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라오는 길은 술취한 등산객들과 멀미난 아이의 토악질과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간장독의 진한 냄새같은 퀴퀴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동에서 멀어질수록 서울은 가까워졌겠지만, 마음은 어느 사이엔가 샛길로 빠져나가 발광하는 초록 능선들을 헤매었다. 드문드문 산이 떨어지는 곳에 집들이 몇 개 서 있었고 그때마다 몇 개의 생이 떠올랐다 스러졌다. 잠깐, 기형도의 감회가 느껴졌달까. 죽은 자들, 죽어가는 자들은 정말 국토에 깊었다.

여덟시가 넘어도 밖은 훤했지만 어두워지기전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예감같은게 서늘히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제서야 네가 당도한 곳이 이곳으로부터 이억만리나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모든게

잠깐 머물다 떨어진다.

출장중

안동에 내려와 있다. 지급받은, 생에 첫 노트북으로 글을 써본다. 키보드가 무르다. 점심 뒤 밀려오는 2B연필같은 피로감이 발목에 찰랑인다. 여기는 안동이다. 도산서원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으로 나갔다. 높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안동. 서울의 가장 한적한 동네 조차도 이곳보다는 매우 소란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까무라칠 정도로 깊숙한 열기가 시내 위를 무겁게 내리 누른다. 움직임이 없는 도시. 간혹 살랑이는 바람 없이는, 나는 도저히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늙은 개 같은 도시. 저쪽에 하나, 또 저쪽에 하나. 도처에 웅크리고 있는 불온함들. 사람들은 매우 적대적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이 도시의 숨죽인 적의에 비하면.

주의. 안동에 내려 올때, 특히 여름이 시작되려는 때에는 항상 여분의 심장을 준비하시오.

주말

토요일 아침부터 지금까지 줄곧 잠을 잤다. 잠이 오지 않아도 억지로 잠을 자려고 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저녁. 일요일이다.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잎들이 모두 검게 물든다. 이제 조금씩 여름이 된다. 매년 그랬듯이 몇달간 지옥이 계속 될 것이다. 번호표를 쥐고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아주 긴 지옥. 케르베로스가 땀을 뻘뻘 흘리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말한다, “아저씨 거기 새치기 하지 마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아저씨 차례가 온다니까요!”

아, 조금씩 물에 녹는 계절.
조금씩 부어오르는 계절.

…2

어제는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나오려다가 어떻게 저떻게 해서 비교적 가깝게 된 과장님 한분이 맥주 한 잔 하고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맥주를 한 참 마시다가 학교에 가서 학회 후배들을 만나 소주를 또 먹고 가까스로 집에 왔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서 너무 힘들었다. 점심을 먹고 노곤해지려는 정신을 꼬집느라 세수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무려 석잔씩이나 마셨는데도 퇴근시간은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잠이 깨어서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다.

멀리 돌아가는, 그러나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훨씬 아늑한 버스를 타고 방배동 근처를 지날 즈음에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옆에 서 있는 어느 커플 가운데, 여자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저기, 어디까지 가세요?”

짐작으로, 그녀는 매우 피곤한듯 보였고 내 목적지가 멀다고 판단되면 다른 자리 옆으로 옮기려는 것 같았다.

“봉천동까지 갑니다.” (봉천 사거리에서 다시 한 번 버스를 갈아탄다.)

남자친구가 함께 있는 여자를 동정할 여유가 내게는 없다. 그리고 나는 냉담하게 읽던 신문에 코를 묻고 마음 속에선 여러가지 핑계가 떠오른다. 저도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저는 대중교통수단에서 장애인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형평성의 문제지요. 만약 지금 당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내게 있어서 그 동안 양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이 되거든요. 물론 이상한 생각이지요.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 세계는 타인과 공유가 가능한 간섭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속에서만 살아서 자기의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뱀이지요. 이것에 관해서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서 커플은 냉큼 그 곳으로 옮겨갔다.
갑자기 맥이 풀려서 읽던 신문을 접고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꺼낸다. 꽤나 얇은 책이어서 한번 읽고 이번이 두번짼데, 여전히 프랑스인들은 난해한 문장을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래서 그것도 몇 장 읽다 말고 가방에 집어 넣고 말았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본다. 하루가 서서히 착륙하는 저녁. 그 어느때 보다도 길게 늘어진 차량의 빨간 후미등들이 명료하게 빛난다. 다들 돌아가고 있다.
엠피쓰리가 없어도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언젠가 누가 한 말처럼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듣고 있지 않아도 잘 들린다. 머리 속에 저장된 수 많은 음원들 가운데 몇 개를 골라 되살린다. 매우 낡아서 가끔 원하지도 않는 구간반복이 되는 그런 음원들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나는

서서히 공기에 융해되기 시작했다.

돈 빌려주기

오늘 집에 오면서 뜬금없이 ‘이녀석이 나한테 현재 가용한 돈은 전부 빌려달라면 나는 과연 얼마까지 흔쾌히 빌려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개해봅니다. 처음엔 별명을 적을까 하다가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이니셜로 적기로 합니다. (그래도 설명 보면 대충 이게 나구나 싶기도 할 것임.) 또한 아는 사람이 많긴 해도 제 블로그에 종종 들리는 분들로 한정.
사족하자면, 빌려 줄 수 있는 한계액수와 친분이 있는 정도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빌려주고 싶지 않아도 친구는 친구, 친한 사이는 친한 사이!
마지막으로 빌려준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말하자면 ‘그냥 주고 잊어버릴 수 있을만한 액수’ 입니다. 받는 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얼마건 못빌려주겠습니까. 단위는 만원 단위.

먼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TH형 : 절대로 이분은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 할 분이 아니기에 빌려줄 수 있는 액수도 상상 안됨.
HG형님 : 이분도 이런 말 할 분이 아니긴 하지만, 상상은 되기에 액수를 밝힘. 이천오백.
JH님 : 사백오십.
ST형 : 이 사람도 절대 내게 그런 말 안할 사람. 고로 상상 불가.
SW누나 : 백이십. 그리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도 이 이상으로는 말 안할 것 같음.

내 또래
00 : 삼천. 친해서라기 보다 이 녀석이 내게 부탁할 상황이면 가히 그 상황의 급박함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기에. (잊어버릴 수 있다고는 해도 삼천 정도면 언젠간 받아야겠지?)
MH : 오십.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액수와 친분의 정도는 관계없음. -_-;;
SS : 오백. SS야. 오백까진 빌려줄께. 나도 아직까지 못만져본 돈이다만..
HJ : 칠백. 사실은 이건 내가 이 녀석에게 빌리고 싶은 액수…
JY : 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천.

나보다 어린
BJ : 오천. 그냥 있는거 다 주고 싶다. 왠지 불쌍한 녀석.
IK : 육백. 이 녀석 생각했을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액수.
KR : 백이십. 이유 없음.

좀 더 생각하고 적고 싶은데 졸려서 이만…
돈 빌리고 싶은 사람은 코멘트로 알려주세요. 얼마까지 가능한지 즉시 감정해드림. ㅎㅎ

아픈 계절

한때 내게도, 네게도 날개가 있었지
강철같이 따스한 파도
여명이 내린 남국의 해변
광분하는 풀씨앗
이제 봄이야, 하고 말하던 그 손.

–>

아주 긴 긴 시간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때까지,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눅신한 근육이 남은 자에게 훈장처럼 수여되면
그래도 봄은 춥다는 말일게다.

–>

드문드문 퍼 올려지듯이 기절 상태에서 벗어나면 환하게 빛나는 커튼이 보였습니다. 꿈 속에서는 잊기로 했던 일들이 리와인드 되고 있었고 내가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튼을 보고 있으면 온  몸에 열꽃이 피어났겠지요. 아직은 춥더군요, 아직은 봄인지 겨울인지 입이 바싹 마르고.
돌아오면서 나는 몇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신발이 발에 혹은 발이 신발에 맞지 않게 된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깁니다. 다른건 멀쩡한 가로등을 고장나도록 수리하는 엉뚱한 가로등 수리공에 관한 이야기고…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내고 보니 어쩐지 다 내 얘기라서, 아 나는 도무지 나를 벗어날 수 없구나 했습니다.
저녁쯤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고 밥을 먹고 약을 좀 먹고 다시 누울때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감기에 걸렸나봅니다. 몸의 경계가 희미해요. 내가 나를 조정하는 것이 매우 서투르게 변했습니다. 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지금은 계속 아프리카 누나의 그 해먹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제 멋대로 변형한 내용이긴 하지만, 바닷물을 연료 삼아 뻘겋게 불타오르는 수평선까지 우리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겠지요. 누구도 놓치지 않게 단단히 두 손을 엮어 쥐고서는.

출근하는 너의 뒷모습

나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어. 내 옆에서는 네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계속 희부윰한 음영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봤지. 얼굴을 만지고 싶었는데 네가 깰 것 같아서 말야, 너는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잖아. 나같은 백수하고는 상황이 다르니까. 아마도 너를 만지고 싶다는 것과 네게 해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절충안은 그냥 그렇게 지켜보는 것 뿐이었을꺼야. 꿈을 꾸고 있을까… 근사하지 않아? 적어도 네가 잠든 시간에 나는 깨어 있고 너를 바라보고 있어. 숨이 콱 막힐 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야. 그런데 너 코를 좀 골더라구. 하지만 그것도 너무 귀여웠어.

갑자기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줘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지? 너의 작고 아담한 원룸, 약간의 알콜과 음악. 따뜻한 포옹과… 닭찜을 시킨건 사실 좀 무리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멋진 시간을 만들어냈잖아. 나는 네 화장품 냄새가 참 좋아. 씻은 뒤에 그 옅은 살깣의 냄새도 좋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네가 처음인 것 같아.”

“생각해보면 우리 지금까지 참 너무 외롭게 살았던 것 같아. 아무리 옛 일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아.”

“인생을 너무 낭비한게 아닐까?”

네가 참 좋아.

“나도 네가 좋아. 내가 널 치료해줄꺼야.”

나도 널 치료해줄꺼야.

“주말에 어딘가로 여행이나 갈까?”

좋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어.

“너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니?”

강릉.

“바다?”

응. 있지, 가서 아주 찐득하게 사랑하는거야. 찐득하게 이야기하고, 아주 긴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서, 사실 나는 그때 조금 깨어 있었는데, 그냥 일부러 자는 척 했어. 내가 없을때 너는 어떻게 출근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까 엿보고 싶었거든. 작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네가 샤워를 하고 어제 널어 놓은 빨래감을 만져보다가 다 마른 것들만 따로 곱게 개어 놓고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옷을 입고 (네가 옷을 입는 모습은 최고였어!) 방안을 둘러보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신발을 신은 다음 문을 열고 나가는 것까지 다 엿봤어. 눈물이 났지. 튼튼하게 자기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내게는 그야말로 신비야. 어쩜 그렇게도 당당할 수가 있을까. 어쩜 그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지금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네 컴퓨터를 켜고 이 글을 쓰고 있어. 내 옆에는 내가 다시 다 마른 빨래감은 따로 개어 놓고 아직도 마르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널어 놓은 것들이 있어. 그 중엔 네 속옷도 있는데, 의외로 대담한 것이어서 깜작 놀랐지만 다음 번에는 이걸 입은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

이제 갈께. 미안하지만 설겆이는 도저히 못해놓고 가겠다.

너의 출근하는 뒷모습은 정말 최고였어.

김원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사 폭풍

아홉시 뉴스를 보다가 중국으로부터 시작 (정확하게는 몽고) 된 황사가 심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국 베이징, 인가 어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황사가 도가 지나쳐 대낮에 깊은 밤을 가져왔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같은 모래 폭풍이 도시를 휘감았다. 대낮인데도 가로등 불빛이 겨우 발치를 비춘다.

황사는 이렇게 매년 더 심해질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하게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사막히 세계를 뒤덮지 않기를 바랬다. 밥을 먹다가 모래가 씹히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주 긴 시간을 들여서 무슨 심리검사를 했다. 어머니가 자주 다니는 신경정신관가 뭔가에서 받아 온 거라고 했다. 비싼거니 공들여 하라고 하시는데, 이 검사 입대 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하면서 받아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이 결과에 따라서 무언가 치료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디까지나 아직은 정상이길 바라고 있다. 약이 그 어떤 병이라도 치료할 수 있을꺼라고 어머니는 굳게 믿고 있다. 내 삶이 질병이라면, 도저히 그렇게라도 치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거나.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미 병무청에서 받았던 그 검사의 결과로, 군의관이 나를 따로 불러 심각하게 보충역 판정을 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왔어. 4급 줄 수 있는데, (아마 4급이면 공익이거나 상근으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 할래? 넷! 그냥 입대하겠습니다. 그리고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무사히 잘 지냈다.

날이 더워지긴 더워지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땀을 많이 흘려서 온 몸이 끈적해지고, 밥을 먹으면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 그래서 자꾸 의미없이 샤워만 한다 샤워만… 하늘에 별이 없다. 별, 하니까 며칠 전에 다시 꺼내 본 영화 Contact가 떠오른다. 만약 이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낭비 아냐? 차라리 그건 너무 외로운 것 아니냐고 하지… 그러니까 어떤 種적인 외로움 말이다. 대화 가능한 지성체가 전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는 것.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안녕, 안녕..

지능 상승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아바타가 레벨-업을 할 경우에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매우 개략화된 인간의 특성 (힘, 민첩성, 체력, 지능, 정신력 등등) 을 보너스 포인트가 허락하는 한 원하는 대로 올릴 수가 있다. 이로 인해서 아바타는 전에는 착용하지 못했던 장비들을 착용 한다거나 행동이 이전보다 기민해졌다거나 하기도 하는데, 현실에서의 인간도 레벨-업 할 경우에 이런 식으로 특성값들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요즘 내가 예의 레벨-업을 해서 (과연 뭘 해서?) 지능의 특성값이 대폭 상승한 것인지, 이전에는 머리를 싸매고 매진해야 했던 작업들을 한큐에 완료할 수가 있다. 말 그대로 보인다. 마치 언덕 위에 오른 느낌. 그런데 레벨-업 운운한건 그냥 농담이고 아마 의도하지 않은 여유가 넘처 흘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무 황당하게 끝나버린 일들이 많아서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원래 이런건 끙끙대며 해결해야 제맛인데.

첫 문단의 마지막 줄에 이어서, 음, 만약 정말 그런게 존재한다면 나는 매 레벨-업마다 지능만 올리고 싶다. 물리적인 특성들이야 관심도 없고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특성은 전혀 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좋은 인상을 주려고 최대한 열심히 뛰었던 첫 축구게임 뒤에 고참들이 ‘너 다음부터 축구한다고 하면 죽는다.’ 라고 해서 오히려 감사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지능이 높다면 참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요즘엔 똑똑한게 최고니까, 이를테면 무한경쟁시대에 매우 유리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지식정보가 집중된 인간이 유리하다. 자본사회에서는 자본이 그렇고, 수렵과 채집의 사회에서는 수렵 채집을 잘하는 인간이 그렇듯이. 그러나 이제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 가능해진 때에는 더 이상 지식정보를 “소유”한 인간이 아닌 매우 그럴듯하게 “가공, 정리”하는 인간이 보다 유리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아직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공유한 개인들에게만 가치가 있을 뿐이지, 집단적으로 보면 쓰레기일 뿐이다. 이런 모토,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가치가 없다. / 링크되지 않은 페이지는 무의미하다. / 그래서, 너는 어디에 링크될껀데?” 등등이 힘을 가진다. 매사에 좀 더 뭉뚱그려 보아야 한다. 개체가 아닌 집단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디테일한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떤 경향적인 것들, 전체가 흔들리는 움직임들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북마크는 사라질 것이고 검색엔진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된다. (예언) 나는 습관적으로 웹주소들을 외우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다음”이나 “네이버”등을 검색엔진으로 검색해서 방문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건 우리 엄마) 그런데 그게 맞다. 주소를 외우는 것은 쓸데없이 디테일하다. (대량생산된 정보-페이지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검색엔진이 더 이상 잡아내지 못하므로 중요한 것들은 스크랩해둬야 한다는 등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말하자면, 정말 어쩌면 노동조차도 우리에겐 너무 디테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렇다. 나는 우리가 좀 더 다른 것들을 보았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확 바뀌어서 대립과 반목이 있던 자리에 여유와 평화가 자리하게 하는 것이다. 맨날 행복해지도록 노력만 했지 한번이라도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한 불쌍한 우리는 되지 말자는 것이다. 아니면 어떤 선배처럼 과감하게 행복은 사기다, 라고 선언하는 것도 좋고.

뭐 말도 안되는 얘기만 계속했다.

나는 다시 일하러-

친구

불투명한 막 같은게 겹겹이 서 있었다. 하늘로는 그것이 없어서 그대로 푸른 하늘과 구름 같은 것들이 보였다. 전력으로 그 막에 몸을 부딪혀도 충격이 느껴지지 않고 그대로 부드럽게 나를 다시 되 튕겨내었다.
이 막은 미로처럼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으므로 온전하게 전진하기는 매우 힘이 들었다. 이를테면 머리 속으로 전진하려는 진로를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 진로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막을 돌아가다 보면, 이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막이 왜 나를 가로막는지, 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등은 사실 관심이 없었고 그저 (아마도) 막이 있으니까 그걸 돌아서 가곤 했던 것이다.

가끔 쏴아-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다가 힘이 들면 막 아래에 누워서 바람에 얼굴을 맡겼다. 정말로 달콤한 맛이 났다. 좀 더 정교하게 이야기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었다. 혹은 전지분유같은 맛. 혹은 얼음사탕같은 맛. 스산했지만 사실은 풍부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어디엔가 나처럼 이 막에 가로막혀 걷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을 걷기의 목표로 삼았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는건 의미가 없어, 알지?’
‘그렇겠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해.’
‘그런 다음엔?’
‘내가 세계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해.’
‘그리고?’
‘꼭 살아야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피 속에 각인된 그런 외침. 현무암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투로 그런 얘길 했었지. 건방지다는 느낌은 없었어, 왜냐하면 현무암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었으니까. 나는 슬며시 웃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나는 백만년 동안 걸었다. 백만년 동안 사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해진 것 일테니까. 단지 누군가 나처럼 이렇게 헤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납득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었다. 서서히 나와 내가 분리되었고 그 뒤에 분리된 나는 바람이 되었고 남은 나는 또 막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육만년 쯤 뒤에 바람이 된 나는 나를 만나 소슬거리는 희망을 준다. 힘 내. 여긴 너 말고도 수많은 너들이 걷고 있는 땅이야.
그래서 나는 세상에 나처럼 가로막혀 걷고 있는 수 많은 다른 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