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젠장…

Ben and Sera Theme – Leaving Las Vegas OST

Ben and Sera Theme From Leaving Las Vegas OST

Sera : Don’t you like me, Ben?
Ben : Sera… What you don’t understand is… No, See no…
Sera : What?
Ben : You can’t never, never ask me stop drinking. Do you understand…
Sera : I do. I really do.

세라 : 날 좋아하지 않아, 벤?
벤 : 세라…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게 있어… 아냐, 널 좋아해…
세라 : 그런데?
벤 : 절대로, 그 어떤 이유로도 내게 술을 끊으라고 하지마… 이해하겠어?
세라 : 알았어… 그런 말 하지 않을께.

한동안 무한반복으로 듣던 씨디에, 벌컥벌컥 이 트랙이 재생된다.
처음엔 몇 부분이 잘 안들렸는데, 한 열댓번 듣다 보니까 잘 들리지 않아도 이해하겠어.
벤은 사실 지옥같은 라스 베가스로 천사를 만나러 간 바보고
난 서울보다 더 지옥같은 곳을 잘 떠올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여기 남는다.
You can’t never, never ask me live a right life. Do you understand…

seti at home

 어제 문득 무슨 글을 보다가 seti at home이 떠올랐다. 이전 블로그 등에서 수차례 언급했으므로 seti at home이 대충 뭔지 아시리라 믿고.

 그 동안은 seti at home 프로그램을 돌릴 곳이 마땅찮아서 135개의 work unit을 끝으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제 문득 seti at home을 떠올리다가 현재 내가 관리하는 서버가 꽤 있는데까지 기억이 미쳤던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서버에 seti 클라이언트들을 다운 받아서 설치하고 돌렸다. 물론 seti at home은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 시스템에서 불법적으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 금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자의 권한은 막강하고, seti 클라이언트 자체가 자동적으로 시스템의 자원상황을 판단해서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프로그램의 점유율을 조정하므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에, 아니 정확하게는 19시간만에 4개의 wu을 보냈다. 호호호~

안돼 졸리야!!

기사 원문

 안젤리나 졸리를 알게 된건 꽤 오래 되었다. 95년도 hackers란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이 영화에 열광했었냐면, 당시 그 영화 홈페이지에서 이벤트를 했는데 거기에 다 응모 했었을 정도였다. (인터넷 사용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총 당첨 인원이 30명인가 그랬는데, 응모인원은 고작해야 100명 정도였다.) 물론 당첨되어서 hackers OST 씨디도 받고 열쇠고리도 받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그 OST가 아직도 있다.)

 hackers OST를 듣고 있다. 요게 아마도 트렌스.. 인가 어쩌구 하는 장르인데, 반복적인 전자음이 주된 멜로디다. 이런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만에 들어보니까 꽤나 흥미롭다. 옛날 생각도 나고.
 그때, 아마도 기억에 이 안젤리나 졸리가 크게 될꺼라는 느낌이 왔었다. 그래서 각종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그녀에 관한 자료를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녀의 아버지 또한 유명한 영화배우, 존 보이트다.
 뭐 솔직히 졸리가 누구랑 결혼하던 나하곤 상관없다. 그런다고 졸리를 좋아하는 내 연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스크린에서 그녀를 볼 수 없다는건 좀 실망스럽다. 물론 이게 하나의 커다란 (조작된) 해프닝 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지 이런 소식을 듣는다는건 날 낙담하게 한다. 툼 레이더고 어쩌고에서 많이 망가져도 좋다. 나는 배우가 영화에 크게 영향을 주는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만은 예외로 두고 싶다. 졸리는 모든 영화를 졸리化 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마력은 그다지 보기 싫어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아무튼.. 아.. 졸리야.. 졸리다..;;

어버이날

기본적으로 난 못난 자식이고 그래서 매년 어버이 날이 다가올 때마다 반은 거북하고 반은 두렵고 뭐 그런 심신 상태에 접어든다. 그런데 올 해엔 정신 없다는 핑계로, 당장 어버이 날 당일이 될 때까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버이 날 기념 & 할머니 생신 겸 외식 어쩌구를 하려고 용인 할머니댁에 가는데, 주위에 온통 카네이션을 단 어버이들이 와와 다니시길래 솔직히 속으로 좀 찔렸으나 겉으론 태연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자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계속 네시 반까지 집에 와서 차를(자가용이 없어서 외삼촌 차를 빌렸다.) 돌려줘야 하는데, 하는데 하시고 아버지는 오랜만에 눈에도 안들어 올 조그만 승용차를 모시려니까 적응이 안되는지 연신 기어 변속에 실패한다. 한 뼘도 안되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중이다.

 솔직히 난 친가쪽 식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으니 어른들 보기가 부담스럽고.. 어쩌구.. 뭐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 친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 군상의 전형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거기엔 룰도 없고 사상도 없고 의미도 없고 소음만 있다. 물론 그건 주관적인 견해다. 의미 정도는 있을 것인데, 도무지 난 그 의미를 짐작 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명절때가 되어 할머니댁에 갈 때면 난 슬그머니 정신을 집에 두고 나온다. 가서 실컫 웃고 어른들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위해서다.

 뭐 됐다. 나도 의미 없으니까 딱히 그쪽이 의미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 갈비집은 정말 맛이 없었다. 진짜 참나무 숯으로 갈비를 굽는건 신선했지만, 서비스도 엉망이고 고기도 퍽퍽하거나 너무 느끼했다.

Gymnopedie – Erik Satie

 있잖아요, 짐노페디를 들을때마다 죽고 싶어져요.
 누군가, 그러니까 아주 정결한 여신이, 이를테면 노르마 가운데 마리아 칼라스처럼, 어느 날 우연히 지상에 내려와, 정말정말정말정말 이해가 안간다는 말투로,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고 교조적인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며 교만한 것도 아닌 것처럼,

 “있지, 정말 모르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묻는건데… 너희는 왜 그렇게 살아?”

 하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요?

 그냥 깨꾸닥 죽어야 해요.

농민운동가 엄성준씨의 부고

 사학과 출신의 후배면서, 나보다 선배같으며, 02년도 인문대 학생회장도 했었고 (그때 난 과 학생회장이었다),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경이 되어 근무중인 놈이 외박을 나왔는지 메신저에 잠깐 불이 들어왔다 나간다.
 그 녀석의 메신저 대화명이 성준형, 형. 잘가요. 쪼금만 울게요.로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 선배 가운데서도 성준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설마 그 선배가 사고를 당했나 싶어서 급한 마음에 뉴스를 뒤져보니 다른 사람의 부고다.


농투신했던 농민운동가 엄성준씨, 불의의 사고로 목숨잃어


 사진을 보니 가끔 학교에서 얼굴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없다.

 멋지고 좋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세상,
 더러운 새끼들은 기름진 뱃가죽 둥둥거리며 금으로 된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세상.

 그리고..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여기서 할 말이 있으면 안되는거죠?
 나는 그냥 더 무거워진 짐을 들고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거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세상을 향해서.

이건희가 철학박사 학위를?

기사 원문

이거니가 고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건에 관한 간략한 내용은 위 링크에 있구요.


의문 1. 이거니는 왜 명예경영학박사나 명예경제학박사가 아니라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는가?

 보통 경영자들이 돈주고 명예학위 받을땐 경제학이나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지 않나요? 왜 이거니는 하필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아서 가뜩이나 기명사미(도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바 있지요.)때문에 쪽팔린데 똥칠까지 하는걸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거니는 일본 와세다대학 상과(아마도 상경계열인가 봅니다.)를 나와서 조지와싱턴대학의 경영으로 유학을 다녀온 해외파입니다. 그의 대학시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검색해보기도 귀찮거니와, 일원 한 푼 준 적 없는 놈의 몇십년전을 뒷조사 할 만큼 마음이 넓지도 못해서 그냥 넘어갑니다만, 그냥 나온 대학만 봐도 이건 자신의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 의거한 해외유학이라기 보다는 부모, 즉 이병처리의 계획적인 강권이 이유일꺼라는 냄새가 팍 납니다. 이른바 후계자 수업이라는 거지요. "이건희(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향하고 있다)"는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책의 일 부분에선 그의 유학시절을 이런 문장의 시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막내아들인 이건희를 몹시도 귀여워 했다… 중략… 이병철은 이건희에게 선진국을 배우라고 권유한다. 당시 이건희는 연세대학교에 합격, 등록금도 내고 교과서까지 다 사놓은 상태였다."

 딴은 멋지게 선진국을 배우라고 했지만 실상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말이죠, 요즘 삼성의 행보를 보면 거대독점재벌로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베트남 개안사업이나, 뭐 어디 해외에서 좋은일, 즉 사회환 하는건 코스모폴리탄적인 입장에서 아주 권장할만한 일이지만(그러한 사업들이 기업이미지 광고로 이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실 삼성이 국내에서 진짜 사회환원 한 번 해본적 있습니까? 대한민국 사람들 웃겨요. 삼성이 매년 어디에 기부하고 불우이웃돕기에 십억씩 내고 이런게 사회환원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이거니 재산이 몇조랍니다. 몇조. 몇 억도 아니고 말이죠. 거기서 백억 이백억 기부하는건 우스운거에요.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환원이 아니죠. 사회환원이란 좀 더 총체적이고 주체적이며 의무적인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노력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는데, 이거니가 일년에 몇백억씩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한다고 해서 구조적 불평등이 해소될까요? 말도 안되는 얘기죠. 삼성은 계속적으로 불평등을 지속시키려고 합니다. 기부활동은 눈가림이구요, 국내 경제의 오할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삼성과 그에 예속된 노동자들, 하청업체들, 중소 거래처들에게 노예 이하의 처우를 강요합니다.
 어쨌든 요즘 비정규직 문제로 시끄럽고 국제협약등에서 노동자 권익 보장 및 인권적인 기업 규제안들로, 그들의 단어를 빌자면 기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니까 이놈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홀리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별 웃기지도 않은 미술관이나 짓고 이거니가 명예철학박사도 받고 뭐 이런거 아닐까요? 어떨까요, 삼성그룹 회장은 철학박사다!… 인문과학서적이나 읽어보고 학위를 받는지 모르겠군요. 엄청 입맛 떨어지는 얘깁니다.


의문2. 고려대학교 학측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가?

 기사 보시면 알겠지만, 이거니 학위 수여식에 백명에 가까운 고대학생들이 모여 그의 학위수여를 막으려고 했답니다. 요즘 학생운동이란게 (아직도 학생이면서 이런식의 얘기를 하는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힘을 잃어가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건전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남아 있다는게 참 자랑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대 학측에서 수여식을 방해하려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 운동부 학생을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잠시 벙쪘습니다. 이거… 대체 언제쩍 이야깁니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식적인 사건을 가지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는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상상도 못할 해결책인데요, 운동부 학생을 동원해서 시위 학생들을 막는다, 라? 허허..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겁니까?
 일차적으로 학생은 학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보장받아야 하며, 학생을 강제하는 그 어떤 획책도 배격해야 하는 것, 이거 상식 아닙니까? 대체 고대 학측은 운동부 학생들에 대해서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부 학생들도 엄연히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니는 학생인데 어떻게 그들을 강제로 시위진압에 동원할 수가 있는거죠? 아.. 정말 진부하고 두렵고 짜증납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아니지만, 생각같아서 대학본부 정 중심에다가 FB라도 꼽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연히 고대 학생들은 이에 대해서 분노해야 하고 학교측의 진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합니다.

 우연히 어디 들어갔다가 이 기사를 보고 몇 자 적어봅니다. 솔직히 인권이나 노동, 사회… 이런게 어렵고 체질상 잘 안맞는다고 하면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상식이란게 커먼 센스고 커먼 센스라 함은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주된 사고방식이라고 할 때, 상식은 상대적이며 주류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저명한 사회철학자인 롤스가 그의 저서 중 어딘가에서 했던 말, 즉 "평등은 모두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기준으로 모두를 바라볼때 실현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렇게 얘기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음)"을 조금 바꿔서 "상식이란 모든이의 주된 사고방식이 아니라 약자의 입장에 섰을때 생겨나는 주된 사고방식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버 이전 공지

서버 옮깁니다.
이제 학교랑 빠이빠이 하고 돈주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옮겨갑니다.
저랑 친한 분들 중에서 혹시 홈페이지 만들고 싶은데, 올릴 곳이 마땅치 않은 분들은 아래 이메일로 연락주시면 계정 드립니다.

5월 4일부터 1 ~ 2일간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앞 뜰에서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노천카페의 형식으로 맥주를 판다. 맥주값은 놀랄만큼 싸고 (이 말은 상상했던 것만큼 비싸지 않다는 얘기다. 500 한 잔에 2000원) 맛도 놀랄만큼 진하다. 물론, 안주는 시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까짓 일로 종업원이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나에겐 일종의 거만과 허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세종문화회관. 단 한번도 그 곳에서 실연되는 공연을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때가 되면 이 맥주맛을 잊지 못해서 때론 혼자서 때론 몇 명의 친구들과 지나가다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삼년째구나 벌서.

 어젠 인사동에서 일때문에 미팅이 있어서 갔다가 세종문화회관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왔다. 걸어가기엔 좀 빠듯한 거리, 라고 느꼈다. 역시 연애할때하곤 다른 모양이다. 날씨도 더웠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여서 정류장 앞에 도착했을땐 거의 녹아웃 상태였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간이 테이블이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나서 무작정 나도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시킨다.
 별다른 집회일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짭새들은 불온하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건너편 미 대사관 앞에선 한양대 학생들이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깃발을 들고 서 있다. 그마저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여전히 고가의 대형카메라를 든 멋진 남성과 귀엽고 아담하면서도 역시 상당히 고가인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든 멋진 여성들은 연신 세종문화회관을 찍어댄다. 재잘재잘. 여전히 버스들은 줄을 이어 정류장에 도착했다가 출발하고를 반복. 공복에 마신 맥주탓인지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딱히 전화해서 불러낼 사람도 없었고 기다리는 것도 지쳐서 혼자서 홀짝홀짝 맥주를 마신다. 세종문화회관의 거용이 만들어낸 그림자 아래서 지친 청춘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갑자기 심한 복통이 몰려왔으나 이내 취기로 인해 통증이 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기도 없고 대상도 없는 막연한 분노. 서울의 중심, 이 지리적 중심 혹은 이데올로기적 중심, 그것도 아니면 소문의 중심이거나 서민들이 가지는 막연한 자부심으로써의 중심. 그 중심에다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고 싶었거나, 혹은 내 머리위로 핵폭탄을 떨어트리고 싶었다. 무기력과 교만과 낙담의 중심에다가 말이다.
 잠시 머리를 텅 비웠다. 젠장. 욕이 나온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왜 여기서 대낮에 맥주나 마시고 자빠졌나. 다시 사물이 분주히 가속한다. 나는 점진적으로 고도를 높였다.
 버스가 도착해서 시원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이어폰에선 피아졸라의 센트럴파크 공연실황이 흘러나온다.

“…여러분이 흔히 아코디언이라고 알고 있는 이 악기는 사실 반도니언이라는 악기입니다. 이건 1854년에 교회음악을 위해 발명된 악기이지만 고작 2년 뒤에 사람들은 이걸 부에노 사이레스의 창녀촌으로 가져왔고 지금은 제가 센트럴 파크에 가져왔습니다. 이 악기는 참 여러 곳을 여행한 셈이군요. (웃음)
 하지만 전 지금 농담하려는게 아닙니다. 진지하게 말해서 이 악기는 비현실적인(surrealistic) 역정을 겪었지만 이것은 마치 탱고가 어떻게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 같은 곳에서부터 태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뉴올리언즈 재즈같이. 이런 것들은 그 시작이 분명하진 않지요. 하지만 오늘은 분명할껍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자유, 음악 그리고 사랑같은게 분명한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매우 감사합니다. 제 음악을 즐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