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촛불집회 & 정태춘, 박은옥 선생님
연이어 두개의, 대추리와 관련된 글을 옮기고 나니까 돌멩이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딸깍 왔다. 주말 저녁 멍하니 보내지 말고 광화문에 나가보자는 얘기였다. (양심상) 갈 수 밖에 없었고 또 가려고도 했었고 평택까지야 힘들더라도 광화문에 못나가겠냐 싶은 마음에 그러겠노라고 답하곤 집을 나섰다.
정말 몇년만에 집회에 나가본 것이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여서 정말 이바닥이 좁긴 좁구나 싶기도 했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 영상물을 보고 노래패 공연을 보고 연사의 절절한 사연을 듣고 하며 시간이 흘렀다. 주제넘게 얇은 반팔 티 하나만 입고 가서 저녁이 되고 바람이 심하게 불자 무척 추웠는데, ‘마음에 평화에 대한 열망이 꺼지지 않는 이상 내 체온은 언제나 36.5도!’를 연신 외우며 견뎌냈다.
그런데 사실 대추리에 대한 생각보다는, 오래간만이다 라는 마음이 더 깊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피(유인물)를 깔고 앉아 보는 것, 팔뚝질 하며 쨍가를 불러 보는 것, 힘차게 구호를 외쳐 보는 것이 마치 처음 해보는 일인양 생경했다. (아마도) 노찾사가 부른 ‘그날이 오면’도 참 오랫만이었고…
그날이 오면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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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회가 끝나고 일행과 저녁 겸 술을 마시러 인근 국밥집에 들어갔다. 한참을 난상토론(?) 중이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정태춘, 박은옥 선생님! 집회의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셔서 아마 집회가 끝나자 행사 관계자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오신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계속 기회를 엿봤다. 꼭 인사를 드려야 해, 인사를… 그러다가 식사를 다 마치시 나가려 하시길래 기회를 노려서 성큼성큼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오늘 노래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 노래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했더니 정태춘 선생님이 슬쩍 웃으시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손을 씻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 다음날 무심결에 씻어버리고 말았고…
아무튼 그렇게 끝난 주말.
2. 은행여직원
이건 지난주 중에 일어났던 일. 조금 늦게 퇴근해서 귀가하는 중에, 동네 은행 앞을 지나가 매우 얼굴이 익은 여자 하나가 바쁜듯이 걸어가는게 보였다. 내가 동네에서 그렇게 낯을 알아 볼만한 여자가 없을텐데, 아무튼 기억에 있는걸 보니 서로 아는 사이겠다 싶어서 일단 아는척이라도 하려고 손을 반쯤 들었다.
그런데 반쯤 들다말고 번쩍 그 여자가 누군지 떠올랐다. 내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의 창구여직원이었던거다. 창구직원 가운데 가장 젊었고 얼굴 생김도 서글서글해서 사실은 내가 약간 좋아했었던 (-_-;;) 사람이었다.
물론 공적인 일 외에 말을 걸어본 적은 없다. 게다가 가능한 모든 은행업무는 집에서 인터넷뱅킹으로 해결하니까 은행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간혹 은행에 갈 일이 생기면, 타이밍을 잘 조절해서 그 여직원이 담당하는 창구에 가곤 했었던거다.
그래, 정말 우리는 모르는 사이다. 내가 아는척하면 이 쪽팔림을 어찌 감당하리오. 해서 반쯤 든 손을 어색하게 기지개 펴는 시늉으로 바꾸고 그 여자 옆을 지나쳤다.
그런데 정말 멋져보였다. 유니폼만 입고 있는 그녀와는 차원이 다른, 나보다 나이가 많지는 않겠지만서도 왠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그런 느낌.
당신을 공개 수배합니다! 내 맘을 빼앗아간 당신! 우리은행 신월동지점,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아니 사실은 외웠었는데, 까먹었다.) 이 글을 보면 제게 연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