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seek

가끔 soulseek을 켜 놓고 있으면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낸다.
전부 다 자기를 내 유저리스트에 추가해 달라는 내용인데, 나는 그다지 그런걸로 안된다고 하기가 뭐해서 아무 말 없이 추가해주고 있다.

몇명은 추가해달라는 말만 하기가 미안했는지, 자기 여자친구를 위해서 라느니 딸을 위해서 (이 아저씨가 제일 의미심장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에나!, 딸을 위해 radiohead의 berlin 콘서트 실황 파일을 구하러 p2p를 뒤지는 아빠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이 되는데 아무리 인심이 좋아도 그런걸 잘 상상할 수가 없다.) 라는 등등의 말을 덧붙이곤 한다.
뭐, 그런 말 안해도 추가해주긴 하는데 그래도 이런 애교맞은 메시지를 덧붙이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이것저것 묻고 싶어진다.

나는 몰랐는데, 가장 최근에 내게 말을 건 캐나다의 어느 청년은 내가 굉장히 희귀한(?) coldplay의 앨범을 가지고 있단다. 나는 그냥 어딘가에서 적당히 다운받았을 뿐인데, 신기해서 오 그러냐, 했더니 실은 자기 여자친구에게 보내줄껀데(여자친구한테 줄꺼라면 앨범을 사지 이 사람아!) 자기를 내 유저리스트에 추가해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자친구를 위한다는데 해줘야지, 하고 말았다.

당나귀 류의 p2p에서 나도 언젠가 한번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마 무슨 앨범파일인가를 다운받으려던 것이었는데 내가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앨범인데 지금 뜨는 소스가 당신 하나뿐이다. 미안하지만 다른 방법으로(email) 내게 좀 보내주면 안되겠냐, 고 했더니 한참있다 한다는 말이 ‘어떤 파일도 공유하지 않은 녀석에겐 절대 못줘!’ 란다.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당나귀라는걸 깔고 파일을 구하러 다니던 때라 공유를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상대가 그런걸 확인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터라, 아니 이 새끼가 그걸 어떻게!! 하며 놀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그럽게 보내줄 수도 있는거 아닌가, 하고 있다. 얄미운 녀석. 나도 지금은 많이 공유한다고!

생각난김에 soulseek을 켜뒀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내 파일을 원하고 있다. 나는 인심을 쓴다는 식으로 허용된 사용자 접근을 2명에서 3명으로 늘려주었다.

일단 기본적인 복구는 마쳤습니다.

예상외로 굉장한 삽질이었습니다.

서버는 이제 Redhat 9.0에서 Fedora Core 2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긴 시간이 소요되었던 이유 가운데 가장 컸던 것은 데이터베이스 서버인 Mysql의 버젼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태터툴즈 1.0 출시에 맞춰서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Mysql 4.1버젼을 인스톨 해보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기존 데이터와의 호환성 문제(한글 Character Set의 충돌), 아직까지 UTF-8환경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 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4.0.X 버젼으로 다운그레이드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자동화된 패키지 관리 시스템인 apt-get을 통해 3.29버젼을 인스톨했고 지우고 4.1버젼에서 왕 삽질, 다시 지우고 4.0.X 버젼으로 이전한 셈이 되는군요.
Mysql 4.1은 매우 매력적인 데이터베이스 서버이지만 도입은 조금 더 고려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태터툴즈 1.0도 데이터베이스 하위 호환성을 유지한다고 하니 그다지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어 보이는군요.

다시 한 번 데비안의 고마움을 느꼈던 이틀이었습니다. 데비안에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최신 패키지 업데이트가 (매우) 빠르고 안정적이며 원하는 패키지를 (의존성 문제 없이) 마음대로 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Fedora의 경우 4버젼에서 이제 5버젼의 릴리즈가 임박한 시점에, 구버젼인 2의 패키지 지원이 미흡한 점은 확실히 문제이군요.(Fedora Core 2에 대한 지원은 이미 오래전에 http://fedoralegacy.org로 넘어갔답니다. 이번에 알았네요.) 저는 윈도우 XP를 쓰지만 얼마전에 윈도우 98의 업데이트를 잠정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해서 비난의 화살히 많았는데 그땐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거지요. 누가 윈도우 98을 쓰겠냐는 겁니다. 그러나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서버의 제한적인 상황(업체에서 지정해준대로만 OS를 깔 수 있다는 것)에서 Fedora Core 2를 사용해보면서, 확실히 윈도우 98의 업데이트 중단은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시나 인간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잘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인가봅니다.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일단 제 홈페이지만 복구해놓았습니다. 세입자들의 것도 이제 복구해야겠네요.

간밤에 함께 해 준 산울림에게 감사드리면서…

심야의 Ketil Bjornstad

점점 연말기분, 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주위의 분위기도 그렇고, 날짜가 지나가는 것도 왠지 기계적으로, 어제 다음이 오늘 오늘 다음이 내일, 하는 식이어서 지금이 12월이고 (게다가 벌써 중순에 가까워지고) 눈이 오고 하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 내가 그 모습 안으로 끼어드는 것이 어쩐지 정당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요일은 언제나 하루 종일 잠만 잔다. 또 슬슬 라이프사이클이 붕괴되고 있다. 지금은 새벽 한시 사십분인데, 아까 저녁 먹고 또 너무 졸려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가 이제야 일어난 것이다.
간만에, 그러니까 어제와 오늘 낮, 에 잠들었을때는 꿈을 꾸지 않았으나 (혹은 기억도 못할만큼 피곤했었으나) 저녁에 들었던 잠에서 꾼 꿈은 어렴풋하게 기억할 수 있다. 와, 간만에 야한 꿈을 꾸었다. 그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라 깨고 나니 좀 민망하기도 하다. 잔뜩 욕구불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꿈 속에서 내가 상당히 비범한(?) 성행위에 몰입해 있기도 해서 혹시 내 성향이란게 그런게 아닐까 하는 가벼운 불안감도 있고,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퍼블릭 도메인이니 구구절절이 그때 그의 그것은 어땠고.. 하는 식으로는 말 못하고.. ㅎㅎㅎ 그런데 어쩐지 조만간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이 얘길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주헌이는 괴상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다, 는 소문이 은은하게 퍼질지 모르겠다. 그러라고 하지 뭐.

영혼탐색기로 어제는 에릭 크립튼의 것들을 잔뜩 받았고, 또 그 이전에는 뉴스그룹에서 산울림 전집과 패닉과(참, 패닉 돌아온다던데..) 넥스트와 퀸의 것들을 잔뜩 다운받아서 한동안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산울림은 정말 최고였다. 그걸 설명한다는 것은 웃긴 짓이고… 넥스트는 간만에 들어보니 최악. 신해철이는 그냥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네..’ 시절이 최고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비범하며 여러가지 것에 대해서 고뇌하는 인간인지를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서 알리려는 것 같다. 얼마전에 맥주홀릭님 블로그에서 김윤아에 대한 아쉬움, 같은, 혹은 짜증남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고 그 아래 달린 샤XXX님의 댓글에서 무릎을 치고 말았는데, ‘감동없는 매혹’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나는 매우 맞다고 생각한다. 감동없는 매혹. 너무 무섭다.

어쨌든 Ketil. 사실은 이걸 틀어 놓으니 연말분위기가 난다, 는 이야길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화이트 크리스마스 어쩌구 하는 음악은 아니다. 캐롤도 아니고, 연말에만 자주 들리는 곡도 아닌데 그냥 이 말랑말랑한 피아노 멜로디를 들으니, 문득 간간히 눈발이 나리는 강남역이나 밤이 깊어도 사람들 헤어질지 모르는 종로, 같은게 떠올랐다. 그렇다고 내가 연말에 간간히 눈발 나리는 강남역에 가봤다거나, 헤어질지 모르는 종로에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분위기다.

요즘엔 연말만 되면 솔로부대 단결하라 어쩌구, 올해도 케빈과 함께 뭐 이런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나도는데, 그런 얘긴 쉽게 해선 안된다. 크리스마스야 뭐 특별한 날이겠냐만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 날에 애틋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왠지 겨울이 더 추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포토샵을 키고 이미지를 보정하며, Ketil을 듣다가 강남역에서 누군가와 반갑게 조우하는 나 자신을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연말에 강남역은 왠지 지옥같을 것 같다.)

블로그 일시적 이용 중단 안내

서버 이전 관계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예상)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서버 내 각종 프로그램들이 너무나 엉켜 있어서 원활한 이용이 불가능했었습니다. 이에, 속 편이 완전히 밀고 다시 OS를 초기화 하려고 합니다. 데이터는 제가 모두 백업할 것이며, 다른 점은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추운 겨울,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며..

—->

이상은 제 서버에 기거하는 분들의 게시판에 뿌리고 다닌 글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같은 글을 붙여 넣기 하니까 왠지 이상하네요.

아무튼 위와같은 이유로 잠깐 블로그가 열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우 추워.

못먹는 것

어쩌면 이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어떤 옷이 내게 잘 어울리겠거니 하거나 어디서 살면 정말 좋겠거니 하는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부분 입거나 먹거나 자는 것, 이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써놓고 정말 내가 그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편식하지 않는건 좋은 습관이라고 하고 다행스럽게도 편식같은건 모르고 자랐다. 어린 시절엔 서울 근교의 농(깡)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귀했다.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해서- 그런게 아니라, 군것질꺼리를 살 돈이 있어도 구멍가게에 있는 것이라곤 새우깡, 뭐 그런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 과자같은건 잘 먹지 않았고 차라리 뒷산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 산딸기, 개암, 칡뿌리, 머루, 다래… 뭐 이런걸 먹거나 했고, 가끔은 한동네에 같이 살았던 외할머니와 함께 막걸리에 설탕을 타서 한사발씩 마시곤 했던게 전부였다. (막걸리에 설탕을 타면 최고의 음료수가 된다.) 이렇다보니 뭔가를 강렬하게 먹고싶어하는 열망같은게 희박해진 것 같다. 산에서 나는 것들이야 내가 안먹어도 거기 있는거고 사실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지냈던 것이다. 구하기가 좀 힘들지만, 산에서 다래를 만난 날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래는 엄청 달거든요. 또 어린 마음에 칡술을 담근다고 산에서 통통한 놈으로 칡을 캐와서 정성들여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마당에 묻어두었을꺼에요. 나중에 꺼내서 아빠 드려야지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그런데 그 뒤로 칡술을 묻은 기억을 까맣게 잊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죠. 지금 가보니 제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그 위에 콘크리트 빌라가 생겼더군요. 아마 지금쯤 꺼내면 대략 20년은 된 칡술이 되어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정말 먹고 싶은게 없다는 말은 곧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잘 먹는다는 말이 되는 것.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게 하나 있는데… 나는 멍게를 못먹는다. 뭐 이 악물고 먹으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다지먹고 싶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멍게 킬러. 한번은 멍게 한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까먹은 적도 있다. 으웩.

동생도 가리는거 없이 잘 먹는데, 이 녀석은 신기하게도 굴을 극도로 싫어한다. 걘 ‘굴’ 한마디만 해도 기겁을 할 정도다. 어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티븨에 굴요리 스페셜, 뭐 이런게 나왔는데 녀석은 티븨를 돌리지도 못하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굴을 양식하는 사람들을 다 구속해야 된다느니, 굴을 즐겨 먹는 사람들은 다 인간말종이라느니 온갖 험한 욕설은 다 해댔다. 옆에서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은 그다지 가리는 음식이 없는듯하다. 대충대충 있는거 먹고 없음 말고, 이런 식이다.

음식은 큰외숙모가 정말 잘하는데, 가끔 외갓댁에 무슨 모임이라도 있으면 나는 정말 기쁘다.

요즘은 매운 음식만 먹으면 자꾸 토하거나 설사를 해서 가급적이면 안먹으려고 한다.

해삼도 무척 좋아함. 하지만 못먹은지 육천만년은 된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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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은 죽음으로 흐른다. 물을 마셨다. 어둡게 출렁거리는 검은 바다, 처얼썩. 문득 작년 시월 부산 무슨무슨 콘도 앞 방파제가 떠오른다. 검은 바다가 무한히 널려있었다. 어디가 뭍이고 어디가 바다일까. 경계가 꺼멓다. 문득 사람들은 생각났다는 듯이 바다로 걸어가다가, 어느 사이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죽었고, 아마 게시판에서 아이디 몇 번을 보았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죽는다. 퍼런 살깣과 검은 허파를 지닌 채 두꺼운 생활의 모양을 머리에 이고, 정신을 차리면 죽어있다. 자꾸만 살아 있음을 까먹는 시대.

찾아보니 어딘가에 ‘비극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았다고 적은 적이 있더라. 뻥이었어.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해.

아, 제발 죽지 마라. 다들 죽지 마, 내가 먼저 죽기 전까지. 잘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이리 나를 뒤흔드는데, 당신들의 죽음이 과연 날 어디까지 몰고갈지 감히 알 수 없어. 미안하지만, 죽게되면 내가 먼저 죽을래. 정말 미안해.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반쯤은 직업병으로 인터넷 컨텐츠 프로바이딩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있다. 그래서 종종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들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여긴 이렇게, 이런걸 새로’ 하는 식으로 구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구상만이다. 귀찮게 해당 업체 기획팀에 아이디어 메일을 넣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이건 어쩌면 순전히 내 개인적인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는 yes24에는 언젠가부터 ‘리스트’라는 기능이 생겼다. (꽤 오래전 일) 어떠한 주제 아래 책들의 목록을 임의대로 만들어 공개하거나 혹은 개인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은근히 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주로 이걸 ‘구매 예정’, ‘구매 대기’ 등등의 서적 목록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했다. 그러나 한때 나는 극심한 금전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으며 ‘구매 예정’ 목록에 올라간 책들을 ‘구매 대기’로 대거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매우 슬펐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런 목록을 내게 호의적인 누군가에게 메일로 전송해서 그 사람이 쉽게 결제해 내게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이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책 선물 조르기’ 정도가 되겠고 며칠을 보내면서 이걸 하나의 아이템으로 가시화 시켜 yes24 기획팀에 보낼 수 있었다.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어서 빨리 이런 아이템이 실현되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조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답장이 왔고, 매우 흥미로운 아이템이며 현재 예정된 컨텐츠 추가 작업이 있어 당장은 구현이 어렵고 내부적으로 개발할 컨텐츠의 목록에 넣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뿌듯하기도 했고 이제나 저제나 그 기능이 추가될까 싶어 한동안은 yes24에 열심히 드나들기도 했다. 근데 영 소식이 없어 실망하던 차였다.

오늘 문득 yes24에서 검색되지 않는 책이 있어서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이리저리 검색하던 가운데, 내가 이전에 기획하고 구체화한 ‘선물 조르기’ 기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화가났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완전히 같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며 페이지 플로우도 매우 유사했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내가 만든 기획안의 판박이였던 것이다. 순간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개인적으로 내 아이디어를 매우 중하게 여긴 yes24의 기획자 하나가 교보문고로 이직하면서 아이디어를 가져간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좀 더 알아볼 요량으로 교보문고의 ‘사주세요(선물 조르기)’ 서비스를 검색해봤는데…

알고보니 작년 초에 나온 서비스였다. 내가 yes24에 ‘선물 조르기’ 기능을 제안한건 올 해 초였고. 쩝. 뭐 할 말은 없다. 두 아이디어가 극도로 유사해서 잠깐 흥분했던 것이다. (근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나는 이 아이디어의 최초 입안자가 나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떤 특화된 서비스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 컨텐츠는 역시나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게 어떤 종합포털의 성격을 띄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김이 하얗게 퍼져, 멀건한 보름달이 구름도 없는 하늘에 뻔뻔히 떠 있네. 얼마 안되는 엄마 월급, 내가 사라지면 다 누나에게 줄 수 있겠지. 누나는 행복해지겠지. 어떤 중삐리는 뻔뻔하게도 겨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띵동-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어떤, 스물 여섯살짜리 여자의 일상을 대담하게 엿봤다. 24시간이 지나니까 서서히 실감되기 시작하는, 살얼음같은 일상. 불안한 ‘즉흥환상곡’의 환상이거나, 접혀서 수첩 사이에 꼽아 놓은 몇천원이었던. 나는 시간마다 분열된다. 왜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왜냐하면 분명히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진보를 꿈꾸거나, 따뜻한 겨울을 그리워하거나, 일산에 음악적 취향이 같은 친구를 두었거나, 새벽 두시에 느닷없이 누군가 날 불러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가수를 발굴하거나, 며칠째 공무로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어긋나거나, 점점 속이 안좋아져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거나, 잠을 서른 다섯시간씩 자거나, 만 삼천원짜리 웰트화를 사거나, 엄마하고 싸우거나 하는 나, 와 나, 와 나 사이의 나, 였거나 나, 가 될 나, 거나, 말거나. 수많은 나 들 사이에서의 화해, 같은게 힘들어진다. 내가 원했던 나 아닌 내가 되려는 시도는 이런게 아니었어. 내가 아닌게 되려던거지 수많은 나를 원한게 아니야. 아, 토하고 싶어.

내가 가진 거라고는 손재주뿐… 이걸로 뭘 할까… 미술? 이미 늦었어…

어떠한 우울을 유발하는 것, 불안이거나 공포, 강박, 부담을 야기하는 것을 따로 분리해 둔다. 그것을 여기에 적는다. 추위를 지켜본다. 아, 하나님. 제발 날 지켜주세요…

쓰고, 남기고, 결합시키고, 굳힌다. 방부제처리를 하고, 추상의 감옥, 전자적 실체의 세계에 가둔다.

프레드릭 폴의 SF 단편, ‘설계된 인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시키는만큼, 현실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기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더 뮤직 인 더 일산

그러니까, 뜻밖이었고 비일상이었으며, 충동적이었거나 불협음 같은 이었다. 김워냉군은 “간만에 서로 안취한다?” 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점심을 먹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종로 어디쯤에 있던 일식 선술집에서 우리는 소주와 뭐라더라, 사케, 인가 하는걸 마셨다. 사실 취할만큼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지 뭐. 또 술집을 나와 애매한 시간에 한 잔 더, 를 외쳤고 바에 가서 양주를 사먹었다. 나는 꽤 돈을 썼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받았으니 괜찮은 거래다, 싶었다. 아우, 우린 음악 얘기를 두시간 가량 했다. 롹과 포크, 재즈에 대해 얘기 했고 아무래도 음악에는 어떠한 내재적 실체, 진리, 간주관적으로 지각 가능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얘기했고 자연히 그리스(Greece)도 얘기했다. 민호, 혜란이, 원주에 대해 갖는 막연한 죄송함 감사함 존경함에 대해 얘기했다.

오 마이 갓뜨, 나는 지금 일산이다. 녀석의 집이고 어제의 그 다음 날이며 혼자다. 녀석은 이미 출근했다. 나는 곧 이 집을 나가야겠다.

어제 밤, 이 아담한 원룸은 작은 콘서트장 – 7년전 사당동의 재현, 혹은 마지막 우드스탁의 재현 – 이 되었다. 간만에 새벽 2시,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이 크게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들었다. 킥킥킥킥. 야, 나 미치겠다 이 음악은 진짜다, 가만 있어봐 이 부분이 아냐, 뭐냐 이보다 위대하냐?, 요 다음 이 쾅! 그래 이 쾅! 쾅! 쾅!, 자끄 루시엘 트리오의 에릭 사티는 즐거우면서도 기품이 있었어. 그러나 그 어떤 노래보다도 내가 발굴(?)한 The Czars의 Drug보다 강렬하진 못했지. 이걸 내가 틀어주는 순간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음악이 끝나니까, ‘야, 다시 한 번 더 듣자.’, ‘야,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 ‘…’
이거 매형한테 들려주면 끝나버릴까? 완전 죽을껄. 킬킬킬킬킬!!!

그러나 지금은 조용한 원룸. 방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그의 일상과 먼지같은 고독들이 스멀스멀 유령처럼 기어나온다. 견딜 수 없어 틀어 놓은 티븨에선 이경규가 뭐라뭐라 시끄럽다. 어떤 경우에, 티븨는 충분히 한 인간의 대용을 한다. 윤대녕의 ‘사슴벌레 여자’의 사슴벌레 여자는 냉장고가 한 밤에 쿵쿵대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넓직하고 든든한 한 남자의 등 같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애처롭다. 조금은 멜랑콜리해진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암튼.

목욕탕

백만년만에 목욕탕엘 갔다. 동네 남양탕은 남양사우나로 이름을 바꿨다. 코딱지만한 수면실이 새로 생긴 것과 체중계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요즘 들어 몸이 찌뿌둥하고 해서 뜨거운 물이 그리웠던거다. 삼십만년전에 우리 집은 욕조를 부수고 거기에 세탁기를 들여놓았다.

기억해보면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국민학교땐 일주일에 두번은 갔던 것 같다. (뻥 좀 쳐서) 내가 처음으로 잠수를 익혔던 것도 목욕탕이고 어린 마음에 알듯모를듯한 성(性)적인 야릇함을 배웠던 곳도 목욕탕이었다. 뭐, 추행을 당했다는건 아니고…

처음으로 잠수의 쾌감(?)을 깨달았을 때의 일이다. 손으로 코를 쥐어막고 몸을 웅크려 머리까지 물에 담그면 갑자기 소리가 불투명한 막을 통과해서 머리로부터 울리는 것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있어도 어렴풋하게 뭔가 보였고 온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물의 느낌도 무척 좋았다. 빈약한 무중력의 느낌. 이런게 어떻게 성적인 쾌감하고 연결되냐고 물으면 잘 대답 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그때 나는 좀 부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모든게 좋았다. 아득해지는 그 느낌과…

자궁의 기억, 뭐 그런거였을까.

맥반석 계란을 먹고 싶었는데, 왠지 뻘쭘해서 먹진 않았다.

바나나우유가 사라진 대신에 칡즙이 생겼다.

나는 아직도 사우나에 못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