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꿈

가끔 의식적으로 감각을 끊고 – 마치 플러그 뽑듯이 – 자욱한, 검고 어두운 바다의 심연으로 가라 앉는 시늉을 한다. 가끔의 대부분은 외풍이 드는 내 작은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질 때고,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이 어느 날 다 팔려서 그날 밤 소녀는 켤 성냥을 구하지 못해 얼어 죽었다는 블랙코메디를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아니, 그런데 어차피 소녀는 성냥이 있어도 얼어 죽었던 것 아니었나? 이래저래 가망이 없다.

전에 말 했던 것 같은데, 자각몽 말야. 꿈 속에서 그것이 꿈인 것을 깨닫게 되는 꿈. 드디어 조금씩 나는 그 신비로운 땅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그런 꿈을 꾸었다지. 첫번째 자각몽은 부끄럽게도 통제불능의 난교파티가 되어버렸는데 – 그마저도 끝까지 다 꾸지 못해서 아쉬워 – , 그 꿈을 꾼 다음에 나는 단단히 다짐했어. 고작 포르노 주인공이나 되는데에 귀중한 체험을 소모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두번째 자각몽을 꾸었을 때에, 기억을 역류해서 묻힌 의식의 공간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

네가 사기꾼이라고 말하던 그 프로이트 말야. 그 사람이 그랬데. 꿈은 의식의 검열이 약해지는 시간이라고. 짐작도 못 할 무의식의 꿈틀거림이 투사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렇다면 약해진 검열 과정 안에서 명징한 의식을 갖은 사람은 무의식도 총천연색으로 직시할 수 있는게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문을 열었어.’

물론 ‘문을 연다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지. 좀 클리셰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그것 밖에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더라구. 그 곳은 아마 사월이나 오월쯤이 된, 숲 속의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가였던 것 같아. 문득 나는 이것이 꿈인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되자마자 초록 잎들에 반사된 녹색광이 넘실거리는 창문 맞은편 벽에 문이 생긴거지.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 왜냐하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나의 내부와 외부의 적극적인 모순성 같은게 느껴지질 않았거든. 이건 꿈이니까, 탁자며 집이며 바람이나 햇빛, 이 세계 전체가 나의 산물인거야.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실감해. 순간적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는게 가능하다면 그게 꼭 이런 기분일꺼야.

미리 짜여져서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갔어. 그리고 힘주어 문고리를 돌렸지. 빛, 그리고 빛, 그런데 빛, 그러나 빛, 그래서 빛. 초신성이 폭발하는 순간에 바로 그 앞에 있다면 태양의 백만배나 되는 빛을 볼 수 있데. 그런데 눈부시지가 않아.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질 않아. 그 다음이 정말 중요한 대목인데 말이지.

그런 굉장한 경험들을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니까 너와 무척 이야기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밖엘 나갔더니 이미 겨울이더라. 하늘이 파랬어. 공기는 시려워. 너와 교감하고 싶어. 보고 싶어.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주소는 불명. 안녕, 와일드 오키드. 코퍼스 크리스티 캐롤도 네게 안부를 전해달래.

그럼.
이만 총총.

영등포

돈이 다 떨어졌다. 아니 조금 남아 있는데, 다음 달 공과금이며 나갈 돈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하던 차였다. 나는 신기하게 내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한 1년을 붓고 있던 보험을 깰 생각을 했다. 이자도 붙지 않는 삼년짜리 환급보험을 왜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개나), 아무튼 이 상황으로 봐서는 삼년이 지나기 전에 내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한 탕 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묵묵히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줘 잘 해 봤자 본전치기라 큰 맘 먹고 보험을 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 보험은, 기억하기로 내가 한 때 돈을 조금 벌때, 어머니 교회 아시는 분이 보험설계일을 시작하시면서 실적을 내지 못해 하는걸 두고 강제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온라인으로는 해약이 안된다고 해서 영등포 고객센터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고, 어제 눈이 내렸다는데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객센터에는 온갖 고객의 수발을 다 드느라 정신이 없는 센터직원이 하나 앉아 있었다. 먼저 응대하던 사람이 있어 나는 쇼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왼쪽에서는 틀어 놓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른쪽에서는 뭔가 상담하느라 이상한 보험용어들이 쏟아졌다.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한쪽 테이블에 놓인 고객용 커피를 타서 차근차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삶이 더 모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낱말로 형용 불가능한 병과 만나면 그저 죽는 것이 ‘네 팔자’가 되어버리던 (돼지라도 한 마리 치던 집이라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해봤겠지만)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저축하는 일은 상상 밖에 존재했을 것 같다. 아니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저축하게 될 오늘 일용할 양식은 곧 오늘의 배고픔과 같은 말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괴질’은 백혈병과 암과 심근경색과 고혈압과 동맥경화라는 사회적 교양언어로 바뀌었고, 자칫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거나 지하철에 치이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이 곳의 불안을 저 곳으로 퍼다 나르고 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구체화 되는 미래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더 심란한 미래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미래를 더 세세히 구분해서 각각의 상황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웃소싱해서 매달 구천구백원으로 안심하는 ‘베스트자녀사랑보험’같은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월 구천구백원이면 싸지 않나요? 이만큼 생각하니까 고객센터 복도에 커다랗게 붙어 있던 보험설계사의 월 실적표가 이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투신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불안을 돈으로 처방하는 것, 키에르케고르 형님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아무튼 나는 영등포로 나갔던 길만큼을 되밟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크릴 창문이 온실처럼 열을 가두어 나른한 봄날 같았다. 나는 레드 제플린의 Ten years gone을 계속 반복해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날아가는 철새였다.

일기

낮에 세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몇년 전에 잠시 필요해서 신고했던 회사 믹스넛의 세무내역이 몇년째 전혀 없다고, 당연히 없지 일을 한게 없는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앞으로도 계속 가휴업 상태라면 폐업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안그래도 나는 법과 관련된 일들에 매우 취약하고 두려워서, 폐업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중이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핸드폰 노이즈가 지나가고 나서 그는 직권폐업을 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벌써 꽤 오랫동안 밖엘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예를 들면 담배를 사러 나가곤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아니면 드문드문 약속이 생겨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자의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새 이 콘크리트 격벽이 매우 친근히 느껴졌다. 대신에 바깥은 매우 낯설다. 센티맨털하게, 때늦은 가슴앓이 중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요즘 나는 번뜩이는 자기파괴, 기만의 욕구가 강하게 든다. 아마도 내 추잡한 인간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히 나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면 또 얼마나 나는 추잡한 것인가. 본능밖에 남지 않은 작은 생물처럼 꾸물꾸물 연명을 위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는, 또 나는 얼마나 저열한 것인가. 방황하는 자의 正義는 언제나 나락임을 판결함.

올름을 추억한다. 수억년 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다는 희귀한 양서생물. 기온의 변화도, 빛도, 천적도 없는 어두 컴컴한 동굴 안에서 극소량의 미생물로만 생존하는 생물. 먹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 어느 연구가가 올름을 채집해 통 안에 물과 함께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한 것을 깜빡 잊고 12년간이나 지내다가, 그 후의 어느 날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아무런 불평없이 느슨히 살아 있었다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부터 ‘그들은 멸종 대신 망각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 평을 읽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게 서글프다. 나도 죽음 대신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냉장고에서 12년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말고.

레드 제플린

제프 버클리가 끝나고 나자 사장님은 그의 아버지인 팀 버클리의 음악을 걸면서, 나는 그래도 아버지의 음악이 좋다, 둘은 매우 닮았다 하면서 팀 버클리의 음반 재킷을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이 둘은 웃기게도 매우 닮았다. 생김도 (당연히 부자지간이니) 그렇고, 보컬도 그렇고, 음악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잘 생겼네도 아버지도, 하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라 실내에는 스탠딩 체어에 앉아 있는 나와, 어떤 아저씨 둘 뿐이었고 그마저도 아저씨는 곧 값을 치르고 사장님과 한참을 인사하다 나가버렸다. 나는 내가 너무 일찍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영업을 시작하기 전의 무거운 공기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서 사장님은 계속 유투브를 검색하며 마그나 카르탄가, 무슨 밴든가의 음악을 찾으면서 아 이게 아닌데, 왜 그게 없지 하고 나를 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잠시 빈 시간을 위해 틀어 놓은 노래에 계속 마스커레이딩~ 어쩌구 하는 가사가 있어서, 나는 문득 플래툰 OST에 실려 있던 스모키 로빈슨의 Tracks Of My Tears가 듣고 싶어져서 그걸 청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다음주 토요일에 레너드 스키너드를 연주하는 밴드가 라이브를 한다고 하니 꼭 오라는 말을 뒤로 하고 나도 집에 가야지 하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 하루는 매우 길었다, 하고 적는다. 오늘 난 대체 몇 명을 만나고 다닌걸까. 새벽인데도 거리에는 차들이 즐비했고, 테일 램프의 빨간 등이 요란하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중간에 무슨 일인가로 목청을 돋우고 공무원들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는 아까 저녁에 사둔 책을 서너 줄 읽고 나서 곧바로 잠들었다.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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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면 하나에 훈제 계란 3개를 사서 퇴근을 한다. 거의 매번, 집의 불은 꺼져 있다. (불은 꺼져 있다, 하니 삼사년 전에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썼던 ‘헤이, 택시’란 글이 떠올라 말미에 덧붙인다.)

부리나케 씻고, 사발면에 물을 붓고 밥을 한 공기 떠서 상에 놓고… 반쯤 삭아서 신맛만 나는 김치를 꺼내 티븨를 틀고 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거침없이 하이킥이 안하는가부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드라마를 오래도록 진득히 본 경험이 없다. 그냥 퇴근하고 밥먹고 나면 갑자기 진이 빠져서, 상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누워 한 삼십분 동안을 빈둥거리는데, 빈둥거리다가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하이킥을 보지 않으면 그 다음 일 (예를 들면 상을 치우고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하는 등등) 이 안되게 되었다. 그런데 밝혔다시피 이런 드라마들에 흥미가 없으므로, 이게 몇시에 하는건지, 무슨 요일에만 하는건지는 잘 모른다.

그렇게, 오늘은 하이킥이 안나오고 나쁜여자인가 착한남자인가가 해서 그냥 티븨를 끄고 상을 치웠다. 냉기가 찐득하게 묻어나는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며, 문득 너무 심란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무슨 일인가로 눈만 감고 밤을 샜다. 오늘 오전, 오후 내내 나는 멍한 정신에서 일을 했다.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축제가 열리는 날 같다. 그 축제는 이웃마을인가, 혹은 시내인가에서 열리는 축제다. 다들, 심지어 가족도 축제의 열기에 들떠서 벌써부터 집을 비우고 동네고 뭐고 할 것 없이 한산하다. 나도 왠지 가야 할 것 같지만, 가고 싶지는 않고, 가지 않기로 하자니 안가면 뭐가 안될 것 같은, 이런 개똥같은 기분이다.

나는 정말 이런 삶을 원했었다. 요동없이 고요한 삶. 타인에 의해서 뜨거워지지 않는 삶. 이 미친 것이 너무나도 그런 삶을 원한 나머지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춥다. 사실 그다지 춥지는 않지만, 느끼기에 울음이 나올 정도로 서늘한 기분 같은거 말이다.

물론 가끔 짜릿하게 행복한 시간도 있다. 출퇴근하면서 틈틈이 읽는 ‘시간의 역사’라던가, 다섯달째 듣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러나 그 외에 나는 대부분 정체상태에 있다.

[#M_’헤이, 택시’ 보기|’헤이, 택시’ 접기| 

술을 좀 먹어줬다. 왜 먹었고, 누구와 먹었고, 어디서 먹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여기에 세세히 기억해서 적고 고쳐서 다듬고 하는 짓은 좀 멍청이 같은 것이리라. 술을 먹을 때, 그러니까 마실 때, 가장 중요한 플롯은 ‘술을 먹었다.’ 라는 건조한 묘사 뿐이다. 이게 기본적인 구조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리고 딸깍, 하면서 끝난다. 그러니까,

술을 좀 먹어줬다. 사실 좀이 아니라 좀 많이 먹어줬다.

그리고 선배가 택비시로, 아니 택시비로 이만원을 쥐어준다. 아니 뭘 이런걸 다, 하면서 나는 받는다. 어째 분위기가 촌지 받는 초등학교 교사 같다. 아니 뭘 이런걸 다,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귀중하게 쓰겠습니다, 운운. 그리고 택시를 탔다. 좀 머리가 멍해있는데 아저씨가 남부순환도로 쪽으로 가자고 한다. 왠지 택시기사의 이런 제안은 쉽게 승락하기가 어렵다. 팔팔로 가요, 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다가, 팔팔이나 남부순환도로나 거기서 거기고 택비시, 아니 택시비도 내 돈이 아닌데 좀 돌아가면 어떠랴 싶어서, 아니 정말 사실은 그런 세세한 일로 아저씨랑 알콩달콩 말싸움하기 싫어서, 아니 정말정말 사실은 정작 어디로 가야 빨리 갈 수 있는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네, 남부순환도로로 가죠. 안막히겠죠? 그럼요, 지금 시간이 몇신데. (결국 안막혔다. 역시.)

그리고 강남대로였나 어디쯤인가를 달릴때 아저씨랑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다. 처음에 뭔 일로 이바구를 까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팔팔이냐 남부순환도로냐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전말은 이랬다. 팔팔… 은…, 아 팔팔로 가려면 돌아가야 하는데, 아 그래요? 역시 그럼 남부순환도로쪽으로 가요. 그러면서 이바구가 시작된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학생이에요.”

아, 그러면서 난 이 아저씨가 누구하고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냐면, 렌스 헨릭슨.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배우다. 에일리언 2인가 3에서 인조인간 비숍으로 나오기도 했고, 엑파의 크리스 카터가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그러나 불운하게도 실패했던 외화 시리즈 ‘밀레니엄’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어딘가 모르게 엑스트라오디너리한 곳을 바라보는 눈빛을 한, 서글픈 중년, 아니 노년의 배우.

“피곤하시겠어요?”

“피곤하더라도 이렇게 해야 입금을 하죠.”

“아, 정말. 입금은 보통 얼마나 해요?”

“하루에 십일만원 정도 넣어야 해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럼,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서 한달에 어느 정도 받으세요?”

“하루에 열여섯시간 정도 운전하고 해야 잘하면 백오십 정도?”

“어휴.. 택시비 오른다고 사람들 맨날 욕하는데, 그래도 운전하시는 분들한테는 그게 안돌아가나봐요?”

“택시비 오르면 뭐합니까. 입금도 그만큼 늘어나는데. 그나마 올해 또 택시비 오른다고 하는데, 그땐 입금은 그대로 한다니까 그 말만 믿어봐야죠.”

“근데 그것도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허허.”

미터기가 촤르르륵 올라간다. 신림동 어림쯤을 지나고 있었다. 술 기운 때문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마치 뇌만 고무로 된 몸체에 넣어 둔 것 같았다. 날이 갈 수록,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뭔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감각이 없다.

“어디 학생이에요?

“숭실대학교 다녀요.”

“우리 아들은 이번에 건대 졸업했어요.”

“아니, 마흔 아홉이시라더니 벌써 아드님이 대학을 졸업했어요?”

“허허, 제가 좀 일찍 결혼했죠.”

“젊었을 땐 뭐 하셨어요?”

“제가 한 십오년 일식요리를 했어요. 그땐 식당도 좀 크게 했었고. 그러다가 처가랑 좀 싸움이 생겨서… 칼부림도 좀 나고 그랬죠.”

“아.. 그럼?”

“이혼한지 꽤 됐어요. 애들한텐 이 일하면서 한달에 백만원씩 부쳐줬는데, 졸업하면서 이젠 너희들도 성인이니까 돈은 더 이상 못부쳐준다 했더니 그 다음부턴 찾아오질 않더라구요, 허허.”

“아직도 혼자세요?”

“그렇죠 뭐.”

“어디 사시는데요?”

“… 살아요.”

“혼자 사시면 쓸쓸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그래서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쏘주 한 병 사들도 그거 먹고 자고 그래요.”

그리고 서부트럭터미널쯤을 지난다. 벌컥 ‘렌스 헨릭슨’의 불꺼진 방이 떠올랐다. 그는 고단한 몸을 가누며 구멍가게에 들러 쏘주 한 병을 산다. 덜컹, 덜컹 두번 잠긴 골목길 옆 반지하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싸늘한 냉기가 건조하게 그를 반긴다. 여전히 아침에 아무렇게나 해놓고 나간 그대로다. 이부자리에선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가 난다. 티븨를 틀면, 치지지직 하는, out of service 상태. 대충 김치를 꺼내 소주를 마신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열어 아들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지만, 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을 태우게 될까, 장거리였으면 좋겠다. 그 손님을 내려주며, 또 장거리 손님을 태웠으면 좋겠다. 거기서 또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그리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눕고 나니 씻는걸 잊었다. 하지만 다시 씻으러 일어나지 않기로 한다. 너무나도 누추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고래가 삼킨 것처럼 벌컥 의식의 불이 꺼진다. 잠깐, 어디선가 희미하게 비냄새가 난다. 한 여름 지나치게 마른 땅에 내리던 소나기의 냄새.

“아저씨, 저… 이만원 드릴께요. 어차피 이 돈 선배가 택시비 하라고 준거고…”

미터기는 만 육천원쯤에 멎어있다.

“아니,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요 학생.”

“아뇨, 정말 저 이거 제 돈 아니에요. 선배가 준거에요. 괜찮아요, 받으세요.”

렌스 헨릭슨은, 그러니까 그 노년의 배우와 어느 홀아비 택시 운전수는 웃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웃는 건지 얼굴을 찌푸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학생,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아요, 학생도.”

“아저씨도 열심히 사세요.”

열심히 살아요, 가 그 날 마지막 ‘렌스 헨릭슨’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올라, 난간에 팔을 대고 그의 택시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동안 지켜보았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장거리 손님을 많이 태우는 것도 행복이고 그의 아들에게 연락이 오는 것도 행복이며 택시회사들이 버스회사와 마찬가지로 서울시로 편입되는 것도 행복이다. 그것들 중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왈칵 눈물이 났다. 육교 저쪽에서 고삐리로 보이는 두 남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씨발이라던지 조까를 외치며 지나가서, 나도모르게 얼굴을 닦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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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서울나기’란 타이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는 도시에서 산다는건 참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멜라토닌인가 세라토닌인가.. 하는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온다는 우울증, 나는 도처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깔아놓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실천하고 있었다. 기형도의 시작노트에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도시에서 사는게 너무 싫었다.

도시에서 사는게 싫었다, 는 말은 반드시 도시를 벗어난 삶이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골도 거기서 거기쯤이었으리라. 문제는 내 나이였고, 거대한 세계가 주는 압력이었다. 인간이 곧 우주라던데,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정보들 사이에서 아무런 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이 터무니 없는 존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주는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가..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다. 나의 원제는 ‘어느 룸펜의 서울나기’였고 나는 그게 썩 잘 지은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나를 대전고속버스터미널 공중인터넷컴퓨터 앞에서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국도를 굽이쳐 서울로 향하는, 저녁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기형도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국토(國土)에 깊다’라고 썼다. 나는 산자로 가득한 산천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면 어김없이 산 하나를 건너 불을 밝힌다. 그 불빛들 하나 하나가 각각의 삶들에 대응한다. 거의 매번 그런 풍경을 지날때마다 나는 열심히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려고 시도했다. 노동의 고단함과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보글보글 된장국이라던가, 드라마와 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리모콘 쟁탈전이나 내일까지 막아야 하는 대출금 이자 같은 것들. 멀리서 보면 모든게 아득하게 달콤한 새벽녘의 잠투정 같아진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즘의 경계는 너무 가까이 보거나 너무 멀리서 보는 것, 외에 다름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냥 살아지는건 없다고, 밥 꼭꼭 씹어 먹듯이 살아내야 한다.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앞서 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건 참 힘들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많은 고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깨버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님 말고.

일기

오랫만에 음악을 들으며 무언갈 한다. 만화책도 읽고 귤도 까먹고…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도중에 갑자기 얀 가바렉의 울렁울렁, 마치 성수기가 지난 수영장에 씌워놓은 덮개같은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미안한 일일까.

시미즈 레이코의 어느 단편 만화에는 식욕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된 인조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나중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식욕을 제거한다. 왜냐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식욕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욕을 제거한 뒤로는 좀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이 만화를 처음 읽었던 것은 십수년 전이었는데, 이토록 우울한 이야기를 너무 일찍 읽었던 것 같다.

텅 빈 바람을 마음 속에 꼭꼭 눌러 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하하하.

신경과민

어느 날은 매우 과민된 상태로 깨어난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싶어서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보면 새벽 다섯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밖에선 엄마가 출근준비로 소근소근… 이를테면 중간지대가 없다. 혼몽한 수면과 명료한 정신이 프레임 하나 차이로 바뀔 뿐이다.

그럴때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말을 건다. 일상적인 대화도 있고, 일과 관련된 내용도, 그냥 듣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자기고백 (혹은 자기기만)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 말들은 마치 직접 뇌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뇌에는 고통을 느낄 만한 수용체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온 몸의 통각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체는 통각이 없다.

이럴때는 수가 없다. 가만히, 퍼렇게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되뇌이는 것이다.

다시는 정글로 들어가지 말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떠올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친구놈과 함께 ‘아귀레 – 신의 분노’를 보다가 사이좋게 잠들었던 기억.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던 것.
만다린을 처음 마셨던 일.
뽀드득뽀드득 눈이 내린 밤의 산길을 밟아 초소근무 교대하러 간 일.
나를 향해 미소짓던 얼굴들.
인터넷에서 만난 착한, 그러나 항상 어딘가 고장나 있던 사람들..

만세!
내일도 살아남자!

러브레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한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가 한대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갖고 있다!!) 가끔 내키는대로 들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삼십분을, 바람에 눕는 풀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그 다음의 이초나 삼초 정도 사이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또 다시 한두시간을 누워 하늘을 보거나… 해거름이 지려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 툭툭 털고 터벅터벅 흙길을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마을 어귀의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전에 맡겨 놓은 필름이 현상되었는지 물어본다. 천원이나 이천원을 쥐어주고 현상된 필름을 들고 집에 당도하면, 멍멍이가 달려와 무릎에 안긴다. 또 한 삼십분 멍멍이랑 놀아주고, 씻고, 옆 집 순영이 할머니가 그저께 가져다 준 텃밭에서 마구 뽑아 온 푸성귀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고 책이나 전축, 사진도구들이 잔뜩 들어 있는 방에 들어가 현상해 온 필름을 라이트박스에 놓고 보며 희죽희죽 웃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수채화 물감을 풀어 한 눈으로는 루뻬를 통해 사진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그 풍경을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그날 완성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시들해져서 그만둬도 좋다. 어쨌든 그렇게 쌓아 나간 스케치북이 열 두서너권 쯤 되면 나는 또 밤새 그걸 안주삼아 킥킥하면서 뒷집 영이 할머니가 담근 막걸리로 얼큰하게 취할 것이다. 그리곤 아! 하며 무릎을 친다. 내일은 뒷골 순심이 할머니 (왜 죄다 할머니 뿐이냐..) 영정사진 찍어드리는 날이구나 하는 것이다. 순심이 할머니는 매번 내가 놀러 갈때마다 젊은 것이 일은 안하고 히죽히죽 웃고 놀기만 한다고 타박한다. 그래도 순심이 할머니는 외할머니랑 많이 닮아서 좋다. 그리고 다음주 쯤에는 할머니들이랑 나물 캐러 가야지, 또 그런 생각에 히죽히죽 웃는 것이다.

또 이래도 좋을 것이다. 서울서 결혼한 원영이가 제수씨와 큰애, 작은애를 데리고 주말에 놀러 온다. 나는 그들이 머물 방을 치운다, 해 먹일 음식을 준비.. 는 못하고 영이 할머니한테 부탁하거나 지난번 비가 많이 내려 물에 떠내려간 마을 냇가 평상을 다시 만들어 놓는다거나 하면서 간만에 바지런을 떠는 것이다. 지나가던 영이가 ‘삼촌, 미친거 맞지 지금?’ 하면서 농을 걸면, 그래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래 요것아, 좋아서 미치겠다!’ 한다. ‘영이야, 너 내일 서울서 친구들 오는데 여기 서방골은 니가 잘 아니까 친구들한테 좋은 것 구경 많이 시켜줘야해’ 하면 영이는 ‘삼촌 사진기 열흘만 빌려주면 생각해볼께’ 하며 혀를 낼름 내밀고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 영이한테 카메라를 한 대 선물해야 겠구나 마음을 먹는 것이다.
다음날 원영이가 번쩍번쩍하는 코란도를 끌고 마을 어귀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면, 고까짓것 고무신을 꺼꾸로 신고 후다닥 부리나케 달려나간다. 우히히, 우히히 지나가다가 순심이 할머니네 누렁이가 꿈뻑꿈뻑 풀을 씹고 있으면 엉덩이 찰싹 한대 때리고 헐떡헐떡대면서 기다리고 있는 원영이네 가족을 만나러 간다. 잠깐 기다려! 내가 보일락 말락 할때 즈음부터 성질급한 원영놈은 차를 돌려 내쪽으로 오려 하는데, 나는 손짓발짓하면서 오지 말라고 막는다. 기념으로 한 장 찍어야지, 하고 마을 머릿돌 위에 사진기를 올려 놓고 지이이이익 하는 타이머를 감아 놓고 또 히죽히죽 웃으며 원영이와 애들과 제수씨와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길이 험해서 차는 어귀 공터에 놓아두고 나는 근처에서 밭일을 하던 명식이 아부지한테 ‘아부지 나 지게 좀 빌려가요!’ 하고 ‘어, 어, 어… 나 꼴 베야 허는디..’ 하는 명식이 아부지 뒤로 하고 한아름이나 하는 짐을 지게에 올려서 뒤뚱뒤뚱, 원영이는 ‘야, 좀 천천히 가 짜식아’ 하면 나는 또 뒤를 돌아보고 히죽히죽 웃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감자랑 옥수수를 삶아서 내놓으면 아이들은 벌써부터 동네 애들이랑 친해져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히히히 장난질 치고 ‘야들아, 너무 멀리가면 그냥 그집가서 자’ 한마디 하니까 명식이랑 영이랑 순심이랑 애들이 서울애들 손목을 끌고 ‘울집가서 자자’ 한다. 원영이는 서울서 가져온 좋은 음악을 꺼내 놓고 제수씨는 ‘이래저래 해도 주헌씨가 제일 팔자 좋네요’ 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면 나는 또 히죽히죽 웃는다. ‘서울 살기 퍽퍽하면 제수씨네도 내려와서 살아요. 여 빈집 많으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서 살면 되는데..’ 하면 이번엔 원영이가 히죽히죽. 아무튼 그렇게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사는 얘기 하다가 밤이 지나는 것이다.

또 나는 동네 아이들 대장이 되고 싶다. 서방골 방위대 대장. 우리의 적은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다. 특공일대장 명식이는 지보다 어린 꼬맹이 두서넛을 거느리고 항상 최전선에서 쓰레기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종군기자 영이는 지저분한 쓰레기들, 특히 명식이 아부지가 가끔 아무데나 버리는 농약병 같은걸 내가 빌려준 사진기로 찍어서 마을 회의때 발표한다. 명식이 아부지는 얼굴이 뻘게져서 ‘그거 내가 버린거 아닌디.. ‘ 하면 다들 와와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나는 머슴이 되고 싶다. 수십년간 내가 버린 것들, 내가 모른척 했던 것들, 내가 이유없이 미워했거나, 뒤에서 욕을 했거나, 마음 속으로 다치게 했던 것들. 그 모두는 다른 어떤 이들에게 치유불가능한 상처일 것이다. 나는 너를, 그 깊은 내부를 본 적이 없으므로 그 동안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왔다. 마음 독히 먹고 잔뜩 쟁여서 튀어 나가라고, 뒤에서 소리치는 고참의 말에도 마음 한 구석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면 곳곳에 내 죄악의 흔적들 뿐이다. 몇년 전에 나는 나를 위안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정말 위안받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나이므로 내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너는 내가 아니므로 내가 준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머슴이 되고 싶다. 혼자서 견디는 삶보다, 떠받드는 삶, 보다 낮은 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네가 지금 하고 싶은게 정말 그거란 말야?

응.

멜렁멜렁

집에 오자마자 나는 멜렁멜렁해진다. 멜렁멜렁은 말랑말랑과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벌렁벌렁이 더 가깝다면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벌렁벌렁한 말랑말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시,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나는 벌렁벌렁 말랑말랑해진다. 엄마랑 장난을 조금 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감식초 한 잔을 만들어 컴퓨터를 켠다. 엄마는 회사에서 그렇게 컴퓨터를 만져놓고 집에 와서 또 컴퓨터를 켜고 싶냐며 핀잔하지만, … … … 그러게나 말이다. 사실 그다지 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멜렁멜렁하기 때문에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한다. 윈앰프에서 티카티카하고 산울림이 노래를 부른다. 발바닥은 슬근슬근 간지럽다. 동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작복작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옷을 찾는다.

오늘은 하루종일 쌜쭉쌜쭉. (그러니까 집에 오기 전까지) 바깥 날씨는 아직까지도 여름에 맞춰진 내 대뇌신경계가 깜짝 놀랄만큼 쌀쌀했지만, 내부는 아직도 뜨어거운 여름이어어어었다. 저녁에는 감자탕에 동동주를 마셨고, 직원들과 남 흉을 봤다. 그런데 그 ‘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아무와도 인연이 없는 아주 먼 과거의 어떤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사람의 꿈들을 한데 모아서 동전으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일이 썩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