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외숙모가 수원시향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언젠가 초대권이 생기면 좀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래전 일이어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제 갑자기 외숙모에게 연락이 왔다. 교향악축제에 초대권이 두장 있으니 친구랑 같이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마침 축제의 피날레가 수원시향이었고 (사실 프로그램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지만) 간만에 외숙모도 뵐겸 해서 그러겠다고 말하곤 누구랑 같이가나 한참 고민했다. 처음엔 후배 몇 놈을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해서 말도 못꺼냈고 다음엔 널널한 친구들 몇에게 연락을 넣어봤으나 다들 이래저래 사정이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혼자 갔다. (<- 중요)
첫째, 안내하는 아가씨들이 댑따 예뻤다. (<- 제일 중요) 아 다음부터 이런 기회 있으면 자주 와야지 싶었고.
둘째,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이를테면, 나는 클래식 연주회는 일종의 고급예술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런 곳에 가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교육 수준으로나 어느 수준 이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징징 짜는 애들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나, 나처럼 청바지에 대충 아무거나 걸치 온 (백수로 보이는) 젊은이들이나, 심지어는 휴가중인 것으로 보이는 군복차림의 군바리 한 무리도 보였다. (연주 내내 과연 저들은 어떤 연유로 온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정장 차림의 그럴싸한 커플도 있었다.
셋째, 이 바닥에도 확실히 유명세라는게 있구나 하는걸 느꼈다. 첫번째 연주곡이었던 세자르 프랭크의 교향적 변주곡에 피아노 주자로 강충모씨가 참여했었는데, 이 사람이 꽤 유명한 모양이다. 여기저기 그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아무튼 그가 나오자 일부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질러대는데 너무 웃겼다.
그렇게 첫 곡은 세자르 프랭크였고 나는 이 사람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너무 좋아하는데 (아마 몇년 동안 질리게 들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모양) 교향곡은 왠지 모르게 지루했다. 그 다음은 부르크너 8번이었고 역시나 부르크너를 별로 안좋아해서 좀 지루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음악에 대해서 일관된 견해 같은걸 갖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곡은 재밌어야한다.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카타르시스… 뭐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다종다양하지만, 나는 어쨌든 재밌는 선율을 가지고 있는 곡이 좋다. 뒷통수를 치는 그런 선율 말이다. 부르크너때도 한참 지루해서 눈을 감고 감상하는 척 하면서 잠깐 잘까 하다가, 3악장이었나 갑자기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순간만큼은 재미있었다.
끝나서 외숙모 잠깐 뵙고 용돈 받고 (한참 이제 돈 안주셔도 된다고 하다가 요즘엔 용돈 준다 하시면 그냥 받는다. 사양하는 것도 이제 지겨워서…) 공연보러 온 사돈어르신 차를 얻어타고 집에 왔다.
아 여기서도 참 신기하고 멋진 일이 있었는데, 사돈어르신 친구분 두 분이 함께 오셨더랬다. 그분들은 지하철 타신다고 해서 어르신이 그 근처까지 차로 바래다 주고 있는데 차 안에서 그분들 나누는 이야기가 압권이었다. 참고로 다들 일흔은 넘기셨다.
“니 예전에 내가 가르쳐준 고전음악 사이트 자주 들어가나?”
“아.. 그 뭐꼬, 무.. 어쩌구 그기 말이가?”
“그래. 그기 좋은 음악 많다.”
“아 그나?”
“내 집에 받아 놓은 것도 다 그기서 받은거 아이가.”
“아 그나?”
“한 백곡 된다.”
“테이프에 아님 씨디에?”
“하드에 다운받았다.”
“그기 용량 꽤 될텐데.”
“아이다 얼마 안된다. 한 2기가바이트…”
“그럼 엠피쓰리에도 들어가겠네?”
“하모!”
일흔 넘으신 분들이다. 나도 없는 엠피쓰리를… 아무튼 그분들 대화 엿들으면서 참 재밌었다.
정말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언제든지 배우려고, 내 안에 무언가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영원히 청년이 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 지하철에 관한 것이다.
“내는 지하철 타면 경로석 거기 안앉는다.”
“오.. 왜?”
“지하철도 꽁짜로 타는데 미안하게스리 우째 앉노? 그리고 요즘 젊은 아들이 우리보다 더 피곤하다 아이가.”
“맞다, 인나라 카기도 미안시럽더라.”
“이제 우리 나이 되모 자가용 타고 댕겨야제 지하철 타고 댕기면서 앉고 그럼 미안해서 몬쓴다.”
전혀 비꼬는 투가 아니었고 스스럼없이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피곤하면 계속 앉아서 가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집에 다 와서 슈퍼에서 간식이나 좀 사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돌아봤더니, 중학교때부터 군 제대할때까지 대왕 단골이었던 동네 비디오가게 아줌마였다. 제대하고 난 다음에 장사가 잘 안되어서 가게 그만두었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정말 반갑더라. 잘 지내시냐고, 요즘 뭐하시냐고 묻다가 “야.. 나는 니네 무서워서 요즘엔 동네에서 술도 못먹는다.” 하는게 아닌가. “왜요?” 했더니 “코 찔찔 흘리면서 비디오 빌려가던 녀석들이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애아빠라고 그러니.. 으으으”. 나는 그만 너무 웃고 말았다.
나는 내가 한살도 안먹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열서너살인가를 한꺼번에 먹고 말았다.
아 더 쓰기 구찬다. 오늘 일 보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