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긴 연휴였지만, 내게는 거의 의미가 없는 연휴였다. 오랫만에 뵌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셨고 (하지만 세월의 화살을 누가 피할 수 있으랴), 아이들은 점점 더 자라서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나이가 지나게 되었다. 한 주 내내 술을 입에서 떼지 못할 정도였다가 급기야 토요일에 귀국한 친구의 환송회(?) 자리에서 오버한 나머지 다음 날인 일요일 내내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복구모드’로 몸이 전환되는 것이다. 복구모드가 되면 나는 일체의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고 계속 잠을 자거나 뭔가를 먹어야 한다. 정말 많이 먹었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밥에 물을 넣고 끓여 먹기도 했고 야채국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하고…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야 정상.

‘정상’이란 말이 참 우습게 들린다. 패치에 패치를 거듭해서 원래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어떤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내게는 어떤 상태가 정상인가.

이제는 밤에 자고 낮에는 깨어 있을 수 있다. 이런게 정상이겠지. 가끔 자려고 누으면 너무 흥분을 해서 (성적인거 말고) 생각이 많아져 잠이 오질 않는다. 내 안에 묵은 상처들이 얼마나 깊은지, 검고 무서운, 무거운 분노들이 거품일듯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다시 약으로 억지로 잠들려고 해도 또 꿈은 얼마나 리얼한지, 한번도 편안히 잠든 적이 없다. 자도 현실이고 깨도 현실이고… 무슨 이토 준지 공포만화도 아니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잘 이해 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자아를 억누른다. 평범하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도 꿈이다. 깨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코드가 담백해서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엔 어제와 같다. 어제는 어제의 어제와 같고, 어제의 어제는 어제의 어제의 어제와 같다.

자유

태어나 자란 나라에 반드시 충성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를 낳은 부모를 반드시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수직적 상하관계에 속한다고 해서 반드시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이유는 없다.
아름다운 것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거기에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약육강식을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저열함을 인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네가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나도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인의 공통 목표가 돈이라고 할 때 내가 거기에 반드시 동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자유의 가장 무서운 적은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구속에 길들여진 나의 내부다.
그래서 ‘나의 적은 내부에 있다’는 회의에서는 절대 자유로워 질 수 없다.
그리고 이 회의 조차에서도
언젠가 모든 내적 모순이 서로 충돌하여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게 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내가 세상과 일자로 마주하게 될 때에야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나는 내가 자유롭기를 희망’한다는 것에서도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나는 내가 획득할 자유를 이겨내기를 희망한다.
얇은 옷을 입고 폭풍우 속으로 나설 때, 길은 험하고 숲은 깊었다.
나는 언젠가 불안이야 말로 활화산 같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적었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영등포

돈이 다 떨어졌다. 아니 조금 남아 있는데, 다음 달 공과금이며 나갈 돈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하던 차였다. 나는 신기하게 내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한 1년을 붓고 있던 보험을 깰 생각을 했다. 이자도 붙지 않는 삼년짜리 환급보험을 왜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개나), 아무튼 이 상황으로 봐서는 삼년이 지나기 전에 내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한 탕 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묵묵히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줘 잘 해 봤자 본전치기라 큰 맘 먹고 보험을 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 보험은, 기억하기로 내가 한 때 돈을 조금 벌때, 어머니 교회 아시는 분이 보험설계일을 시작하시면서 실적을 내지 못해 하는걸 두고 강제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온라인으로는 해약이 안된다고 해서 영등포 고객센터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고, 어제 눈이 내렸다는데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객센터에는 온갖 고객의 수발을 다 드느라 정신이 없는 센터직원이 하나 앉아 있었다. 먼저 응대하던 사람이 있어 나는 쇼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왼쪽에서는 틀어 놓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른쪽에서는 뭔가 상담하느라 이상한 보험용어들이 쏟아졌다.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한쪽 테이블에 놓인 고객용 커피를 타서 차근차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삶이 더 모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낱말로 형용 불가능한 병과 만나면 그저 죽는 것이 ‘네 팔자’가 되어버리던 (돼지라도 한 마리 치던 집이라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해봤겠지만)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저축하는 일은 상상 밖에 존재했을 것 같다. 아니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저축하게 될 오늘 일용할 양식은 곧 오늘의 배고픔과 같은 말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괴질’은 백혈병과 암과 심근경색과 고혈압과 동맥경화라는 사회적 교양언어로 바뀌었고, 자칫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거나 지하철에 치이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이 곳의 불안을 저 곳으로 퍼다 나르고 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구체화 되는 미래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더 심란한 미래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미래를 더 세세히 구분해서 각각의 상황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웃소싱해서 매달 구천구백원으로 안심하는 ‘베스트자녀사랑보험’같은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월 구천구백원이면 싸지 않나요? 이만큼 생각하니까 고객센터 복도에 커다랗게 붙어 있던 보험설계사의 월 실적표가 이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투신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불안을 돈으로 처방하는 것, 키에르케고르 형님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아무튼 나는 영등포로 나갔던 길만큼을 되밟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크릴 창문이 온실처럼 열을 가두어 나른한 봄날 같았다. 나는 레드 제플린의 Ten years gone을 계속 반복해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날아가는 철새였다.

어떤 생각 1

만약 어느 날에 모든 한국인이 몽땅 미국으로 이사가고, 동시에 모든 미국인이 한국으로 이사온다면 미국인이 사는 이 땅은 한국일까 미국일까? 한국인이 사는 미국 땅은 미국일까 한국일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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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면 하나에 훈제 계란 3개를 사서 퇴근을 한다. 거의 매번, 집의 불은 꺼져 있다. (불은 꺼져 있다, 하니 삼사년 전에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썼던 ‘헤이, 택시’란 글이 떠올라 말미에 덧붙인다.)

부리나케 씻고, 사발면에 물을 붓고 밥을 한 공기 떠서 상에 놓고… 반쯤 삭아서 신맛만 나는 김치를 꺼내 티븨를 틀고 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거침없이 하이킥이 안하는가부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드라마를 오래도록 진득히 본 경험이 없다. 그냥 퇴근하고 밥먹고 나면 갑자기 진이 빠져서, 상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워 한 삼십분 동안을 빈둥거리는데, 빈둥거리다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하이킥을 보지 않으면 그 다음 일 (예를 들면 상을 치우고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하는 등등) 이 안되게 되었다. 그런데 밝혔다시피 이런 드라마들에 흥미가 없으므로, 이게 몇시에 하는건지, 무슨 요일에만 하는건지는 잘 모른다.

그렇게, 오늘은 하이킥이 안나오고 나쁜여자인가 착한남자인가가 해서 그냥 티븨를 끄고 상을 치웠다. 냉기가 찐득하게 묻어나는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며, 문득 너무 심란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무슨 일인가로 눈만 감고 밤을 샜다. 오늘 오전, 오후 내내 나는 멍한 정신에서 일을 했다.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축제가 열리는 날 같다. 그 축제는 이웃마을인가, 혹은 시내인가에서 열리는 축제다. 다들, 심지어 가족도 축제의 열기에 들떠서 벌써부터 집을 비우고 동네고 뭐고 할 것 없이 한산하다. 나도 왠지 가야 할 것 같지만, 가고 싶지는 않고, 가지 않기로 하자니 안가면 뭐가 안될 것 같은, 이런 개똥같은 기분이다.

나는 정말 이런 삶을 원했었다. 요동없이 고요한 삶. 타인에 의해서 뜨거워지지 않는 삶. 이 미친 것이 너무나도 그런 삶을 원한 나머지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춥다. 사실 그다지 춥지는 않지만, 느끼기에 울음이 나올 정도로 서늘한 기분 같은거 말이다.

물론 가끔 짜릿하게 행복한 시간도 있다. 출퇴근하면서 틈틈이 읽는 ‘시간의 역사’라던가, 다섯달째 듣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러나 그 외에 나는 대부분 정체상태에 있다.

[#M_’헤이, 택시’ 보기|’헤이, 택시’ 접기| 

술을 좀 먹어줬다. 왜 먹었고, 누구와 먹었고, 어디서 먹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여기에 세세히 기억해서 적고 고쳐서 다듬고 하는 짓은 좀 멍청이 같은 것이리라. 술을 먹을 때, 그러니까 마실 때, 가장 중요한 플롯은 ‘술을 먹었다.’ 라는 건조한 묘사 뿐이다. 이게 기본적인 구조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리고 딸깍, 하면서 끝난다. 그러니까,

술을 좀 먹어줬다. 사실 좀이 아니라 좀 많이 먹어줬다.

그리고 선배가 택비시로, 아니 택시비로 이만원을 쥐어준다. 아니 뭘 이런걸 다, 하면서 나는 받는다. 어째 분위기가 촌지 받는 초등학교 교사 같다. 아니 뭘 이런걸 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귀중하게 쓰겠습니다, 운운. 그리고 택시를 탔다. 좀 머리가 멍해있는데 아저씨가 남부순환도로 쪽으로 가자고 한다. 왠지 택시기사의 이런 제안은 쉽게 승락하기가 어렵다. 팔팔로 가요, 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다가, 팔팔이나 남부순환도로나 거기서 거기고 택비시, 아니 택시비도 내 돈이 아닌데 좀 돌아가면 어떠랴 싶어서, 아니 정말 사실은 그런 세세한 일로 아저씨랑 알콩달콩 말싸움하기 싫어서, 아니 정말정말 사실은 정작 어디로 가야 빨리 갈 수 있는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네, 남부순환도로로 가죠. 안막히겠죠? 그럼요, 지금 시간이 몇신데. (결국 안막혔다. 역시.)

그리고 강남대로였나 어디쯤인가를 달릴때 아저씨랑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다. 처음에 뭔 일로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팔팔이냐 남부순환도로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전말은 이랬다. 팔팔… 은…, 아 팔팔로 가려면 돌아가야 하는데, 아 그래요? 역시 그럼 남부순환도로쪽으로 가요. 그러면서 이바구가 시작된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학생이에요.”

아, 그러면서 난 이 아저씨가 누구하고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냐면, 렌스 헨릭슨.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배우다. 에일리언 2인가 3에서 인조인간 비숍으로 나오기도 했고, 엑파의 크리스 카터가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그러나 불운하게도 실패했던 외화 시리즈 ‘밀레니엄’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어딘가 모르게 엑스트라오디너리한 곳을 바라보는 눈빛을 한, 서글픈 중년, 아니 노년의 배우.

“피곤하시겠어요?”

“피곤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입금을 하죠.”

“아, 정말. 입금은 보통 얼마나 해요?”

“하루에 십일만원 정도 넣어야 해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서 한달에 어느 정도 받으세요?”

“하루에 열여섯시간 정도 운전하고 해야 잘하면 백오십 정도?”

“어휴.. 택시비 오른다고 사람들 맨날 욕하는데, 그래도 운전하시는 분들한테는 그게 안돌아가나봐요?”

“택시비 오르면 뭐합니까. 입금도 그만큼 늘어나는데. 그나마 올해 또 택시비 오른다고 하는데, 그땐 입금은 그대로 한다니까 그 말만 믿어봐야죠.”

“근데 그것도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허허.”

미터기가 촤르르륵 올라간다. 신림동 어림쯤을 지나고 있었다. 술 기운 때문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마치 뇌만 고무로 된 몸체에 넣어 둔 것 같았다. 날이 갈 수록,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뭔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감각이 없다.

“어디 학생이에요?

“숭실대학교 다녀요.”

“우리 아들은 이번에 건대 졸업했어요.”

“아니, 마흔 아홉이시라더니 벌써 아드님이 대학을 졸업했어요?”

“허허, 제가 좀 일찍 결혼했죠.”

“젊었을 땐 뭐 하셨어요?”

“제가 한 십오년 일식요리를 했어요. 그땐 식당도 좀 크게 했었고. 그러다가 처가랑 좀 싸움이 생겨서… 칼부림도 좀 나고 그랬죠.”

“아.. 그럼?”

“이혼한지 꽤 됐어요. 애들한텐 이 일하면서 한달에 백만원씩 부쳐줬는데, 졸업하면서 이젠 너희들도 성인이니까 돈은 더 이상 못부쳐준다 했더니 그 다음부턴 찾아오질 않더라구요, 허허.”

“아직도 혼자세요?”

“그렇죠 뭐.”

“어디 사시는데요?”

“… 살아요.”

“혼자 사시면 쓸쓸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그래서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쏘주 한 병 사들도 그거 먹고 자고 그래요.”

그리고 서부트럭터미널쯤을 지난다. 벌컥 ‘렌스 헨릭슨’의 불꺼진 방이 떠올랐다. 그는 고단한 몸을 가누며 구멍가게에 들러 쏘주 한 병을 산다. 덜컹, 덜컹 두번 잠긴 골목길 옆 반지하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싸늘한 냉기가 건조하게 그를 반긴다. 여전히 아침에 아무렇게나 해놓고 나간 그대로다. 이부자리에선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난다. 티븨를 틀면, 치지지직 하는, out of service 상태. 대충 김치를 꺼내 소주를 마신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열어 아들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지만, 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을 태우게 될까, 장거리였으면 좋겠다. 그 손님을 내려주며, 또 장거리 손님을 태웠으면 좋겠다. 거기서 또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그리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눕고 나니 씻는걸 잊었다. 하지만 다시 씻으러 일어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고래가 삼킨 것처럼 벌컥 의식의 불이 꺼진다. 잠깐, 어디선가 희미하게 비냄새가 난다. 한 여름 지나치게 마른 땅에 내리던 소나기의 냄새.

“아저씨, 저… 이만원 드릴께요. 어차피 이 돈 선배가 택시비 하라고 준거고…”

미터기는 만 육천원쯤에 멎어있다.

“아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요 학생.”

“아뇨, 정말 저 이거 제 돈 아니에요. 선배가 준거에요. 괜찮아요, 받으세요.”

렌스 헨릭슨은, 그러니까 그 노년의 배우와 어느 홀아비 택시 운전수는 웃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웃는 건지 얼굴을 찌푸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학생,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아요, 학생도.”

“아저씨도 열심히 사세요.”

열심히 살아요, 가 그 날 마지막 ‘렌스 헨릭슨’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올라, 난간에 팔을 대고 그의 택시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동안 지켜보았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장거리 손님을 많이 태우는 것도 행복이고 그의 아들에게 연락이 오는 것도 행복이며 택시회사들이 버스회사와 마찬가지로 서울시로 편입되는 것도 행복이다. 그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왈칵 눈물이 났다. 육교 저쪽에서 고삐리로 보이는 두 남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씨발이라던지 조까를 외치며 지나가서, 나도모르게 얼굴을 닦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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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서울나기’란 타이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는 도시에서 산다는건 참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멜라토닌인가 세라토닌인가.. 하는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온다는 우울증, 나는 도처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깔아놓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실천하고 있었다. 기형도의 시작노트에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도시에서 사는게 너무 싫었다.

도시에서 사는게 싫었다, 는 말은 반드시 도시를 벗어난 삶이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골도 거기서 거기쯤이었으리라. 문제는 내 나이였고, 거대한 세계가 주는 압력이었다. 인간이 곧 우주라던데,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정보들 사이에서 아무런 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이 터무니 없는 존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주는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가..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다. 나의 원제는 ‘어느 룸펜의 서울나기’였고 나는 그게 썩 잘 지은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나를 대전고속버스터미널 공중인터넷컴퓨터 앞에서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국도를 굽이쳐 서울로 향하는, 저녁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기형도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국토(國土)에 깊다’라고 썼다. 나는 산자로 가득한 산천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면 어김없이 산 하나를 건너 불을 밝힌다. 그 불빛들 하나 하나가 각각의 삶들에 대응한다. 거의 매번 그런 풍경을 지날때마다 나는 열심히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려고 시도했다. 노동의 고단함과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보글보글 된장국이라던가, 드라마와 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리모콘 쟁탈전이나 내일까지 막아야 하는 대출금 이자 같은 것들. 멀리서 보면 모든게 아득하게 달콤한 새벽녘의 잠투정 같아진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즘의 경계는 너무 가까이 보거나 너무 멀리서 보는 것, 외에 다름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냥 살아지는건 없다고, 밥 꼭꼭 씹어 먹듯이 살아내야 한다.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앞서 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건 참 힘들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많은 고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깨버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님 말고.

일기

오랫만에 음악을 들으며 무언갈 한다. 만화책도 읽고 귤도 까먹고…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도중에 갑자기 얀 가바렉의 울렁울렁, 마치 성수기가 지난 수영장에 씌워놓은 덮개같은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미안한 일일까.

시미즈 레이코의 어느 단편 만화에는 식욕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된 인조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나중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식욕을 제거한다. 왜냐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식욕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욕을 제거한 뒤로는 좀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이 만화를 처음 읽었던 것은 십수년 전이었는데, 이토록 우울한 이야기를 너무 일찍 읽었던 것 같다.

텅 빈 바람을 마음 속에 꼭꼭 눌러 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하하하.

신경과민

어느 날은 매우 과민된 상태로 깨어난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싶어서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보면 새벽 다섯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밖에선 엄마가 출근준비로 소근소근… 이를테면 중간지대가 없다. 혼몽한 수면과 명료한 정신이 프레임 하나 차이로 바뀔 뿐이다.

그럴때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말을 건다. 일상적인 대화도 있고, 일과 관련된 내용도, 그냥 듣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자기고백 (혹은 자기기만)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 말들은 마치 직접 뇌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뇌에는 고통을 느낄 만한 수용체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온 몸의 통각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체는 통각이 없다.

이럴때는 수가 없다. 가만히, 퍼렇게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되뇌이는 것이다.

다시는 정글로 들어가지 말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떠올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친구놈과 함께 ‘아귀레 – 신의 분노’를 보다가 사이좋게 잠들었던 기억.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던 것.
만다린을 처음 마셨던 일.
뽀드득뽀드득 눈이 내린 밤의 산길을 밟아 초소근무 교대하러 간 일.
나를 향해 미소짓던 얼굴들.
인터넷에서 만난 착한, 그러나 항상 어딘가 고장나 있던 사람들..

만세!
내일도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