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너의 뒷모습

나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어. 내 옆에서는 네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계속 희부윰한 음영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봤지. 얼굴을 만지고 싶었는데 네가 깰 것 같아서 말야, 너는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잖아. 나같은 백수하고는 상황이 다르니까. 아마도 너를 만지고 싶다는 것과 네게 해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절충안은 그냥 그렇게 지켜보는 것 뿐이었을꺼야. 꿈을 꾸고 있을까… 근사하지 않아? 적어도 네가 잠든 시간에 나는 깨어 있고 너를 바라보고 있어. 숨이 콱 막힐 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야. 그런데 너 코를 좀 골더라구. 하지만 그것도 너무 귀여웠어.

갑자기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줘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지? 너의 작고 아담한 원룸, 약간의 알콜과 음악. 따뜻한 포옹과… 닭찜을 시킨건 사실 좀 무리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멋진 시간을 만들어냈잖아. 나는 네 화장품 냄새가 참 좋아. 씻은 뒤에 그 옅은 살깣의 냄새도 좋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네가 처음인 것 같아.”

“생각해보면 우리 지금까지 참 너무 외롭게 살았던 것 같아. 아무리 옛 일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아.”

“인생을 너무 낭비한게 아닐까?”

네가 참 좋아.

“나도 네가 좋아. 내가 널 치료해줄꺼야.”

나도 널 치료해줄꺼야.

“주말에 어딘가로 여행이나 갈까?”

좋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어.

“너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니?”

강릉.

“바다?”

응. 있지, 가서 아주 찐득하게 사랑하는거야. 찐득하게 이야기하고, 아주 긴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서, 사실 나는 그때 조금 깨어 있었는데, 그냥 일부러 자는 척 했어. 내가 없을때 너는 어떻게 출근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까 엿보고 싶었거든. 작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네가 샤워를 하고 어제 널어 놓은 빨래감을 만져보다가 다 마른 것들만 따로 곱게 개어 놓고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옷을 입고 (네가 옷을 입는 모습은 최고였어!) 방안을 둘러보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신발을 신은 다음 문을 열고 나가는 것까지 다 엿봤어. 눈물이 났지. 튼튼하게 자기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내게는 그야말로 신비야. 어쩜 그렇게도 당당할 수가 있을까. 어쩜 그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지금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네 컴퓨터를 켜고 이 글을 쓰고 있어. 내 옆에는 내가 다시 다 마른 빨래감은 따로 개어 놓고 아직도 마르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널어 놓은 것들이 있어. 그 중엔 네 속옷도 있는데, 의외로 대담한 것이어서 깜작 놀랐지만 다음 번에는 이걸 입은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

이제 갈께. 미안하지만 설겆이는 도저히 못해놓고 가겠다.

너의 출근하는 뒷모습은 정말 최고였어.

김원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사 폭풍

아홉시 뉴스를 보다가 중국으로부터 시작 (정확하게는 몽고) 된 황사가 심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국 베이징, 인가 어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황사가 도가 지나쳐 대낮에 깊은 밤을 가져왔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같은 모래 폭풍이 도시를 휘감았다. 대낮인데도 가로등 불빛이 겨우 발치를 비춘다.

황사는 이렇게 매년 더 심해질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하게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사막히 세계를 뒤덮지 않기를 바랬다. 밥을 먹다가 모래가 씹히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주 긴 시간을 들여서 무슨 심리검사를 했다. 어머니가 자주 다니는 신경정신관가 뭔가에서 받아 온 거라고 했다. 비싼거니 공들여 하라고 하시는데, 이 검사 입대 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하면서 받아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이 결과에 따라서 무언가 치료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디까지나 아직은 정상이길 바라고 있다. 약이 그 어떤 병이라도 치료할 수 있을꺼라고 어머니는 굳게 믿고 있다. 내 삶이 질병이라면, 도저히 그렇게라도 치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거나.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미 병무청에서 받았던 그 검사의 결과로, 군의관이 나를 따로 불러 심각하게 보충역 판정을 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나왔어. 4급 줄 수 있는데, (아마 4급이면 공익이거나 상근으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 할래? 넷! 그냥 입대하겠습니다. 그리고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무사히 잘 지냈다.

날이 더워지긴 더워지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땀을 많이 흘려서 온 몸이 끈적해지고, 밥을 먹으면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 그래서 자꾸 의미없이 샤워만 한다 샤워만… 하늘에 별이 없다. 별, 하니까 며칠 전에 다시 꺼내 본 영화 Contact가 떠오른다. 만약 이 우주에 우리 밖에 없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낭비 아냐? 차라리 그건 너무 외로운 것 아니냐고 하지… 그러니까 어떤 種적인 외로움 말이다. 대화 가능한 지성체가 전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는 것.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안녕, 안녕..

지능 상승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아바타가 레벨-업을 할 경우에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매우 개략화된 인간의 특성 (힘, 민첩성, 체력, 지능, 정신력 등등) 을 보너스 포인트가 허락하는 한 원하는 대로 올릴 수가 있다. 이로 인해서 아바타는 전에는 착용하지 못했던 장비들을 착용 한다거나 행동이 이전보다 기민해졌다거나 하기도 하는데, 현실에서의 인간도 레벨-업 할 경우에 이런 식으로 특성값들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요즘 내가 예의 레벨-업을 해서 (과연 뭘 해서?) 지능의 특성값이 대폭 상승한 것인지, 이전에는 머리를 싸매고 매진해야 했던 작업들을 한큐에 완료할 수가 있다. 말 그대로 보인다. 마치 언덕 위에 오른 느낌. 그런데 레벨-업 운운한건 그냥 농담이고 아마 의도하지 않은 여유가 넘처 흘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무 황당하게 끝나버린 일들이 많아서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원래 이런건 끙끙대며 해결해야 제맛인데.

첫 문단의 마지막 줄에 이어서, 음, 만약 정말 그런게 존재한다면 나는 매 레벨-업마다 지능만 올리고 싶다. 물리적인 특성들이야 관심도 없고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특성은 전혀 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좋은 인상을 주려고 최대한 열심히 뛰었던 첫 축구게임 뒤에 고참들이 ‘너 다음부터 축구한다고 하면 죽는다.’ 라고 해서 오히려 감사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지능이 높다면 참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요즘엔 똑똑한게 최고니까, 이를테면 무한경쟁시대에 매우 유리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지식정보가 집중된 인간이 유리하다. 자본사회에서는 자본이 그렇고, 수렵과 채집의 사회에서는 수렵 채집을 잘하는 인간이 그렇듯이. 그러나 이제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 가능해진 때에는 더 이상 지식정보를 “소유”한 인간이 아닌 매우 그럴듯하게 “가공, 정리”하는 인간이 보다 유리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아직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공유한 개인들에게만 가치가 있을 뿐이지, 집단적으로 보면 쓰레기일 뿐이다. 이런 모토,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가치가 없다. / 링크되지 않은 페이지는 무의미하다. / 그래서, 너는 어디에 링크될껀데?” 등등이 힘을 가진다. 매사에 좀 더 뭉뚱그려 보아야 한다. 개체가 아닌 집단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디테일한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떤 경향적인 것들, 전체가 흔들리는 움직임들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북마크는 사라질 것이고 검색엔진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된다. (예언) 나는 습관적으로 웹주소들을 외우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다음”이나 “네이버”등을 검색엔진으로 검색해서 방문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건 우리 엄마) 그런데 그게 맞다. 주소를 외우는 것은 쓸데없이 디테일하다. (대량생산된 정보-페이지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검색엔진이 더 이상 잡아내지 못하므로 중요한 것들은 스크랩해둬야 한다는 등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말하자면, 정말 어쩌면 노동조차도 우리에겐 너무 디테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렇다. 나는 우리가 좀 더 다른 것들을 보았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확 바뀌어서 대립과 반목이 있던 자리에 여유와 평화가 자리하게 하는 것이다. 맨날 행복해지도록 노력만 했지 한번이라도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한 불쌍한 우리는 되지 말자는 것이다. 아니면 어떤 선배처럼 과감하게 행복은 사기다, 라고 선언하는 것도 좋고.

뭐 말도 안되는 얘기만 계속했다.

나는 다시 일하러-

친구

불투명한 막 같은게 겹겹이 서 있었다. 하늘로는 그것이 없어서 그대로 푸른 하늘과 구름 같은 것들이 보였다. 전력으로 그 막에 몸을 부딪혀도 충격이 느껴지지 않고 그대로 부드럽게 나를 다시 되 튕겨내었다.
이 막은 미로처럼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으므로 온전하게 전진하기는 매우 힘이 들었다. 이를테면 머리 속으로 전진하려는 진로를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 진로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막을 돌아가다 보면, 이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막이 왜 나를 가로막는지, 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등은 사실 관심이 없었고 그저 (아마도) 막이 있으니까 그걸 돌아서 가곤 했던 것이다.

가끔 쏴아-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다가 힘이 들면 막 아래에 누워서 바람에 얼굴을 맡겼다. 정말로 달콤한 맛이 났다. 좀 더 정교하게 이야기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었다. 혹은 전지분유같은 맛. 혹은 얼음사탕같은 맛. 스산했지만 사실은 풍부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어디엔가 나처럼 이 막에 가로막혀 걷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을 걷기의 목표로 삼았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는건 의미가 없어, 알지?’
‘그렇겠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해.’
‘그런 다음엔?’
‘내가 세계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해.’
‘그리고?’
‘꼭 살아야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피 속에 각인된 그런 외침. 현무암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투로 그런 얘길 했었지. 건방지다는 느낌은 없었어, 왜냐하면 현무암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었으니까. 나는 슬며시 웃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나는 백만년 동안 걸었다. 백만년 동안 사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해진 것 일테니까. 단지 누군가 나처럼 이렇게 헤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납득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었다. 서서히 나와 내가 분리되었고 그 뒤에 분리된 나는 바람이 되었고 남은 나는 또 막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육만년 쯤 뒤에 바람이 된 나는 나를 만나 소슬거리는 희망을 준다. 힘 내. 여긴 너 말고도 수많은 너들이 걷고 있는 땅이야.
그래서 나는 세상에 나처럼 가로막혀 걷고 있는 수 많은 다른 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제, 술을 마셨다. 정말 몇년 만에 만나는 녀석들도 있었고 해서 학교엘 갔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술을 마시게 되어서, 처음엔 밥을 잠깐 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술을 마셨다.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소주를 먹고 맥주 먹으러 또 가고, 마지막엔 전통주점에 가서 또 마시고… 마지막엔 내 몸이 알콜이 된 것 같았다. 손을 펴 보니 반대편이 투명하게 비쳤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한 것은 집에까지 잘 와서 문을 열고 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기억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술이 전혀 깨지 않았다. 계속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예전엔 술 마신 다음 날이 너무 힘들어서 계속 토하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아직 흡수되지 않은 위장 속의 알콜을 다 토해내고 억지로 미음을 끓여 조금 먹었다.

저녁 즘이 되자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저렸다. 간혹 근육이 뭉쳐서 그렇게 아프기도 하는데, 대체 잠을 어떻게 잤길래 이리도 어깨가 저린 건지 모르겠다. bullet proof, i wish i was. 저주파 안마기를 한참이나 하고 있으니 조금 괜찮아졌다.

또 하루, 아니 이틀을 이렇게 보낸다. 밖은 날씨가 참 맑다.

2월 17일자 tom mcrae 일기

February 17th, 2006
Got to be quick…. new downloads in the music section. Let’s call this the audience participation collection.

This is a giraffe. He lives in Niger, Africa. I was with my driver heading back to the capital, Niamey, when we veered off the road and weeved round bushes and trees and suddenly there stood this beautiful creature. It was welcome distraction from the reason I went to Africa in the first place. Maybe the news will start reporting that the situation still isn’t good out there, but then again maybe not. I have no idea why I’m telling you this. Because otherwise I have nothing interesting to say. Still writing songs, getting ready to start recording. Still drinking coffee.

2006년 2월 17일.
빨리 했어야 했는데… 어쨌든 music section에 새로운 음악파일이 추가되었습니다. 가서 들어보세요.

이건 기린입니다. 아프리카, 니제르란 곳에 살지요. 운전수와 함께 니제르의 수도인 니아메로 향하고 있을때, 우린 그냥 길이 아닌 곳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덤불과 나무들이 조금씩 보였고… 갑자기 이 아름다운 생물이 나타났지요. 생각지도 못한 놀람이어서 참 기뻤습니다. 만약 뉴스에서라면 “현재 이곳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습니다.. 어쩌구” 하겠지만, 뭐 아닐 수도 있구요.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아마도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전 그냥 계속 곡을 쓰고… 녹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커피도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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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모르는 곳은 어물쩍 넘어가고, 대충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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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것저것을 하다가 밤이 지났고 아침이 되어 근검하게 배달되는 신문을 훑다가 (이건 사실 거짓말) 책을 보다가 밥을 조금 먹고 병원에 갈까 잠깐 또 생각하다가 그냥 침대에 누워 별을 세고 있었다. 타이밍, 이 중요하다 나는 어느 한 시점을 제대로 잡으면, 항상 제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고 여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만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때때로 과연 내가 누구 편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에 꾸었던 꿈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꿈 속의 망상으로) 이산화탄소병, 에 걸렸었다. 이 병의 증상은 들숨은 가능하지만 날숨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물론 조금은 당황했었다. 숨이 내쉬어지지가 않아서 가슴이 계속 부풀어올랐다. 그런데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당황은 했었다. 틀에 맞지 않는다. 부정교합, 이다. 또 어제는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중고로 내놓는다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두 권을, 가능하면 구하고 싶다고. 그러나 답장으로 온 메일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냥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두 권 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 권은 내가 보고 다른 한 권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메일 주소도 맞게 보냈는데… 톰 맥레이가 (차라리 바라는 바 대로) 가죽바지에 길게 머리를 기르고 코카인이나 빨아대는 롹커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노래 부르기나 악기에 전혀 조예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아, 그런데 지금 내가 왜 깨어 있냐 하면은 어제 마치고 보낸 일감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이다. 큰 문제는 아니다. 컴퓨터를 켜는 것은 내게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듯한 일종의 제의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얄밉게 할 일만 마치고 전원을 내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찬찬히 다시금 사이트를 둘러보고 윈앰프를 켜서 음악을 듣고 (한 두어 곡) 여기에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때로는 열 서너줄도 더 쓰고 그냥 지워버린 다음에 이불 뒤집어 쓰고 울다가, 또 때로는 나중에 써야지 하면서 다음에 지워버리거나 한다. 횟배를 앓는, 정신은 은화와 같이 맑다. 또 뭐였더라? 딕셔너리 넘어가듯. 날개에서 아마도 주인공의 처는 주인공을 매우 사랑했을 것 같다. 사랑이 무한한 잠재력이라면, 그의 처는 드디어 그에게 없던 날개를 사주었던 것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처럼, 아주 먼 과거에 들었던 아주 먼 미래의, 혹은 아주 먼 미래에 들었던 아주 먼 과거의 꿈 같은 것. 미안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적확하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는 표현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이게 내 잠재력이라면 잠재력이고, 내 한계라면 한계다. 그런 맥락에서 무엇이 어떤 것의 미래라면, 그것은 곧 어떤 것의 과거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가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지, 과거에서 곧 미래인 현재에 때때로 과거가 투영되면서 이 영화가 이야기를 뭉그러뜨려 어떻게 판타지를 만들어 나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아마 나만 아는 것 같다. 왜냐하면, 슬프게도… 내게, 여자는 항상 먼 미래에 보았던 과거의 잔영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분들은 이게 무슨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애써도 된다는 얘기) 나는 나만이 아는 언어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미래의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약간이라도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은 “The Longest Journey”라는 게임을 끈기를 갖고 마지막까지 플레이해보기 바란다. 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보름동안이나 플레이 해야만 했던 정말 아름다운 게임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의 방에 갖힌 인간들이여. *용기를 갖고 / 패배하라.

*”피를 마시는 새” 中

can’t take my eyes off you

여기는 일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다. 언젠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그 곳은 더 이상 지하가 아니길 바란다고,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지상도 매우 어둡다.

참, 아침에 대충 슈퍼에서 사 온 인스턴트 북어해장국 한 블럭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 생각하면서 먹도록. 그리고 물은 꼭 사 두도록 해라. 급하게 주전자에 수돗물을 끓여두었다. 게토레이도 한참이나 남았다. 그런데 방이 어둡다. 괜찮다. 나는 어두운 것에 익숙하다.

The Blower’s Daughter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would be
Life goes easy on m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shorter story
No love, no glory
No hero in her sky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should be
We’ll both forget the breeze
Most of the time
And so it is
The colder water
The blower’s daughter
The pupil in denial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off you
I can’t take my eyes…

Did I say that I loathe you?
Did I say that I want to
Leave it all behind?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o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off you
I can’t take my mind…
My mind…my mind…
‘Til I find somebody new


뒤져보니 다미엔 라이스가 있어서 한참 듣다가.
나는 이제 집에 간다.

춘천

동기 하나가 중국에 간다고 했다. 뭐 복잡한 어쩌구 저쩌구가 있고 결과적으로는 공부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일, 우리는 술을 먹었다. 종로에서 닭한마리를 먹었고 일식풍의 술집에서 오뎅과 꼬치를 먹고 마지막으로 여자 알바가 기똥차게 이쁘다는 무슨 중국집에 가서 소주를 한 병 시켜놓고 누룽지 해물탕인가 해물 누룽지탕인가를 먹었다. 확실히 여자 알바는 이뻤지만 서로가 너무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흥에 겹지는 않았다.

두번째 갔던 일식 술집에서 “춘천가는 기차”가 흘러나와서 누군가 (아마도 내가) 춘천에 가자고 했던 것 같다. 가자, 가자 씨발, 왜 못가냐 가자. 그랬다. 그래서 그 다음날 우리는 춘천에 갔다.


소양댐. 저수량 29억톤.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한다.

카산드라 윌슨이 지금껏 남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국 간다는 동기는 배싸라는 별명을 얻은 춘천 여행. 쓸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별 이야기가 없네.

더 많은 사진은 갤러리에 올려 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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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곡 from 사당동Dj네 집