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YES24에 책을 주문해 놓고서, 퇴근하다 말고 서점에 들러 또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또 오늘 YES24에서 책 주문. 모두 7권이던가 8권이던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괴델, 에셔, 바흐 (상, 하)’
‘라마와의 랑데뷰’
‘영원한 전쟁’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 (무려 전 4권!!)’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회사가 많다보니 근처 서점엔 재테크나 자기개발, 베스트셀러 중심의 책밖에는 없다. 게다가 요즘엔 왜 이리 일본작가들 책이 많이 나오는지… 가까스로 고른게 ‘스밀라..’ 였고, ‘괴델, 에셔, 바흐’는 엄청난 오역이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 YES24 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책이었으므로 이 기회에 그냥 사버렸다. ‘라마와의..’, ‘영원한 전쟁’은 SF소설인데 ‘라마와의..’ 는 존경해 마지 않는 클라크 형님의 작품. ‘세계를..’, ‘양심과..’도 오래전부터 리스트에 올려 뒀던 책이라서 이 기회에 함께 주문했고…

다른 인터넷 서점도 그런가 모르겠지만, YES24에는 원하는 책을 목록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애용하고 있다. 일단 눈에 띄는 것들은 죄다 ‘구매예정’이라는 항목에 몰아 붙여 넣고 구매한 것은 분류해서 ‘시집, 소설, 비소설, 미디어’ 등등의 항목으로 이동시킨다. 요거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튼 나는 요즘 매우 의욕저하다.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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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나서 추가.
‘라마와의 랑데뷰’. 역시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란공원

추석을 맞아서 모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일행은 김원영과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그녀.


매번 방문할때마다 이상하게 더워서 땀을 뻘뻘흘리게 됩니다.

추석이 가까워서 그런지 성묘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래전이형 옆자리의 전태일 열사 묘에는 어떤 아주머니와 외국인, 그렇게 둘이서 묘지를 다듬고 있었어요. 원영이가 그녀에게 짧게 래전이형을 소개하는 동안 저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간단히 묘지 주변을 청소했지요. 우리는 사간 소주와 북어를 놓고 간단하게 형의 안부를 물었고 형의 그 굳은 표정 아래서 술을 마셨습니다. 북어가 참 맛있었고… 음.

글쎄요, 정말 변하긴 변한걸까요. 으리으리한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어요. 분명 모란공원에는 열사들만 묻혀 계시는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괜한 심술이 났습니다. 좋은 차, 좋은 음식,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 머리가 너무 어지럽군요.

하지만, 변한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2001년 숨진 어느 여성열사는 예쁜 두 아이의 어머니였어요. 묘지 앞 유리케이스에는 두 아이의 해맑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같은건 전혀 예감하지 못하는 그런 미소였지요. 정말 변한건 쥐똥만큼도 없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아, 참.

추석 잘 보내세요.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 Jeff Buckley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Jeff Buckley)

Looking out the door i see the rain fall upon the funeral mourners
Parading in a wake of sad relations as their shoes fill up with water
And maybe i’m too young to keep good love from going wrong
But tonight you’re on my mind so you never know

When i’m broken down and hungry for your love with no way to feed it
Where are you tonight, child you know how much i need it
Too young to hold on and too old to just break free and run

Sometimes a man gets carried away, when he feels like he should be having his fun
And much too blind to see the damage he’s done
Sometimes a man must awake to find that really, he has no-one

So i’ll wait for you… and i’ll burn
Will I ever see your sweet return
Oh will I ever learn

Oh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Cause it’s not too late

Lonely is the room, the bed is made, the open window lets the rain in
Burning in the corner is the only one who dreams he had you with him
My body turns and yearns for a sleep that will never come

It’s never over, my kingdom for a kiss upon her shoulder
It’s never over, all my riches for her smiles when i slept so soft against her
It’s never over, all my blood for the sweetness of her laughter
It’s never over, she’s the tear that hangs inside my soul forever

Well maybe i’m just too young
To keep good love from going wrong

Oh…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Cause it’s not too late

Well I feel too young to hold on
And i’m much too old to break free and run
Too deaf, dumb, and blind to see the damage i’ve done
Sweet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Oh, love well i’m waiting for you

Lover, you should’ve come over
‘Cause it’s not too 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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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음악 하나 올려봅니다.

너무 사랑하는 당신에게.

러브레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한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가 한대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갖고 있다!!) 가끔 내키는대로 들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삼십분을, 바람에 눕는 풀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그 다음의 이초나 삼초 정도 사이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또 다시 한두시간을 누워 하늘을 보거나… 해거름이 지려고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 툭툭 털고 터벅터벅 흙길을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마을 어귀의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전에 맡겨 놓은 필름이 현상되었는지 물어본다. 천원이나 이천원을 쥐어주고 현상된 필름을 들고 집에 당도하면, 멍멍이가 달려와 무릎에 안긴다. 또 한 삼십분 멍멍이랑 놀아주고, 씻고, 옆 집 순영이 할머니가 그저께 가져다 준 텃밭에서 마구 뽑아 온 푸성귀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고 책이나 전축, 사진도구들이 잔뜩 들어 있는 방에 들어가 현상해 온 필름을 라이트박스에 놓고 보며 희죽희죽 웃는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수채화 물감을 풀어 한 눈으로는 루뻬를 통해 사진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그 풍경을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그날 완성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시들해져서 그만둬도 좋다. 어쨌든 그렇게 쌓아 나간 스케치북이 열 두서너권 쯤 되면 나는 또 밤새 그걸 안주삼아 킥킥하면서 뒷집 영이 할머니가 담근 막걸리로 얼큰하게 취할 것이다. 그리곤 아! 하며 무릎을 친다. 내일은 뒷골 순심이 할머니 (왜 죄다 할머니 뿐이냐..) 영정사진 찍어드리는 날이구나 하는 것이다. 순심이 할머니는 매번 내가 놀러 갈때마다 젊은 것이 일은 안하고 히죽히죽 웃고 놀기만 한다고 타박한다. 그래도 순심이 할머니는 외할머니랑 많이 닮아서 좋다. 그리고 다음주 쯤에는 할머니들이랑 나물 캐러 가야지, 또 그런 생각에 히죽히죽 웃는 것이다.

또 이래도 좋을 것이다. 서울서 결혼한 원영이가 제수씨와 큰애, 작은애를 데리고 주말에 놀러 온다. 나는 그들이 머물 방을 치운다, 해 먹일 음식을 준비.. 는 못하고 영이 할머니한테 부탁하거나 지난번 비가 많이 내려 물에 떠내려간 마을 냇가 평상을 다시 만들어 놓는다거나 하면서 간만에 바지런을 떠는 것이다. 지나가던 영이가 ‘삼촌, 미친거 맞지 지금?’ 하면서 농을 걸면, 그래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래 요것아, 좋아서 미치겠다!’ 한다. ‘영이야, 너 내일 서울서 친구들 오는데 여기 서방골은 니가 잘 아니까 친구들한테 좋은 것 구경 많이 시켜줘야해’ 하면 영이는 ‘삼촌 사진기 열흘만 빌려주면 생각해볼께’ 하며 혀를 낼름 내밀고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 영이한테 카메라를 한 대 선물해야 겠구나 마음을 먹는 것이다.
다음날 원영이가 번쩍번쩍하는 코란도를 끌고 마을 어귀에서 빵빵 경적을 울리면, 고까짓것 고무신을 꺼꾸로 신고 후다닥 부리나케 달려나간다. 우히히, 우히히 지나가다가 순심이 할머니네 누렁이가 꿈뻑꿈뻑 풀을 씹고 있으면 엉덩이 찰싹 한대 때리고 헐떡헐떡대면서 기다리고 있는 원영이네 가족을 만나러 간다. 잠깐 기다려! 내가 보일락 말락 할때 즈음부터 성질급한 원영놈은 차를 돌려 내쪽으로 오려 하는데, 나는 손짓발짓하면서 오지 말라고 막는다. 기념으로 한 장 찍어야지, 하고 마을 머릿돌 위에 사진기를 올려 놓고 지이이이익 하는 타이머를 감아 놓고 또 히죽히죽 웃으며 원영이와 애들과 제수씨와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길이 험해서 차는 어귀 공터에 놓아두고 나는 근처에서 밭일을 하던 명식이 아부지한테 ‘아부지 나 지게 좀 빌려가요!’ 하고 ‘어, 어, 어… 나 꼴 베야 허는디..’ 하는 명식이 아부지 뒤로 하고 한아름이나 하는 짐을 지게에 올려서 뒤뚱뒤뚱, 원영이는 ‘야, 좀 천천히 가 짜식아’ 하면 나는 또 뒤를 돌아보고 히죽히죽 웃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감자랑 옥수수를 삶아서 내놓으면 아이들은 벌써부터 동네 애들이랑 친해져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히히히 장난질 치고 ‘야들아, 너무 멀리가면 그냥 그집가서 자’ 한마디 하니까 명식이랑 영이랑 순심이랑 애들이 서울애들 손목을 끌고 ‘울집가서 자자’ 한다. 원영이는 서울서 가져온 좋은 음악을 꺼내 놓고 제수씨는 ‘이래저래 해도 주헌씨가 제일 팔자 좋네요’ 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면 나는 또 히죽히죽 웃는다. ‘서울 살기 퍽퍽하면 제수씨네도 내려와서 살아요. 여 빈집 많으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서 살면 되는데..’ 하면 이번엔 원영이가 히죽히죽. 아무튼 그렇게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사는 얘기 하다가 밤이 지나는 것이다.

또 나는 동네 아이들 대장이 되고 싶다. 서방골 방위대 대장. 우리의 적은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다. 특공일대장 명식이는 지보다 어린 꼬맹이 두서넛을 거느리고 항상 최전선에서 쓰레기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 종군기자 영이는 지저분한 쓰레기들, 특히 명식이 아부지가 가끔 아무데나 버리는 농약병 같은걸 내가 빌려준 사진기로 찍어서 마을 회의때 발표한다. 명식이 아부지는 얼굴이 뻘게져서 ‘그거 내가 버린거 아닌디.. ‘ 하면 다들 와와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나는 머슴이 되고 싶다. 수십년간 내가 버린 것들, 내가 모른척 했던 것들, 내가 이유없이 미워했거나, 뒤에서 욕을 했거나, 마음 속으로 다치게 했던 것들. 그 모두는 다른 어떤 이들에게 치유불가능한 상처일 것이다. 나는 너를, 그 깊은 내부를 본 적이 없으므로 그 동안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왔다. 마음 독히 먹고 잔뜩 쟁여서 튀어 나가라고, 뒤에서 소리치는 고참의 말에도 마음 한 구석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면 곳곳에 내 죄악의 흔적들 뿐이다. 몇년 전에 나는 나를 위안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정말 위안받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나이므로 내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너는 내가 아니므로 내가 준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머슴이 되고 싶다. 혼자서 견디는 삶보다, 떠받드는 삶, 보다 낮은 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네가 지금 하고 싶은게 정말 그거란 말야?

응.

멜렁멜렁

집에 오자마자 나는 멜렁멜렁해진다. 멜렁멜렁은 말랑말랑과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벌렁벌렁이 더 가깝다면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벌렁벌렁한 말랑말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시,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나는 벌렁벌렁 말랑말랑해진다. 엄마랑 장난을 조금 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감식초 한 잔을 만들어 컴퓨터를 켠다. 엄마는 회사에서 그렇게 컴퓨터를 만져놓고 집에 와서 또 컴퓨터를 켜고 싶냐며 핀잔하지만, … … … 그러게나 말이다. 사실 그다지 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멜렁멜렁하기 때문에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한다. 윈앰프에서 티카티카하고 산울림이 노래를 부른다. 발바닥은 슬근슬근 간지럽다. 동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작복작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옷을 찾는다.

오늘은 하루종일 쌜쭉쌜쭉. (그러니까 집에 오기 전까지) 바깥 날씨는 아직까지도 여름에 맞춰진 내 대뇌신경계가 깜짝 놀랄만큼 쌀쌀했지만, 내부는 아직도 뜨어거운 여름이어어어었다. 저녁에는 감자탕에 동동주를 마셨고, 직원들과 남 흉을 봤다. 그런데 그 ‘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아무와도 인연이 없는 아주 먼 과거의 어떤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사람의 꿈들을 한데 모아서 동전으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일이 썩 맘에 든다.

우연

1964년 7월 31일 오후 두시 경, 뉴욕 맨하탄의 3번가 뒷골목에서 사진작가인 루이스 러브송은 보름 뒤 철거 예정인 어느 빌딩의 쓸쓸한 마지막 풍경을 필름에 담고 있었다. 그녀가 앵글을 높여 빌딩의 처마를 지키고 앉아 있던 가고일상을 촬영하려고 했던 바로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로 그녀는 후두부의 총상입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명백히 우발적인 살해였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마퀴스 드마르쿠스는 철거 예정의 빌딩을 거점으로 하는 지역 갱단에 입단하여, 분쟁 상태에 있던 상대 갱단의 침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허리춤에 38구경 리볼버를 꼽고 빌딩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먼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빌딩을 노리는 어떤 백인 여자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갱단의 간부들을 저격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 마퀴스는 그녀의 뒤로 접근해 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루이스 러브송은 스물 아홉으로, 이제 막 사진계에 좋은 평을 듣기 시작하던 신예였고 마퀴스는 스무살 생일 지난지 두달이 된 겁없는 청년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영국 런던의 템즈강 워털루 브릿지의 교각에 떠내려오던 여자의 시체가 걸렸다. 시체는 강변을 산책중이던 아비게일 스탈링 (45세) 이 발견하여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아비게일은 오년 전 심장병 발병 위험이 높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틀 뒤, 아비게일은 침대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것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주위 사람들은 심약했던 그녀가 시체를 목격한 것에 대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각에 걸려 있던 시체의 이름은, 놀랍게도 같은 날 뉴욕에서 숨진 루이스 러브송과 같았다. 런던의 루이스 러브송은 맨하탄의 루이스 러브송이 사망한 비슷한 시각에 강변을 걷다가 갑자기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열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륙하여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던 중동항공(MEA) 소속의 코메트-4 여객기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비행기는 인근 사막에 불시착을 시도했고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극소수였다.
사상자 가운데는 중동을 여행중이던 백인 미국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루이스 러브송이었다. 그녀는 여객기가 불시착 한 뒤에도 살아남았으나 구조대를 기다리던 도중 불행하게도 사막전갈에게 물려 독사하고 말았다.

이틀 뒤, 1964년 8월 2일.
미국정부는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 구축함 매독스가 북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개시했으며, 그 후 베트남에 투입된 미군 병사는 년간 54만명이 넘었다. 1973년 종전을 선언할 때까지 미국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은 755만톤이 넘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중 전 세계에 사용된 양의 2.7배에 달했다.

비 오는 밤

지금 막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사가 퇴근했고 덕분에 사무실엔 나 혼자 있다.

어쩌면 파견근무 나간 대리 하나가 들어 올 것 같기도 하지만, 뭐 들어와도 상관없고…

하루 종일 킹즈 오브 컨비니언스의 ‘텅빈 거리의 폭도들’을 듣는다.
왜냐하면 노트북에 그 앨범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잘 살펴보면 에릭 크립튼의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 앨범도 있을텐데, 왠지 지금 그건 어울리지 않는다.)
낮에 한참 킹즈.. 를 듣다가 요즘 귀에 익은 선율이 나와서 앞자리의 디자이너에게 농을 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어요?’
‘음… 맥스웰 인가?’

그정도.

슬슬 또 오른쪽 어깨가 결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두통까지 너무 심했는데, 상황에 따라서 의미없다고 판단되면 절대로 아픈 내색을 안하기 때문에 그냥 있었다.
가끔 생각만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면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지만 절대로 잠을 이룰 수 없는, 그런 꿈을 꾼다.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꿈인지 제대로 분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며칠째, 사실상 불면의 상태에 있다.

낮에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강변을 달리는 꿈을 꿨다. 강에서 수영을 하거나, 둔치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하는 사람들은 온통 쭉쭉빵빵의 아가씨들이었고 (욕구불만인걸까) 몇몇은 차가 다니는 차도에까지 나와서 한가롭게 누워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동생은 아가씨들에 시선을 뺏겨 앞에 여자들이 누워 있는지도 모르고 달렸다. 나는 그만 사람을 칠 것 같아서 동생에게 멈추라고 소리질렀지만, 덜컹, 덜컹 하면서 동생은 몇 명의 여자를 깔고 지나갔다. 여자들은 아팠을까. 하지만 그건 꿈이었다. 누구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오직 내게만 거대한 죄책감같은게 남았다.

나를 백퍼센트 이해해주는 편안한 여자를 만나기는, 내가 어떤 여자를 백퍼센트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런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내 옆에서 아침에 함께 일어나는 다른 이를 생각할 수가 없다. 조용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뿌연 얼음물 같은 마을…

오늘은 자도 자도 졸렵다. 벌써부터 졸려워서 이제 조금 있다가 누워 잠을 잘 것이다. 내일은 또 거짓과 유치한 자기긍정 같은 걸로 살아내야 할 것이다. 누군가 조금만 나를 칭찬해도 우쭐해지는건, 저녁에 퇴근하면서 생각해보면 죽고싶을만큼 부끄럽다.

이런 나에게도 기적같은 날이 올까..

여름 밤

그건 아주 검은색이었지. 모닥불 말야. 굵은 강모래 위에 피워 놓았던 그거. 적은 내부에 있다. 불길은 아주 검게 타들어가다 졸아붙어. 무거운 눈꺼플이 감기기 시작하면 병풍같은 절벽 위로 하얀 달이 떠올랐어. 나는 노래를 불렀지, 차가운 물이 날 휘감을때… 하는 노래를. 삼십육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서도 나는 추워서 벌벌 떨었다.

머리가 복잡해.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이 불어 넘치는 것처럼, 머리 속이 꼭 그래. 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라. 아주 추웠지. 달빛이 눈처럼 내렸어. 뽀드득뽀드득 얼음물을 건너서 호빵같은 돌들을 타넘다보면 아주 제대로 돌았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어.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야단을 치고 누구는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목마르다. 누구 나를 위해 잔에 소주를 채워줄 사람 어디 없소. 없어.

한 세번째 말하는건가 싶은데, 왜 이렇게 나는 옅어지는걸까. 외롭다거나 슬프거나 그런 감정을 말하는게 아냐. 물론 외롭고 슬프기도 하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편의점 가판대 위에 놓인 물건들같아. 아주 공평하게 진열된 감정들. 말하고 싶은건 그냥 옅어진다는거야. 말 그대로, 점점 더.

아무튼 난 여름 밤이 싫어.
그리고 또 이렇게 며칠전에 쓰다 만 글의 꼭지를 억지로 더 쓰려고 쥐어 짜는 것도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