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한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가 한대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갖고 있다!!) 가끔 내키는대로 들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삼십분을, 바람에 눕는 풀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그 다음의 이초나 삼초 정도 사이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또 다시 한두시간을 누워 하늘을 보거나… 해거름이 지려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 툭툭 털고 터벅터벅 흙길을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마을 어귀의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전에 맡겨 놓은 필름이 현상되었는지 물어본다. 천원이나 이천원을 쥐어주고 현상된 필름을 들고 집에 당도하면, 멍멍이가 달려와 무릎에 안긴다. 또 한 삼십분 멍멍이랑 놀아주고, 씻고, 옆 집 순영이 할머니가 그저께 가져다 준 텃밭에서 마구 뽑아 온 푸성귀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고 책이나 전축, 사진도구들이 잔뜩 들어 있는 방에 들어가 현상해 온 필름을 라이트박스에 놓고 보며 희죽희죽 웃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수채화 물감을 풀어 한 눈으로는 루뻬를 통해 사진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그 풍경을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그날 완성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시들해져서 그만둬도 좋다. 어쨌든 그렇게 쌓아 나간 스케치북이 열 두서너권 쯤 되면 나는 또 밤새 그걸 안주삼아 킥킥하면서 뒷집 영이 할머니가 담근 막걸리로 얼큰하게 취할 것이다. 그리곤 아! 하며 무릎을 친다. 내일은 뒷골 순심이 할머니 (왜 죄다 할머니 뿐이냐..) 영정사진 찍어드리는 날이구나 하는 것이다. 순심이 할머니는 매번 내가 놀러 갈때마다 젊은 것이 일은 안하고 히죽히죽 웃고 놀기만 한다고 타박한다. 그래도 순심이 할머니는 외할머니랑 많이 닮아서 좋다. 그리고 다음주 쯤에는 할머니들이랑 나물 캐러 가야지, 또 그런 생각에 히죽히죽 웃는 것이다.

또 이래도 좋을 것이다. 서울서 결혼한 원영이가 제수씨와 큰애, 작은애를 데리고 주말에 놀러 온다. 나는 그들이 머물 방을 치운다, 해 먹일 음식을 준비.. 는 못하고 영이 할머니한테 부탁하거나 지난번 비가 많이 내려 물에 떠내려간 마을 냇가 평상을 다시 만들어 놓는다거나 하면서 간만에 바지런을 떠는 것이다. 지나가던 영이가 ‘삼촌, 미친거 맞지 지금?’ 하면서 농을 걸면, 그래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래 요것아, 좋아서 미치겠다!’ 한다. ‘영이야, 너 내일 서울서 친구들 오는데 여기 서방골은 니가 잘 아니까 친구들한테 좋은 것 구경 많이 시켜줘야해’ 하면 영이는 ‘삼촌 사진기 열흘만 빌려주면 생각해볼께’ 하며 혀를 낼름 내밀고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 영이한테 카메라를 한 대 선물해야 겠구나 마음을 먹는 것이다.
다음날 원영이가 번쩍번쩍하는 코란도를 끌고 마을 어귀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면, 고까짓것 고무신을 꺼꾸로 신고 후다닥 부리나케 달려나간다. 우히히, 우히히 지나가다가 순심이 할머니네 누렁이가 꿈뻑꿈뻑 풀을 씹고 있으면 엉덩이 찰싹 한대 때리고 헐떡헐떡대면서 기다리고 있는 원영이네 가족을 만나러 간다. 잠깐 기다려! 내가 보일락 말락 할때 즈음부터 성질급한 원영놈은 차를 돌려 내쪽으로 오려 하는데, 나는 손짓발짓하면서 오지 말라고 막는다. 기념으로 한 장 찍어야지, 하고 마을 머릿돌 위에 사진기를 올려 놓고 지이이이익 하는 타이머를 감아 놓고 또 히죽히죽 웃으며 원영이와 애들과 제수씨와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길이 험해서 차는 어귀 공터에 놓아두고 나는 근처에서 밭일을 하던 명식이 아부지한테 ‘아부지 나 지게 좀 빌려가요!’ 하고 ‘어, 어, 어… 나 꼴 베야 허는디..’ 하는 명식이 아부지 뒤로 하고 한아름이나 하는 짐을 지게에 올려서 뒤뚱뒤뚱, 원영이는 ‘야, 좀 천천히 가 짜식아’ 하면 나는 또 뒤를 돌아보고 히죽히죽 웃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감자랑 옥수수를 삶아서 내놓으면 아이들은 벌써부터 동네 애들이랑 친해져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히히히 장난질 치고 ‘야들아, 너무 멀리가면 그냥 그집가서 자’ 한마디 하니까 명식이랑 영이랑 순심이랑 애들이 서울애들 손목을 끌고 ‘울집가서 자자’ 한다. 원영이는 서울서 가져온 좋은 음악을 꺼내 놓고 제수씨는 ‘이래저래 해도 주헌씨가 제일 팔자 좋네요’ 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면 나는 또 히죽히죽 웃는다. ‘서울 살기 퍽퍽하면 제수씨네도 내려와서 살아요. 여 빈집 많으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서 살면 되는데..’ 하면 이번엔 원영이가 히죽히죽. 아무튼 그렇게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사는 얘기 하다가 밤이 지나는 것이다.

또 나는 동네 아이들 대장이 되고 싶다. 서방골 방위대 대장. 우리의 적은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다. 특공일대장 명식이는 지보다 어린 꼬맹이 두서넛을 거느리고 항상 최전선에서 쓰레기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종군기자 영이는 지저분한 쓰레기들, 특히 명식이 아부지가 가끔 아무데나 버리는 농약병 같은걸 내가 빌려준 사진기로 찍어서 마을 회의때 발표한다. 명식이 아부지는 얼굴이 뻘게져서 ‘그거 내가 버린거 아닌디.. ‘ 하면 다들 와와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나는 머슴이 되고 싶다. 수십년간 내가 버린 것들, 내가 모른척 했던 것들, 내가 이유없이 미워했거나, 뒤에서 욕을 했거나, 마음 속으로 다치게 했던 것들. 그 모두는 다른 어떤 이들에게 치유불가능한 상처일 것이다. 나는 너를, 그 깊은 내부를 본 적이 없으므로 그 동안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왔다. 마음 독히 먹고 잔뜩 쟁여서 튀어 나가라고, 뒤에서 소리치는 고참의 말에도 마음 한 구석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면 곳곳에 내 죄악의 흔적들 뿐이다. 몇년 전에 나는 나를 위안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정말 위안받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나이므로 내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너는 내가 아니므로 내가 준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머슴이 되고 싶다. 혼자서 견디는 삶보다, 떠받드는 삶, 보다 낮은 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네가 지금 하고 싶은게 정말 그거란 말야?

응.

멜렁멜렁

집에 오자마자 나는 멜렁멜렁해진다. 멜렁멜렁은 말랑말랑과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벌렁벌렁이 더 가깝다면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벌렁벌렁한 말랑말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시,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나는 벌렁벌렁 말랑말랑해진다. 엄마랑 장난을 조금 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감식초 한 잔을 만들어 컴퓨터를 켠다. 엄마는 회사에서 그렇게 컴퓨터를 만져놓고 집에 와서 또 컴퓨터를 켜고 싶냐며 핀잔하지만, … … … 그러게나 말이다. 사실 그다지 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멜렁멜렁하기 때문에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한다. 윈앰프에서 티카티카하고 산울림이 노래를 부른다. 발바닥은 슬근슬근 간지럽다. 동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작복작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옷을 찾는다.

오늘은 하루종일 쌜쭉쌜쭉. (그러니까 집에 오기 전까지) 바깥 날씨는 아직까지도 여름에 맞춰진 내 대뇌신경계가 깜짝 놀랄만큼 쌀쌀했지만, 내부는 아직도 뜨어거운 여름이어어어었다. 저녁에는 감자탕에 동동주를 마셨고, 직원들과 남 흉을 봤다. 그런데 그 ‘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아무와도 인연이 없는 아주 먼 과거의 어떤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사람의 꿈들을 한데 모아서 동전으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일이 썩 맘에 든다.

우연

1964년 7월 31일 오후 두시 경, 뉴욕 맨하탄의 3번가 뒷골목에서 사진작가인 루이스 러브송은 보름 뒤 철거 예정인 어느 빌딩의 쓸쓸한 마지막 풍경을 필름에 담고 있었다. 그녀가 앵글을 높여 빌딩의 처마를 지키고 앉아 있던 가고일상을 촬영하려고 했던 바로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로 그녀는 후두부의 총상입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명백히 우발적인 살해였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마퀴스 드마르쿠스는 철거 예정의 빌딩을 거점으로 하는 지역 갱단에 입단하여, 분쟁 상태에 있던 상대 갱단의 침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허리춤에 38구경 리볼버를 꼽고 빌딩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먼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빌딩을 노리는 어떤 백인 여자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갱단의 간부들을 저격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 마퀴스는 그녀의 뒤로 접근해 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루이스 러브송은 스물 아홉으로, 이제 막 사진계에 좋은 평을 듣기 시작하던 신예였고 마퀴스는 스무살 생일 지난지 두달이 된 겁없는 청년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영국 런던의 템즈강 워털루 브릿지의 교각에 떠내려오던 여자의 시체가 걸렸다. 시체는 강변을 산책중이던 아비게일 스탈링 (45세) 이 발견하여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아비게일은 오년 전 심장병 발병 위험이 높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틀 뒤, 아비게일은 침대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것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주위 사람들은 심약했던 그녀가 시체를 목격한 것에 대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각에 걸려 있던 시체의 이름은, 놀랍게도 같은 날 뉴욕에서 숨진 루이스 러브송과 같았다. 런던의 루이스 러브송은 맨하탄의 루이스 러브송이 사망한 비슷한 시각에 강변을 걷다가 갑자기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열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륙하여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던 중동항공(MEA) 소속의 코메트-4 여객기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비행기는 인근 사막에 불시착을 시도했고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극소수였다.
사상자 가운데는 중동을 여행중이던 백인 미국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루이스 러브송이었다. 그녀는 여객기가 불시착 한 뒤에도 살아남았으나 구조대를 기다리던 도중 불행하게도 사막전갈에게 물려 독사하고 말았다.

이틀 뒤, 1964년 8월 2일.
미국정부는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 구축함 매독스가 북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개시했으며, 그 후 베트남에 투입된 미군 병사는 년간 54만명이 넘었다. 1973년 종전을 선언할 때까지 미국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은 755만톤이 넘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중 전 세계에 사용된 양의 2.7배에 달했다.

여름 밤

그건 아주 검은색이었지. 모닥불 말야. 굵은 강모래 위에 피워 놓았던 그거. 적은 내부에 있다. 불길은 아주 검게 타들어가다 졸아붙어. 무거운 눈꺼플이 감기기 시작하면 병풍같은 절벽 위로 하얀 달이 떠올랐어. 나는 노래를 불렀지, 차가운 물이 날 휘감을때… 하는 노래를. 삼십육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서도 나는 추워서 벌벌 떨었다.

머리가 복잡해.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이 불어 넘치는 것처럼, 머리 속이 꼭 그래.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라. 아주 추웠지. 달빛이 눈처럼 내렸어. 뽀드득뽀드득 얼음물을 건너서 호빵같은 돌들을 타넘다보면 아주 제대로 돌았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어.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야단을 치고 누구는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목마르다. 누구 나를 위해 잔에 소주를 채워줄 사람 어디 없소. 없어.

한 세번째 말하는건가 싶은데, 왜 이렇게 나는 옅어지는걸까. 외롭다거나 슬프거나 그런 감정을 말하는게 아냐. 물론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편의점 가판대 위에 놓인 물건들같아. 아주 공평하게 진열된 감정들. 말하고 싶은건 그냥 옅어진다는거야. 말 그대로, 점점 더.

아무튼 난 여름 밤이 싫어.
그리고 또 이렇게 며칠전에 쓰다 만 글의 꼭지를 억지로 더 쓰려고 쥐어 짜는 것도 싫어.

유리의 땀

퇴근하고 (새벽에) 나오는데 안개비가 자욱하다. 달리는 택시의 앞유리에 몽글몽글 물방울이 솟는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오늘, 눈물나게 마법처럼 느닷없이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옥상에서 만났다. 나는 한없이 미안했고 그 사람은 아직도 내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같은 빌딩의 15층에서, 나는 13층에서 일을 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오는데 환청이 들렸다. 귓 속에서 요정이 걸어나와 내게 계속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했다.

나는 요즘 계속해서 좁아지는 동굴 속으로 구겨져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괜찮아.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덜컥 겁이 난다. 그냥 내가 원했던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놈팽이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도 일용할 수돗물과 비둘기와 나눠 먹는 빵 한조각으로 즐거이 지나가고, 저녁엔 골백번도 더 읽은, 귀퉁이가 달아서 뭉그러진 어느 소설책을 집어 들고 내키는 페이지부터 읽다가 잠이 드는 그런 삶. 서걱서걱 생활에 잘려 나가는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지켜보며, 그래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해야한다. 아무리 해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삶, 묻어가는 나날들. 물이끼는 물가에 핀다지만, 나는 어디에 피어야 하는걸까.

내게 있는 부정형의 어떤 것들, 을 고형의 틀에 넣어 단단하게 굳힌 다음 백만년의 박물관에 넣어 전시하는 것이다. 일천구백칠십구년산 놈팽이. 곰팡이의 일종이며, 때가 되면 자연히 사라짐. 세계적 희귀생물. 이런 명패를 달고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지는 것. 모든 멸종위기의 생물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어느 정도 매니악한 팬들이 있다. 곧 다가올 IPV6 시대에 상상하기도 힘든 숫자의 인터넷 주소들 가운데 두서너개 정도는 내 몫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화석화된 희망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연 집단인가 개인인가. 왜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색은 검은가. 나는 왜 나인가. 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제기된다. 관람객들에 의해서.

아님 말고.

몸이

에릭 크립튼의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 가운데 “그래 내가 보안관을 쐈다.”를 들으면 피가 끓는다. 목구멍으로부터 간질간질하니 까끌한 욕설같은게 튀어나오려고 발악을 한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 가사 가운데 “내가 쏜건 보안관이지 보안관 대리 따위가 아냐” 라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이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쏘려면 보안관 정도는 쏴야 하는거 아닌가. 같은 교수형이라면 차라리 보안관 살해죄로 죽는게 낫지, 안그래? 아님 말고.

아무튼 요즘 상황이 좀 그렇다. 크게 한 건 하고 잠적할까 하고 생각중이다. 그리고 이 잠적은 아마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잠적하면 슬퍼할 많은 팬들이 있기에.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내 입에서 이런 고백이 쑥스럼 없이 튀어 나올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네. 아님 말고.

내가 없어도 다들 잘 살고.. 내가 없어도 너는 어제와 같고. (아마) 나에게도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 검은 현무암이거나, 겠지. 그정도가 딱 좋다. 검은 현무암. 서사모아 제도 같은데서 지구 생성부터 지구가 폭발할때까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현무암 말이다. 파도에 녹기도 하고 바람에 쓸리기도 하면서 차츰 키가 줄어드는 나는야 검은 현무암(이 되고 싶다). 아님 말고.

이후 (After)

곧게, 가끔은 얼룩진 것처럼 구불텅한 짙은 숲 사잇길을 쉬엄쉬엄 걸어 나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연못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말 연못을 발견할 수 있는지 없는지, 대체 짙은 숲은 어디인지 물을 필요는 없다. 그건 정말 거기 있는 것들이니까. 나이만큼 수그려진 고개와 어깨로 두어번 긴 숨을 내쉬다가, 작정하고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그것들은 거기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일년에 두어번 연못의 수면이 모든 빛을 머금고 반사를 포기할 때가 있는데 만약 당신이 그 연못을 방문했을때가 그때라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평상시에는 수면에 반사하는 하늘의 구름이며, 숲의 음영들로 인해 연못 아래 있는 것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마법같은 우연으로 수면반사가 멈춘 날에는 오히려 공기보다 더 투명하게 그 아래가 내려다 보인다.

물은 다이아몬드처럼 시리게, 썩어가는 나뭇잎은 깊은 시간의 색으로 바래지고 당신 가슴의 출렁임에 맞춰 수면이 작게 흔들리면, 거기 당신, 무엇이 보이지? 나는 시체들이 보여. 하얗게 눈을 뜨고 미동도 없이 정지한 사람들. 언젠가 한번씩은 대면했던 이들. 과거는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미래는 아직도 당도하지 않은 희부윰한 새벽에 조금씩 가벼워지는 세계.

이 망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이후에.

이상한 꿈

첫번째 꿈은 월드컵 토고전이 있던 날이었나, 그날 뭔가로 인해 심히 의기소침해 있던 과장님을 꼬드겨 비교적 일찍 퇴근을 하고 저녁 겸 반주 해서 각자 소주 한 병씩 마시고 또 맥주를 몇 병인가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월드컵 경기를 미쳐 다 보지 못하고 잤던, 기분 참 싱숭생숭했던 날 밤에 꿨던 꿈이었는데, 그때 나는 갑자기 부는 강풍에 떨어진 간판을 맞는 기분으로 우울하게 그 분의 부고를 들었고 꿈 속이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아침이 되어 핸드폰 알람에 맞춰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었고, 두번째 꿈은 그 뒤로 며칠이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잔업에 한참을 또 시달리다 억지로 청한 잠 속에서 옛 애인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표정이 어색해 싱숭생숭한 마음이 되었다가, 뒤늦게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찾아 온 후배가 슬쩍 나를 불러 한다는 얘기가 형 누나 이미 결혼했어요 하는데 그만 또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눈에서 나는 눈물은 거짓이라. 사실 눈물은 부어 오르는 목구멍에서 나는 것이고 덜컹 내려 앉는 심장에서 나는 것이며, 때로는 이야기 하는 입에서 또 때로는 글을 쓰는 손 끝에서 나는 것이라. 삐걱삐걱 흔들리는, 하루에 단 두번만 운행한다는 강원도 산골의 어느 버스에 두고 내린 손가방, 그리고 그 안에 넣어 두었던 잊고 싶은 것들을 적은 쪽지가 변덕스럽게 후회가 되어 한참을 뛰어가며 소리지르고 제발 좀 세워달라고 그 안에 두고 내린 것이 있다고 해도 버스는 나를 위해 되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런데 우리가 또, 아니 내가 또 언제는 현재의 것을 소중히 여겼던 적이 있는가. 현재는 인식하는 순간 과거, 였었고 그래서 내 아끼는 마음은 언제나 후회형의 것들.

아주 먼 훗날에, 혹은 아주 먼 과거에 우리는 때때로 블랙홀과 마주쳤다. 그 중심으로부터 스며나오는 불길한 중력들에 발생한 기조력이 우리를 길게 잡아 찢을 것이다.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깝게 말이다. 슬프냐고, 아프지 않냐고 묻지는 마시길.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먼 곳은 아주 멀게, 가까운 곳은 아주 가까운 상태로 말이다.

태엽감는 사람

다시 대구. 발바닥 쯤인가, 오년 전엔 그게 겨드랑이에 있었지, 하는 태엽을 누군가 되감아 놓고 나는 삐꺽삐꺽 움직인다. 마음은 가라앉는데 마감일정은 그 반대로 분주히 가속한다. 사람이 사는 곳, 그 어디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펄펄 끓는 질척한 아스팔트 위 아지랭이는, 하지만 아주 가벼웁게 흔들리며 꼭 무언가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속삭여 준다. 하얀 뇌가 뚝뚝 녹아 흐른다. 심장은 에어컨 바람에 꽝꽝 얼어가는데도. 그럼 안녕,

하고 또 내일을 기다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