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식사

저녁에 J를 만났다. 이 바닥의 교류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 사람은 어떤 생김일 것이다, 하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간다. (이자벨 아자니급의 사기성 외모) 분명 나보다 연상인데, 맥주 마시면서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한번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꾼 꿈 같기도 했다. 언젠가 누구에게서 당신은 참 편한 사람입니다, 라는 이야길 들은 이후로 사람을 만나면 강박처럼 편하게 대해줘야 한다는게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편하게 있었다. (기쁘고 즐거운 종로의 저녁!)

그리고 우리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거리의 비둘기처럼, 시간에 화들짝 놀라 서로의 집으로 흩어졌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게 계속 기대오는 어떤 젊은 처자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나도 살폿 잠이 들었다.

사실은 이 기쁘고 즐겁다가도 열두시가 되면 유리구두 하나 던져놓고 도망쳐야 하는 신데렐라의 운명, 그와 유사한 나른한 피로감을 그대로 이어 침대로 다이빙까지 가려고 했으나, 버스 안에서 잠깐 든 잠때문에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오늘 밤은 어째야 하나,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하늘이 두쪽나도 가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일찍 자긴 자야할텐데, 고민하다가 마침 출출해진 배 때문에 마침 길 가 24시간 기사식당에 닭곰탕이 삼천원이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문을 드르륵 열고 테이블에 앉았다.

절대 소주를 함께 시키려던건 아니었는데, 손님도 하나 없는 해장국집이 24시간 연중무휴로 오픈한다는 말이 너무 서글퍼서 어쩔 수가 없었다. 파리도 날아가다 잠들만큼 지루한 식당 안에서 아저씨는 반쯤 누은 자세로 웃찾사를 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브라운관에 어느 지점을 응시하다가 벌컥 소주 한 잔 마시고, 해장국을 뜨고.

꾸역꾸역 곡식을 채우고 나는 소주에 내 이름을 쓴다. 방년 스물 여덟, 만으로는 그보다 하나 아래. 무직에 백수에… 터져 나오는 배와 찌를듯이 솟구치는 과민증. 영화를 보면 항상 내가 한 일이 아닌데, 계속 조제와 헤어진 쓰네오처럼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조제가 잘 지내고 있을까? 요즘도 혼자 그렇게 생선을 구워서 먹고 있을까? 혹시 또 옆집 변태아저씨의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지내지는 않을까? 정말 쓰네오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을까? 가 떠올라 한참을 (속으로) 울펐다.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무사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나는 눈물도 기쁘고 슬픔도 즐겁다.

교향악축제 & 선명비디오 아줌마

막내외숙모가 수원시향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언젠가 초대권이 생기면 좀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래전 일이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제 갑자기 외숙모에게 연락이 왔다. 교향악축제에 초대권이 두장 있으니 친구랑 같이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마침 축제의 피날레가 수원시향이었고 (사실 프로그램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지만) 간만에 외숙모도 뵐겸 해서 그러겠다고 말하곤 누구랑 같이가나 한참 고민했다. 처음엔 후배 몇 놈을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해서 말도 못꺼냈고 다음엔 널널한 친구들 몇에게 연락을 넣어봤으나 다들 이래저래 사정이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혼자 갔다. (<- 중요)

첫째, 안내하는 아가씨들이 댑따 예뻤다. (<- 제일 중요) 아 다음부터 이런 기회 있으면 자주 와야지 싶었고.
둘째,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이를테면, 나는 클래식 연주회는 일종의 고급예술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런 곳에 가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교육 수준으로나 어느 수준 이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징징 짜는 애들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나, 나처럼 청바지에 대충 아무거나 걸치 온 (백수로 보이는) 젊은이들이나, 심지어는 휴가중인 것으로 보이는 군복차림의 군바리 한 무리도 보였다. (연주 내내 과연 저들은 어떤 연유로 온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정장 차림의 그럴싸한 커플도 있었다.
셋째, 이 바닥에도 확실히 유명세라는게 있구나 하는걸 느꼈다. 첫번째 연주곡이었던 세자르 프랭크의 교향적 변주곡에 피아노 주자로 강충모씨가 참여했었는데, 이 사람이 꽤 유명한 모양이다. 여기저기 그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아무튼 그가 나오자 일부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질러대는데 너무 웃겼다.

그렇게 첫 곡은 세자르 프랭크였고 나는 이 사람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너무 좋아하는데 (아마 몇년 동안 질리게 들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 교향곡은 왠지 모르게 지루했다. 그 다음은 부르크너 8번이었고 역시나 부르크너를 별로 안좋아해서 좀 지루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음악에 대해서 일관된 견해 같은걸 갖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곡은 재밌어야한다.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카타르시스… 뭐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다종다양하지만, 나는 어쨌든 재밌는 선율을 가지고 있는 곡이 좋다. 뒷통수를 치는 그런 선율 말이다. 부르크너때도 한참 지루해서 눈을 감고 감상하는 척 하면서 잠깐 잘까 하다가, 3악장이었나 갑자기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순간만큼은 재미있었다.

끝나서 외숙모 잠깐 뵙고 용돈 받고 (한참 이제 돈 안주셔도 된다고 하다가 요즘엔 용돈 준다 하시면 그냥 받는다. 사양하는 것도 이제 지겨워서…) 공연보러 온 사돈어르신 차를 얻어타고 집에 왔다.

아 여기서도 참 신기하고 멋진 일이 있었는데, 사돈어르신 친구분 두 분이 함께 오셨더랬다. 그분들은 지하철 타신다고 해서 어르신이 그 근처까지 차로 바래다 주고 있는데 차 안에서 그분들 나누는 이야기가 압권이었다. 참고로 다들 일흔은 넘기셨다.

“니 예전에 내가 가르쳐준 고전음악 사이트 자주 들어가나?”
“아.. 그 뭐꼬, 무.. 어쩌구 그기 말이가?”
“그래. 그기 좋은 음악 많다.”
“아 그나?”
“내 집에 받아 놓은 것도 다 그기서 받은거 아이가.”
“아 그나?”
“한 백곡 된다.”
“테이프에 아님 씨디에?”
“하드에 다운받았다.”
“그기 용량 꽤 될텐데.”
“아이다 얼마 안된다. 한 2기가바이트…”
“그럼 엠피쓰리에도 들어가겠네?”
“하모!”

일흔 넘으신 분들이다. 나도 없는 엠피쓰리를… 아무튼 그분들 대화 엿들으면서 참 재밌었다.
정말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언제든지 배우려고, 내 안에 무언가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영원히 청년이 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 지하철에 관한 것이다.

“내는 지하철 타면 경로석 거기 안앉는다.”
“오.. 왜?”
“지하철도 꽁짜로 타는데 미안하게스리 우째 앉노? 그리고 요즘 젊은 아들이 우리보다 더 피곤하다 아이가.”
“맞다, 인나라 카기도 미안시럽더라.”
“이제 우리 나이 되모 자가용 타고 댕겨야제 지하철 타고 댕기면서 앉고 그럼 미안해서 몬쓴다.”

전혀 비꼬는 투가 아니었고 스스럼없이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피곤하면 계속 앉아서 가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집에 다 와서 슈퍼에서 간식이나 좀 사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돌아봤더니, 중학교때부터 군 제대할때까지 대왕 단골이었던 동네 비디오가게 아줌마였다. 제대하고 난 다음에 장사가 잘 안되어서 가게 그만두었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정말 반갑더라. 잘 지내시냐고, 요즘 뭐하시냐고 묻다가 “야.. 나는 니네 무서워서 요즘엔 동네에서 술도 못먹는다.” 하는게 아닌가. “왜요?” 했더니 “코 찔찔 흘리면서 비디오 빌려가던 녀석들이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애아빠라고 그러니.. 으으으”. 나는 그만 너무 웃고 말았다.

나는 내가 한살도 안먹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열서너살인가를 한꺼번에 먹고 말았다.

아 더 쓰기 구찬다. 오늘 일 보고 끝!

아픈 계절

한때 내게도, 네게도 날개가 있었지
강철같이 따스한 파도
여명이 내린 남국의 해변
광분하는 풀씨앗
이제 봄이야, 하고 말하던 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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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긴 시간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때까지,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눅신한 근육이 남은 자에게 훈장처럼 수여되면
그래도 봄은 춥다는 말일게다.

–>

드문드문 퍼 올려지듯이 기절 상태에서 벗어나면 환하게 빛나는 커튼이 보였습니다. 꿈 속에서는 잊기로 했던 일들이 리와인드 되고 있었고 내가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튼을 보고 있으면 온  몸에 열꽃이 피어났겠지요. 아직은 춥더군요, 아직은 봄인지 겨울인지 입이 바싹 마르고.
돌아오면서 나는 몇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신발이 발에 혹은 발이 신발에 맞지 않게 된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깁니다. 다른건 멀쩡한 가로등을 고장나도록 수리하는 엉뚱한 가로등 수리공에 관한 이야기고…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내고 보니 어쩐지 다 내 얘기라서, 아 나는 도무지 나를 벗어날 수 없구나 했습니다.
저녁쯤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고 밥을 먹고 약을 좀 먹고 다시 누울때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감기에 걸렸나봅니다. 몸의 경계가 희미해요. 내가 나를 조정하는 것이 매우 서투르게 변했습니다. 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지금은 계속 아프리카 누나의 그 해먹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제 멋대로 변형한 내용이긴 하지만, 바닷물을 연료 삼아 뻘겋게 불타오르는 수평선까지 우리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겠지요. 누구도 놓치지 않게 단단히 두 손을 엮어 쥐고서는.

황사 폭풍

아홉시 뉴스를 보다가 중국으로부터 시작 (정확하게는 몽고) 된 황사가 심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국 베이징, 인가 어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황사가 도가 지나쳐 대낮에 깊은 밤을 가져왔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같은 모래 폭풍이 도시를 휘감았다. 대낮인데도 가로등 불빛이 겨우 발치를 비춘다.

황사는 이렇게 매년 더 심해질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하게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사막히 세계를 뒤덮지 않기를 바랬다. 밥을 먹다가 모래가 씹히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주 긴 시간을 들여서 무슨 심리검사를 했다. 어머니가 자주 다니는 신경정신관가 뭔가에서 받아 온 거라고 했다. 비싼거니 공들여 하라고 하시는데, 이 검사 입대 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하면서 받아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이 결과에 따라서 무언가 치료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디까지나 아직은 정상이길 바라고 있다. 약이 그 어떤 병이라도 치료할 수 있을꺼라고 어머니는 굳게 믿고 있다. 내 삶이 질병이라면, 도저히 그렇게라도 치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거나.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미 병무청에서 받았던 그 검사의 결과로, 군의관이 나를 따로 불러 심각하게 보충역 판정을 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왔어. 4급 줄 수 있는데, (아마 4급이면 공익이거나 상근으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 할래? 넷! 그냥 입대하겠습니다. 그리고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무사히 잘 지냈다.

날이 더워지긴 더워지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땀을 많이 흘려서 온 몸이 끈적해지고, 밥을 먹으면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 그래서 자꾸 의미없이 샤워만 한다 샤워만… 하늘에 별이 없다. 별, 하니까 며칠 전에 다시 꺼내 본 영화 Contact가 떠오른다. 만약 이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낭비 아냐? 차라리 그건 너무 외로운 것 아니냐고 하지… 그러니까 어떤 種적인 외로움 말이다. 대화 가능한 지성체가 전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는 것.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안녕, 안녕..

친구

불투명한 막 같은게 겹겹이 서 있었다. 하늘로는 그것이 없어서 그대로 푸른 하늘과 구름 같은 것들이 보였다. 전력으로 그 막에 몸을 부딪혀도 충격이 느껴지지 않고 그대로 부드럽게 나를 다시 되 튕겨내었다.
이 막은 미로처럼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으므로 온전하게 전진하기는 매우 힘이 들었다. 이를테면 머리 속으로 전진하려는 진로를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 진로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막을 돌아가다 보면, 이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막이 왜 나를 가로막는지, 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등은 사실 관심이 없었고 그저 (아마도) 막이 있으니까 그걸 돌아서 가곤 했던 것이다.

가끔 쏴아-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다가 힘이 들면 막 아래에 누워서 바람에 얼굴을 맡겼다. 정말로 달콤한 맛이 났다. 좀 더 정교하게 이야기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었다. 혹은 전지분유같은 맛. 혹은 얼음사탕같은 맛. 스산했지만 사실은 풍부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어디엔가 나처럼 이 막에 가로막혀 걷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을 걷기의 목표로 삼았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는건 의미가 없어, 알지?’
‘그렇겠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해.’
‘그런 다음엔?’
‘내가 세계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해.’
‘그리고?’
‘꼭 살아야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피 속에 각인된 그런 외침. 현무암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투로 그런 얘길 했었지. 건방지다는 느낌은 없었어, 왜냐하면 현무암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었으니까. 나는 슬며시 웃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나는 백만년 동안 걸었다. 백만년 동안 사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해진 것 일테니까. 단지 누군가 나처럼 이렇게 헤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납득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었다. 서서히 나와 내가 분리되었고 그 뒤에 분리된 나는 바람이 되었고 남은 나는 또 막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육만년 쯤 뒤에 바람이 된 나는 나를 만나 소슬거리는 희망을 준다. 힘 내. 여긴 너 말고도 수많은 너들이 걷고 있는 땅이야.
그래서 나는 세상에 나처럼 가로막혀 걷고 있는 수 많은 다른 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제, 술을 마셨다. 정말 몇년 만에 만나는 녀석들도 있었고 해서 학교엘 갔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술을 마시게 되어서, 처음엔 밥을 잠깐 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술을 마셨다.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소주를 먹고 맥주 먹으러 또 가고, 마지막엔 전통주점에 가서 또 마시고… 마지막엔 내 몸이 알콜이 된 것 같았다. 손을 펴 보니 반대편이 투명하게 비쳤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한 것은 집에까지 잘 와서 문을 열고 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기억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술이 전혀 깨지 않았다. 계속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예전엔 술 마신 다음 날이 너무 힘들어서 계속 토하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아직 흡수되지 않은 위장 속의 알콜을 다 토해내고 억지로 미음을 끓여 조금 먹었다.

저녁 즘이 되자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저렸다. 간혹 근육이 뭉쳐서 그렇게 아프기도 하는데, 대체 잠을 어떻게 잤길래 이리도 어깨가 저린 건지 모르겠다. bullet proof, i wish i was. 저주파 안마기를 한참이나 하고 있으니 조금 괜찮아졌다.

또 하루, 아니 이틀을 이렇게 보낸다. 밖은 날씨가 참 맑다.

314

또 이것저것을 하다가 밤이 지났고 아침이 되어 근검하게 배달되는 신문을 훑다가 (이건 사실 거짓말) 책을 보다가 밥을 조금 먹고 병원에 갈까 잠깐 또 생각하다가 그냥 침대에 누워 별을 세고 있었다. 타이밍, 이 중요하다 나는 어느 한 시점을 제대로 잡으면, 항상 제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고 여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만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때때로 과연 내가 누구 편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에 꾸었던 꿈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꿈 속의 망상으로) 이산화탄소병, 에 걸렸었다. 이 병의 증상은 들숨은 가능하지만 날숨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물론 조금은 당황했었다. 숨이 내쉬어지지가 않아서 가슴이 계속 부풀어올랐다. 그런데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당황은 했었다. 틀에 맞지 않는다. 부정교합, 이다. 또 어제는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중고로 내놓는다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두 권을, 가능하면 구하고 싶다고. 그러나 답장으로 온 메일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냥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두 권 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 권은 내가 보고 다른 한 권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메일 주소도 맞게 보냈는데… 톰 맥레이가 (차라리 바라는 바 대로) 가죽바지에 길게 머리를 기르고 코카인이나 빨아대는 롹커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노래 부르기나 악기에 전혀 조예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아, 그런데 지금 내가 왜 깨어 있냐 하면은 어제 마치고 보낸 일감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이다. 큰 문제는 아니다. 컴퓨터를 켜는 것은 내게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듯한 일종의 제의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얄밉게 할 일만 마치고 전원을 내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찬찬히 다시금 사이트를 둘러보고 윈앰프를 켜서 음악을 듣고 (한 두어 곡) 여기에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때로는 열 서너줄도 더 쓰고 그냥 지워버린 다음에 이불 뒤집어 쓰고 울다가, 또 때로는 나중에 써야지 하면서 다음에 지워버리거나 한다. 횟배를 앓는, 정신은 은화와 같이 맑다. 또 뭐였더라? 딕셔너리 넘어가듯. 날개에서 아마도 주인공의 처는 주인공을 매우 사랑했을 것 같다. 사랑이 무한한 잠재력이라면, 그의 처는 드디어 그에게 없던 날개를 사주었던 것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처럼, 아주 먼 과거에 들었던 아주 먼 미래의, 혹은 아주 먼 미래에 들었던 아주 먼 과거의 꿈 같은 것. 미안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적확하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는 표현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이게 내 잠재력이라면 잠재력이고, 내 한계라면 한계다. 그런 맥락에서 무엇이 어떤 것의 미래라면, 그것은 곧 어떤 것의 과거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가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지, 과거에서 곧 미래인 현재에 때때로 과거가 투영되면서 이 영화가 이야기를 뭉그러뜨려 어떻게 판타지를 만들어 나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아마 나만 아는 것 같다. 왜냐하면, 슬프게도… 내게, 여자는 항상 먼 미래에 보았던 과거의 잔영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분들은 이게 무슨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애써도 된다는 얘기) 나는 나만이 아는 언어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미래의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약간이라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은 “The Longest Journey”라는 게임을 끈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플레이해보기 바란다. 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보름동안이나 플레이 해야만 했던 정말 아름다운 게임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의 방에 갖힌 인간들이여. *용기를 갖고 / 패배하라.

*”피를 마시는 새” 中

can’t take my eyes off you

여기는 일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다. 언젠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그 곳은 더 이상 지하가 아니길 바란다고,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지상도 매우 어둡다.

참, 아침에 대충 슈퍼에서 사 온 인스턴트 북어해장국 한 블럭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 생각하면서 먹도록. 그리고 물은 꼭 사 두도록 해라. 급하게 주전자에 수돗물을 끓여두었다. 게토레이도 한참이나 남았다. 그런데 방이 어둡다. 괜찮다. 나는 어두운 것에 익숙하다.

The Blower’s Daughter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would be
Life goes easy on m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shorter story
No love, no glory
No hero in her sky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should be
We’ll both forget the breez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colder water
The blower’s daughter
The pupil in denial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Did I say that I loathe you?
Did I say that I want to
Leave it all behind?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My mind…my mind…
‘Til I find somebody new


뒤져보니 다미엔 라이스가 있어서 한참 듣다가.
나는 이제 집에 간다.

미친 생각

올 겨울은 추웠지만 사실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분명 예년보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훨씬 더 날카롭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치 생애 마지막 겨울인 것처럼 미친듯이 보일러를 틀었고 결과적으로 방안에서 생활하는 일이 많은 내게, 그것은 매우 따뜻한 겨울이었다. 또 어떻게 보면 나조차도 발 하나 들여놓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 그런 마음이 되었고 을씨년스럽고 어두우며 보라빛의 세계였다. 그리고 빼앗긴 생에도 봄은 오는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폐병쟁이의 각혈처럼 드문드문 부서진 채로 올 것이다. 개나리가 무슨 색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혈관 속에는 피보다 우울이 더 많이 흐르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그러나. 행복하기로 했다. 행복해야만 할 것이다. 기묘한 분열을 느낀다. 우울한 행복이거나 행복한 우울이거나. 흥분과 혐오와 저주, 자살금지 지금살자…

아무튼 나는 어떤 미친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불행하다는 것인데, 이 불행에는 어떤 당위가 포함된 것 같다. 아니 이 말은 내가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이 어떤 조화 아래 움직인다면, 모든 행복하려는 사람들과 동일한 농도로 어떤 불행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거룩한 자기희생… 이런 얘기도 아니다. 어이없는 시도들이 있다. 매우 보잘 것 없고 한편으로는 정신분열적인 판단들… 감히 내가 그 불행을 떠맡아도 될 것인가. 나는 유연해 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우 단단해져야 한다.

처음으로 호밀밭의 파수꾼 같이.. 그러나 내게는 피비가 없다. 아마 꼭 피비가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당신들 모두가 내게 피비였으면 좋겠다. 화난 코끼리. 눅눅해진 팬티. 어쩌면 땅콩. 어쩌면 담배꽁초.

맞는 얘긴지 모르겠다. 언젠가 구로사와 아키라와 타르코프스키가 만난 적이 있었다. 구로사와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행성 표면의 몽환적인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냐고 물었다. (당시는 CG같은건 꿈도 못꿀 그럴 때였다.) 타르코프스키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거요… 그냥 천을 들고 흔들었을 뿐인데.’ 라고 대답하자 구로사와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고 한다.

알렉산더에게 있어서 멸망해가려는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리아와 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

마지막으로 나의 불행.

귀경

차가 없어서 친척의 승용차에 몸을 구겨 넣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안양으로부터 시흥으로 통하는 길목엔 차가 많았다. 나는 단 한마디도 않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풍경은 질리도록 낯익다.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오후인데도 마치 저녁처럼 집들이 검다. 그런데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종종 어떠한 풍경을 보면 견딜 수 없이 그립다. 지나치게 통속적이지만, 이제는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런 것들이라고. 이를테면, 깨진 유리창을 보며서 내내 살아가는 것을 생각했다던 신경림 시인이라던가. 그 비슷한 종류의 그리움 같다.

그러나 나는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풍경으로부터 느껴지는 그리움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그리움이며 대부분 이런 느낌은 쉽게 사라졌다가 다시 밀려온다. 한번은 노을을 주의깊게 살펴본 적이 있다. 노을은 수 많은 색을, 그러니까 거의 무한에 가까운 계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체 그 어떤 색도 아니었다. 나는 병에 걸렸다. 자꾸만 색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 저건 노란색 저건 좀 더 짙은 노란색.. 저건 확실히 짙은 노란색…

경험하지도 않은 이미지들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오른다. 짙게 해거름이 들이치는 벼랑에 서서 나는 친구의 옆 얼굴을 바라본다. 희부윰하게 떠오르는 윤곽, 서글한 미소… 한없이 너그러움.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종류의 너그러움이다. 너그러움. 나는 이 단어가 너무 좋다.

자, 다시 정리하자. 그날에 조금 비가 왔었다. 두시간 걸려서 집에 왔다. 쓰러져 잠들었다. 꿈 속에서 어떤 여자를 봤다. 그녀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 벤치에 앉아서 겸연쩍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는데, 그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나는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깨어났는데, 오줌이 너무 마려웠다. 그래서 꿈 속에서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누설하여 잠에서 깨도록 유도한 다음 화장실에 가게 만드는, 너무나도 정교한 의식의 매커니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병에 걸렸다. 자꾸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