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밤을 새고 일을 하고 있으면, 새벽 네시쯤에서 다섯시 사이에 하나포스라던가 교보문고 같은데서 정기적으로 보내는 반정도는 스팸인 메일이 온다. 딩동-, 하고 시스템 트레이를 보면 역시나 같은 메일.

가을이 되어 새벽 공기가 매우 차다. 이런 기계같은 느낌이 그 메일로부터 전해져온다. 어떤 거대한 시스템으로부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발송된다. 아마도 로그인해서 회원정보인가를 수정하면 메일이 오지 않게 할 수도 있을테지. 그러나 그게 쉽게 되질 않는다. 요즘 같아선 그러한 메일조차도 새벽에 오지 않으면, 주위가 지나치게 조용하다.

이상한 망상에 시달린다. 관자놀이로부터 매끈한 스테인레스봉이 머리를 꿰뚫는다. 그리고 흑백인 시대에 바람에 잠깐씩 흔들린다. 피가 조금씩 스며나오기도 하고 그야말로 무거운 것이 머리 속에 있다는 실물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프지는 않다. 아무런 고통없이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낼 수 있는 아이. 나는 조종당한다.
예전에는 부드러운 고무재질의 검은 구체를 날카로운 면도칼로 자르는 망상에 시달렸다. 이건 어쩌면 스스로 벌을 주는 것 같다. 쇠가 머리를 뚫고 바람에 흔들림. 오죽했으면.

감기

목이 많이 붓고 코가 막혀서 아프고 답답하며 짜증이 난다.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 어디 나갈 힘도 없고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 쌍십절 덕분에 학교엘 가지 않아도 되니까 아침부터 멍하니 누워서 껌뻑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고를 반복했다. 와중에 스무통쯤 전화가 왔다. 절반은 일때문에 온 전화였고 절반은 핸드폰때문에 엄마가 건 전화였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바꿀때가 되어서 (실은 어머니도) 주말 내내 바꾸니 마니 오늘은 문을 연 대리점이 있니 없니 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젠가 한번 웃기지도 않은 에스케이텔레콤 우수 고객이라고 쓰던 아주 구형의 플립형 핸드폰을 중고 폴더형 핸드폰으로 바꾼적이 있다. 무료였는데, 그 속보이는 선심에도 부모님은 무슨 엄청난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주 좋아했다. 그러던 것이 또 몇 해가 지나자 배터리가 금방 닳고 통화도 잘 안되고 등등의 이유로 핸드폰을 새로 개통해야 할까 말까 하는 중이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통화료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엘지냐 케이티에프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그만 지난 주말에 아버지가 핸드폰을 분실, 어머니는 잘 됐다고 이 기회에 바꿔버리자, 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왜 내 핸드폰은 화음벨이 안되냐, 왜 내 핸드폰은 칼라가 안되냐 하시면서 거의 매년 할부기간만 끝나면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꾸는 동생의, 그야말로 2005년 최신형 위성 DMB폰을 만지작거리는게 끝내 마음에 걸려서 “제가 돈 낼테니까 바꾸세요.” 했는데, 드디어 오늘 은행앞에서 한달에 삼만 얼만가만 내면 된다는 그런 기종으로 어머니가 구입한 모양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신용 어쩔씨구리 상태이므로 내 명의로 개통하시느라,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도 대리점 직원이 “명의 확인차” 건 전화를 두 통인가 세 통쯤 받고 어머니의 전화도 받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혼몽한 상태에서 내내 나는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대리점 직원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불러 달라길래 한번 불러줬는데, 한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또 전화가 오더니 본인 확인을 해야한다고 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까 그 사람이었다. 짜증을 내면서 아까 당신이 한번 확인하지 않았냐, 왜 또 확인하냐 했더니 이건 절차상의 문제라는데 개뿔 와.. 속에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걸 꾹 참았다. 분명 옆에 어머니가 계셨으므로 내가 욕을 막 하면 어머니 입장만 난처해지겠지, 하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내 미칠것 같았다. 내 몫의 카드를 내어주고 백만원이건 이백만원이건 긁어버리세요, 하고 싶었다. 제발 나한테 말걸지 말고 맘대로 하세요. 게다가 오후쯤에 갑자기 수도가 안나오기 시작했고.. 그 뒤는 더이상 말하면 그때의 짜증이 상기되는 것 같아서 그만두련다.

저녁엔 조금 정신이 들어서 앞집 윗집으로 물이 안나오는 이유를 물으려 다녔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우편함에 보니 울산MBC에서 온 우편이 있었다. 지난주에 고래사랑 사이트 관리하시는 이재훈님이 귀신고래 다큐 DVD를 보내주신다고 하더니, 그거였다. DVD-ROM에 넣고 몇 분쯤 보다가 머리가 아파와서 그만 정지시켰다.

아아… 나는 언제쯤 숲 속 옹달샘, 토끼도 찾지 않는 깊은 물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춥고 배고픈 것이다. 배가 고프면 더 춥고 추우면 열을 내기 위해 몸을 떨게 되므로 더 배가 고파진다. 이 두 고통이 이중나선구조로 상승한다.

오늘 하루 나는 매우 심란했다. 계속되는 복통과 피로, 무력감 같은 것들이 나를 잡고 뒤흔드는데 제발 놔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듣질 않았다. 거의 모든 일반적인 것들이 구토가 날만큼 혐오스럽다. 오직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은 담배와 잠, 뿐이다. 어떤 녀석이 있는데, 난 그 녀석이 매우 싫어졌다, 지난 몇 일 동안 나는 기차의 덜컹임처럼 그 녀석을 떠올렸다. 떠올릴때마다 조금씩 싫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매우 싫어지게 되었다. 술집에서 들었던 말들, 그냥 상상, 생각.. 아마도 이런 것들이 싫어지게 된 요인 같다. 그런데 그 뿐이다. 그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비교적 이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맹렬하게 싫어하고 미워하고 혐오스러워 할 뿐이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살아간다. 나는 천칠백명 정도를 싫어하고 오십세명 정도를 극도로 미워하며 열세명 정도를 죽이고 싶다. 이미 머리 속에서는 수없이 살인이 이뤄졌다.

요즘 정말, 계속 현무암이 되고 싶다. 현무암.. 깊은 음영.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들.

그렇고 그런 것

왠지 아래 글에 달린 두 개의 코멘트가 “너의 음악적 지평이란 고작 김원영 정도도 벗어나지 못하느냐”라는 엄한 질타로 들려 변명아닌 변명을 위해 한 곡 올립니다.

기타에 안토니오 뽈시오네, 보컬에 사비나 슈바. 어딘가에서 읽은 이들에 대한 짤막한 평, “더운 여름 밤에 흑맥주나 한 병 마시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들으면 조금씩 기분이 좋아집니다.”에 한표 던지면서, 음, 네 요즘엔 이쪽 세계 음악이 너무 좋아요. 얼마전에 개봉했었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OST의 조르쥬(?) 드렉슬러도 한참 꿈속에서 써라운드로 울려퍼졌을만큼 맹렬하게 들었었고… 근데 빌 위더스 ain’t no sunshine의, 엄청 긴 호흡으로 부르는 I know.. 부분을 완벽하게 따라하실 수 있나요? 전 두번에 한 번 성공합니다. 이정도면 하루에 담배 한갑을 소화하는 제 폐로써는 성공스런 결과죠. 그러나 지금은 너무 춥습니다.

오랜만에 병민이가 꼬여내서 목동 사거리 영일만 꼼장어집에서 쏘주 한 잔 했다. 이즈음의 나이들이 그렇듯이 한참 힘들고 한참 꿈도 있고, 뭐 그런 얘기를 했다. 뜬금없이 과자가 먹고 싶었는데, 꾸욱 참았다.
2차로 9층짜리 건물 옥상의 맥주집엘 갔는데, 한 백평쯤 되는 술집에 손님이라곤 우리하고 두서너 테이블밖에 없어서 왠지 잘못 온게 아닌가 싶었는다. 의외로 맥주가 맛있었다. 중간에 뜬금없이 (정말 뜬금없이!) 라이브 공연을 해서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노래들을 따라불렀다. 잔을 부딪히고 한모금 넘긴 뒤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잔을 부딪히고 그랬다. 별이 안보여, 별이…

저장장치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해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주변장치들을 이용한다. 대개는 멍청이같이 시간이 되면 알람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멍청이라기 보다는 멍충이같이. 멍멍충이. 어쨌든 그 알람에 맞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결정된다는 것은, 오오 상상해보세요, 엄청 근사하다. 눈물이 날 것처럼 멋지다. 그러면 나는 상뇌와 하뇌를 구분해서 하뇌에게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시키고 상뇌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망상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 그러니까 “잘 모르는 올드팝을 듣고 있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막 (인터넷 방송의) 다음곡으로 넘어가면서 얼 그린이 나왔기 때문에 “아 쫌 아는 가수의 올드팝을 듣고 있다.”라고 써야겠다. 뭐면 어떠랴.

세상에. 휴대폰으로도 인터넷 방송을 들을 수 있데. 라디오 프리 콜로라도의 디제이 게리 버크씨는 징하게 삼십분을 멘트만 하다가 두 서너곡 음악을 틀어주고 또 삼십분씩 멘트를 한다. 대부분 자기네 스테이션 자랑인데, 320kbps로 스트리밍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네 어쩌네 하는 얘기였다.

콜로라도. 미국에서 콜로라도와 오레곤, 하면 나는 불곰하고 울울창한 침엽수림하고 만년설이 듬성듬성 쌓인 삐죽한 청년기의 산맥밖에 생각 안난다. 거기서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체크무늬 셔츠에 멜빵 청바지를 입고 어깨엔 아이 머리통만한 도끼를 들면서 씨익 웃어주는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왕년에 내가 이 도끼로 세콰이어를 찍어 넘기는데 말야…”

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저런 아저씨를 알고 있다. 내가 막 제대하고 복학까지 잠깐 비어있는 6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도보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 끝에서 끝이다. 육개월. 정말 긴 시간이었어.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걷는 도보 여행은 꽤 유명한데, 왜냐하면 MWOS(MiddleWay of the States)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직통으로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까지 연결해준다. 상상이 안가지? 거의 2000km에 가까운 거리다. 5년마다 이 길을 도보로 횡단하는 대회가 있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는 유명한 길이기도 하다.
아무튼 애초에 도보여행을 의도한건 아닌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만난 도보 여행가 아더 요셉 맥타가트(Arthur J. Mctaggart)씨가 자꾸만 같이 가자고 권하는 바람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이 사람 나중에 알고보니 남미와 동남아시아를 순전히 도보로 여행한 것으로 이 쪽에선 많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나야 막 제대한 예비역 군바리의 깡으로, 까짓꺼 힘들면 40km 행군만큼이나 힘들겠어, 하고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군대행군하곤 많이 달라서 꽤나 고생했다.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에서 네바다주를 거쳐 유타, 와이오밍, 네브라스카즈음을 지날때였다. 네브라스카는 지겨운 로키산맥으로부터 안녕을 고하고 끝나고 슬슬 평지가 시작되려는 곳이기 때문에 비교적 걷기가 수월했다.
네브라스카의 미주리강의 수계가 시작되는 곳인가 그랬다. 그만 맥타가트씨가 발목을 심하게 접질르고 (전문용어가 뭐더라..) 말았다. 아직 완전히 산맥을 벗어난 것도 아니어서 다른 도보 여행자들이나 차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무척 난감했다. 아무튼 엉터리 영어로 “내가 좀 더 걸어가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더니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10km쯤 걸었을까, 벌목창고쯤으로 보이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줄기 근처에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으로부터 강을 통해 원목을 배로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그 건물로 달려가 아무나 붙들고 사정을 어렵게 설명했다. 대충 “my friend’s leg was broken. 솰라솰라..” 하면서 손짓 발짓을 섞었더니 내 또래로 되어 보이는 무식한 것들이 계속 “what? what? speak english, sucha idiot.” 하면서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다. 이걸 확 뒤 엎어버려? 하고 있던 차에 창고에서 예의 그 수염 덥수룩하게 난 할아버지가 무슨일인가 하고 나오는게 보였다.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다시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옆에서 웃고만 있던 녀석들에게 뭐라고 막 욕을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엄청 낡은 웨건을 몰고 왔다. 뭐 그렇게 해서 맥타가트씨는 스티번씨티(steaburn city : MWOS와 76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네브라스카의 도시 이름)의 작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응급실에서 그 할아버지와 드문드문 얘기를 나눴었다.
지금은 그 할아버지 이름도 잘 기억 안나는데, 그때 나눴던 이야기는 이상하게 또렸하다.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오, 한국. 태권도, 휙휙(손짓 발짓). 태권도 할 줄 아니?”
“그럼요. 한국사람은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태권도를 배워요. (라고 뻥침)”
“부르스 리가 그래서 태권도를 그렇게 잘하는 거구나. (잉? -_-;;)”
“할아버지는 벌목꾼(lumberman)이세요?”
“예전엔 그랬지. 지금은 그냥 늙은이야. 작업소엔 소일거리삼아 나가는거지.”
“젊었을땐 나무 꽤나 찍어 넘겼을 것 같으신데요.”
“그땐 도끼질 한방에 나무가 하나씩 넘어갔지.(a chop, a wood)”
“하하.. (원 이 할아버지 농담도..)”
“너는 한국에서 뭘 하고 있니?”
“이제 막 제대해서(discharge from military service) 잠시 쉬고 있어요.”
“군인이었어?”
“한국 남자는 스무살만 넘으면 누구나 군인이 돼야해요.”
“희안한 나라네.”
“맞아요. ㅎㅎㅎ”

뭐 그러면서 노가리를 풀고 있으려니 응급실에서 맥타가트씨가 발을 쩔뚝거리며 걸어나왔다. 이야기를 들으니 부러진건 아니고 조금 부었을 뿐이니까 일주일 정도는 요양을 해야한단다. 맥타가트씨는 내게 미안하다며, 원한다면 먼저 떠나도 좋다고 했는데 내가 혼자 가봐야 타국에서 얼마나 가겠냐며 당신곁에 머물겠노라고 (으웩) 했더니 그는 심하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ㅎㅎㅎ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그 할아버지댁에 머물게 되었다.
할아버지 통나무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마루 벽난로 위엔 엄청 큰 사슴 머리가 박제되어 있어서 오래 살다보니 이런것도 실물로 다 보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이런 얘기다.

가을 일기

가을 (이라고 해두자) 이 되니까 부쩍 모기가 많아졌다. 어째 여름보다 더 극성인 것 같다. 환한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의 절반은 손뼉치며 모기를 잡는 것으로 보낸다. 이 일에도 꽤 능숙해져서 아마 시간당 열마리 정도는 잡는듯하다.
어머니는 가을이 되자 추운 외부에서 좀 더 따뜻한 내부로 모기가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집 모기는 몇가지 특성이 있다.

1. 각방마다 모기들의 성향이랄까 하는 것이 다 다르다. 내가 엄히 모기를 다스려서 그런지 내 방 모기가 가장 빠릿빠릿하고 화장실모기가 제일 둔하다. 아마 화장실에서 누가 열심히 모기를 잡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모기가 빠릿빠릿한지 알아보는 테스트. 손뼉쳐서 잡기 시도 횟수가 10회 이상이면 빠릿빠릿, 5회 부근이면 보통, 3회 이하면 어리버리)

2. 꼭 머리 근처에서 날아다닌다. 아무래도 다리나 등, 팔 근처라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모기들은 아마도 더 오래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놈들은 머리, 특히 귓가에서 날아다니길 좋아한다. 마치 긴장하라고 미리 신호를 주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꼭 우리집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럴 것 같다.)

3. 두마리 이상 함께 날아다니지 않는다. 이건 정말이다. 나는 요즘 모기가 사실은 굉장히 높은 지능을 갖고 있는 생명체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데, 모기가 나타난다. 한 열번쯤 헛손질 하다가 모기를 잡는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면 금새 또 다른 한마리가 나타난다. 또 잡는다. 방심. 또 나타남. 이게 밤새도록 계속된다.

그냥 생각해보면 순번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날아다니고 싶으면 날아다녀야 하는게 맞다. 그런데 마치 번지점프대에서 낙하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이놈들은 꼭 한놈씩만 나타난다. 뭐 지들끼리 정한 약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차라리 한꺼번에 나타나면 확 잡아버리고 좀 쉴 수 있을텐데.

모기 얘긴 이쯤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지난 여름 내 핸드폰 인사말은 “비오는 여름” 이었는데, 뒤에 “여름”만 “가을”로 바꿔도 될 것 같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게 싫다.

그러고보니 영어로 ‘모기’를 뜻하는 모스키토(mosquito)도 ‘모’로 시작하고 ‘모기’도 ‘모’로 시작한다. 나는 바벨탑 때문에 오만한 인간을 심판했다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나는 올 겨울을 잘 지낼 자신이 없다.

무지개 – 그는 드디어 외톨이가 되었다.

파이(∏)에 가능한 모든 수열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니? 무지개엔 모든 색깔이 숨어있지. 천년도 더 된 이야기야. 어느 날 검은 현무암이 내게 전해준 이야기지. 옛날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면서.

그 현무암을 만난건 내가 오백살이 되어 기념으로 친구들이 보내 준 세계여행에서였어. 거기는 아마 스코틀랜드, 였던가 오슬로였지. 나는 유럽을 잘 몰라. 다 거기서 거기인가 싶은거지. 어쨌든 그 날은 매우 흐렸고 비나 눈이 올 것처럼 기어가는 날씨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폭음을 내는 엔진소리가 신경을 긁어대는, 삼만년된 낡은 관광버스를 타고 야트막한 사랑을 하나 넘어가던 때였는데 결국 버스는 사랑의 정점에서 엔진과열로 멈추고 말았지. 두더지 운전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십분간 정차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지저세계로 수리공을 부르러 떠났고 관광객들은 투덜대며 버스에서 내려 잠시 머리를 식혔어. 나는 사랑을 헤매였다.

“관광객. 여길 좀 봐. 내 얘길 들어보겠나? 절대 기념품 같은걸 팔려는게 아냐.”

처음엔 그게 현무암이 한 말인지도 몰랐어. 너도 알다시피 현무암들은 눈에 잘 띄지 않잖아. 딱히 말을 하는 현무암인지 명찰을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나는 한참을 어리둥절했지.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앞으로 두 걸음, 왼쪽으로 세 걸음 걷고 보이는 나무를 왼손으로 잡은 뒤에 270도를 시계방향으로 돌아봐. 그럼 내가 보일꺼야.”

그래, 거기 그 녀석이 있었어. 꽤나 몸집이 큰 녀석이더군. 나는 무의식적으로 현무암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매끈하지? 칠천만년동안 비와 바람이 날 쓰다듬었더니 이렇게 되었어. 칠천만년이라… 어때, 너는 그 시간을 상상할 수 있어?”

“아니.”

천만년 이상의 시간을 생각해야 할 때, 나는 웰즈의 ‘타임머신’을 떠올려. 물론 거기엔 80만년밖엔 안나오지만, 그 어느 소설보다 리얼하게 시간을 묘사하지. 시간의 끝엔 뭐가 있는지 알아? 자주색 하늘과 보이지 않는 바람, 물질의 시체들이 있어. 그리고 영원동안 매직아워지.
현무암한테 웰즈의 이야길 하진 않았어. 어차피 그는 읽어보지도 못했을테니까.

“담배 가진거 좀 있나?”

“운이 좋네 너. 딱 두 대 남았는데.”

“그럼 한대씩 피우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서 현무암의 얼굴에 난 구멍 가운데 적당한 크기의 구멍에 꼽아줬지. 나도 그 옆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어.

“옛날 이야기 하나 해줄까?”

슬쩍 버스 쪽을 쳐다보니까 두더쥐 운전사가 수리공과 함께 연신 버스 밑을 오락가락 하더라고. 금방 고쳐질 것 같지 않아서 현무암에게 그러라고 했지.

“나는 사실 강물이었다. 어두운 지하수로를 한참이나 굽이 돌다가 지상으로 스며 나왔을 때, 감격하고 말았지. 햇빛과 꽃과 바람, 때로는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발목을 휘감아 흘러가기도 했고 무거운 배를 밑으로부터 밀어 올려 수면에 띄우는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계속 하류로 밀려갔어. 밀려갔다, 고 해야 옳을꺼야. 당시에 나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그랬던건 아니었거든. 뭐랄까, 이 언덕에 가만히 앉아 일년 가운데 칠천팔백삼십일쯤 흐린 저 하늘을 응시하고 있으면 이따금씩 홍수가 나는 것처럼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걸 볼 수 있어. 구름이 반으로 갈리면서 말이지. 그런거였어. 오월의 빛, 장마처럼 내리는 빛.”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흘끔 하늘을 올려다봤지. 잠자리가 낮게 날았어, 잠자리가.

“강물의 끝엔 뭐가 있는지 아니? 노을이 있다. 검지만 완전히 검지는 않지. 도무지 그 빛깔이 생각나지 않아, 분명히 나는 그걸 봤는데 말야. 사람들은 정오의 태양을 찬미해, 그 강렬함, 그 아둔함을 좋아하지. 오 솔레 미오, 어쩌구 라는거야. 오 솔레 미오? 아, 언젠가 바람이 전해 준 노래야. 바람은 우체통에게서 배웠다더군.
하지만 노을은 완전한 빛깔이야. 그 어떤 것도 아니면서 모든 색이지. 무지개를 봤니? 무지개는 노을의 사촌쯤 되는 녀석이야. 녀석은 비가 내린 뒤에 내키면 나타나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했어. 비록 내가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겠어?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동경할 수 밖에 없어. 그래서 현무암이 되기로 했지.”

“왜 하필 현무암이?”

“현무암이 되면 영원히 동경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키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돼. 가끔 바람이 놀러 와 세상 일을 전해주지. 나는 그냥 응, 응, 그렇구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거야. 그 외에는 누구도 내게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아.”

“너 오늘 현무암치고는 말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가.”

“외롭지는 않았어?”

“어떤게 외로운거니. 나는 항상 외로웠어. 하지만 그 어느때에도 행복했지.”

“그럼 이 구멍이 네 눈물이 솟는 자국이란 말야?”

“응. 마치 네 두 눈이 항상 충열되어 있는 것처럼.”

“… 나는 말야, 가끔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몸이나 마음이 몹시 허탈해져. 꼭 뭔가 엄청나게 서러운 일이 있어서 두세시간동안 온 기력을 쏟아 울고 난 다음처럼. 하지만 난 전혀 슬프지 않았는걸.”

“나는 너보다 구십오억년이나 더 살았어. 시간은 진실의 알을 품고 있지.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힘이 난다.”

“고맙다면, 이제 담배를 빼 주겠어? 아까부터 필터까지 다 타들어간 바람에 몹시 맵다.”

“엇, 미안해.”

하고 나는 담배를 조심스럽게 빼 주었지. 우리는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봤어. 혹시나 빛이 내리지 않을까 하고. 대신 노오란 나비가 날아와 현무암 머리에 앉았다.

“현무암씨. 너는 언젠가 사라지니?”

“아니. 희미한 웃음이 될꺼야.”

“나는?”

“너는 바람이 되겠지.”

“나도 누군갈 사랑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넌 그럴 수 없어. 이미 네 안에서 모든 세계가 죽어버렸어.”

“너무 아프다…”

“미안. 하지만 내 잘못이 아냐. 모두 네 잘못이야.

“난 바람이 되지 않을거야. 대신 현무암이 될래. 아, 그렇구나! 이제 알았어. 너도 이미 네 안의 모든 세계를 죽여버렸구나!”

순간 현무암은 희미한 웃음이 되었지.

취중농담

나는 쏘오 왓,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지금 당장. 쏘오 왓. 물론 이 경우엔 문장기호로 물음표를 써야 적절하겠지만, 나는 그 개놈의 물음표가 지금은 상당히 쓰기 싫다. 그래서 마침표를, 쏘오 왓, 여기다가 붙인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쏘오 왓, 요 뒤에 붙은게 마침표가 아니라 사실은 물음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쏘오 왓. 그래서 어쩔까나, 썅. 뭐 이런 뜻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것인데, 이 쏘오 왓, 은 미국말이다. 영국에서도 쓰이나 모르겠다. 마아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가운데 쏘오 왓, 이라는게 있다. 그때가 스딴 겟츤가 뭔가 하는 애들이랑 연주할땐가 그런데, 뭔 일인가로 마일스가 화딱지가 나버려서 무대에서 그냥 내려와 버렸단다. 그 일을 계기로, 누군가 곡을 (아니 사실은 마일스가 썼는지도 모르고) 썼고 그 제목을 ‘쏘오 왓’ 이라고 정했던거다. 그래 썅, 콘서트고 프로고 자시고 간에 자기가 하기 싫다는데 내려오면 되는거지 뭘 토달고 그러나 싶다. 그러니까 쏘오 왓이다. 어쩌라고, 라는 얘기다.

아시다시피, 혹은 모르시다시피 나는 오늘 술을 좀 마셨다. 나는 의식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서 키보드도 제대로 못칠 정도가 되어도 그냥 “쫌 마셨다” 라고 얘기한다. 내가 쫌 마셨다면 쫌 마신거지 어쩌라고, 다. 누군가 듣고 있나 근데. 아무도 안듣는다고. 그럼 뭐 어쩌라고, 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기분 좋네 이거.

쏘오오오오 왓. 쏘 왓. so what. 그래서 무엇인가.

뜬금없이 군대로 떠버린 놈한테서 온 편지를 오늘 우연히 봤고 말이다, 뜬금없이 휴가 나온 군바리랑 술을 조금 마셨다. 세상사 오백팔십프로가 다 뜬금없는거다. 나머지 이십프로 정도는 뜬금이 있다. 뜬금이 뭐냐, 하면 나도 잘 모른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하니까 나도 “뜬금”없다고 한다. 흉내내기.

오늘 데깔트 수업을 잠깐 들어줬는데, 이놈이 또 하릴 없는 놈이다. 이놈은 분명 할 일이 졸라 없었다.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아.. 술먹고 싶다.

나도 술먹고 싶다. 너는 내 운명. 나는 술 먹고 싶다. 내가 싶은 건 술먹고, 다. 우헤헤헤헤헤헤헷.

나는 잘란다 이제. 야비한 야비군 가야지. 야아아아아비군. 나는 오늘만 야아비군.

가뭄에 단비

가을인데도 많은 비가 내린다. 어딘가 모르게 검은 음모의 냄새가 나는 비다.

오늘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이 있었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다행스럽게도 틈틈히 전에 사 두었던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을 다 읽었다. 학교 서점에 교재를 사러 갔을때 서가에 이 책이 즐비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이 책을 교재로 쓰는 수업이 있는 것 같다. 애써 찾아볼까 하다가 의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이 책이 중대하냐, 고 하면 별로 그런 책은 아니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만큼 문제작들이 실린 것도 아니고 2005년 올해의 소설이긴 해도 2008년이나 2010년에 읽어도 무방할 것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대한 책이다.

전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지난 몇 달, 혹은 몇 년간 글다운 글을 읽지 못했다. 습기를 갈무리 하지 못해서 퍽퍽 터져나가는 고목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일단 머리가 맑아졌고 (한쪽으로만) 아침에 일어나 쓸데없이 우는 일도 많이 줄었다. 어제 후배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떤 녀석이 “자화상을 썼을때의 서정주 나이가 스물 셋이더라.”는 말을 꺼냈는데, 그러면서 나는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는 문장을 아무런 고통없이도 상기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괜찮았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그런데 막상 뚝이 터지고 사막에 홍수가 나자 모래는 미친듯이 물을 머금는다.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아아, 이 좋은걸 왜 마다하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챙피한 표현이지만, 질질 쌀 정도로. 아 그렇구나. 그건 오르가즘이었다. 몇년을 참아왔던 사정(射精) 같은 것.

박완서, 구효서, 윤대녕 이 세 고수들은 정말로 훌륭했다. 특히나 윤대녕의 탱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했다. 내가 그 동안 윤대녕에게 바래왔던 것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오직 그 작품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산 것은 의의가 있다, 할 정도로. (그래서 읽을 작품들은 내가 그 동안 뒤에서 호박씨를 까대던 윤대녕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그의 모든 작품을 샅샅이 찾아 읽기로 했다.) 박완서는 이 사람이 아직도, 할 정도였고 구효서는 나름대로 기품이 있었다.

이름을 잘 모르는 젊은 작가 가운데에선,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이 매우 즐거웠다. 그는 분명히 조만간 사고를 칠 것 같다.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은 매끄러웠지만 너무 정직했다.

이혜경의 피아간, 은 너무 뻔한 얘기 같아서 읽다가 말았고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은 단편소설이 가지는 힘을 십분 발휘해내는 힘이 있었다. 정이현 (아 정이현!) 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뭐 대개가 그랬지만) 그냥 노코멘트 할란다. 다 읽고 난 다음에 “혹시 서울예대 출신 아닐까?” 했는데 이력을 찾아보니 역시나 그랬다. 까닭없이 화가 나는 서울예대 출신들. (혹시나 상처받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는 아직 읽는 중.

마지막으로.. 조성기의 작은 인간이 남았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왜 이게 좋은 소설에 뽑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작품평을 읽어봐도 뭔가 두리뭉실하고 확연하지가 않다. 미안하지만, 이 선집에 실린 작품중에 제일 재미없었다.

사실 오늘 대학생활 7년 가운데 최악으로 짜증나는 일이 있었는데, 오며가며 책을 읽다보니 짜증이 싹 사라졌다.

여러분 책을 읽으면 재밌습니다! 하하하.

한꺼번에 몰아서 포스팅

1. 전투요정 유키카제
드디어 지난했던 시리즈 전개가 올 해 중순, Operation 5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나는 작년에 이 애니메이션을 알았으므로, 방영 초기부터 유키카제의 완결을 기다려왔던 이들보다는 조금 덜 기다렸을 뿐이다.

리뷰나 줄거리에 대한 얘기는 인터넷에 수없이 떠돌고 있으므로, 따로 쓰레기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키카제(雪風). 카제, 라는 단어가 가지는 군국주의적 불온함 (마치 나카무라, 하면 일제 순사가 떠오른다던가 하는 식의) 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만, 기체가 가지는 순수한 메카닉적인 아름다움은 가치중립적이다.

2. 일본만화들
요 근래 공포를 주제로 한 일본만화들을 많이 봤다. 시작은 잠.밤.기였고, 거기서 소개되는 만화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찾아봤다. 찾을 수 없는 것도 있고 이미 절판된 것도 있었다. 혹은 다른 키워드로 찾아낸 유사공포물도 있었다.

매우 흥미가 있었던 것은 드래곤헤드생존게임이다. 둘 다 원폭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을 기반으로 한다. (드래곤헤드는 좀 다른 얘기긴 해도) “어느 날 나는 어딘가로 향하다가…” 로 시작해서 사고가 일어나고, 정신차려보니 세상은 이미 멸망해 있었다.

한국인에게 원폭은 피상적인 공포일 뿐이다. 그건 세계 어딜가나 마찬가지다. 외적 폭력에 의해서 원폭의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일본뿐인데, 드래곤헤드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이 원초적인 상황에서 심각한 공포에 쫓기게 될 때, 그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두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공포에 그만 미쳐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꺼이 공포를 주는 쪽에 편입되는 것이다. 복잡한 얘기다. 이건 나중에 따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게 좋을 것 같다.

3. 개강
손으로 꼽아보니 8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내년까지 다녀야 하니까 9년을 다니는 셈이 된다.
얼마전에는 수시에 합격한 06학번이 될 후배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좀 당황했다.

4. 가을
담배를 사러 밖엘 나갔더니 볕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가을엔 꼭 어딘가 가버리고 싶다. 남은 일 후다닥 마치고 축제기간을 이용해서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