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슨 투표? 2. 회사 가야해서… 3. 찍을 사람 없어! 4. 당연 투표 했지~ 5. 투표권 없어요~ (지역 외 거주자이거나 선거권이 없는 나이)
4번, 5번 제외하고 다들 대가리 박아라. 이런 씨뮬라시옹! 투표율 15%가 올 해 실질 물가상승율이냐? 촛불집회 나왔던 녀석들 친구 하나씩만 잡고 투표장 가도 30%는 넘겠다! 특히 애 있는 엄마 아빠들! 니들 내가 팜플렛 돌리니까 관심 없다고 쌩까더라? 결혼 안 한 총각도 아이들 한 번 맘껏 웃는 세상 만들어 보겠다고 교육감 선거에 뛰어드는판국에 이제 당장 학부모 될 니들이 관심 없다면 어쩌란거냐? 걍 닥치고 학원, 과외? 앞으로 티븨에 교육관련 뉴스 나오면 샷 다 마우스 하고 지내라.
아직도 늦진 않았다. 8시까지니까 이 글 본 서울시 거주 선거권 있는 성인남녀, 특히 애 있는 엄마 아빠들! 초고속으로 선거 관련 팜플렛, 인터넷 검색 해보고 과연 누가 우리 애들을 위해서 좋은 교육감인지 판단해라. 형 오늘 더워서 인내심 앵꼬다. 존말 할 때 어서 가서 투표해라.
솔직히… 홍콩이 화성(Mars)도 아니고 한 번 다녀오는데 수십억씩 드는 것도 아닌데 나만 다녀 온 것처럼 멋드러지게 홍콩 여행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것은 조금 우스워 보인다. 그리고 잘 쓸 자신도 없다. 검색해 보면 홍콩 여행에 관한 아름다운 추억이나 실속 있는 정보, 멋진 사진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내 이야기 한 꼭지를 또 걸어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다녀 왔고, 한 나흘을 빡시게 걸어 다녔더니 배도 조금 들어 간 것 같다. (돌아 온 지 이틀만에 다시 원상복귀) ‘여행에서 만난…’ 운운 하는 낭만적인 해프닝은, 당연히 없다. 아, 마지막 날에 춤추는 술집에 들어가 신나게 춤을 추다가 네델란드에서 왔다는 어떤 사내와 이야기를 했다. 걔는 영어를 곧 잘 했지만, 나는 잘 하지 못하고 게다가 술집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몇 마디 나누고 뭐 그런 식이었다. 너무 신나게 춤을 췄던지 술집 안 사람들이 다 한번씩 인사를 해서, 그 도중에 코리안이라고 말한 걸 옆에서 들었나보다. 한국 축구를 좋아한단다. 오, 그래? 넌 어디서 왔는데? 홀란드. 뭐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라? 홀란드? 그럼 히딩크 어쩌구 저쩌구, 솔직히 축구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얼싸 안고 마치 오래 전에 헤어진 형제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이정도가 해프닝이라면 해프닝.
돌아 오는 비행기 안, 무슨 교회에서 단체로 여행이라도 온건지, 아니면 사박 오일 선교봉사 하고 돌아가는 모양인지 이집사님 김권사님, 시끌벅적 하다. 애새끼들도 마치 관광버스라도 탄 것처럼 의자 위에 올라가 난리를 친다. 그러다가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어떤 꼬마 여자애가 ‘아저씨 저랑 자리 좀 바꿔주세요. 친구랑 앉게요.’ 한다. 어이쿠 이렇게 감사할데가. 그래서 처음으로 1만미터 상공에서 지상(과 해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구름이 기묘한 모양으로 비틀리고 휘몰아 흘러간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니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다. 비행기는 열심히 동쪽으로 도망가며, 석양을 피해 날아간다. 수평선 끝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가 하늘로 이어졌다. 천지 만물이 무아지경으로 녹아든다. 그 순간에 내가 인간인걸 정말 저주했다. 새로 태어났다면 내게 나날은 이런 감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감탄사를 연발하는 인간이 있다면 신나게 패줄테다. 닥치고 감동. 닥치고 감격.
그리고 기내식을 먹고 한 숨 잠들었다가 서해 근처에 와서 잠이 깬다. 또 다시 창문을 본다. 서쪽의 끝은 이미 밤이었다. 나는 오후였고, 오른편으로는 아직 오전의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이 또 다시 몰려든다. 아이고 맙소사! 사람들이 천국을 이야기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유가 다 있었구나!
선풍기를 거의 24시간 틀어 놓는 것 같다. 내 방 선풍기에게 너무 미안해서 낮에는 안방 선풍기를 켠다. 그러니까 2교대다. 이거 참 월급도 안주고 여름만 되면 이렇게 노동력을 착취해대는게 내 계급적 신념에 어울리지 않는 노릇이지만, ‘우리 다 힘들 시기인데, 조금씩만 양보해야 하지 않겠니, 선풍기야?’ 아이고,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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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은 나오는데 계속 땀이 흘렀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걸까 하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퇴근 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2호선 강남 어림쯤의 구간은 항상 이렇다. 자꾸 머리가 흘러내린다. 머리가 기니까 너무 간지럽다. 자꾸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다. 그런데도 머리를 잘라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존나게, 죽어도 안잘라야지. 하도 머리가지고 뭐라 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짜증이 나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거다. 왜들 이렇게 책임지지도 사실은 관심도 없는 남 머리 모양가지고 저 지랄들인지. 이럴땐 차라리 내 머리를 보고 노골적으로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반갑다. 존나게, 평생 남 머리 모양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살아라.
선풍기는 하루 종일 돌아간다. 미지근한 바람에 세수를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포토샵을 만진다. 불러 온 이미지들의 용량이 너무 크고 많아서 하나씩 선택하는데 컴퓨터 화면은 툭툭 끊긴다. 다시 부팅을 하면 좀 나아지겠지만, 다운로드 받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잠시 대기중이다. 그리고 나의 생활도, 대기중이다.
지난 한 달 간 집회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도 새로 만난 사람도 있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은 대개가 뜨악한 표정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조금씩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사실 별로 친한 사람들도 아닌데 장소가 장소고 때가 때인 만큼 억지로 친한 척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기간들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5초나 10초 정도 인사로 나누고 그리고 또 인파들 사이로 우리는 헤어졌다. 언제 또 만날까, 거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집회를 빙자해서 그냥 거리를 걷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통제 불가능한 폭도(?)들 사이에서, 언제 전경이 날 선 방패를 들고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불안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 나는 불안과 친구하기로 했으니까. 뭐, 다들 조금씩 그렇게 하고 사는거 아닌가.
참, 러브레터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했었는데. 한달쯤 전에 러브레터를 다시 봤다. 사실 첫번째 봤던 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처음 본거나 마찬가지. 러브레터, 이거 대단한 영화다. 솔직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보다야 훨씬 나은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도 나는 뭔가 거대 담론들에 대해서 실증을 느끼게 되었다거나 한거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무지하게 모여 있는데, 도무지 뭔가 안풀리는 그런 영화. 어,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맘 속에 묻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랑이 깨지고 나서 예전 좋아하던 사람을 만나고 나니 이번엔 다시 헤어진 사람이 그리워지는거. 애초에 사랑 따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다 허상이고, 봄 되면 녹는 눈 같은거.
군대가서 처음 배우는게 ‘제식훈련’이다. ‘군인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세… 어쩌구’ 하는건데, 쉽게 설명하자면 ‘천명이든 이천명이든 제대로 발 맞춰 걸을 수 있게 하는 훈련’이 바로 제식훈련이다. 왜 이걸 맨 처음 배울까? 이걸 못하는 집단은 개개인 병사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군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것만 하면 절반은 이미 군인이고 군대다.
발 맞춰 걷는다는게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중요하다. 제식훈련은 열병식 같은걸 위해서 있는게 아니다. 그건 일종의 ‘강력하게 통제된 집단’을 상징한다. 제 아무리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라도 지휘관의 명령 하나로 수십에서 수백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기다.
자, 제식 훈련을 받은 집단인 전경과 시위대의 경우를 놓고 보자. 이건 애초부터 게임이 안된다. 지도부가 있지도 않은 이번 촛불 집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폭력시위? 변질됐다고? 이건 어른이 애들이랑 장난 삼아 레슬링을 하는데 애가 꼬집었다고 화를 내는 것과 똑같다. 빠이? 대체 누가 이번 집회에서 조직적으로 빠이를 들고 나갔나? 분을 못이긴 사람들이 몇명 그랬겠지. 아서라, 방패에 전투복에 헬맷까지 완전하게 갖춘 전경한테 그게 먹히기나 하겠냐. 전경버스 밧줄로 끌어낸게 폭력? 버스를 들어서 전경들이 있는 곳에다 집어 던져야 (헐크?) 그게 폭력인거지. 오히려 버스 끌어내기는 정말 참신하지 않은가? 요즘엔 오히려 전경이 끌려오면 시위대가 몰매 맞지 않게 막아주더군.
국가가 국민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권력은, 그리고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적 잣대들은 존중할 필요가 없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새끼들은 이건희 같은 새끼를 두고 하는거다. 그놈은 법 위에 있잖아. 씨발라미. 그리고 황정민인가 하는건 지가 집회 나와서 구경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변질타령이야.
아무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식훈련을 할 줄 아는 집단과 맞서는 민간인들이 폭력을 사용한다는건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다. 그건 폭력이 아니라 저항이다. 오히려 개념없이 애고 어른이고 다 방패로 찍는 그 새끼들이 진짜 폭력이지.
기형도는 한동안 거리에서 시를 쓰며 그것은 고통이라고 적었다. 매일매일 만나는 흰 벽과 책상과 사람들, 소음들로부터 떨어져 생경한 거리의 벤치에 앉아 낯선 이들의 면면을 살피며 시를 적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낯선 것을 경계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그는 거리에서 우선 불안과 만났을 것이다. 불안. 정처 없음. 멈춰 있는 것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으로. 완전히 발현된 현사실성으로부터 가능성으로, 부족함과 비어 있음과 궁핍과 누추함으로 그는 걸어 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주어진 미지의 낱말들을 만났을 것이다. 세계가 존재로 가득 차 있다면 거기엔 운동이 있을 수 없고, 핀에 고정된 박제된 나비와 같이, 거기서 의미는 완결될 뿐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시인은 무궁한 쓸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랬다. 고통이 쾌감으로 바뀌는 지점과 불안이 힘의 원동력이, 그러니까 말의 힘이 되는 그 지점을 발견했다.
나는 한동안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일신의 안위와 자족을 위해, 육신의 안정함을 위해 골몰하고 나태했던 나는 나를 완전히 비우지 못했다. 오히려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를 쓸 적에 나는 매우 작은 나였다. 나는 불안했고 나의 맥박은 쉴 사이 없이 고동쳤다. 채우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채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쓴 글들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지금은 그 반대다. 현재 블로그에 쓴 내 글들은 전부 다 오물들이다.
지금 나는 낯선 곳에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서른이고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 나에겐 꿈이 없다. 나는 꿈 같은 것, 희망이나 행복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쓸데없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기를 강요당한다.
엊그제 외삼촌을 만났다. 그는 내가 사고의 현실성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이를테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다. 이성주의와 이념의 관념성에 질식한 자다. 나의 거의 두 배를 살아 온, 게다가 한때는 더없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아무런 이의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현실은 확고하며 미래는 현재와 맞-이어져 하루하루가 그 길의 위에 놓여져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를테면 똑똑한 사람, 강력한 사람, 이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루는 사람.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지금 나는 낯선 곳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집에서 듣기 힘든 굉음의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경적… 동요하고 있다. 그릇에 물이 요동쳐 흘러 넘치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중심을 흩뜨리고 전복을 꾀한다. 불안하다. 심히 불안하다. 고정된 희망이 없으므로 불안하다. 기만적인 행복을 거부함으로 불안하다. 불안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움직일 것이다. 나는 그 무엇도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나의 속성은 불안이다. 나는 불안을 이용할 것이다. 나는 불안과 입맞출 것이다. 내가 바로 불안이다.
함석 처마에 (요즘엔 함석 대신에 알루미늄을 쓰지만) 여린 비 내리는 소리. 슬림 어쿠스틱 기타 조용히 튕기는 소리. 새벽에 문자가 와서 ‘딩-동’ 하는 소리. 한 여름 아득하게 먼 곳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 가을에 살며시 바람이 불어 낙옆이 소슬거리는 소리. 새벽에 엄마가 설거지 하면서 조용히 부르는 찬송가 소리.
얼마 전에 MBC에서 일요일에 하는 진실 혹은 거짓인가.. 하는 프로에서 영국의 음악그룹인 ‘첨바왐바(Chumbawamba)’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귀에 익은 음악의 뒷편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손이 불끈 쥐어졌다. (그나저나 오락프로에서 이런 내용이 방영되다니 놀라울 뿐이다.)
관계의 최상급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 역지사지 일 것이다. 영어의 숙어 가운데 ‘put yourself in the other person’s shoes’ 즉, ‘남의 신을 신어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역지사지의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발에 잘 맞지도 않는 남의 신을 신어 본다는 것은 그만큼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이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영국인이 아닌 우리가 리버풀항만노동자들의 절규에 동참한다는 것, 천재지변에 신음하는 동남아시아 인민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것, 언제 폭격을 당해 죽을지도 모르는 중동 어린이의 불안함을 공유한다는 것은 모두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래, 가장 현명한 자가 있다면 그는 쇼펜하우어식의 천재일 것이다. 신적 직관을 인간의 몸에 담고 세계를 꿰뚫어 사물을 보편으로 경험하는 자. 그에게 세상은 이질적이고 불편한 대립자들로 가득찬 곳이 아니라, 대립을 넘어 하나의 전체인 세계이다. 그 아래 단계는 깊고 끈질긴 헤아림을 통해 동일성을 체득한 자 – 철학하는 자이다. 그에게는 물론 직관 같은 것은 없다. 그는, 그러나, 합일의 가능성을 믿는다. 근대의 사유, 차등하는 사유, 구분짓고 전체에서 ‘나’를 분리해 내고 ‘너’를 존재의 저편에 유기하는 사유가 있었다. 철학하는 자는 끝내 이 대립을 끝장내고 찟긴 ‘너’와 ‘나’를 하나로 기워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하는 자는 경험하지 않아도 대립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 다음으로는 경험을 통해서만 ‘아는’ 자가 있다. 고통받는 타인이 바로 자기임을,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에게 세계는 닫혀있으며, 어둠으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폭력의 세월은 닥쳐온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주체로 남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타인에 의해서 언젠가 그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런 후에야 그는 간신히 자신의 공간에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경험해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 이 자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지함이 순수함을 의미한다면, 그래도 좋겠지만, 이 자의 무지함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다.
신적 직관을 갖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므로 이런 경우는 논외로 한다고 하고, 숙고를 통해 하나됨에 이르는 철학하는 자의 길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지진이나 태풍에 상처입지 않더라도, 전쟁의 참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그런 자리에 내가 있다면 나 또한 같은 고통을 받게 되리란 것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로 알리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그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는 공감하는 것이다. 공감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함께 행동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세계을 회복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