다. trunk에 최근 정식 릴리즈 버전의 소스가 들어 있는게 아니라 최신 개발 버전이 들어가 있다. 대신에 branches/1.x 하는 식으로 branches 밑에 각 메이저 버전 별로 정식 릴리즈 소스가 들어간다. (이것도 좀 이상한데 현재 정식 릴리즈 버전은 1.7.5고 branches/1.7에는 1.7.6 rc1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태연하게 저장소로 소스를 내려받도록 하는 안내 페이지에서 trunk의 주소를, 즉 최신 개발버전의 소스 주소를 알려준다. 이건 안정화 버전이 아니라서 설치했다간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나중에 태깅 문제 건의를 좀 해봐야 겠다.

http://forum.tattersite.com/ko/viewtopic.php?pid=31120#p31120

tags/ 에 메이저 릴리즈 버전이 올라간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동안 업데이트를 못해서 가장 최근 버전이 올라가지 않았던 모양.

어쨌든 1.7.6 rc1로 버전 업. 스킨도 적당한 걸 구해다 조금 손봤다. 환한 톤의 스킨을 적용했더니, 꼭 내 방에 형광등이 켜진 것 같다.

나는 눈이 조금 안좋아서 (누구나 다 그럴까?)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아프다. 그래서 내 방 조명도 몇 년 동안 형광등 대신에 백열전구를 사용했었다. 지금은 삼파장인가 오스람인가 하는 형광등으로 바꿨는데, 이건 좀 괜찮은 것 같다.

대추리 배너는 뺐다. 배너 하나 걸어 놓고 그게 마치 수호부적처럼 내 양심을 건사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왠지 역겨웠다. 그렇다면 이랜드는 왜 남겨 두었을까? 대추리는 마침표를 찍었고, 이랜드는 현재 진행형이라서? 잘 모르겠다.

My Favorite Wikipeida Entry

If someone’d ask me that “Does Wikipedia get you trust like Britannica does?”, I’d say “Not 100%, but still It gives me enough trust to let me be with it.”. Yes, I like Wikipedia, even if getting rumors about its authority.

Here comes my favorite Wikipedia entries:

The X-Files
It’s AWESOME page having tons of info about The X-Files. It has much more stuff than official Site. While watching some episodes, I used to access this page for getting behind episode story that I was watching. It still reminds me TWO S(Spooky mulder and Skully).

Scrubs
Scrubs is the funniest US medical comedy show I’ve even seen. I bet it’ll make you funny. You should check it out.

Roy Buchanan
Roy is a blues guitarist who is making the most heartful sound in history. You know, It was so BLUE of an underground blues guitarist’s life that he’d killed himself by hanging on Aug. 14th, 1988 in Fairfax County Jail. Who knows? Maybe he made a dream of being a music star in another life.

Jeff Buckley
Jeff is a singer-songwriter. He was a son of Tim Buckley who was also a famous singer. He got only two albums while he was alive. Only two albums, but It totally rocks. He might be a musical genius.

Red Right Hand – Nick Cave & The Bad Seeds

큰거 하나 푼다.
이런건 원래 혼자만 야금야금 들어야 제맛인데..

닉 케이브는, 개인적인 평가로는, 이 곡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문제적인 아티스트 대열에 속할 수 있고 생각한다.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이상한 상상을 한다. 뭐였더라, 무슨 만화였는데. 연쇄살인범이 있고 십년간이나 그를 뒤쫓는 형사가 있었다. 어느 어두운 빈 공장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둘은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 결국 살인범은 형사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그리고 그 후, 형사는 자신이 쫓던 살인범의 범행 수법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엑스파일에서 봤던가. 결국 어떤 악의적인 영혼이 죽기 바로 직전에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의 육신 속으로 스며든다는 것이다.

음악에도 어떤 악마, 혹은 신이 있어서 광기에 찬 명곡을 만들고 또 다른 음악가로 옮겨가는게 아닐까.

자전거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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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트라이다 같은거 사고 싶지 않은건 아니다. 돈도… 뭐 기십만원 주고 스트라이다 정도 산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라면도 못 먹고 살 정도로 내핍한 상황도 아니고 말이지. 다만, 아직까지 내 인생에 ‘자전거’가 어느 정도 효용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 큰 돈 주고 샀다가 잘 타지도 않고 하면 또 얼마나 인생 비겁해 질꺼냐 싶어서 대충 동네 자전거포에 가서 눈에 확 띄는걸로 샀다.

이름도 ㅎㄷㄷ. 대한민국 자전거의 살아 있는 역사인 삼천리에서 나온 26 뉴태풍 DX. 모델명에 26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천연덕스럽게 21단 밖에 지원하지 않음은 역시 삼천리 특유의 깡다구랄까, 그까이꺼 5단 쯤은 존심 상해서 뺐어, 하는 식의 호기로움이 엿보인다. (아, 찾아보니 26은 타이어 크기네.. 26인치. -_-;;)

이놈의 자전거포가 빙하기가 찾아 와 어느 순간 멸종하고 만 공룡처럼 동네에서 자취를 감춘 탓에 삼십분이나 걷고 거리를 두리번 거리다가 겨우 허름한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의외로 자전거포 앞엔 동네 아저씨들이 당장이라도 삭아서 부서질 것 같은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기름칠을 해달라는 둥 브레이크 와이어를 바꿔달라는 둥 하면서 와구와구 모여 있다.

그리고 역시 자전거는 아직 인터넷보다는 자전거포에서 사야 제맛이라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주인장 할아버지. 자그마한 몸집에 눈이 두 배로 커 보이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손엔 잔뜩 기름때가 묻은 모양이 마치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은둔 고수같은 풍모다. 할아버지 바쁘신데 채근하기가 뭐해서 잠시 옆에서 자전거를 만지는 할아버지를 지켜본다. 중간에 반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뭔가를 고쳐달라고 한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나중에 온 아저씨의 자전거를 신기한듯이 만져보다가 이거 얼마에요? 하니까 으쓱하며 ‘한 오십만원 줬어요.’ 한다. 그러니까 카센타로 치면 동네 허름한 카센타에 벤츠 몰고 와서 브레이크 라이닝좀 봐주세요 한 격인데, 나름 가격에 쫄만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까이꺼 대충, 하면서 기름때 묻은 손으로 오십만원짜리 자전거를 와구와구 만진다. 역시 이 할아버지의 후까시는 진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대충 가계 앞에 정리되고 할아버지가 조금 쉬는 틈을 타서, 할아버지 자전거 좀 보러 왔어요, 하니까 거 들어가서 보슈, 한다. 워낙 가계가 작아서 들여 놓은 자전거는 별로 없다. 할아버지 저 한 5만원부터 10만원 사이 생각하고 왔는데 자전거 얼마나들 해요? 했더니 제일 싼게 12만원부터 시작한다나… 12만원 짜리는 쇼바가 없고, 13만 5천원 짜리는 앞쇼바만, 15만원 짜리는 앞뒤쇼바가 다 있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데 나라고 쫄 필요 없다 생각하고선 그럼 15만원짜리로 주세요, 했다. (저… 3개월 할부로. -_-;)

페달을 달고 선심쓰듯이 잠금고리 비싸고 좋은거라며 하나 선물로 준 것을 받고선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타보는 자전거냐. 간만에 타려니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더군다나 울 집은 경사가 져서 기어를 내려도 ㅎㄷㄷ이다. 아니, 오랫만에 자전거 타는데 좀 돌아다녀 볼까 하고 부천을 경유해서 한참을 달려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인적 드문 자전거 도로에서 한 컷.

자전거를 왜 샀냐하면… 틈틈히 나와바리 관리를 하려면 기동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ㅎㅎ

진 토닉

오늘 오후에 밖에 나갔다가 주류상점이 눈에 띄이길래 무작정 들어갔다. 자꾸만 진 토닉이 마시고 싶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 토닉의 베이스인 드라이 진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좌측의 런던 드라이 진이 국산(-_-;;)이라 시중에서 구하기도 쉽고 값도 제일 싸다. 오른쪽의 코맨더 같은 경우는 나도 말로만 듣고 실제로 구입해 본 건 처음이다. 가격은 런던 드라이 진에 비해서 약간 비싼 편. 그리고 무려 주류상점에 비피터가 있었다. 그거 삼만원이나 하데. 씹라. 이름 값을 하는거냐.

진 토닉에서 ‘토닉’은 힘을 북돋아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름 그대로 여름 한 철 더위에 지쳤을 때 상콤한 레몬과 소다의 톡톡 튀는 탄산, 그리고 묵직하게 그 뒤를 잡아 주는 진의 풍미를 즐기다 보면 힘이 나는 걸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원래 레시피대로 하자면 토닉 워터도 있어야 하고 레몬이나 라임도 사야 하는데 이게 원 술값보다 악세사리가 더 비싸서 말이지. 나는 집에서 간편하게 즐기기 위해서 토닉 워터를 사이다로, 레몬을 레몬 액기스 즙으로 대신하고 있다. 오히려 이 편이 빈 속에 부담없이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칵테일… 이라곤 하지만, 나는 이 진 토닉 밖에 만들 줄 모른다. 지금도 한 잔 이미 말아서 마셔버렸고, 두 잔 째 말아다가 옆에 두고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작업을 하는데, 왠지 모를 호기가 뱃 속에서 치밀어 올라 프로그램 제대로 돌아가던 말던 무작정 코딩하고 있다. 으하하하하하.

갑자기 무리해서 진을 두 병이나 샀으니 당분간은 잠도 잘 오고 즐거울 것 같다.

어떤 노년

접근성에 대한 지리적 우위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맥이 좋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내가 사는 화평 빌라 앞 마당은 동네 노인들의 다운타운이다. 이런 현상이 시작된 시기는 약 1~2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엔 이 빌라에 사는 노인들만 모여서 한담을 나누거나 장기를 두거나 했는데, 점차 인근 빌라의 노인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중심에 대한 욕망은 공평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화평 빌라 마당이 다운타운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 기억으로 원래의 다운타운은 옆 빌라인 신월 빌라의 좁은 골목이었다. 여기에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서 가져다 놓은 의자가 있어서 노인들이 모였던 것이 신월 3동 46번지 일대 노인 다운타운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를테면 ‘신흥’ 다운타운인 화평 빌라로 그 세를 넘겨 주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화평 빌라 마당이 다운타운이 되자 운 좋게 ‘다운타운족’이 되어 버린 A군 노인들과 (화평 빌라에 사는 노인들과 모여드는 인근 빌라 거주 노인들. 인근 빌라 거주 노인들은 대부분 화평 빌라에 사는 노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다.) A군에 합류하지 못한 B군 노인들로 (아직까지도 신월 빌라를 고집하는 구세력) 이 세력을 나눠 볼 수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B군 노인들은 A군 노인들에 대해서 약간의 질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이 두 세력 간에 별다른 교류는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의 소일거리는 다음의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폐지 수집
페지 수집의 경우 화평 빌라에 사는 C 할머니가 신월 3동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이 할머니의 나와바리는 인근 화곡동까지 넘볼 지경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노인들의 폐지 수집이 ‘하루 벌어서 라면이나 사먹으려고’ 내지는 ‘손주 용돈이나 줘보려고’ 시작하는 생계형 폐지 수집이라면 C 할머니는 거의 기업형 폐지 수집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이 할머니는 폐지를 수집한 그 날 즉시 고물상에 넘기지 않는다. 거의 1.5톤 트럭 두대 분량의 폐지를 모아서 정리해 놓고 나서야 느긋하게 고물상 트럭을 호출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트럭한 15만원에서 30만원 정도라나. (이것도 지나가며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다.) 이 할머니는 폐지를 화평 빌라 바로 옆 도로에 쌓아 놓는데, 이것이 한때 화평 빌라의 집값을 하락하게 하는 중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주민들로부터 나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양자 간에 조정이 이뤄져, 현재는 할머니도 비교적 깔끔하게 폐지를 정리해 놓고 주민들은 주민들 나름대로 의외로 버리려면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되는 폐지들을 (박스나 옷가지, 기타 고장난 전자제품들) 쉽게 할머니에게 인계함으로써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누가 정말 생계형 폐지 수집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2. 장기, 바둑
장기나 바둑은 주로 할아버지들의 차지다. 내게 슬슬 졸음이 몰려 오는 하오 무렵부터 장기판에 알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빌라 옆엔 할아버지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 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를테면 ‘누가봐도 할아버지’인 부류가 있다면 ‘분명 아저씨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들과 같이 놀려고 하는 아저씨’가 있다는 것이다. 나름 다른 할아버지들보다 젊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아저씨는 이 부류에서 상당한 이슈 메이커다. 매 이슈마다 (비교적) 정확하게 사건의 개요를 들려주는 것이 아마도 매일 아침에 신문을 꼼꼼히 읽고 이야기 할 내용을 정리하는 폼세다.

3. 수다
역시 수다 하면 할머니들. 가끔 수다와 함께 반찬 거리를 다듬는 모습도 보인다. 더불어 급한 일이 생기면 빌라 새댁 애기도 봐준다. 역시 할머니 하면 이런 느낌. 나는 나름 밖에 나가는데 불편해서 (내가 나가면 일제히 할머니들이 날 본다.) 좀 그렇지만.

아무튼 왜 이 다운타운 운운 하면서 이야길 꺼냈냐면, 아까 아침 7시에 담배가 떨어져서 가계에 가다가 구 다운타운 (신월 빌라)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 7시 하면 누구에게는 꽤 시간이 흐른 아침 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이른 아침이다. 특히나 어디 출근 하는 것도 아닌 할머니에게는.

마치 그 자리에서 밤을 샌 것처럼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마실 나올 친구들을 기다린다고 하면 그건 너무 이른 시간인데, 하고 생각해 본다. 늙으면 잠이 줄어든다고 하지. 새벽같이 일어나 자식 내외 출근 준비 시키고 (혹은 할아버지 아침 올리고) 나니 정전 된 것처럼 할 일이 없어 나와 본 것 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왜 안 나올까, 너무 빨리 나온걸까, 하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그 할머니는 깨어서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꿈이 아니라 먼 과거의 꿈 말이지.

그나저나 우리 동네엔 왜 노인정이 없는걸까. 구청에 한 번 건의해 봐야겠다.

서있는 사람들 4 – 안녕, 앞 집 여자야

삼사년 전 회사 댕길 때 이야기니까, 지금 그녀는 한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꺼다. 아침에 출근할 때 또 좆같은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절망감 보다는 앞 집 여자와 마주쳐서 버스 정류장까지 의식하며 걸어야 하는게 더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만약에 같은 버스를 타야 하기까지 했다면 아마도 난 회사를 옮기거나 관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불편한 섬씽같은게 있었냐고? 혹시 주차문제 같은걸로 대판 싸운 적이 있었냐고? 아니.

그녀는 소아마비였다. (였을 것이다. 아니라면 다리에 뭔가 문제가 있었거나.)

혼자서 비척비척 걸을 수는 있는걸 보면 중증은 아닌듯 했다. 일반 걸음보다 훨씬 느린 걸음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그녀를 떨치고 먼저 걸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심각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녀 앞 삼사미터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걸었다. 이러고 보면 장애인 이동권 같은걸 입에 주워 담던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곧잘 느끼게 된다.

아무튼 한 십분쯤 걸어서 정류장에 당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면, 그녀가 저 멀리서 걸어 오는게 보였다. 어떤 날은 그녀가 먼저 버스를 탈 때도 있었다. 만원버스에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버스를 탄다. 그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람들의 시선과, 어쩌면 과잉 친절에 부담스러워 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그녀에게 지옥같았을 것이다. 대체 아침마다 어딜 가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걸 보면 대학생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어딘가에 출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걸 보면 학생은 분명 아니었지 싶다.) 회사에 출근했다면, 사무직은 아니었겠지. (이건 편견일까?) 아마도 공장 같은데 가서 옆 자리 언니랑 “언니, 오늘은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 이런 이야길 나눴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한 육개월을 마주쳤으면 서로 눈인사라도 나눴음직한데 눈인사는 커녕 제대로 얼굴을 본 기억도 없다. 그냥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름대로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우리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리고서 회사를 관두고 또 다른 회사에서의 출근시간이 늦춰짐에 따라서 그녀와 다시 아침에 마주치게 되는 일은 없었지만, 왜 그녀 이야기를 꺼냈냐면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그녀와 집 앞에서 또 마주쳤기 때문이다. 노오란 가로등 아래 저만치에서 비척비척 걸어 오는 그녀가 보였다. 손에는 무슨 참치캔 선물셋트 같은게 들려 있는걸 보면 회사에 다니는게 맞는 것 같다.

어두워서 얼굴을 분간하지 못해도 그 걸음걸이는 천만명 가운데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기랄. 밤이어서 그래. 인사라도 할까 하다가, 어두운 길가에서 (그녀가 날 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내가 인사하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래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뭐 그런 얘기.

오, 구글 크롬.. 그리고 우리 사는 이야기들

싸이월드의 학과 클럽에 술먹고 올린 글인데 블로그에도 옮겨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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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배준이가 엊그젠가 추석 안부 문자 보내면서 구글 크롬 좋냐고 물어보더라.

구글은 알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업체.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라는 의미의 신조어가 웹스터 사전에 이렇게 올라갔다지.
“Google (동사,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그 동안 그렇게 구글 웹브라우져 개발 계획이 없다고 구라를 까더만, 역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구글 속은 모른다니까.
아무튼 이번에 구글이 ‘크롬’이라는 이름의 웹브라우져를 새로 들고 나왔지롱. (이거 좋다. 엄청 빨라.)
하고 싶은 이야긴 크롬이 얼마나 좋으냐가 아니라…
사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웹브라우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동의어로 사용되지.
마치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와 동의어처럼 사용되듯이. 그것 이외에 어떤 선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컴퓨터를 처음 사용할 때부터 깔려 있던게 윈도우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니 ‘사용자 경험’은 거기서 굳어져 도저히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게 문제냐고? 아니, 문제는 아냐. 내가 ‘담배’ 하면 디스 플러스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인터넷 익스플로러만이 머리에 박힌 것은 그저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할 뿐이거든. 이를테면, 기호야. 배기호나 기호논리학 할때 그 기호 말고 호불호 할때 그 기호. 한국에서 98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짜 이빌 엠파이어라서 숭악한 주술을 걸어 거기에 현혹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는건 아니거든.
스타트 라인이 완전 차이가 나서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한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윈도우즈를 쓰게 되니까) 대안적인 선택을 상상할 수 없는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책임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그게 그런 수준의 문제라면 딴지 걸고넘어질 정도의 심각함도 아니지.
몇 주 전에 (전에도 잠깐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오픈웹이 걸었던 소송이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개뼉다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쉽게 설명하자면… 인터넷 뱅킹 해 본 사람들 있지? 그거 하려면 ‘공인인증서’란걸 받아야 해. 예를 들어 내가 우리은행에서 인터넷 뱅킹을 통해 계좌이체를 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럼 난 우리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뭔가 팝업이 뜨면(공인인증서 창) 내가 사용하는 인증서를 선택하고 암호를 입력해야지만 로그인이 되는거야.
그럼 이 (공인) 인증서란게 뭘까? 이건 쉽게 이야기해서 ‘온라인에서 내가 정말 나인지 식별할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을 해 준 문서’ 정도로 이해하면 될꺼야. 내가 나의 공인인증서를 갖고 있고 이 인증서에 대한 암호를 알고 있다면, 은행에서는 아 이 공인인증서로 접속한 새끼가 이주헌이 맞구나 하고 넘어간다는거지.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아니 사실 문제가 많지만 이건 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사용자 인증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가능하다는거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인인증서를 관리하고 내가 입력한 암호와 인증서의 암호를 비교해서 은행에 ‘아 이새끼 올바르게 암호 입력했어요. 얘는 걔 맞아요.’라고 신호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윈도우즈에서만 돌아가.
대한민국에선 이정도만 해도 사실 거의 문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 왜냐하면 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98퍼센트가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니까. 그런데 나머지 2퍼센트는 어떻게 하지? 걍 ‘윈도우즈 쓰세요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이따구로 밖에 답변 안함.)’ 하면 될까? 왜? 윈도우즈를 국가에서 전량 구매해서 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하라고 강요할까?
아무튼 이런 문제를 갖고 오픈웹이라는 인터넷 모임에서 국가 (금융결제원) 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현행 법상으로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은 소수의 비윈도우즈, 비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게 아니냐구.
뭐 이 나라가 맨날 이 모양이듯이, 법원은 금융권의 손을 들어서 (내 머리에서 필터링 한 바에 의하면) 상업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 기관이 그렇게 까지 빡시게 사용자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지.
이게 뭐 어떻냐는 사람도 있을꺼야. 왜냐하면 익숙한 개념이 아니라서 그래. 자, 익숙한 개념으로 바꿔서 설명해볼께.
니가 차를 샀어. 쌍용 자동차에서 만든 대체 에너지 어쩌구 한 차를 산거지. 그건 나무를 태워서 연료로 삼는 그런 자동차라고 해.
기분이 한껏 들떠서 드라이브나 할까 하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려는데, 이거 입구에서 경찰이 막는거야.
‘무슨 문제 있나요?’
‘고속도로는 경유나 휘발류를 사용하지 않는 차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엥? 왜요?’
‘왜냐하면 경유나 휘발류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유사의 수익이 줄어들고 유류세 수입도 줄어들어서 국가 경제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아니 그럼 나무를 태워서 달리는 차도 유류세처럼 세금을 걷으면 될꺼 아니에요.’
‘앞으로 그럴 계획에 있습니다만,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들이 한국도로공사 소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에서 결정한 대로만 따를 뿐입니다.’
‘그럼 세금을 내도 한국도로공사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고속도로에 진입을 못한단 얘긴가요?’
‘네.’
이 뭐 병… 아니, 실제로 그렇게 판결을 내렸다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프로그램을 바꾸는건 일도 아냐. 물론 투자는 좀 해야겠지. 그래봐야 몇 억이야. (기관 입장에서는 이정돈 투자도 아니지..)
자,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그건 우리가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럼 윈도우즈나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하는건 잘못된걸까?
그건 아냐. 하지만 우린 알게 모르게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만드는데에 동참하고 있다는거지.
마치 인간의 현대 산업 문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지구에 폐를 끼치는 것처럼.
이 ‘공인인증’이란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맹신하는 것도 문제야. 그게 아무리 온라인에서 ‘내가 나’임을 인증하는 것일지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은행에 접속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라 ‘이주헌의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으며 비밀번호도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 주민등록번호가 ‘내’가 아닌 것처럼.
자, 슬슬 결론이야.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뭘까?
조금 불편해도 구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쓰는거? 아니. 절대 그럴 필요 없어. 걍 인터넷 익스플로러 써.
윈도우즈를 버리고 맥이나 리눅스, 기타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하는거? 절대 권하지 않아. 걍 윈도우즈 써.
대신에 우리는 그거 이외에 다른 대안을 분명히 갖고 있어. 그것만 잊지 마.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방식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지해줘. ‘미안해요. 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없어서 .doc파일을 읽지 못하니까 그냥 텍스트 파일이나 pdf파일로 만들어서 다시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기지마. (어차피 니들도 다 불법 소프트웨어 쓰는거잖아. 참고로 윈도우즈 비스타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돈주고 사려면 둘 다 합해서 아무리 싸게 사도 100만원이 넘어.)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레포트는 어쩌구 저쩌구 해서 아래아한글 파일로 보내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니가 (불법 복제한) 아래아한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선생님, 전 아래아한글이 없어서 그런데 pdf파일로 보내면 안될까요?’라고 말해.
괜히 밤늦게 말이 길었다. 읽느라 고생했다. 분명 코멘트로 ‘안읽었지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 ㅎㅎ
참, 나 이 글 구글 크롬으로 쓰고 있어. 아직까지 내 메인 웹브라우져는 파이어폭스지만 좀 더 개선만 되면
구글 크롬을 메인으로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

PHP 잡담

지난 8월 8일, 4.4.9 버전을 마지막으로 PHP의 4.X 버전대의 릴리즈가 공식 종료되었다. 2000년 5월 첫번째 stable 버전이 릴리즈 된 이후로 8년 동안 릴리즈 된 셈이다. 링크의 기사를 보니 ‘징하도록 오래 살았다(long live)’가 헤드라인으로 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내가 PHP를 처음 시작했던 것이 2003년인가 4년인가 였으니 4년 넘게 써온 셈인데, 그동안 참 우여곡절도 많았고 지금 보면 얼굴 벌게지도록 창피한 코드들도 많고 (아마도 그 탓인지 예전에 작업한 소스는 맨날 날려버린다. ㅎㅎ) 또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도 산더미란 생각이 든다.

나의 태생적인 한계 (비전공자라는) 때문에 PHP 자체의 어려움 보다는 ‘프로그래밍 랭귀지’에 대한 접근이 쉽지가 않았다. 디자인 패턴, MVC, 데이터베이스 모델링, 재귀 구조, 참조, 정규 표현식, TDD, 프레임웤, 클래스, 오브젝트, 상속, 추상화… 대체 책을 봐도 기본 지식이 없으니 개념을 잡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또, 난 뭘 배울때 돈을 들이는걸 너무 싫어해서 남이 써 놓은 조각글을 통해서 조금조금씩 나아갔으니, 이것 또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프로그래밍의 문턱에서 더듬더듬 벽을 만지며 나아간게, 지금 되돌아 보니 돈 안들이고 배운 것 치고는 그럭저럭인 듯 싶어서 내 자신을 작게 칭찬한다. 조만간 다른 언어를 하나 더 배워 볼 생각이다. 파이썬, 말이지…

아무튼 PHP. PHP 5를 쓰기 시작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PHP 6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돌고 있다. (죽어도 국내 PHP 관련 포럼들에선 그런 얘기 안나온다.) PHP 6이 출시되면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stable해지면) 나는 당연히 PHP 6로 옮겨 갈 것이고, 또 배울게 산더미처럼 생길 것이다. 네임스페이스는 대체 뭐냐….

그런데 정말 국내엔 쓸만한 PHP 문서들이 없다. 이를테면 ‘고수’도 없는 것 같다. 있어도 은둔해 있던지… 가장 크다는 모 커뮤니티 질답란에 자주 들어가서 답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기억에 탄성을 내지르는 질문을 본 적도 없다. 맨날 쌩기초, 쌩기초… 팁란도 예전엔 그럭저럭 테크니컬한 팁들이 꽤 올라오곤 했는데, 요즘엔 자기가 만든 라이브러리를 팁이랍시고 올리는게 전부다. 라이브러리는 자료실에 올리던가…

전태일이가 그토록 소망했던게 법전을 설명해 줄 대학생 친구였다지. 나는 진짜 프로그래밍 고수랑 가까운 사이였으면 좋겠다. 내게 맥을 짚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소스 관리를 안하다가 (나한텐 필요 없는거라 생각했지), 이번에 서버 작업 후에 subversion을 깔아서 사용하고 있다. 놀랍도록 편하다. 맨날 에디트플러스로 작업하다가 이클립스를 쓰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아니 아직 이클립스는 편한 줄 (좋은 줄) 모르겠다.

내게 프로그래밍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계속적으로 자기 내부로 그것을 끌어 들이는 것이다. 난 이걸로 족해, 그런건 필요 없어… 하다가는 릴리즈가 종료된 PHP 4처럼 어느 사이엔가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